|해외수필| (미국)



스칸디나비아에서 만난 클래식


박 복 수



러시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세인트 피터즈버그 St. Petersburg에 다녀왔다. 또 하나의 네덜란드의 수도 앰스터댐 Amsterdam 같다고 세인트 피터스버그 성업자인 피터대왕이 ‘북의 여왕’이라 부른 아름다운 곳이다. 도시이름도 피터대왕의 이름에서 온 것이다.
우리가 탄 배는 그곳에 3일간을 정박해 있었다. 둘째 날은 18세기 왕족들이 살던 궁 Catherine Palace를 보러 갔었다. 유람선에서 17마일밖에 안 되는 곳을 교통 사정이 몹시 나빠 세 시간이 넘어서야 도착했다. 저녁 식사는 궁 안의 ‘다인닝 홀’에서 정식 러시아 요리를 대접 받기로 되어있어 모두 정장 차림인데 고스란히 가랑비를 맞아야 했다. 거기다 저녁 식사 시간이 3시간이 지연 되어 나는 물론, 모두 얼마나 시장들 했을까? “금강산의 절경도 식후구경”이라던데. 비 속에서 경쾌한 행진곡을 울려대며 대기 중이던 왕가의 근위대의 환영을 받았다. 너 나 할 것 없이 버스 안에서의 지루함은 다 어디로 가고 캄캄한 비 속을 신들린 사람들처럼 궁의 안뜰을 춤을 추며 악대 뒤를 따르고 있었다. 현관 앞에서 악대가 일 열로 서더니 옛 귀족들이 타던 마차가 저 멀리서 오고 있었다. 왕자와 공주차림의 한 쌍이 내리더니 나비들처럼 비를 맞으면서도 의연하게 그 넓은 안뜰을 날아다니며 발레 춤으로 우리를 환대했다.
부유한 18세기의 구 러시아의 통치자였던 캐서린 Catherine 여왕의 사치는 상상을 넘고도 남았었다. 배고픈 백성들에게 남겨주고 간 일만 오천 벌의 드레스와 금과 대리석, 라피즈 Lapis 호박 Amber 등으로 뒤집어 쓴 궁전뿐이라니 반란이 일어나고도 남을 만 했다.
궁전을 돌아본 후 안내된 곳은 왕좌가 있는 방 Throne Hall이었다. 대왕과 황후(분장한)가 등장하고 샴페인으로 환대해주었다. 곧 이어 관현악단의 연주가 열었다. 내가 문학소녀시절에 제일 좋아하던 세계적인 작곡가 차이코프스키 Pyotr Ilyich Tchaikovsky의 교향곡 제 5번 E단조 Op. 64와 ‘플로렌스의 추억’이 세련된 솜씨로 연주되었다. 교향곡 제 5번, 이 곡이 주는 아름다움은 참으로 뛰어나며 어두운 색체가 주는 독특한 느낌은 부드럽고 그 짜임새가 탄탄하다. 슬프면서도 달콤한 멜로디가 주는 입체감 있게 표현하는 아름다움은 세련되기 그지없다. 1악장은 유명한 주제로 시작하는데, 유려하면서도 달콤하다.
3악장은 경쾌한 스케르초 scherzo나 3박자의 프랑스 옛 무도곡, 미뉴에트 Minuet가 아닌 왈츠로 만들어졌다. 관현악이 연주하는 왈츠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아름다운 것 중의 하나다. 4악장의 장대한 피날레에서는 처음의 주제가 다시 나타나는데, 슬픔과 우울함에 맞서려는 차이코프스키의 의지가 이 대목에 담겨있다. 슬픔과 고통을 감내한 인간의 의지는 결국 승리하며 장대한 클라이맥스로 마지막을 장식한다.
차이코프스키의 러시아 조국에 대한 자긍심으로 자신의 예술세계를 장식하였다는 것을 더욱 느낄 수 있었다. 그는 태양의 나라 이탈리아를 좋아했다. 그래서 ‘플로렌스의 추억’이란 걸작도 나온 듯싶다.
그는 짧았던 결혼생활에 실패한 이후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그러나 우울증에 시달리던 그는 남편의 거대한 사업을 물려받은 미망인 폰 메크 부인으로부터 위안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열 한 명의 자녀를 둔, 돈 많고 감수성이 예민한 예술적인 감각이 탁월한 여인이었다. 자식들의 음악선생을 찾다 맺어진 인연이었다. 14년간이나 자유롭게 그의 경제적인 뒷바라지만 했다. 오직 편지 왕래로만 정신적으로 그를 사랑했던 것이다.
교향곡 5번을 쓰던 즈음 차이코프스키는 작곡가로서의 최고의 전성기에 있었다. 서유럽에서도 인기가 좋아 자주 해외여행을 했다. 그런 와중에 그는 규칙적으로 재발하는 우울증으로 괴로워했다. 힘들 때마다 폰 메크 부인에게 열렬히 편지를 썼다. 그러나 그즈음 건강이 나빠진 그녀는 요양을 위해 모스크바를 떠나 프랑스 니스로 갔다. 그녀와 편지와의 헤어짐은 그를 더욱 힘들게 했다.
이때 작곡된 대표적인 교향곡이 제5번이다. 그녀에 대한 애증과 미련, 갈망이 가장 잘 나타나 있는 것이 이 곡이다. 이 교향곡의 느낌은 슬픈 것 같지만 그보다는 내적으로 침잠하는 철학적인 깊이가 느껴지는 명곡이다. 슬프면서도 달콤한 멜로디가 주는 아름다움은 세련되기 그지없다.
차이코프스키는 이탈리아를 좋아하여 수차례 여행을 갔으며 특히 베네치아를 사랑했다. ‘이탈리아 기상곡’을 작곡한 곳도 이탈리아가 아닌가 싶다. 남유럽 지방에 대한 묘한 동경과 향수를 보인 것 같다. ‘플로렌스의 추억’은 현악 6중주곡이다. ‘플로렌스의 추억’이란 말이 고색창연한 고도古都에 대한 차이코프스키의 깊은 인상을 전해 주고 있다.
나 역시 이국의 도시 중 가장 선호하고 동경했던 터라 플로렌스의 네 번째 방문에서 태어난 ‘피렌체 광장의 피에로’의 시로 신인상을 받았던 것은 나에겐 참으로 의미가 깊다. 더구나 나의 ‘한영시와 수필문학선’인《피렌체 광장의 피에로》는 너무나 과분한, 꿈 같은「청아문학상」을 안겨주었다. 피렌체 시가지의 아름다운 풍광은 언제 가 보아도 나의 마음 속에 향수의 대상이다. 또한 그곳에 초대해 준 고마운 동생 내외를 생각나게 한다.
특히 처음 본 ‘두오모’ 대성당의 거대한 모습의 경이로움, 우리 부부는 미친 듯이 셔터를 눌렀다. 사진으로 담아 온 그 구름을 찌를 듯한 첨탑은 아직도 나의 가슴을 때리는 듯 흥분하게 한다. ‘플로렌스의 축제'에서는 여행자가 이 도시의 매력을 하나씩 음미하듯이 제 1주제와 제 2주제에서 차례로 펼쳐진다. 제 3악장의 알레그로 allegro 모데라토 moderato는 농민들이 춤을 추는 듯한 무곡풍이 이탈리아에서 포도를 따는 농부들을 연상시키든, 러시아에서 귀리를 수확하는 농부들을 떠올리게 하든 상관없이 즐겁다. 제 4악장은 고전적 구조의 품격이 느껴지는 소나타 형식의 피날레로 달려가는 방역이 장대함을 더하면서 마무리 했다.
차이코프스키 실내악 연주로는 그 권위에 있어 역시 러시아가 자랑하는 '보로딘 현악 4중주단’ Borodin Quartet을 첫 손가락에 꼽을 수 있다. ‘플로렌스의 추억’ 역시 ‘보로딘 4중주단’의 연주가 먼저 떠오른다. ‘보로딘 4중주단’에 의해 이 곡이 널리 보급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연주가 끝나고 안뜰을 지나 저녁 식사를 대접 받으러 갔는데 정장으로 오라고 했으니 기대가 컸었다. ‘다인닝 홀’에는 러시안 요리에다 권위 있는 러시아 민속 노래와 춤의 향연이 벌어졌다. 가히 러시안 제국의 귀족들의 사치는 백성들의 주림으로 혁명을 일으키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는 것을 내 눈으로 확인시켜주는 밤이었다.
여인들과 사치, 나 자신을 돌아보게 했다. 지난날들의 나의 사치는 어디서 어디까지였을까?
반성하기엔 너무 늦은 것 같다. 이 땅에서의 남은 날이 얼마 없기에. 비록 내 손으로 산 옷들은 아니더라도 옷장 속에 걸려있는 옷들을, 당장 입을 몇 벌만 남기고 필요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리라 다짐 했다. “너 거저 받은 것 거저주어라!”는 성경 말씀이 생각났다.
차이코프스키의 못 다한 플라토닉 사랑 platonic love 은 바이올린의 우아한 선율에 실려 피렌체 어느 골목에서 들려오는 듯 플로렌스의 추억과 함께 나의 귓전을 돌며 안녕히여! 속살거린다. 세인트 피터스버그를 떠나는 선객들은 뱃머리로 모여 그 아름다운 도시를 떠나는 아쉬움에 손을 흔들었다. 내 눈에는 멀어져가는 세인트 피터스버그가 오직 애틋하고 애처로웠다. 세인트 피터스버그여, 안녕히!


강가의 노변 간이 시장
가난한 삶 양손에 들고, 등에 지고
알뜰히 챙겨 온 채소들
몇 사람이 집어가면 그만인 양
주름진 얼굴에 묻어 온 삶 소중히 펼쳐 낸다
아침 햇살이 그 위로 깔린다
곧  행인들 북적인다
어쩌면 입은 옷들도 그렇게 비슷할까
격식도 멋도 필요 없는 사람들
햇살만이 풍요로워 검게 그을은 표정
말수 적으나 맑은 공기 마신 울리는 목소리
호박 잎새 닮은 투박한 손
잔잔한 소망으로 담담이 흥정하는 마음
무뚝뚝한 표정 뒤에 숨은
희미한 희망 흐르고 있다.
시집보낼 딸의 행복
대학 등록금이 될 아들의 출세
장에 간 엄마 기다리는 아이들 생각
애써 정들여 키운 운명 알아차린 닭들
마지막 정 아끼며 새 주인 기다린다
철없이 보채는 간이 우리 속 애기 양들
인연과 정을 파는 공터 간이 시장

왠지 무겁게 떠나는 나그네 발길
세인트 피스버그여 안녕!!
               ―박복수〈관광 길의 간이 시장〉전문





  박복수: (시인 / 수필가)
  「수필과 비평」 신인상 수필 당선
  「문예운동」 신인상 시 당선
  「미주방송인협회 여의도클럽 U.S.A.」 회장과 고문을 역임
  문예지 「문예운동」 공동발행인 「청하문학상」을 수상했다
  「르살롱 프랑스 세계화가 초대전」에서 동상 획득
  영한 수필문학선집 “피렌체 광장의 피에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