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수필| (미국)


달밤에 찾아온 밤손님


박 혜 자



내가 대학교 2학년 때 일이다. 우리 집은 언덕 위에 새로 지은 집이었는데, 한 가지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있었다. 담벼락 너머로 지대가 높아 밖에서 우리 집을 보려면 어른 키에 발만 조금만 치켜서면 우리 집 앞마당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것이다.
아버지가 새로 지으신 그 집이 마음에 들어 나의 방을, 앞마당이 내려다보이는 큰 창문이 있는 방으로 정하고 나서 나의 방을 예쁘게 꾸미기로 하였다. 시장에 나가 얇은 커튼감을 사다가 예쁘게 커튼을 만들어 달았다. 커튼감이 너무 얇아서 방에 불을 켤 때, 어느 정도 방 안이 들여다보이는지 나는 밖으로 나아가서 내 방을 들여다보았다. 물론, 하늘하늘하고 얇은 감이여서 방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것이다. 이번에는 방에 불을 끄고 다시 밖에 나가서 어느 정도인가 하고 방을 들여다보니 방 안이 껌껌하니까 아무것도 볼 수가 없는 것이다. 그제야 마음이 놓여서 방 안으로 들어 왔다.
그 후 한 달쯤 지났을 때였나 보다. 그날은 무척이나 덥고 찌뿌듯한 날씨가 계속되는 어느 여름날 저녁, 온 식구가 둘러앉아 저녁을 먹을 때였다. 그때, 어디선가 휘파람 소리가 여러 번 들려와서 그 순간, 나는 어딘지 모르게 섬뜩한 생각이 든다. 식모아이에게 오늘 저녁은 좀 이상한 기분이 드니, 집안 창문을 모두 꼭꼭 잠그도록 얘기를 했다. 그날 밤은 보름날이여서 우리 집 앞마당에도 달빛이 훤히 비추었다. 너무나 날씨가 덥고, 끈적끈적해서 속옷만 입고 자리에 누었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깊은 잠에 빠졌나보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잠결에, 창문 쪽으로 돌아눕는데 나도 모르게 무슨 소리를 들은 것인지, 그 순간 나는 눈을 번쩍 떴다. 하마터면 악! 하고 소리를 지를뻔 했다. 창문가에, 누군가 내 방 창문을 열려고 삐걱삐걱 소리를 내고 있지 않는가.
도둑은 나 못지않게 겁이 나 있었을 것이고 창문의 screw를 돌리는데 소리날까봐 가만가만 돌렸겠지. 창문에 비췬 도둑의 머리통은 이 세상에서 본 머리 중에 가장 큰 머리통인 것처럼 느껴졌다. 달빛을 뒤로 받으면서 서 있으니 머리가 더 크게 보였을 것이다.
나는 정신을 바짝 차렸다. 그리고 발밑에 벗어 놓은 옷을 발로 살살 잡아 당겨 누운 채로 가만히 옷을 입었다. 그리고 일어나서 한쪽 커튼 끝을 살짝 벌려, 도둑놈이 누구인지 옆으로 보려고 했지만 더벅머리 통만 크게 보이고 얼굴은 컴컴해서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잠시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이 도둑을 쫓을 수 있을까? 온 식구들이 모두 깊이 잠이 들었을 텐데……. 나 혼자 어떻게 저 도둑을 쫓나? 혹시라도 내가 겁이 나서 창문을 너무 약하게 두드리면 도둑놈이 놀라지도 않고 창문을 열게 되면 큰일일 텐데……. 여러 가지 걱정이 내 머리 속에 엄습해 왔다. 그래서 나는 유리창이 깨지지 않을 정도로 세게, 또 아주 빠르게 친다면 놀라겠지 하고 생각했다. 다행히도 내 방에 불을 켜지 않으면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나는 마음을 놓고 정신없이 문고리를 따고 있는 그 도둑의 얼굴 가운데 내 손바닥을 대어 보았다. 그래서 나는 손을 한번 흔들어 보고 창문이 깨지지 않을 정도로 손바닥을 도둑의 머리통에 딱 갖다 대고 세게, 또 빠르게 쳤다.
이게 웬일인가? 도둑이 너무 놀라 대문 있는 쪽으로 뛰어 내려간다. 달밤에 비치는 도둑의 다리가 어찌 그리 높이 뛰는지…….대문 밖 언덕으로 뛰어 내려가는 소리가 점점 멀리 없어질 때까지 나는 한참 기다렸다. 도둑은 혼자 들어오는 법이 없다고 하는데 혹시 망보는 이가 있는지, 없는지, 긴장하여 살펴보니 그 후 소리가 안 들린다.
그때 나는 내 방문을 살며시 열고 나와서 옆방, 아버지 방문을 놀래시지 않게 가만히 두드렸다. 주무시다가 깨신 아버지는 “누구냐” “저 예요.” 하니 “왜 그러냐?” 하신다.
“아버지! 도둑이 왔었어요.”
그때 아버지가 깜짝 놀라 나오시고, 다른 식구들은 깊은 잠에 빠져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아버지는 혹시 집안에 아직 숨어있는 도둑이 없는지, 밖에 나가 보신다고 하신다. 나는 몽둥이 하나를 집어 들고 무슨 일이 있을까 해서 아버지 뒤를 따랐다. 집 둘레를 한 바퀴 돌아보시곤 “아무도 없구나.”하셔서, 나는 집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다시 잠을 청하려고 애를 썼지만,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리곤 시간이 많이 흘렀는가 보다. 어느새 날이 밝아오기 시작한다. 그래서 그 때야 비로소 창문을 살펴보니, 조금만 늦었다면 큰일 날 뻔했다. 몇 번만 더 돌렸으면, 그 문이 열렸을 것을 생각을 하니 아찔해지며 소름이 쫙~ 끼치는 것이다.
그토록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그날 밤을 생각하면 어떻게 소리 지르지도 않고 도둑을 쫓았는지, 또한 어떻게 그토록 용감했는지 모를 일이다. 물론 속으로는, 순간적으로 너무나 무섭고 떨렸지만, 겉으로는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행동을 하려고 정신을 바짝 차렸다.
이처럼 나를 깊은 잠에서 깨우셔서 어려움 속에서 건져주신 하느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다.
지금도 잠자러 이층으로 올라 갈 때는, 문들이 다 잠겨있는지 항상 집안을 둘러보고 점검하는 것이 나의 버릇이 된 것이다.


  박혜자 수필가 : 1961년 전국 문교부 콩클 입상
  1962년 시립교향악단 & KBS교향악단과 협연
  1963년 신인음악회 데뷔. 두란노문학회 부회장
  1963년 이화여대 음대 피아노과 졸업, 교회 반주자
  2012년 「해외문학」 신인상 당선등단. 해외문인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