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수필| (미국)


미국이 어때서


이 원 택



우리 어머님은 30년 전에 미국에 와서 3개월 사시고 “영 못살 나라”라고 정을 끊으셨다. 불란서에서 온 한 친구도 3개월 살아보고 “순 상놈의 나라”라고 돌아가 버렸다. 그런데 나는 1975년 4월 28일부터 아직까지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살고 있다.
내가 미국에 대해 눈을 뜬 것은 초등학교 2-3학년 때이다. 경기도 파주에서 자란 나는 X-MAS 때 학교 위문단원으로 뽑혀 주위에 있는 미군부대에 위문공연을 다녔는데 그때 얻어먹은 초콜릿이나 젤리사탕은 어쩌면 그리 입안에서 살살 녹았는지…….
대학을 다니면서 주로 검정 염색한 미군복과 발목까지 자른 워커를 신고 다녔다. 그러고 미팅을 나갔으니 어느 여자가 눈길을 주었겠는가. 친구 작은 아버지가 하던 총판대리점에 가서 ‘Times’나 ‘Newsw-
eek’를 얻어다가 들고 다녔더니 미국에 가고 싶어 안달하던 한 여인을 만나 결혼하고 대망의 디트로이트 공항에 도착했다.
나보다 1년 먼저 온 동기 하나가 신형 ‘몬테칼로’를 몰고 와서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릴 때 ‘나도 1년만 있으면 이렇게 되겠구나.’ 생각하니 가슴이 터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그때 그 기분을 유지하고 있다. “자유의 나라, 평등의 나라, 기회의 나라” ˜ “America, Wonderful!”이라고 외치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에 대해 막연한 동경을 가지고 있다. 아직도 세계에서 젤 부자에다가 젤 쎈 나라가 미국이다. 그런데 막상 미국에 와서 살다보면 “망할 놈의 나라!” “못된 놈의 나라,” “뭣 빨러 미국에 왔나!”라고 욕을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그동안 보따리 싸가지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내 주제에 “아직은 미국이 더 좋아!”이다.
여러 가지 오류도 있었지만, 나는 미국생활에 잘 적응을 한 편이라고 자위하고 있다. 어느 나라에 가던지 마찬가지이겠으나 역시 미국생활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영어이다. 나는 아직도 영어를 못해서 분통이 터지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난다. 더욱이 요즘은 기계를 통한 통화를 할 때 손을 쓰지 않고 말로 하는 ‘voice comnmd-음성명령’이나 ‘optional choice- 취사선택’을 할 때 내 발음을 못 알아듣고 엉뚱하게 대답을 한다. 이때 F로 시작하는 욕을 서너 번 해야 기계가 겨우 ‘미안 합니다. 그러면 숫자를 눌러 주십시오.’ 한다. 망할 놈의 자식들 같으니라고 처음부터 그냥 숫자를 누르라고 하면 될 걸 가지고! 이는 완전히 이민자들을 기죽이려고 작정한 짓거리이다.
미국에서 영어를 못하면 사람취급을 못 받는다. 이놈들이 정책적으로 그렇게 만들어 놨다. 광대한 국토와 다양한 민족을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은 한 언어를 쓰게 하는 것이다. 일본의 한국어 말살정책(고상하게는 내선일체)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한 인간의 두뇌를 매조하기 위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언어를 바꾸는 일이다.
미 교육정책의 최 우선순위는 영어교육(외교적인 말로는 이중 언어교육)으로 이를 위해서는 암만 돈을 써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 중의 하나가 이민족들이 공공장소에서 지들끼리 자기나라 말로 핏대를 세우면서 언쟁을 하는 것이다.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 보라, 한국에 이민 온 월남인들이 호지명의 초상화를 들고 시청 앞에서 추모식을 한다거나 품 팔러온 인도인들이 파키스탄과의 축구시합에서 이겼다고 광화문 통으로 몰려나온다면 그 누가 곱게 봐주겠는가. 2차 대전 때 한번 당했던 일본 이민자들은 절대 그런 짓 안한다.
‘영어가 뭐 길래!’하고 남의 탓으로 돌릴게 아니라 언어문제는 정면공격으로 돌파해 나갈 수밖에 없다. 헨리 키신저나 아놀드 슈왈츠제네거가 영어를 잘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뱃장으로 하다보면 다 통하게 되어 있다.
두 번째로, 미국사람들은 법을 무서워한다. 한국에 가면 한가한 시골 길에서 빨간 신호등을 그냥 지나가는 것을 자주 본다. “차 없는데 뭐 어때! 아무도 안 보는데 뭐 어때?” 실제로 어떻게 될 리는 없겠으나 ‘바늘도둑이 소도둑’ 되듯이 그 정신자세가 문제이다. 그런 정신자세로 매사를 대하다보면 언젠가는 꼭 실수를 하게 되어있고 시시한 법을 어겼을 때 맛보는 짜릿한 쾌감에 비해 몇 백배나 더 되는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미국사람이라고 좋아서 법을 지키겠는가. 많은 미국인들이 유럽에서 범법자로 거의 추방되다 시피해서 이주해 온 사람들의 자손들이고 그들은 서부개척을 하면서 ‘무법천지’를 겪어온 사람들이다. 미국사람들은 한마디로 피해의식이 똘똘 뭉친 사람들이다. 그동안 숱한 집단총격 사건을 겪으면서도 개인의 무기소지를 옹호하는 나라가 미국이다. 미국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사법부의 권한이 큰 나라이고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전체로나 인구비례로나 변호사가 많은 나라이다.
수년 전 이란의 전 대통령 (모하메드 카타미)이 유엔연설에서 미국을 비난하면서 ‘지구상에 인구의 5% 이상을 감옥에 쳐 넣거나 보호관찰 하는 나라가 미국 말고 어디 또 있겠는가.’ 하고 물은 적이 있다. 바꿔 말하면 미국시민들이 법을 잘 안 지킨다는 말도 된다. 있으면 귀찮고 없으면 불안한 것이 법이다. 예전의 법은 약자 위에 군림하기 위해 만들어 졌는데 요즈음은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 진다.
미 국민이 언제부터 약자를 보호해왔나. 노예제도의 종주국이 어디인가. 세계의 경찰을 내세우면서 약소민족을 지원한 적이 한번이라도 있었는가. 미국의 모토는 약육강식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유엔의 안전보장 이사회는 무엇인가, 상임 이사국은 무엇인가, 거부권 행사는 무엇인가. 그가 멀쩡한 정신을 가졌다는 말은 아니지만 카타피는 미국에 박박 기어오르다가 개죽음을 당했고 사담 후세인은 자국민을 탄압했다는 것 말고는 별로 국제사회에 위협이 안 됐지만 두더지 같은 종말을 맞이했다.
미국은 약자들이 세운 나라이다. 자기 나라에서 큰소리치며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이 뭐 하러 미국에 오겠는가. 약자가 강자를 이기려면 똘똘 뭉치는 수밖에 없다. 어떻게(?) 이방인을 포용하는 일이다. 인간은 다 제 잘난 맛에 살기 때문에 진정한 포용은 1:1의 대등한 관계에서만 일어난다. 법의 원칙은 평등이고 법의 목적은 평화이다.
음주운전에 걸렸다고, 세금 좀 떼어먹었다고, 뭐 그리 대단한 일인가. 적당히 좀 봐주고 사바사바라도 통하면 얼마나 살기 좋은가. 재수 없게 열악한 환경에 태어난 사람들이 미국으로 몰려온다. ‘기회’를 찾아서―. 너도나도 기회를 찾다보면 반드시 남의 기회를 빼앗는 경우가 생겨나게 마련이다. 방법은 그 중에서 ‘재수 없이’ 걸린 몇몇을 처벌하는 수밖에 없다.
세 번째, 미국은 돈이 움직이는 사회이다. 궁극적으로 ‘기회’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말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의 척도는 돈이다. 이민자의 대다수는 돈에 한이 맺힌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려고 한다.
인간의 원초적인 욕심 5가지(재물욕, 색욕, 식욕, 명예욕, 정복욕)중 첫 번째가 물욕이고 돈이 있으면 나머지 욕망도 채울 수 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남을 올라타려는 욕심을 정복욕 또는 권력이라고 한다. 권력 또한 다른 네 가지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에 아직도 권력 지향성 사회가 판을 치고 있다.
미국에는 자국에서 권력투쟁에 패배한 사람들이 몰려온다. 이 사람들이 미국 땅에 와서까지 권력투쟁을 하게 내버려두면 그야말로 난장판이 될 것이다. 그래서 대내적으로는 권력보다는 돈에 더 집착하게 하고  그 대신 대외적으로는 정복욕을 전환시켜 주기로 했다. 세계적으로 미국만큼 물량이 풍부한 나라가 없다. 미국만큼 상대적 물가가 싼 곳도 없다.
잘하는 정치란 다른 나라의 물산을 뺏어다가 자국민을 따듯이 입히고 배불리 먹이는 일이다. 많은 나라들이 미국을 ‘제국주의’라고 매도한다. 황제가 없는 나라를 왜 제국주의(imperialism)라고 하는가. 이는 황제가 있건 없건 ‘군사적 경제적으로 다른 나라를 정복하여 영토나 권력을 넓히려는 패권주의’를 말함이니 미국의 정책을 꼭 집어낸 적절한 표현이다.
대표적인 예는 월남전의 여파로 달러화 가치가 하락하자 닉슨이 1971년 8월15일, 1944년부터 써오던 금본위제도를 철폐한 일이다. 제국주의가 나쁘다는 말이 아니라 너무 속 보이게 남의 것을 약탈하면 그 원성을 누가 감당하겠는가. 그래서 이 사람들은 ‘원조’라는 말을 쓴다. 병 주고 약 주자는 방법이다. 세계에서 미국의 원조를 받지 않는 나라가 어디 있는가. 또 평화봉사단이 들어가 있지 않은 나라가 어디 있는가.
이민사회도 마찬가지이다. 베트남이나 캄보디아의 난민들한테 무조건 사회보장 연금을 주고 소수민족에 대한 특혜권을 부여한다. 보기에 따라서는 인종차별이라고 할 수도 있으나 ‘길러서 잡아먹자’는 의도가 깔려 있을 것이다. 미국에로의 ‘두뇌유출’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네 번째, 미국인을 지배하는 철학은 실용주의(pragmatism)이다. 이론이 밥 먹여 주나. 이빨만 까지 말고 실제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 내라는 것이다. 미국사람들은 탁상공론이나 허례허식에 지친 사람들이다.
실용주의를 대표하는 것이 자급(self-service)하는 것이나, 햄버거 문화, Costco 문화라고 하겠다. 싸고 편하면 그만이지 우아하고 거추장스러운 것 다 필요 없다는 것이다. 1979년 미국방문 후 ‘오뚝이’ 등소평은 미국의 실용주의 노선을 따라 ‘흰 고양이 검은 고양이’ 이론을 전개 하여서  바야흐로 중국경제가 벌떼같이 일어나고 있다.
실용주의가 항상 편한 것은 아니다. Costco 연쇄점에 가보면 특히 주말에는 사람에 걸려서 다닐 수가 없을 정도이고 뭐든지 다량으로 포장을 해놨기 때문에 쓸데없이 많이 사야 되는 병폐도 있고 ‘세일’물건이나 이왕 간 김에 다른 물건도 사다보니 낭비가 이만저만 아니다. Costco 매장에 갔다 오면 왜 미국사람들의 비만이 늘어나는지 금방 알아 볼 수가 있다.
엄밀히 따지면 미국사람들은 실용주의자라기보다는 실리주의 또는 공리(功利)주의자들이다.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쾌락의 추구를 지상과제로 생각하고 있다. 미국의 청소년에게 인생의 목표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어김없이 ‘행복’(happiness)이라고 대답한다.
공리란 공명(功名:fame)과 이익(利益:profit)이다. mini-max(최소투자-최대효과)로 Jackpot(대박)이 터지기를 바라고 Star-Wars(별들의 전쟁)를 통해 American-idol(우상)이 되기를 꿈꾼다. 그것도 자기 자신만을 위해―.
다섯 번째, 미국인은 대부분 개인적이다. 애나 어른이나 “I don't care(관심밖)”와 “mind your own business(참견마)”가 입에 밴 사람들이다. ‘누가 뭐라고 하든지 상관 않고, 내일은 내가 알아서 한다’인데 좋은 말로는 독립심(independence)이고 나쁜 말로는 자유라고 한다.
미국에 이민을 왜 왔겠는가. 신천지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억압받고 쪼들리고 꽁꽁 묶인 구태의연한 세상을 박차고 새 세상에서 마음껏 날개를 펴고 내 밸 꼴리는 대로 한번 신나게 살아보자는 취지에서 미운 정 고운 정 다 끊고 온 사람들이다. 미국을 ‘깡패나라’라고 한다. 신교도(protestant)들이 세운 나라가 미국인데 protestant는 원래 ‘반항아’란 뜻이다. 반항아들은 기존의 가치를 부정하고 새로운 가치를 찾아 나서는 사람들이다.
딴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다. 오로지 나, 나만을 위해서- 부모나 상사나 다 지들 재미 보려고, 지들 먹고 살려고 하는 짓거리인데 내가 그들 신세만 안지면 됐지 그들에게 굽실굽실할 필요가 무엇인가. 사람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 옆에 있는 사람은 거치적거릴 뿐이다. 자유의 여신상(statue of liberty)이 저기 저렇게 우뚝 솟아 있지 않은가.
나는 남과 다르다. 내 유전자와 똑같은 자 있으면 한번 나와 보라고 그래. 나를 딴사람과 똑같이 취급하지 마, 나는 우주에서 유일한 존재라고-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잖아. 내 사명은 그 길을 개척하는 것이야. 개척정신! 알아 몰라(?) 날 건드리지 마. 칵, 다 쏴 쥑여삘랑게!
우리 어머님은 여러 가지 불편 중에 말이 안 통해서 “영 못살 나라”라고 하셨고 불란서 친구는 손가락으로 햄버거 먹고 손등으로 입을 쓱 닦고 나오는 미국사람들을 보고 “순 쌍놈의 나라”라 했고 어느 어르신네는 동성연애자들이 공원에서 서로 물고 빠는 것을 보고 “망할 놈의 나라”라 했고 뉴욕의 한 편의점에서 일하던 한 한국 아줌마는 흑인 남성의 총부리에 끌려 변소에 가서 그 짓을 당하고 나서 “뭐 빨러 미국에 왔나”라고 했을 것이다.
2000년 전직 기자 강일선 씨가 ‘미국의 세계시장 점령방법’에 대해서 쓴 《미국이 망해야 한국이 산다》는 그 튀는 제목에 비해 “왜”라는 구체적인 설명이 없다. 원래제목 《강자의 논리》로 그냥 놔두었으면 좋을 뻔 했다.
세계방방 곡곡에서 일어나는 반미데모나 미국을 나쁘게만 얘기하는 데는 약자의 반항심리가 많이 적용되는 듯하다. 미국도 사람 사는 곳이기 때문에 좋은 점 나쁜 점이 공존하지 않을 수 없고 ‘부국강병’은 모든 국가들이 추구하고 있는 국가경영의 기본원리가 아닌가.
그 동안 소련의 붕괴로 세계화(glovalization), 세계화, 하면서 결국은 온 지구가 미국화(Americanization)가 되어가고 있다. Pax Ameri-
cana (미국 안에서의 평화)란 미국에 의한 세계평화의 주도이다. 불원간 중국에 의한 세계평화시대, Pax China(황화:黄華) 시대가 올 모양이나 지금보다 더 나아지리라는 보장이 없다. 정들면 고향이란 말마따나 이왕 미국에 와서 사는 바에야 좋은 점만 따르면 되지 않겠는가. 아직까지 ‘미국이라는 나라’는 그냥 ‘그럭저럭 살만한 나라’이다.


  이원택(시인/ 수필가) 경기도 파주에서 출생
  서울대 의대졸업, 미국 Harbor UCLA 신경정신의학과 수료
  현재 Western Univ. 정신과 임상 부교수. 노인정신과 전문의
  「문학예술」 수필당선 등단 「한국문학인」 시 당선 등단
  저서: ‘만화경’ ‘요지경’ ‘무아경’ ‘혼미경’ ‘신비경’ 출간
  해외문인협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미주시인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