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수필| (미국)


고통이 가져온 선물


이 지 원



 어느덧 늦가을이다. 사계절이 뚜렷하지 않은 남가주이지만 아침, 저녁으로 느껴지는 차가운 공기와 낮에는 청명한 하늘을 바라보며 가을의 정취를 느낀다. 정원에 피었던 꽃들도 지고 꽃을 따라다니던 벌도 보이지 않는다. 나무들은 바람과 함께 하나, 둘 힘없이 떨어지는 나뭇잎에 작별을 고하고 앙상한 가지를 조금씩 드러내며 여운을 남긴다.
우리 삶의 여정을 되돌아보면 그때그때 주어진 순간들이 바람에 흩어져 날아간 금가루 같다. 하루해가 지면 다시 뜨기를 끊임없이 반복하며 무한히 우리에게 다가오는 듯한 삶의 시간들… 하루가 지나가면 새로운 하루가 찾아오며 끊임없는 기회를 제공하면서 말이다.  아무리 귀한 것이라도 풍요롭게 주어져 있으면 귀한 줄을 모르듯 우리의 인생도 시간이란 금가루가 끊임없이 펼쳐져 있지만 그 당시엔 무심코 지나칠 때가 많이 있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미래에 다이아몬드 같은 보석이 우리를 맞이할 것 같은 착각 가운데 살아가다가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때서야 흩어진 금가루를 모아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고픈 애절함에 몸서리칠 때도 있다.
때로는 과거의 시간 중에 너무나도 시리고 아파서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던 시간조차도 그리움에 젖어들게 되기도 한다. 우리가 주님께 선물로 받은 시간인데 지나고 나면 뿌연 안개에 쌓인 아름다운 한 폭의 작품처럼 남게 되기도 한다.
둘째이자 막내인 아들이 어느덧 12학년으로 내년이면 대학에 들어가게 된다. 이제 대학원서도 원하는 대학에 몇 군데에 집어넣었다. 되도록이면 남가주에 있는 대학에 가기를 원하지만 타주에 있는 대학 또한 고려하고 있다. 한국인으로서 남학생인 경우는 경쟁이 너무 치열하기에 높은 성적과 과외활동 등 많은 좋은 조건을 갖추었어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현실이다.
대학원서 준비기간중에 나에게 짜릿함을 전해 준것은 대학입학 원서에 함께 제출하는 에세이였다. 잊혀졌던 자신의 아픈 경험을 시적으로 써 내려갔는데 지금까지 그때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리 만큼 참 힘들었겠다는 생각과 인생을 바라보는 견해가 많이 성숙해진 모습에 눈시울이 붉혀졌다.
아들이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해 12월. 우리가족은 몇 가족과 함께 관광회사를 통하여 네바다 주에서 있는 레이크 타호(Lake Tahoe)에 스키여행을 갔었다. 그때 사람이 너무 많아 스키를 대여하는데 한계가 있었는데 아들은 pole없이 스키만 빌리게 되었다. 엄마인 나는 운동신경이 별로여서 오랜만에 타는 스키라 헤매고 있었다. 그때 아들은 처음 타는 스키임에도 불구하고 스키 폴이 없이도 찬 공기를 가르며 우리 딸과 함께 갔던 친구들과 신나게 빠른 속도로 스케이트타듯 하였다.
운동신경이 매우 발달된 나의 남편은 헤매는 날 안타까워 곁에 있으며 속도를 맞추어 주고 있는동안 아들은 날아다니는 듯 빨리 언덕을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고 날 구출해주러 왔다가 겁내는 엄마를 의아해하면서 자신을 따라와 보라고 시범을 보이며, 자신 있게 즐기며 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스키 폴이 없이 총알처럼 빨리 내려가는데 앞에서 지그재그로 스키타던 두명의 아이들을 피하려다 속도를 줄이지 못한채큰 나무에 세게 부딪쳐서 목을 다치고 말았다.
우린 그 당시에 심각성을 알 수 없었지만 집에 돌아가서 심한 두통과 목에 통증을 호소하며 고열로 고생하다가 결국은 틱장애가 시작되었었다. 갑자기 달라진 아들의 컨디션에 우린 어찌해야할 바를 몰랐고 그때의 당혹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가래가 자꾸 나온다며 소리까지 내는데 점차 소리는 커져서 공공장소를 데리고 다닐 수가 없었다. 양방의사는 소아과, 알레르기과, 신경내과 등을 찾았지만 기침약을 주고 별다른 원인을 찾아내지 못하였다.
난 주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아들이 치유되기를 기도드렸다. 벼랑 끝에 나뭇가지에 매달려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처절함 그 자체였다. 아들이 정상적이고 해맑은 옛 모습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나의 목숨과도 바꾸고 싶은 어미의 심정이었다.
아들의 틱증세의 원인을 잘 알지 못하던 중 척추신경과 의사를 만나게 되어 도움을 받았고 많이 호전되었지만 전진과 후퇴의 연속이었고 치유되는 속도는 생각보다 느렸기에 많은 인내가 필요했다.
자연적으로 할 수 있는 치료법은 모두 동원시켜 한의사, 음식요법, 자연요법 치료사 등을 모두 찾아가 치료를 받게 하였었다. 속 깊은 아들은 걱정하는 엄마를 위해 겉으로는 태연한척 하였지만 정상적이던 아이가 비정상으로 비켜나가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하고 먹는 음식에도 제재를 당해야 했으니 얼마나 힘이 들었을지 대충 짐작했지만 그때의 아픔이 고스란히 글에 묻어져 있었다. 그 후 약 7년이란 세월이 지난 후에 주위의 친구들도 느끼지 못할 만큼 정말 기적적으로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아들은 지금 와서 돌아볼 때에 그 어려운 과정을 통해 겸손을 배웠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굳건해졌으며 가족에 대한 소중함을 알게 되었고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들이 감사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자신의 힘들었던 과정을 통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행동해 보았자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음을 깨달았으며 주어진 상황을 어떻게 대처하는지가 장래를 결정하게 된다고 하였다.
우리는 그 긴 시간들이 절망 그 자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은 감사하는 법을 배우게 한 것 같다. 신체적인 부자유함을 통해서 고통 받는 사람들과 함께 아파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의 인생이 우리 뜻대로 흘러가지만은 않는다는 것 또한 깨닫게 되었다.
주님께서 창조하신 대자연을 맛보며 고등학교에서 맞이하는 마지막 추수감사절을 가족과 여행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우린 참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다시금 되뇌었다. 아들이 어느새 커서 운전대를 잡고 아빠는 옆에서 입에 귤을 까서 넣어준다.  우리 가족 모두에게 견디기 힘들었던 고통스러운 시간이 지금은 아련하게 아름다운 추억의 한 조각으로 남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이런 시절이 돌아오리라고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포기하지 않는 믿음과 신실하신 주님을 의지한 결과로 오히려 겸손과 성숙, 그리고 회복의 선물로 우리의 품에 돌아왔다. 약속의 하나님을 마음껏 찬양하고 감사를 드린다.




  이지원(수필가) 1964년 서울 출생
  2006년 「해외문학」 신인상 수필당선
  UCLA 사회학과 졸업. CMFM 칼럼 집필
  「해외문인협회」(미국) 회원
  「아바문화선교원」 베델한인교회 성극배우로 참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