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수필| (미국)


행복한 파안 폭소


조 현 례



지난 달 8월 22일부터 25일 까지 3박 4일을 우리 여고 동기동창들은 또 뉴욕 맨해튼에서 보냈다. 9월부터의 성수기 바로 직전이라서 호텔 비도 저렴하기 때문에 무더운 여름 막바지도 마다 않고 바보인체 8월 마지막 주를 선택한 거였다. 게다가 여자들 끼리여서 한방에 3명씩 잘 수 있었다. 물론 남편님이 오실 때엔 독방을 차지할 수 있는 특혜를 받지만. 그리고 부득이한 집안의 사정이 있는 친구는 집이 가까울 경우 출퇴근도 할 수 있었다. 2,3년 있으면 80세가 되고 머지않아 먼 길을 떠날 몸들인데도 우리 모두는 여러모로 끝까지 알뜰살뜰들 해서다.
작년엔 다 모인 친구들이 20명이 넘었다고 기억하는데 올해엔 18명이 왔다.
우리는 친구들을 만나는 순간부터 마술에 걸린 사람들처럼 젊어진다. 얼굴에 주름살 대신 웃음이 사라질 줄 모르고 기쁨을 감출 줄 모른다.
호텔 측에서도 우리를 단골손님 대우를 해주었다. 조용하고 아늑한 회의실을 우리들의 모임방으로 내주어 날마다 저녁이면 회의 아닌, 그 동안 친구들 사이에 싸이고 밀린 회포를 풀 수 있었으며 다과와 수다를 맘 놓고 떨 수 있게 해 주었다.
작년 모임 땐 너무 자유스러워서 불편한 점이 약간 있었던 것 같았는데 올해엔 미리미리 플랜을 해서 삼삼오오로 흩어지지 않고 손발이 잘 맞았다.
우리 일행 중 희준이 아들이(Fred) 여러모로 어드바이스를 주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았다.
첫날 23일엔 각자 먹고 싶은 아침을 먹고 첼시Chelsea에 있는 High Line으로 갔다. 너나 할 것 없이 마음은 젊었지만 걸음걸이는 젊지가 않았다.
우리는 택시 그룹과 서브웨이 그룹으로 나누어 High Line 입구에서 만났다. 초록이 서서히 시들어 가고 있는 듯한 늦여름의 화려한 꽃들과 수풀들이 그래도 우리들을 방문객으로 맞아 주고 있었다. 나는 언젠가 추운 계절에 동생 댁과 거닐어 본적이 있었지만 오늘은 전혀 생소하고 낯이 설다. 그저 ‘이런 데도 있었구나’ 하는 마음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우뚝 우뚝 서 있는 빌딩들을 바라다보기도 하고 두런두런 얘기를 계속하며 걸었다. 발걸음이 잰 친구들은 훨씬 앞서가고 있었지만 우리는 도중하차 하는 친구들과 중간에서 내렸다.
건강이 좋은 친구들은 Chelsea Market을 누비며 쇼핑도 하고 산책을 했고 더러는 이른 점심을 먹자고 했다. 나의 룸메이트인 M과 나는 아침을 정식으로 먹지 않았으므로 브런치로 먹자고 합의를 했다.
커다란 대형 fish market에 들어가니까 그야말로 신선하게 식욕을 당기는 생선 요리가 없는 게 없다. 딴 나라에 온 느낌이다. 아직 개시도 않고 우리를 기다렸다는 듯 따뜻한 숲 항아리들이 열리기 시작 했다. M과 나는 꽤 큰 생선회와 스시가 섞인 벤또와 러브스타 숲과 클램 차우다 숲을 사서 두 가지 맛을 다 보며 점심을 맛있게 나누어 먹었다. 어느 틈에 친구들이 거의 다 그곳으로 몰려 들어왔다. C와 K는 우리가 앉아 있는 상 옆에서 커다란 lobster(제일 작은 거라지만)를 들고 열심히 짜개고 있었다. 그런데 자칭 먹새인양 늘 자랑하는 C는 한 마리를 뚝딱 해치우고 더 사러 갔다는데 K는 한 마리를 이기지 못하고 쩔쩔 매면서 우리에게 거들어 달라고 해서 우리는 lobster를 후식처럼 맛보았다.
우리는 모두 모두 입맛에 맞는 점심을 만족하게 끝내고 늦게 들어 온 친구들을 기다리기 위해 밖에 놓여 있는 둥근 의자를 둘러싸고 앉아 담소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귤 한 자루를 풀어 놓아 목을 추기면서.
우리는 또다시 차편을 나누어 NBC Tour를 하기 위해 Rockefeller Center로 향했다.
밤낮으로 텔레비전을 방영하기에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텐데 시민들에게 이렇듯 산교육까지 시킬 여가가 어디 있을까 싶어 조금은 의문이었으나 들어가 보며 깨닫게 되는 게 있었다. 아무튼 우리는 여기 오지 않았더라면 영원히 우리 기억 속에 남아 있을 수 없었을 것 같았던 것들, 이미 옛 것으로 돌아 간 것들을 다시 재생 시켜 다이제스트해서 보여줌으로써 궁금증도 많이 가시었고 텔레비전 방영에 관한 시설이랑 조명 무대 등 막연하게 상상했던 호기심들이 많이 해소되었던 것 같다.
둘째 날 24일엔 우리 일행 중의 보배인 피아니스트 이종효가 아들 며느리가 나가는 임마누엘 루터란 교회를 빌려 우리 모두를 엔터테인 하기 위해 concert를 열었다.
레퍼트와(repertoire)는 나같이 고전 음악에 얄팍한 지식을 가진 사람에게도 들으면 언제나 심금을 울려주는 곡들이었다. 바하, 슈벨트, 드뷔시, 슈만, 릿쯔 그리고 쇼팽 등이었다.
아직도 Amherst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는 친구 덕분에 우리는 그 동안 잠자고 있던 젊었을 때 선호해서 들었던 고귀한 음악 감상도 할 수 있었다.
점심을 먹고 오후엔 팝 뮤직을 들으러 갔다. 맨해튼에 와서 몇 날밤을 묵으면서 Broadway를 빼놓을 수야 없지 않은가.
2007년에 Tony Award를 받았다는 Jersey Boys는 60년대를 주름 잡았던 미국의 전설적인 록 가수 Frank Balli와 록&롤 Four Season을 다룬 뮤지컬이었다.
다들 정신이 번쩍 들만큼 즐거운 표정을 안고 거리로 나왔다.
이제부터 7시 반 Farewell Party까지는 자유다. 자유 해산이다. 휴우!
3박 4일은 길지도 짧지도 않은 것 같다.
아쉬운 마지막 저녁을 보내면서 소그룹의 모임이지만 내년도 모임을 위해서 회장단은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이 있나보다. 잠시 침묵이 흐르자 회장이 느닷없이 “이 모임을 언제까지 우리가 지속할 수 있을까?” 하는 게 아닌가. 하나마나 한 회장단의 기우에서 튀어 나온 질문이었겠지만 잠시나마 긴장의 순간이 흘렀다. 그리고 누군가가 손을 들었다. “마지막 2사람이 남을 때 까지 지속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결론입니다!!” 그 말이 떨어지자 우리 모두는 파안폭소를 터뜨렸다. 이어서 우리 모두는 마냥 즐겁고 희망이 있으며 마치 미래가 약속 되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술렁거리고 있었다.





  조현례(동화작가/ 수필가)
  강원도 출생. 이화여대. 동대학원 영어영문학과 졸업.
  1965년「동아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 등단.
  「월간 여성」과 「소년 한국 일보」 기자 역임.
  이대, 성균관대, 단국대 강사 역임.
  서간집: 「너와 나와 만나는 곳」
  수필집: 「보이지 않는 유산」「가난한 부자」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