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수필|(미국)

인생의 흐름 가운데 서서

이 지 원

 

 

10학년에 재학 중인 아들 승준이가 저녁식사 테이블에서 문득 이런 이야기를 한다.

엄마, 내년 이맘때에는 우리의 생활이 많이 바뀌게 될 거에요. 누나는 대학에 들어가서 기숙사에서 살게 될 거구, 저는 아이가 하나밖에 없는 집의 아이처럼 혼자 남게 될 거구요. 2년 후에는 저도 대학에 갈거구, 누나는 대학원에 가게 되겠죠? 우리 애완견 코비는 늙어 가고 있어요.”

그래, 우리 모두가 뿔뿔이 흩어지겠네.”

엄마는 더 이상 저를 태우고 다니시지 않아도 될 거에요. 그때는 제가 운전면허증을 따게 될 테니까요. 우리는 더 이상 지금과 같은 가족의 시간이 주어지지 않을 거예요.”

평소에 장난기가 많고 개구쟁이인 승준이가 제법 신중한 어조로 지금 주어진 시간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듯 이야기하고 있었다. 난 그 순간 잠에서 자명종 시계소리를 듣고 번쩍 깨어나는 기분이었다. 정말 그렇구나! 아침 일찍이 일어나서 분주하게 아이들 아침을 만들어 주고, 도시락 챙겨주고, 학교에서 오면 간식을 먹이고, 과외활동 하는 장소에 데려다 주고, 저녁식사 함께하고, 식탁에서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서로 앞을 다투어 조잘거리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그런 시간에 딸 사라가 없겠구나. 2살 터울이라 친구 같으면서도 때로는 서로를 귀찮아하며 다투기도 하지만 승준이가 누나를 그렇게 좋아하고, 누나는 동생 승준이를 많이 귀여워하는데, 한 사람이 없어지면 특히 남아있는 사람이 허전하겠다는 생각도 들며, 내 눈에 눈물이 핑 돌며 덧없이 흘러가는 세월이라는 생각에 슬픈 생각이 들었다. 한때는 수많은 분량의 시간을 한 아름 안고 영원히 누릴 것 같았는데 어느덧 많은 부분이 안개처럼 증발한 것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나는 다음날, 태양열을 조명으로 받으며 수려한 용모를 자랑이라도 하듯 즐비하게 서있는 야자수 나무와 파도치는 바다를 배경으로 한 PCH (Pacific Coast Highway)를 차로 달리며 지난날들을 회상해 보았다. 결혼, 출산, 자녀 양육 등을 거치며 지치고 피곤함, 가정주부에서 탈출해 직장을 찾아 아이들에게서 해방되고 싶은 마음의 절정에 이르던 순간들, 딸아이의 사춘기를 거치며 새로운 변화에 당황하던 나, 엄마의 자리가 무척이나 힘이 들고 버겁다고 다 포기하고 싶었던 심정, 대학준비에 딸아이보다 더 극성을 부리며 원하는 만큼 따라주지 않는다고 핀잔주던 나, 아이들이 세상에 물들까봐 낮은 하늘에 떠있는 헬리콥터처럼 아이들 위에서 빙빙 돌며 남편과 함께 지키던 나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자유분방하고 적당한 모험을 즐기는 딸이 원칙주의이자 안전주의인 내겐 벅찬 존재였다. 또한 나의 딸도 우리부부의 과잉보호하는 면을 부담스러워 했다. 온실 안에서 안전과 편리만을 즐기기 보다는 밖에 나가 자연의 나무와 꽃냄새도 맡아보고, 파도치는 모습이 어떤지, 밖의 세상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어떤지 직접 경험해 보고 싶어 하는 통이 큰 딸이기에 나와는 스케일이 달랐다. 우리부부가 정한 수칙이 보수적인 성향을 많이 띄웠고, 딸에게 거는 기대도 컸다. 우리의 보호막에서 벗어나 친구들과 어울리며 바닷가에서 일광욕도하고, 또래의 다양한 친구들도 만나 대화도 해보며, 인생을 좀 더 여유 있게 살아가고 싶어 하던 딸이다. 사춘기에 들면서 자신의 주체성 확립을 위해 찾아나서는 시기에 당연한 과정일 것이다.

딸이 이런 과정을 거치는 동안 시간 낭비를 한다는 생각에 못 마땅해 하기도 하며 우리 부부가 그려놓은 지름길을 선택하기 바라고 때로는 강요했던 것이다. 충돌이 생길 때에는 빨리 대학에 들어가 주기를 바랐었다. 눈앞에 보이지 않으면 편하다는 생각이 나의 걱정을 덮어버리고 싶은 충동에서 비롯된 것일 게다. 특히 남편의 요구로 직장생활도 하지 않고 오직 남편과 아이들에게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나로서는 가족에게 바라는 기대도 큰 건 사실이다.

 

과연 난 무엇을 바라며 몸과 마음을 다해 아이들을 양육한 것일까? 늘 이야기하듯 하나님께서 우리부부에게 맡겨주신 자녀이기에 그 아이들을 사랑으로 잘 양육해야 하는 역사적 사명(?)을 받은 것 같은 하나의 책임감? 나의 대리만족? 자녀의 장래를 보다 보장되게 하기 위해서? 남들에게 자식농사 잘 했다는 인정을 받기위해서? 자녀를 진정으로 사랑하기에? 아니면 훗날의 후회를 줄이기 위해서? 아마도 다 맞는 답일 것이다.

과연 난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주었으며 아이들의 입장이 되어 생각했던가? 얼마나 많은 순간을 아이들의 눈빛 뒤에 숨겨져 있는 마음의 소리를 들었을까? 문득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부족한 엄마의 모습, 모순들을 내가 직접 발견했기에.

 

난 정말 최고의 아내, 최고의 엄마라고 인정받기를 소원하며 그 목적을 향해 걷고, 뛰고, 넘어지기를 반복하며 다시 일어나서 그 목적지를 향하여 지금도 행진중이다. 다행히도 남편과 아이들을 비롯한 우리식구들은 나를 많이 고마워하고 인정해 준다. 한없이 부족한 나인데도 노력하는 모습, 사랑과 정성을 다하는 모습에 후한 점수를 주는 것 같다. 그렇다고 안주할 나는 아니다. 그저 생명을 다하는 순간까지, 나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다. 마음껏 안아주고, 사랑하고, 부족한 부분까지도 포용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세월을 아끼며 살아가기를 희망한다.

우리는 흔히 시간을 이야기 할 때 자신과 별개의 것으로 이야기한다. 나와 상관없이 시간만 스쳐 지나가는 것처럼 말이다. 오늘의 나는 작년의 나와 같을 수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우리의 어린 시절에는 계곡의 냇가에 큰 돌이나 조약돌 위로 맑은 물이 흘러가는 것처럼, 시간이 흘러서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나 할까? 물의 흐름을 감지하며 나의 모습도 조금씩 변형되는 돌, 같이 휩쓸려 내려가는 모래처럼, 우리의 시간을 흘려보내며 조금씩 겉과 속의 모습이 바뀌고, 어떤 것은 시간과 함께 떠내려가는 것들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나이가 든 탓일까? 아니면 최첨단의 과학기술과 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탓일까? 시간이 아니 세월이 폭포수처럼 빨리 지나간다. 여러 곳에서 물갈래가 모여서 폭포수가 되어 나의 삶을 지나기에 그 부피가 너무 부담스럽고, 버겁다는 느낌이라고 하면 이해가 될까?

그래서 그 속도에 맞추어 정신없이 함께 뛰어가다가 정신을 차리고 달력을 보면 몇 년의 단위로 지나간다. 1년 전에 만난 사람을 보면 어제 만난사람처럼 느껴지는 것도 그런 개념일까? 시간의 속도가 너무 빨라졌기 때문에?

눈앞에 너무 많은 일이 있어 마음에 여유를 잃게 되고. 작은 일에 흥분도 하고, 완벽주의 성향에 의한 중압감으로 스트레스를 받을 때 난 새로운 시도를 하기로 결심했다.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한발자국, 두발자국 뒤로 물러서는 것이다. 더 이성적인 측면에서 삶을 바라 볼 것이고, 좀 더 큰 그림을 보며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게 되겠지.

사랑하는 자녀들의 마음을 좀 더 이해하고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나의 다정한 말동무, 속이 깊고 배려심 많은 우리 딸이 대학에 들어가기 전에 추억거리를 만들어 주어야 하겠다. 우리 가족의 일원인 코비를 데리고 dog beach에 가기로 했던 생각이 난다. 날씨가 더 추워지기 전에 아이들을 데리고 가야겠다. 주말에 도시락을 싸서 피크닉도 나가고 자전거도 타야겠다.

 

많은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듯, 우리에게 주어진 오늘은 선물이다. 태양이 떠오르고 우리의 삶을 비추어 주며, 아름다운 자연이 나의 시선을 초대할 때 주저하지 않고 달려가 응답하리라. 내 곁에서, 내가 마음만 먹으면 손으로 닿는 곳에 있는 나의 소중한 사람들. 부모님, 가족, 친지, 이웃, 교회 식구들과 한 번이라도 더 손을 잡고, 마음과 마음으로 교통하며 진정한 사랑의 언어를 나누고 싶다.

이 세상이라는 큰 선물 속에서 담겨져 있는 삶의 기간이 각자에게 다르게 주어져있다. 오늘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약간의 긴장감을 가지고, 되도록 많이 웃고, 격려하며, 소중한 사람들과의 추억을 만들어 가기를 희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