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수필|(중)

 

진달래 꽃이 피었습니다

전 춘 화

 

 

엄마가 내게 진달래 한 움큼을 따다가 품에 안겨준 때는 스무 살 때였다. 아침 일찍 씨엉씨엉 등산한답시고 아줌마들이랑 나가시던 엄마는 저녁때쯤에 돌아오신다는 계획을 뒤로한 채 난데없이 정오 11시쯤에 집에 들어섰다. 손에는 진달래 한 묶음을 든 채로.

, 받아.”

엄마가 내 가슴에 일방적으로 진달래꽃을 던져줄 때는 뭐랄까, 기분이 좀 착잡했다.

뭐예요?”

진달래잖아.”

그거 말고, 등산 때려치우고 갑자기 와서 진달래를 안겨주는 이유 말이예요.”

엄마는 가볍게 한숨을 호 내뱉더니만, 할머니가 생각나서, 그게 전부의 이유라고 대답했다.

아주 오래전에, 엄마가 내 나이쯤이었을 때 할머니가 엄마에게 진달래 한 묶음을 안겨주더란다. 왜냐고 물었더니 그냥 그러고 싶었다고, 언젠가 너도 어른이 되면 딸에게 진달래 한 움큼 주고 싶어질지도 몰라, 하면서.

그래서, 정말 할머니 말씀대로 내게 진달래 한 움큼 주고 싶은 날이 온 거예요?”

아마도.”

그러면서 엄마는 하얗게 웃었다. 고맙다고 말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조그맣게 웃어주고는 물병 하나 찾아서 물을 부은 뒤 조심스럽게 진달래꽃을 꽂아 넣었다. 아무리 애를 써 봐도 물병 하나에 진달래꽃 한 묶음이 다 들어갈 수 없음을 깨닫고는 두 병을 더 찾아다가 조심스레 나눠서 꽂아 넣었다.

 

아주 오랜 전 내 기억 속에 지금의 나처럼 진달래 한 묶음을 몇 병의 물병에 조심조심 옮겨 넣으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차라리 마음 편하게 가시는 길에 진달래꽃이나 뿌려줬던걸 그랬구나.”

할머니는 늘 이 한마디를 외웠다. 또 할아버지 이야기를 하시는구나 싶어서 입을 삐쭉이던 어린 시절, 할머니가 내게 해줬던 할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는 늘 이것뿐이었다.

할아버지랑 같이 진달래가 가득한 앞산에 가서 할아버지가 진달래꽃을 품에 넘치도록 꺾어서 안아줬다는 이야기, 그것도 성차지 않아 머리에 진달래꽃 한 송이를 꽂아주셨다는 이야기.

이야기라 하기엔 너무 초라한 이야기, 그렇지만 할머니에겐 유일한 로맨스였다. 엄마는 할아버지를 싫어했다. 어릴 때 너무도 따랐기 때문에 그분의 배신이 더 역겹고 실망스러웠다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얼굴도 멋지셨고, 할머니보다 다섯 살이나 어렸다고 한다. 시와 그림을 좋아하셨고 가끔은 엄마를 무릎에 앉히고 조근조근 시를 읊어주고 노래를 들려주기도 하시던 할아버지는 어느 날엔가 실종되셨다. 정확히 말해서, 난생처음 할머니의 손을 잡고 앞산에 올라가 진달래꽃을 꺾어주던 다음날이었다. 할아버지가 아는 사람을 통해 북한에 건너갔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그때만도 북한이 더 잘 살았기 때문에, 북한에 따로 봐둔 여자가 있다는 소문들, 5살 위에 얼굴도 별로인 채 맨날 허리 휘도록 일만하는 터실터실 하는 할머니가 싫어서 갔다는 소문들할머니는 물병에 꽂아 넣은 진달래꽃을 보면서 망연자실해 있었다. 한동안 앓아누우시다가 물병속의 진달래가 다 시들어버렸을 때쯤 아득바득 일어나서 그 꽃잎들을 다 말려서 신문에 꽁꽁 싸셨다. 대체 왜 그러냐고, 그냥 던지라고 엄마가 발악하실 때에 할머니는 멍하니 앉아서 자꾸만 귓가에 할아버지의 시를 읊는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낫 놓고 기억자도 모르는 할머니가, 할아버지와 함께 처음 앞산에 나가서 진달래꽃을 꺾으며 당신이 잘 읊던 시 중에 진달래도 있지 않았소?”라고 한 수 뜨자 잠잠히 먼 하늘만 바라보던 할아버지가 도란도란 자장가 들려주는 목소리로 가늘게 읊어주었다는 <진달래꽃>.

뭣 하러 말도 안하고 가만가만 가노~맘이 편치 않게스리. 진달래꽃을 꺾어줬으면 내가 뿌려주는 꽃잎이나 밟으면서 마음 편히 가시지~”

엄마가 봤을 때 그런 할머니는 못난 엄마였고, 내가 봤을 때 그런 할머니는 자존심을 다 뭉그러뜨린 못난 할머니였다. 할머니랑 다툴 때마다 엄마는 이런 얘길 꼭꼭 하셔서 그 가슴에 못을 박았다고 한다.

거봐요! 엄마가 그러니까 아버지도 떠나는 거라구요! 한번 내동댕이침을 받았으면 정신을 차리셔야죠!” 그러면 할머니는 빗자루를 쥐고 우악스레 엄마의 엉뎅이를 때렸고, 그러다가 두 모녀가 서로 붙안고 엉엉 울었다는 이야기.

그럼에도 할머니는 해마다 봄이 오면 곱게 차려입고 뒷산에 나가 진달래꽃을 따오시군 했다. 뭔가 큰 의식을 거행하듯이 연지곤지 바르시고 진달래꽃을 한 가득 따다 물병에 꽂으셨다. 어느 샌가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아예 달달 외워서 노래로 흥얼거리기까지 하면서 말이다. 처음으로 학교 갔다 돌아와서 할머니가 머리에 진달래 한 송이를 꽂고 창문에 붙어 서서 물병에 꽂은 진달래들을 들여다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은 채 <진달래꽃>을 흥얼거리는 모습을 보았을 때, 나와 엄마가 얼마나 놀랬던지우리는 할머니가 정신이 살짝 맛이라도 간줄 알고 울며불며 할머니를 흔들었다. 정신 좀 차리라고.

할머니는 정신이 말짱하셨다. 그래서 나와 엄마는 기분이 더 야릇했다. 실성한 사람이나 할 짓을 정신이 말짱한 채 하시는 할머니의 그 마음은 어떤 걸까?

썩 후에 할머니가 세상을 뜰 때쯤에야 할머니는 침이 질질 흘리는 입으로 간신히 엄마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다.

할아버지가 떠나는 새벽, 사실 할머니는 단 한잠도 못 자고 숨죽이고 이불 밑에서 할아버지의 뒷모습만 보고 있었다는 것을

내가 머저리도 아니고그렇게 갑자기 진달래도 따다 주는데 이상한 걸 눈치 못 챘겄나

할아버지는 새벽이 밝아올 때쯤 기신기신 일어나 할머니의 이불을 잘 덮어준 뒤 이것저것 물건들을 챙겨갖고 뒤도 돌아보지 않는 채 조용히 집 문을 나서더란다. 말려야 한다고, 속옷 바람으로 달려 나가서 허리라도 콱 껴안으며 이러지 말라고 애원하고 싶었는데 종내 눈물이 흐르고 가슴이 콱 막혀서 누워 있기만 했다는 이야기를 할머니는 간신히 들려주셨다.

누워있으면서그래도 설마, 설마 하게 되더라고그 양반이 그러다가 돌아오지는 않을까건너가지를 못하고 잡혀서 오지는 않을까. 그런데 그게 오래된 계획이었다니무사히 건너갔다니 더 야속스럽더라고

할머니는 끝까지 할아버지를 야속하게 생각하리라고 마음을 먹었지만 진달래를 볼 때마다 그 마음에 있는 야속함이 점점 그리움으로 무섭게 번져지더라고 하셨다.

참 독한 일이긴 하지

내심 중얼거리면서도 18살 때 처음 만났던 할아버지의 앳된 얼굴이 떠오르고 그날 새벽 주섬주섬 짐을 챙기던 뒷모습도 떠오르고그래서 할머니는 정말 그때 가려는 할아버지를 잠깐 멈춰 세우고 전날 따주셨던 진달래 꽃잎을 앞길에 쫙쫙 뿌려주며 밟고 가 달라고 얘기했어야 했는데.하고 30여년을 긴긴 후회를 하셨다고 한다.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신 후 대신 엄마가 봄만 되면 진달래꽃을 따오셨다.

진달래꽃을 따오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점점 더 애틋해지고, 그 사랑이 애틋해질수록 아버지가 점점 병마에 시들어가다가 끝내는 한 줌의 재로 남아졌을 때쯤 엄마는 내게 조그맣게 이런 얘길 했다.

엄마는 할머니를 닮아서 지지리도 남자 복이 없나부다. 우리 딸만은 이러면 안 되는데.”

그때까지도 나는 할머니가 엄마에게 전해준 그 진달래가 무슨 뜻을 닮고 있는지는 몰랐다. 다만 그 진달래꽃은 뭔가 매직에 걸린 듯 할머니의 그 모진 사랑을 엄마도 닮아가게 했다는 것, 그래서 나도 이제 정말 여자가 된다면 조만간 그 모진 사랑을 닮아가는 게 아닐까 우려 반, 설레임 반으로 기억하고 있을 뿐이었다.

헌데 내 기억에 조심스레 자리 잡아 싹을 틔울락 말락, 잊혀질락 말락 하던 그 진달래꽃을 엄마가 내 손에 쥐어 주는 순간, 뭐랄까내 안에 오래 전에 바래왔던 것처럼 뭔가가 크게 잠에서 깨어나며 심하게 요동질치는 소리가 들림을.

할머니의 손에서 엄마의 손으로, 엄마의 손에서 다시 내 손으로 건너온 진달래꽃을 보면서 문득 오래전 누군가가 했던 우스갯소리가 떠올랐다.

외국 여자들은 절대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이해하지 못한다

왜냐면 서양여자들이라면 자신을 버리고 가는 남자 앞에서 보기 좋게 귀뺨을 하나 후려치든가 아니면 현실적으로 위자료 내놔하면서 이혼 협의서에 사인할 것을 요구하고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왜 버림받은 처지에 진달래꽃까지 뿌려줘야 하는지, 서양여자들 보기에는 분명히 미친 짓일 테니까.

하지만 할머니의 그 마음을 기억에 우려내며 잔잔히 <진달래꽃>을 불러볼 때면 내게 다가오는 것은 한 남자를 지독히도 사랑했던 한 여자의 모습이다.

나보기가 역겨워 님이 떠난단다. 내가 미워서, 싫어서 떠난단다.

그래서 여자는 발목을 붙잡지도 않고 가라고 한다.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겠다고 한다.

그래서 남자는 차라리 잘됐다 싶어서 더 편한 걸음으로 가려고 한다.

이때 여자가 잠깐만하고는 남자가 가려는 길에 진달래 꽃잎을 쫙 뿌리며 밟고 가세요.”라고 부탁을 한다그래서 남자가 밟고, 또 가려니까 여자가 잠깐만하고 또 한 번 진달래 꽃잎을 뿌린다. 남자가 다시 한 번 여자를 돌아봐줄 때까지, 어느 순간 그 진달래 꽃잎을 밟기가 무엇해질 때까지 여자는 마음의 한을 다 담아 꽃잎을 남자의 앞길에 뿌리고 또 뿌린다이 꽃잎이 바로 당신을 죽도록 사랑하는 나이니, 정녕 가실 꺼라면 나를 밟고 가라는 여자의 강력한 메시지인 것이다.

할머니도 진달래 꽃잎을 뿌리는 여자가 되어서 자기의 모든 것을 걸고 할아버지를 말리고 싶으셨을 것이다헌데 온몸이 마비되는 듯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어서 얼굴이 눈물에 절 때까지 소리도 못 내고 이불을 문채 끝없이 울기만 하셨다는 그 안의 한이사랑하기 때문에 생길 수 있는 그 한이 요즘 내 세대에는 지도 속에나 숨어있는 전설속의 보석이다.

어디가도 도저히 떠나는 남자를 그러한 한을 품고 막아내는 여자가 없다. 기껏 해서 자존심 때문에 돌아서고는 집에 앉아 낮술을 들이키는 여자가 있어도, 몇 명의 남자와 연애했어도 딱히 기억에 아련히 젖어 올만한 사랑의 기억은 없는 여자들이 숱해도 남자 앞에 진달래를 뿌려줄 만큼 사랑할 수 있는 여자는 없다.

그런 여자가 있다면 오히려 바보취급을 받는다. 그래도 그런 사랑을 품고 싶은걸 어찌할까? 남자 하나에 인생 전부를 거는 건 분명히 바보짓이지만 그래도 살아가는 동안 딱 한 남자에게만 진달래꽃을 뿌려줄 수 있는 여자는 돼야 하지 않을까?

살아가는 동안 내가 가장 사랑하고 매달리는 것이 남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세상 하고많은 남자 중에 가장 사랑하고 매달리는 남자는 너뿐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그런 사랑을 진달래꽃에 담아 내 가슴에 간직하고 싶은 이 발칙한 마음을 화사하도록 핀 진달래꽃이 알아주기를 바라고 또 바라는 마음이다.

언젠가 내가 엄마가 된다면, 사랑이 더 메말라 연애가 게임이 되고, 동거가 습관이 되고, 이혼이 눈곱 빼듯 쉬워질지도 모르는 그 시대에 살아갈 내 딸에게, 엄마가 내게 그랬듯 화사한 진달래 한 움큼을 품에 안아주며 낮은 목소리로 진달래꽃을 읊어 주리라.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의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