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수필|(미)

구두쇠의 멋과 맛

정 순 덕

 

우리가 알만한 재벌 집안이 구두쇠란 것은 세상 사람이 다 아는 터이다. 나는 그러나 이 구두쇠란 그 말 세 자를 사랑한다. 구두쇠야말로 분수를 모르는 푼수에 비해 얼마나 자기 자리를 지키는 지족의 사람들인가! 적어도 구두쇠는 남한테 손을 내미는 연민의 군상들과는 거리가 멀다.

나는 나의 친정 둘째 언니가 그 당시 충청도 광천 갑부 집안에 시집을 갔을 때, 그 댁이 전국 10대 구두쇠에 속한다는 신문 기사를 읽고 흐뭇해 하던 생각이 난다.

둘째 언니는 툭하면 친정으로 달려와 시아버님이 구두쇠고 어떻고, 남편도 똑 같다며 푸념을 할 때 언니야말로 팔자가 앞으로 좋겠구나 예감을 했다. 내 예감은 들어맞아 그 둘째 언니가 오늘까지 잘 살고 있다. 남한테 싫은 소리 안하고 지금껏 평탄하게 산다.

그러나 이 구두쇠도 종류가 있다. 그저 자기한테나, 남한테나 쓰지 않고 탐욕적으로 긁어모으는 구두쇠와 멋을 아는 구두쇠가 있다. 이 멋을 아는 구두쇠는 자기 자신한테는 엄격하나 쓸 때와 안 쓸 때를 분명히 가려 때론 삶을 운치 있게 만들기도 한다.

생각하면 돌아가신 나의 친정 아버님은 멋을 아는 구두쇠로서 참 멋진 분이셨구나 하는 생각이 세월이 갈수록 더 가슴에 사무친다.

당신 자신을 위해서는 항상 검소하시고, 겸손하셨지만 남한테는 늘 풍성하시고 너그러우셨던 분. 거기다가 인정미도 넉넉하셨다.

그 한 예로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저승길 노자(路資)가 넉넉해야 한다며 돌아가신 할아버지 머리맡에 풍성하게 놓아 드렸던 그 용돈은 모두 저승길 인도하시는 스님의 몫이었다. 그 돈 하나도 안 아깝다 하시며 눈물을 보이시던 분! 세상은 이렇게 멋을 아는 구두쇠들 덕분에 질서가 유지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이 구두 2 켤레를 10년 이상 번갈아 신고 다닌다는 것은 그가 억만장자로서 절약정신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며, 얼마나 멋진 구두쇠인가 생각한다.

일생을 나물장사 하면서 아끼고 아꼈던 돈 일억 원을 고아 사업에 쓰라고 내놓고 다시 무일푼으로 시장바닥에 앉아 고사리, 도라지를 파는 한국의 이정심 할머니는 얼마나 멋진 구두쇠인가. 옛날 자린고비처럼 굴비 한 마리 걸어 놓고 밥 한 숟가락에 두 번 쳐다보면 짜다고 야단치는 것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나는 가을이 되면 이보다 더 구두쇠였던 아버지를 생각한다.

지금까지 아버지가 살아 계시다면 그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바지 뒷주머니에 길게 늘어뜨려 차던 그 시계를 하나 사드리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