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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수필|(미)

풍년 두부

주 숙 녀

 

 

풍년두부라는 별명을 가진 시누님이 계셨다. 두부는 네모반듯하여 정돈된 듯 모양세가 좋다. 그러나 두부라고 불린다면 얄상하고 예쁘다는 선입견보다는 두툼하게 살이 찌고 풍성하고 후덕한 느낌이 앞선다. 더더구나 풍년두부임에랴. 가까운 사이에 좋은 별명은 웃음을 마주할 준비용어처럼 밀착감이 느껴진다. 그러나 때로 본인이 들을세라 비밀리에 불러지는 거북스러운 이름도 있다. 기왕이면 애칭이라는 단어에 걸맞게 멋지고 사랑스러운 명칭이었으면 좋겠지만 본인에게서 풍기는 이미지대로 남들에 의하여 지어진 것이기에 좋은 닠내임을 얻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둘째 시누님을 언니라고 불렀다. 부자로 살고 계시니까 풍년두부라는 어릴 적 별명이 한 몫 하는 모양이라고들 했다. 그러나 나는 그 분이 부자로 사신다는 데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 꼭 손수 음식을 만드시고 그 맛이 완벽하다는 데 아주 흥미가 있었다.

멸치볶음같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찬도 맛이 독특했다. 씹을수록 깊은 맛이 살아나는 재래종 갓쌈지, 골패 짝처럼 정갈하게 썰어 담근 석박지, 비린내가 느껴지지 않는 생굴무침, 흑산 홍어회, 낙지염포, 양념범벅이 된 토종게젓, 새파란 미나리 무침, 바다냄새 물신거리는 매생이 국, 흔하지 않는 음식만을 골라서 상을 꾸미는 정성에 나는 언제나 감복했다.

어느 날 언니네 음식은 무엇이나 똑 떨어지게 맛이 있는데 무슨 특별한 비법이라도…….”라는 나의 질문에 거침없이 자기의 젊은 날 얘기를 질펀하게 펴 놓으셨다.

한때 사교춤이 유행병처럼 범람하던 시절 그 아저씨도 어김없이 춤바람이라는 홍역을 앓고 계셨다. 춤 상대는 어느 초등학교 처녀선생님이었다고 한다. 상대가 교육자이고 보니 뭐 불미스러운 일이야 일어나랴 싶어 안심하자하면서도 여선생님 퇴근길을 건너다보면서 때맞추어 단장하고 나가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면 비위가 뒤틀려서 견딜 수가 없었고 때로는 손발이 덜덜 떨리기도 하더란다. 이해가 가고도 남았다. 물론 저녁은 외식이었고 밤늦게 귀가하는 남편에 대한 불만 때문에 몸부림을 치면서 무서운 위기감이 느껴지더라고 하셨다. 드디어 그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고민하기에 이르렀다. 앙탈을 부리는 소란보다 조용한 회유책이 옳다는 결론으로 먼저 외식을 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찾는 것을 제일 관건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로부터 언니는 언제 어디서나 특별하고 맛있는 음식을 만나면 그 조리법을 묻고 수없는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최고의 밥상을 차리는데 전력을 다했다니. 그 사연을 들으면서 왠지 가슴이 찡했던 기억을 잊지 못한다. 밤이면 주인 없는 밥상을 정성스럽게 차려놓고 그것을 먹던 안 먹던 그 방법이 자신을 지키는 자세이며 길이라고 스스로 작정한 한계선을 고통스럽게 뛰어넘었다고 하셨다. 한 무더기의 빛이 정성어린 밥상 위에 퍼져 있는 것이 보인 듯했다. 밤늦게 귀가하신 아저씨는 묵묵히 주인을 기다리는 밥상 앞에서 얼마나 큰 죄책감을 느꼈을까? 얼마나 미안했을까? 때로 출출하면 그중 한 가지를 맛보기도 했을 것이며 아주 맛이 좋으면 때늦은 밤참을 즐기기도 했으리라. 밤마다 한 발자국씩 감동으로 빠져드는 자신을 발견했던지 드디어 아저씨는 역시 우리 집 음식이 최고야라는 표현과 함께 조용하게 본 괘도로 돌아오셨다 한다. 그때 터득한 음식 솜씨는 지혜였으며 인격이었으며 인내였으며 승리였다고 갈채를 보내고 싶다. 결국 그 수고가 안온한 가정을 지키는 기틀이 되어 주었다. 후일 아저씨는 자기 마누라의 음식솜씨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계셨다. 그 깊은 아픔의 내력도 모르면서 말이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려는 것은 자기 삶을 사랑하는 자세이며 쓰러지지 않고 자기를 지키려는 지고함이 아닐는지. 풍년두부 같은 삶을 오롯이 지키기 위하여, 심층의 아픔을 견디어낸 한 가닥 과거사의 피력은 나를 한 발작 높이 성장시키기에 충분했다. 각 가정에 꼭꼭 숨어 있는 평화라는 것을 캐내어 살리기란 어려운 일인 성싶다. 나는 이 돌같이 아둔해 보이면서도 꽃같이 예쁜 얘기를 그분의 자녀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평범 속에는 너무 평범하기에 더 귀한 것이 있다. 비범하고자 하는 경우에 엿보이는 욕심은 비웃음을 자아내기 쉬울 것 같다. 돌로 바위를 치는 것같이 답답하고 어려운 일을 해 낸 의젓함이 하늘만 하게 돋보였다. 하나의 인간이 한 세상을 살다가면서 그 생전의 경작지에 남기고 간 값진 열매인 것만 같은 이 사연이 시누님이 생각날 때마다 마음속에 되뇌어지곤 했다.

이제 그 곳 천상에는 그토록 버거운 노력이 필요 없겠지요. 그 맛깔스러운 음식과 더불어 언니를 그리워합니다. 언니 거기도 풍년 두부가 있어요? 풍년 두부라는 명사가 저의 눈시울을 뜨겁게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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