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미국)


아버지의 결혼


 

김 영 강


아버지의 성화가 부쩍 더 심해졌다. 오래 전부터 반복되어 온 일이라 좀 있으면 잠잠해지겠지 하고 생각을 했었는데 이번에는 좀 달랐다. 더는 끌 수가 없으니 이제는 무슨 결판을 내야겠다는 것이다. 결판이란 이혼을 의미한다. 90을 눈앞에 둔 나이에 이혼이라니··· ···.
눈만 마주치면 이혼 타령이라 슬슬 피하기도 해봤으나 계속 그럴 수도 없었다. 남편은 신문에 날 일이라고 허허 웃으며 망령기가 발동한 탓이니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라고 대수롭잖게 말을 하지만 정미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하다. 아버지는 앉기만 하면 “그게 눈만 뜨면 나가 싸돌아다닌다고. 시민권 공부한답시고 핑계를 대지만 어디 젊은 놈하고 눈이 맞았는지 알아?” 하고 역정을 냈다.
70 노인이라도 아버지 눈에는 젊은 놈이다. 정미는 그럴 리가 없다고 수차 말했으나 그가 한 번 정해 놓은 마음은 바늘 끝조차도 들어갈 틈이 없었다. 변호사한테 가서 물어보았더니 6개월 별거하면 자동 이혼이 되나, 지금 와서 그 여자를 쫓아낼 수는 없으니 아버지보고 집을 나오라고 했다 한다.
그가 집을 나오면 어디로 가야 하나? 만일 이혼이 가능하면 그는 누구하고 살아야 하나? 천생 두 아들밖에 없다. 그러나 두 아들이 순순히 아버지를 받아줄까? 역시 노인이 된 남편과 함께 원 베드룸 아파트에 사는 정미는 도저히 아버지를 모실 수가 없다. 더구나 지금,  정미는 아버지와 아래 위층에 살고 있으니 더 그렇다. 어머니 돌아가시고 바로, 아버지를 위해 같은 아파트로 이사를 왔으나 요즘은 차라리 멀리 사는 것이 더 좋았을 뻔했다는 생각이 든다.
노인 아파트에 입주하려면 신청을 하고도 몇 년을 기다려야 하는데 정미는 운이 좋았다. 이곳 로스앤젤레스의 올림픽 가, 한국 타운 중심부에 있는 이 노인 아파트는 깨끗할 뿐 아니라 모든 것이 편리해 좋기만 한데 아버지의 성화 때문에 정미는 지금 속을 썩고 있는 것이다. 목구멍까지 치솟는 말이 있었다.
“내가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아버지 수발 다 들어주고 있으니 오빠들이 주는 용돈으로 맛있는 거나 사 잡숫고 살았으면 되는 건데, 왜 재혼은 해 가지고 그래요?”

아버지는 5년 전에 재혼을 했다. 그때 나이가 여든 둘이었다. 어머니 돌아가시고 몇 달도 채 안 됐는데 이 여자 저 여자와 만나는 것을 눈치 챈 정미는 서운하기도 했지만 혼자 외롭게 지내는 것보다는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이해를 했었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정미는 아버지가 재혼하리라는 생각은 꿈에도 안 했다. 소문을 들으니 아버지가 여자를 고른다는 것이었다. 70대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60 안팎에서 고른다고 했다. 6, 70대에서도 재혼을 원하는 여자들이 있다는 사실이 정미에게는 놀라웠다. 나이가 그렇게 많은데도 여자들이 줄줄이 서 있고 심지어는 50대 여자도 있다고 해 더더욱 놀랐다. 놀라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딴 세상 같았다.
옆집 여자는 어디서 들었는지 쉰두 살짜리도 있는데 너무 젊어 아버지가 싫다고 했다며 수다를 떨었다. 쉰둘이면 정미보다도 한참이나 아래인데 정말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물려줄 재산도 없다. 어떤 여자들이 그렇게 줄줄이 서 있는지 궁금했다.
“영주권 때문에 그러지. 자식들한테 의지 안 해도 노후가 보장되니까 방문으로 왔다가 무작정 눌러앉아 영주권 받으려고 다들 야단이라고. 노인들 재혼하는 거, 요즘은 하나도 흉 아냐. 세상물정에 왜 그리 어두워? 지금이 뭐 이조시대인 줄 알아? 진짜 몰라서 그러는 거야? 아니면 혼자만 순진한 척 내숭 떠는 거야?”
흉을 본 것이 아니라 그냥 물어본 것뿐인데도 그녀는 뭐가 그리 못마땅한지 얼굴을 구겼다. 
“더구나 할아버지는 굉장히 건강하시고 또 멋쟁이잖아? 모든 면에 박식하고 유머도 있고 말씀도 잘하시니까 여자들이 따르기 마련 아니겠어? 지난번에 보니까 쌀 두 포대를 양손에 들고 끄떡없이 걸어가 누군가 했더니 바로 할아버지더라고. 뒷모습이 어찌나 꼿꼿한지 꼭 청년 같더라니까.”
옆집 여자는 자기가 아버지한테 반하기라도 한 것처럼 침까지 튀겨가며 열을 올렸다. 청년 같다는 그녀의 말에는 과장이 심했으나 어쨌든 아버지의 건강은 과히 놀라울 정도다. 돋보기 없이는 신문도 못 보는 정미에 비해 그는 아직도 맨눈으로 신문을 줄줄 읽으니 하늘이 내린 건강을 타고난 특수 체질인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한 번은 병원에 갔다가 벽에 붙은 시력검사표를 괜히 줄줄 읽은 적이 있다. 곁에 있던 간호사가 깜짝 놀라 “어마나, 군대 가셔야 되겠어요.” 하고 농담을 던져 다들 웃었다.  
정미는 아버지 연세가 지금 몇인데 결혼을 하겠느냐고, 절대 결혼 같은 것은 안 할 것이라고 그녀의 말을 막았다. 돌아서는 정미의 뒤통수에다 대고 옆집 여자는 목청을 높였다.
“나이가 무슨 상관이야?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마음은 젊은 사람하고 똑같다니까. 자식이 돼 갖고 어찌 그리 부모 마음을 몰라? 지난번에 회장 얘기 듣고서도 그러네. 그 광고지 당신도 봤잖아.”

8층짜리 이 노인 아파트에는 워낙에 한국 사람이 많아 한 달에 한 번씩 회의도 열리고 회장, 부회장 등 간부도 있다. 그 회장이라는 여자가 좀 말이 많은 편이라 자기 오빠 얘기를 떠벌리고 다녀 그 사실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그녀의 오빠는 아내가 죽은 지 겨우 한 달 지났는데 자신의 신상명세서를 프린트해서 만나는 사람마다 광고지 돌리듯 건네준다는 것이다. 정미 같으면 쉬쉬하겠건만 회장은 오빠한테 무슨 억한 심정이 있는지 광고지를 온 아파트 사람들에게 돌렸다. 물론 정미도 보았다. 그래도 그녀의 오빠는 아버지보다 10년이나 젊은 나이였다.
나이 72세, 키 170, 학력 예일대 졸업, 재산 백만장자, 그리고 한 달 고정 수입에다 또 쌓아놓은 연금까지 상세히 적혀 있었다. 사진도 나와 있었는데 아주 허여멀건 하게 잘생겼었다. 거기에다 전 부인이라는 타이틀 아래 ‘이 아무개’ 하고 이름까지 적혀 있어 아연실색할 노릇이었다. 그녀가 한국 사회에서는 좀 유명한 여자여서 정미도 이름을 들은 적이 있다. 줄리아드 음대를 나온 피아니스트였다. 회장이나 그 오빠나 그 집안에는 치매기가 빨리 오나 하고 정미는 한참을 어리둥절했었다.
배우자 자격은 나이는 55세 이하여야 하고, 학력은 미국에서 대학을 나와야 하며, 키 160 이상으로 날씬한 몸매의 소유자야 한다고 못을 박아 놓았었다. 광고지를 받은 주위의 친한 사람들이 가족에게 이 사실을 알려 주어 아들이 아버지에게 충고를 한 적이 있었다.
“아버지 지금은 너무 이르니 조금만 참으세요.”
한데, 아버지라는 사람의 말이 걸작이었다. 내지르는 목청이 하늘을 찔렀다.
“뭐 조금만 참아? 얼마나? 1년? 2년? 난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몸이야. 하루가 급하다고. 네가 내 생각을 조금만 해도 아버지 등 떠밀며 ’빨리 결혼하세요.’ 그래야지. 뭐 너무 이르다고? 이 불효막씸한 놈아.”

거울 앞에 서 있는 시간도 점점 늘어나고 좋은 식성도 더 좋아져 아버지는 날이 갈수록 훤해져 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미만 보면 자꾸 우는 소리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살아서 뭐하느냐. 밤에 불 꺼진 집에 들어가기가 죽기보다 더 싫다. 밥맛도 없고 잠도 제대로 안 온다. 혼자 자다가 그냥 죽으면 어쩌나 하고 무서운 생각이 들어 잠을 이룰 수가 없다.”라는 등등의 말을 늘어놓고 한숨을 푹푹 쉬면서 외로워서 못 살겠다는 것이다.
어떤 날 전화를 하면,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여보세요?” 하다가 딸인 줄 알고는 별안간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그래, 나다.” 하고 앓는 시늉을 내곤 했다. 결혼을 해야겠다고 까놓고 밝힐 수는 없어 은근히 딸 입에서 결혼 말이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채고 정미는 당황했다. 아마 두 아들까지 설득해서 자신을 결혼시켜달라는 속셈인지도 모른다. 이 무슨 변괴인가? 여든이 넘은 나이에 결혼이라니.
정미는 아버지 마음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했다. 차츰차츰 아버지는 짜증을 부리기 시작했다. 반찬이 맛이 없느니, 짜느니 싱거우니 하면서 일일이 트집을 잡았다. 정미는 아버지가 은근히 밉기까지 해 계속 입을 꽉 다물었다.
그런데 하루는 가족회의를 소집하고 자신이 직접 결혼하겠다고 발표를 했다. 정미는 예상했던 일이었으나 두 아들은 상상조차 못 해본 현실에 너무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버지, 나 같음 재혼 안 하고 혼자 깨끗하게 살겠어요. 더구나 아버진 지금 정미가 바로 옆에 있으면서 시중을 다 들어 드리고 있는데 뭐가 부족해서 결혼하신다는 거예요.”
정미는 불쑥 화가 치밀었다.
‘큰오빠는 왜 나한테만 모든 걸 맡겨놓고 나 몰라라 해요? 도대체 이 집 큰며느리는 뭐하는 사람이에요?’
큰올케한테 몇 십 년을 두고 쌓인 감정에 정미는 목구멍까지 치솟아 오르는 말을 하마터면 밖으로 쏟아놓을 뻔했다. 침을 꿀꺽 삼키며 말도 함께 삼켰다. 이럴 때 아버지가 한 말씀 하시면 오죽 좋으련만 아버지는 옛날부터 큰아들 큰며느리라면 끔벅 죽는다.
사실 큰아들은 어릴 때부터 집안의 자랑이며 자존심이었다. 항상 수(A)로 총총 엮은 성적표에다, 수재만 모이는 대학에도 거뜬하게 합격을 해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렸다. 경제학 박사가 되어 권력과 재력을 갖춘 아주 근사한 집안의 예쁘고 똑똑한 딸을 며느릿감으로 데려왔을 때, 두 부자는 양 어깨에 날개를 달고 하늘 높은 줄 몰랐다.
아버지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는데도 큰아들은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아니, 지금 아버지 연세가 몇이신데 결혼을 하시겠다고 그래요? 아버지가 사시면 앞으로 얼마나 더 사시겠어요? 자식들 얼굴에 똥칠하고 싶으세요? 집안 망신이에요. 집안 망신!”
큰아들의 말이 좀 지나치다 싶었는데 아버지도 똑같이 대응을 했다.
  “그래, 난 앞으로 살날이 얼마 안 남았다. 그러니까 내 뜻대로 한 번 살아보겠다는 거다. 늙었다고 마음도 늙은 줄 아냐? 내 맘은 아직도 이팔청춘이다아--.”
그는 ‘이팔청춘’이라는 말에 잔뜩 힘을 주고, 끝말 “다”를 길게 늘어뜨리며 목청을 높였다. 다들 눈을 마주치며 터지는 웃음을 참느라 입을 다물었는데 그 표정이 가관이었다. 
‘이 팔’이든 ‘팔 이’든 그 답은 ‘십육’이니 청춘은 청춘이다.

아버지는 작은아들에게 눈길을 주었다. 형 그늘에 가려 빛도 못 보고 자란 작은아들은 매사에 너무 소극적이라 자신의 의견을 펴지 못한다. 형 눈치, 아버지 눈치를 살피면서 난처해하는 표정이다. 결론은 자식이 셋 다 반대라는 쪽으로 표가 던져졌다. 정미는 아버지가 이미 여자까지 정해 놓고 있어 쉽사리 물러서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자식이 셋 다 반대를 하니 아버지는 부르르 떨면서 냅다 소리를 질렀다.
“그래 좋다. 난 혼자서는 외로워서 도저히 못 살겠으니 차라리 콱 자결을 해버리겠다.”
모두 깜짝 놀랐고 결과는 아버지의 완전 승리로 끝이 났다.

결혼식은 한국 식당 구석진 방에서 가족들만 참석한 가운데 식사를 같이하는 것으로 조촐하게 치러졌다. 식당 측에서 준비를 했는지 이명훈 씨와 최숙자 씨의 혼인식이라는 팻말이 방 입구에 마련돼 있었다. 여자의 이름이 최숙자라는 것도 정미는 그날 처음 알았다. 신랑 신부가 상석에 나란히 앉고 여기저기에 꽃을 장식해 방안 풍경은 화사하고 이름다웠다. 신부에게는 중매해 준 친구 한 사람이 참석했을 뿐이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지, 만 1년 후에 아버지는 22년이나 나이 차이가 나는 젊은 여자를 아내로 맞았다.
우연의 일치인지 숙자 씨는 정미와 동갑이었다. 키도 크고 체격도 크고 얼굴도 그만하면 괜찮았다. 분홍색 한복을 입고 머리를 틀어 올린 모습이 좀 촌스럽기는 했으나 굉장히 건강해 보여 우선 안심이 되었다. 아버지는 연신 싱글벙글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다. 연세보다는 워낙 젊어 보이는 아버지이기에 둘은 잘 어울리는 한 쌍의 부부로 정미 눈에 비쳤다.

자식들은 뒷전이고 어머니만 끔찍이 위해 주던 그렇게도 사이가 좋은 부부였는데····. 심장 마비라는 갑작스런 어머니의 죽음 앞에 아버지는 몸부림을 치며 통곡했다. 그땐 자신이 재혼하리라고는 아마 꿈에도 상상 못 했을 것이다. 언뜻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라 콧잔등이 찡해졌다. 눈물을 삼키려고 애를 쓰다가 잠깐 나갔다 들어오니 아버지가 숙자 씨의 손가락에 다이아몬드 반지를 끼워주고 있었다.
큰오빠가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정미도 따라 웃었다. 그녀와의 결혼 날짜를 잡고, 아버지는 두 아들한테 느닷없이 다이아몬드 반지를 해내라고 떼를 썼다. 그것도 1캐럿. 다들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라 뭐라 말을 못 하고 멀뚱멀뚱 얼굴만 쳐다보고 있는데 아버지가 화난 목소리로 언성을 높였다.
“야, 나는 너희들 결혼할 때는 다이아반지 해줬는데, 너희들은 왜 못 해주냐?”
의논이 아닌 완전 명령이었다. 돈이 문제지 아버지 의견이 틀린 것은 아니다. 갑자기 큰아들이 하늘 높이 웃어 젖혔다.
“아버지는 3부짜리 해줘 놓고 왜 1캐럿 해달라고 그래요?”
아버지는 그때랑 지금은 시대가 다르다는 논리를 펼치며 1캐럿을 강조했다.
숙자 씨는 정미에게 꼬박꼬박 존대를 했다. 말씀 낮추시라고는 했으나 그것은 그냥 인사지 말을 놓으리라고는 생각 안 했다. 따지고 보면 그녀에게는 정미가 만만찮은 존재이고 정미에게도 그녀는 쉽게 좋아질 수 없는 존재이다. 법적으로 보면 엄연한 모녀지간인데 나이가 동갑이니 둘은 참으로 어설픈 사이다. 그런데 호칭이 문제였다. 어머니라는 호칭은 정미 입에서 절대로 나올 수가 없는 소리다. 아이들이 할머니라고 부르니 정미도 그렇게 불렀다. 숙자 씨보다 나이가 많은 두 아들도 그렇게 불렀다. 그리고 그녀는 아들들에게 최고의 존칭을 썼다. 아들, 딸, 며느리, 사위, 손자, 손녀, 남편에게까지 그녀는 만인의 할머니였다. 그녀 역시 남편을 할아버지라고 불렀다. 호칭과 촌수와 대화체가 몽땅 엉망진창이 돼버렸다. 메주콩 집안에 다 늦게 강낭콩 하나가 끼어든 결과이다.

결혼 후, 햇수가 거듭될수록 그들의 관계는 예상했던 바가 아닌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정말 뜻밖이었다. 아버지가 할머니에게 폭 빠져버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불만을 슬슬 털어놓기 시작한 것이다. 뭐가 다른지 조강지처하고는 다르다는 말을 강조했다. 옛날에는 어머니가 눈에 거슬리는 행동을 해도 이해가 되어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그녀가 눈에 나는 행동을 하면 밉다고 했다. 어머니날이나 한식날 등, 산소에 가야 하는 날도 아버지가 꼬박꼬박 먼저 챙겼다. 그 나이에 기억력도 좋았다. 기일도 한 번도 잊은 적 없이 일주일 전부터 아들들한테 연락해서 알리곤 했다.
한 번은 그녀가 “할아버지는 맨날 죽은 마나님 생각만 하고 살아요.” 하고 농담 비슷하게 불평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녀의 표정이나 말투에 질투 같은 감정은 하나도 섞여 있지 않았다.
아버지는 숙자 씨가 외출하는 것을 제일 싫어했다. 밉다고, 보기 싫다고 하면서도 나가는 것은 싫어하는 것이다. 가끔 ‘젊은 놈’ 운운하며 엉뚱한 소릴 하기도 했다.
“아버지, 할머니도 좀 나가 다녀야 살맛이 나지 어떻게 허구한 날 아버지 얼굴만 바라보고 있겠어요? 그리고 딴 데 가는 것도 아니고 노인 학교에 영어 배우러 다니는데 뭐 어때요? 그러면 아버지도 같이 노인 학교에 다니시면 되잖아요. 그렇게 하세요.”
아버지는 영어를 곧잘 하는 편이다. 옛날에 한 번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기초 영어를 배우기 때문에 당신하고는 수준이 맞지도 않고, 머리가 허연 노인들만 앉아 있어 싫다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70이 넘었을 적 이야기다.
정미가 아버지한테는 그녀를 감싸고돌았으나 외출이 잦은 것은 사실이다. 영어를 배우러 간다고 하지만 노인 학교 끝난 다음에 집으로 바로 들어오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러나 끼니는 꼬박꼬박 잘 챙겨드렸다. 나갔다가 점심때 들어오지 못할 때는 꼭 점심상을 차려놓곤 했다. 숙자 씨가 없을 땐 정미가 내려와서 아버지 시중을 드는 것은 정한 이치다. 그러한 정미한테 고마움을 느꼈는지 그녀는 정미한테 참 잘했다. 맛있는 반찬을 만들면 꼭 들고 올라왔다. 어쨌든 아버지 곁에 누군가가 있다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정미는 족했다. 숙자 씨의 존재가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백배 나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날이 갈수록 숙자 씨에게 싫증을 냈다. 큰 소리로 야단을 치고 어떤 때는 나가라는 말까지 서슴없이 했다. 정말 도망이라도 가면 어쩌려고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아버지 말씀이 걸작이었다.
“아직 영주권도 안 나왔는데 어딜 도망을 가?”
아버지가 그런 이유로 그렇게 자신만만하셨구나. 그러면서 차라리 도망이라도 갔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아버지 도대체 왜 그래요? 아버지가 좋아서 선택한 여자잖아요? 제발 좀 의좋게 사세요.”
“의좋게 살아? 그게 성질이 얼마나 고약한지 네가 몰라서 하는 소리다.”
갑자기 높아진 언성에 정미가 흠칫하는데 아버지는 그녀가 괘씸해 죽겠다는 듯이 잔뜩 인상을 쓰며 말을 이었다.
“어찌나 쌀쌀맞고 찬바람이 쌩쌩 도는지…. 나를 늙었다고 아주 무시한다고. 어쨌거나 부부지간이고 내가 남편 아니냐? 그런데 이불을 똘똘 말아 쥐고는 밤에 날 옆에도 못 오게 하니··· ···.”
정미는 깜짝 놀랐다. 남편은 벌써 오래 전에 침대에다 삼팔선을 그었는데 아버지 연세에? 젊은 여자를 고른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을까?
옆집 여자가 하던 말이 생각났다. 어찌된 일인지 옆집 여자는 정미를 보는 눈이 곱지가 않았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땅딸막한 몸집에 널따란 얼굴을 한 그녀는 정미를 볼 때마다 “아니, 어디 아파? 얼굴이 왜 그렇게 못 쓰게 됐어? 며칠 사이에 폭삭 늙었네.” 하고 빈정댔기에 그녀가 하는 말을 늘 건성으로 들었었다. 
아버지가 결혼을 한 바로 직후였던 것 같다. 워낙에 말이 많고 말도 안 되는 말을 함부로 내뱉는 그녀인지라 그땐 그냥 ‘미쳤어?’ 하고 속으로 콧방귀를 뀌며 흘려버린 말이다. 살짝살짝 거짓말도 하고, 안 한 말도 했다고 그러는 여자라 더 그랬다.
하루는 복도에서 딱 마주쳤는데 그냥 지나치려는 정미를 붙들고 여자가 느닷없이 말했다.
“왜 그 약 있잖아. 당신도 알지? 기적의 명약 바.이.아.그.라.”
여자는 약 세일즈맨이나 되는 것처럼 바이아그라에다 악센트를 강하게 주면서 한자 한자 똑똑 떨어지게 말했다. 암말 않고 아무 표정도 없이 멀뚱멀뚱 서 있다가 돌아서는 정미를 다시 붙들고 여자는 뭐가 그리 못마땅한지 얼굴을 잔뜩 찡그렸다.
“도대체 당신은 순진한 거야? 바보야? 아니면 모르는 척하는 위선자야?
그리고 혀를 끌끌 차며 뒷말을 바로 이었다.
“멀쩡하게 생겨가지고 맹하기는··· ···. 남편도 있으면서.”
정미는 다시 돌아섰다.
“아니, 사람이 말을 하면 좀 들어야지. 왜 자꾸 도망을 가? 내가 할 말이 있다니까.”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정미에게 바짝 바짝 다가온 그녀는 무슨 일급비밀이라도 전달하는 복병처럼 소곤거렸다.
“실은 말야. 내가 며칠 전에 약방에 갔다가 할아버지가 바이아그라 사는 거를 봤지 뭐야.”
얼마 후, 옆집 여자는 아들네로 들어간다면서 이사를 갔다. 다행이었다. 그런데 소문을 들으니 남자를 만나 동거를 한다는 것이었다.

이불을 똘똘 말아 쥐고 아버지를 거부하는 숙자 씨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앵 토라져 돌아누운 얼굴, 눈썹 사이에 내 천자가 패였다. 이불을 잡아끌며 치근거리는 아버지, 숙자 씨가 베개를 안고 거실로 나온다. 80이 넘은 노인에게 시집을 왔으니 그녀는 그런 현실이 도사리고 있을 줄은 몰랐을 것이다. 정미야 홀가분한 몸으로 살아 편하지만, 남편이 귀찮아 죽겠다고 노골적으로 불평하는 친구도 있다.  
문득, 역시 여든이 넘어 재혼했다는 친구의 시아버지가 생각났다. 나이 차가 무려 25년도 더 되는 젊은 여자였다. 친구의 남편이 그랬다. 아버지가 첫날밤에 일을 치렀을까 어쨌을까 하고 말이다. 친구는“무슨 그 연세에!” 하고 반기를 들었으나 남편은 딴청을 부렸다.
“아냐. 분명히 치렀을 거야. 나도 그 나이에 할 수 있을 것 같거든.”
친구의 시아버지는 아주 의좋게 잘살고 있다. 혼자 살 땐 자식들을 들들 볶아 스트레스가 쌓여 죽을 지경이었는데 이제는 자주 찾아가지 않아도 전혀 서운해하지 않고 마누라한테 폭 빠져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여자는 이불을 똘똘 말아 쥐지 않는 것일까?
아버지는 얼른 화제를 바꾸었다.
“어떤 땐 그게 꼬박꼬박 말대꾸를 한단 말이야. 아주 한마디도 안 진다니까.”
“아버지, 아무한테서도 간섭받지 않고 오랫동안 혼자 마음대로 살았더랬는데 그럴 수 있죠. 그리고 아버지가 좀 잘해 드려야 할머니도 고분고분할 거 아녜요?”
“어떻게 너는 모든 걸 다 내 탓으로만 돌리니? 도대체 너는 누구 딸이냐?”
아버지 탓으로 돌리는 것이 아니라 두 분이 맛있는 것도 사 잡숫고 어디 가까운 데 관광 따라 여행도 가시라는 뜻에서 한 말이라고 정미는 설명을 했다. 워낙에 구두쇠라 한 푼 가지고도 벌벌 떠는 아버지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정미다.
한숨을 푹푹 쉬며 정미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있던 아버지가 갑자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내가 괜히 생명 보험을 들어줬다고. 그 돈 때문에라도 도망가기는 글렀지 글렀어.”
진짜 도망을 가기라도 바라는 간절함이 섞인 그 음성과 표정에 정미는 아버지가 한심하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했다. 3만 달러짜리 생명 보험을 들었다는 말은 언젠가 들은 적이 있다. 다이아 1캐럿을 고집하던 아버지의 마음이 변하기 전이었을 것이니 결혼 직후에 들었을 것이 분명하다. 월부금을 그녀가 붓는다고 하니 그 말은 맞을 것이다. 구두쇠인 아버지가, 더구나 지금은 미움으로 응어리져 있는 아버지가 그 돈을 낼 리 없기 때문이다. 할머니를 위해 돈을 써야 한다고 늘 강조를 하지만 신혼 초에도 아버지는 구두쇠 노릇을 했다.
“그냥 탁 취소해버리면 속이 시원하겠는데…·. 정말 후회가 막심하다. 막심해.” 
정미는 뒤틀리는 속을 꾹꾹 누르면서 애써 언성을 낮추며 말했다.
“아버지, 그런 말 같지도 않은 소리 꺼내지도 마세요. 그 돈 때문에 도망을 못 가면 아버지한테는 차라리 잘된 일이에요. 그만하면 괜찮은 여자이니 감사하게 생각하고 제발 좀 조용히 사세요. 제가 이렇게 부탁할게요.”
두 손을 싹싹 비비면서 말을 하는 정미에겐 관심도 없는 듯 아버지는 생명 보험 생각에만 골똘하고 있었다. 그리고 큰 소리로 말했다.
“그러니까 그게 나 죽기만 기다리고 있을 거 아니냐? 어떻게 취소할 수가 없을까? 이혼을 하면 자동으로 취소가 되겠지?”

어느 할아버지가 생명 보험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재혼을 해 할아버지 아파트로 들어온 여자가 몇 달도 안 돼 보따리를 쌌다는 것이다. 할아버지 말이 결혼 전에는 그런대로 고분고분하고 다소곳해 괜찮아 보였었는데 결혼 후 함께 기거하고부터는 일일이 말대꾸를 하면서 싸우자고 덤벼들어 도저히 같이 살 수가 없었다고 한다. 딸네 집으로 가버렸던 여자가 무슨 마음이 내켰는지 도로 오겠다고 하는 것을 할아버지가 받아주지 않겠다고 선언을 해 완전히 결혼 파탄이 된 사례다.
그런데 생명 보험이 문제였다. 갈라서면 보험은 자동으로 해약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보험을 들 때, 계약 조건이 어떠한지 알지도 못하고 그냥 서명을 한 것이 오산이었다. 이혼과는 상관없이 그 여자가 서명을 해야만 취소가 된다는 것을 그는 몰랐다. 그런데 여자가 해약할 수 없다는 의사를 밝혀 할아버지가 속을 썩고 있었다. 보험료를 내달라는 것도 아닌데 속상할 일이 뭐가 있느냐는 주위 사람들의 위로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어딘가에서 내가 죽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 기분이 나빠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고요. 암만해도 내가 제 명에 못 죽을 것만 같아요.” 하고.

사실, 정미는 노인들이 재혼해 오순도순 재미있게 산다는 이야기를 더 많이 들었다. 죽은 아내가 관광 따라 어디 가까운 데 여행 좀 가자고 그렇게 노래를 불러도 끄떡 안 하다가, 새 부인을 맞은 다음에는 라스베이거스를 비롯한 가까운 곳은 물론이고 나이아가라, 하와이까지 돌아다녀 얼굴도 보기 힘든 경우가 있었다. 그리고 침대에서부터 모든 가구를 새것으로 바꾸고 젊은 사람 못지않게 신혼 재미에 빠져, 죽은 아내는 깡그리 잊어버리고 새 아내가 원하는 것은 다 해주어 주위 사람들에게 원망을 사는 일도 허다했다.
회장 오빠라는 사람도 마흔일곱 살 먹은 멋쟁이 여자를 집에 들여앉혀 아주 행복하게 잘살고 있다. 어찌나 외국 여행을 자주 다니는지 회장은 오빠 얼굴 보기도 어려웠다. 보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너무 세련되고 젊어져서 몰라볼 정도였다. 성형수술이 한몫을 단단히 한 것도 사실이나, 주위 사람들은 젊은 여자랑 사니 회춘을 한 모양이라고 수군거렸다. 오빠가 젊어져서 행복하게 잘살고 있으면 동생도 기분이 좋아야 할 텐데 그녀는 정반대였다. 오빠가 못할 짓이라도 하는 듯,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열변을 토했다.
지금 정미의 심정은 아버지가 어머니를 깡그리 잊어버려도 좋고, 돈이 있으면 그녀에게 몽땅 주어도 좋으니 무난하게 잘 살아 주기만 바랄 뿐이다. 정미는 아버지 생명 보험의 계약 조건을 모른다. 그러나 생명 보험이란 타는 사람이 취소해야 해약이 된다고 못을 박아버렸다.

그러는 가운데 세월은 흘러 숙자 씨는 결혼의 목적이었던 영주권을 받았다. 노인이랑 결혼했던 여자들이 영주권만 받으면 몰래 도망을 간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으나 그녀는 그럴 여자 같지는 않았다. 아버지가 계속 경제권을 쥐고 있어 이제는 모든 것을 할머니에게 맡기라고 수차 이야기를 했으나 돈 관리는 여전히 아버지가 했고, 구두쇠 노릇도 변함이 없었다. 한두 푼을 두고 따지고 들 때는 정말 얼굴이 화끈거렸다. 전화 요금이 평상시보다 더 나왔을 땐, 고지서를 그녀 코앞에 내던지며 소리를 질렀다.
한 번은 아들들한테 할머니에게 용돈을 주지 말고 그 돈을 당신에게 달라고 했다.
“아버지, 자식들이 할머니한테 잘해야 할머니도 아버지한테 잘해요.”
아버지는 다 필요 없다고 화를 냈다. 언제 그녀와 갈라설지 모르는데 당신 수중에 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나이에 자신의 앞날을 위해 돈을 모으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아버지가  불쌍했다.
앞으로 천년만년 살리라고 생각하는 걸까? 이제는 마음을 비우고 떠날 준비를 해야 할 시기가 아닐까? 그러나 정미도 같은 경우에 처하면 아버지처럼 될는지 그건 아무도 모를 일이다.

언젠가는 정미가 막 들어서는데 아버지가 뭔가를 황급히 감추어 그냥 예사롭게 넘겨버렸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것이 돈이었던 것 같다. 얼마 전에는 5백 달러를 옷장 서랍에 넣어두었는데 없어졌다고 해서 숙자 씨가 없을 때 찾느라고 법석을 떤 적이 있다. 물론 못 찾았다. 그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정미는 “할머니가 못 믿어우면 나한테 맡기고 타 쓰세요.” 하는 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왔으나 뱉지는 못했다.
어느 날은 양복 단추를 다는 중에 어쩌다 안주머니를 엿보게 되었는데 한쪽에는 20달러짜리가 족히 열 장은 넘게 들어 있고, 다른 한쪽에는 1백 달러짜리 두 장이 들어 있었다. 돈을 넣어 놓고도 잊어버린 것이다. 돈을 꺼내 들고 아버지에게 내밀었더니 주머니는 왜 뒤지느냐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정미는 아버지한테 돈이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리고 여기저기 감춰놓다 보면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도 못 할 테니 잃어버리고도 모를 수도 있다. 100달러가 80달러로 둔갑을 했더라도 ‘80불이었나?’ 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문제다. 그렇게 되더라도 숙자 씨가 아버지한테만 잘해준다면 그 대가를 받는 것이니 손해날 것은 없다.
언젠가 한 번은 참말로 어이없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게 그동안 나하고 살면서 방세도 한 푼 안 냈다고.”
법적으로 묶여진 어엿한 부인한테 그런 망발이 없다. 숙자 씨가 이불을 똘똘 말아 쥐기 때문에 아내라는 감정이 없어 그럴까? 돈으로 따지자면 자신의 뒷바라지를 해주고 있는 할머니한테 도리어 아버지가 돈을 내놓아야 한다. 그런데 그는 방세 운운하면서 돈타령을 했다.

아버지의 이혼 타령은 그칠 줄을 몰랐다. 들어줘야 하는 상대는 항상 정미이니 그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아버지 입에서 이혼 말이 안 나오게 할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좋은 안이 떠올랐다.
“아버지, 요즘 돈 받고 하는 계약결혼 때문에 단속이 굉장히 심하대요. 아버지가 지금 이혼을 하면 이민국에서 당장 조사가 나온다고요. 영주권 받자마자 이혼했다고 할머니는 추방당할 게 뻔하고, 아버지한테까지 화가 미쳐요. 자칫 잘못되면 감옥 갈지도 모르니 제발 이혼 소리 이제 그만하세요.”
그냥 해본 소리이지만 해놓고 보니 좀 심했다 싶었다. 그런데 아버지의 반응은 담담했다.  
“걱정 마라. 내가 그런 것도 안 알아봤을까 봐 그래?”
그리고 한심한 눈빛으로 딸을 바라보았다. 웬만한 일에도 벌컥벌컥 화를 내는 아버지이니, 집이 떠나가게 소릴 질러야 마땅하건만 그는 조용했다. 정미는 더 불안했다.
드디어 아버지가 결단을 내렸다. 우선은 큰아들 집에 들어가 6개월 별거를 하겠다는 것이다. 가족회의를 열었다. 가족회의는 항상 그녀가 나가고 없을 때 열린다. 그러나 아버지는 큰아들한테 한마디로 거절을 당했다. 아내가 퍽 오래전부터 온 전신이 저린 병에 걸렸는데 하와이에 용한 한의사가 있어 치료를 받으러 간다는 것이다. 요즘은 팔에 힘이 없어 파도 제대로 자르지 못한다고 한다. 몸이 약한 것은 알고 있었으나 그런 병이 있는 줄은 몰랐다. 아버지는 혼자 있을 수 있다면서 계속 고집을 피웠다. 통하지를 않자 큰아들은 아버지가 제일 싫어하는 양로원을 들먹거렸다.
“아버지 혼자 밖에 나갔다가 길 잃어버리면 순경이 잡아가요. 잡아가서는 그다음 날로 당장 양로원으로 보낼 텐데, 아버지 양로원 가시고 싶어요?” 
큰아들한테 그렇게 화를 내기는 생전 처음이었다. 어디서 그런 큰 소리가 나오는지 아파트가 떠나가는 것 같았다. 아비가 늙었다고 이제 양로원에 갖다버리려고 한다면서 큰아들한테 달려들었다. 형님 말뜻은 그게 아니라고 작은아들이 아버지를 이해시키려고 애를 썼으나 너도 똑같은 놈이라고 욕을 하며 머리를 벽에다 쾅쾅 찧으면서 온몸을 부르르 떨며 울고불고했다.
아버지는 며칠을 끙끙 앓았다. 하늘같이 믿었던 큰아들로부터 단단히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양로원 이야기를 자꾸 들먹거렸다. 생각할수록 원통하고 분한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양로원이라는 말만 들어도 거부반응을 나타낸다. 이제부터라도 양로원에 대한 인식을 바로 잡아 드려야 한다. 하늘이 내린 건강이라고 자타가 공인하지만, 나이가 나이인 만큼 언젠가는 아버지도 가야 할 곳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계속 큰아들 욕만 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엉뚱한 말을 던졌다.
“돈, 다 뺏어 먹고 나더니 이제 나를 헌신짝처럼 버리려고 해?”
정미는 깜짝 놀랐다. 돈을 뺏어 먹다니··· ···. 아버지는 뜻밖의 사실을 고백했다. 한국서 가지고 온 돈을 큰아들에게 몽땅 주었다는 것이었다. 정미는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담담해지려고 노력을 했으나 심기가 몹시 불편했다.
“아버지, 큰오빠한테 돈 준 이야기를 왜 나한테 해요? 아버지가 큰오빠보고 다른 형제들에게는 절대 비밀로 하라고 하셨을 텐데 왜 아버지가 그 얘기를 하세요?”
아버지의 사업이 완전히 도산되고 살던 집마저 은행으로 넘어가고 미국으로 왔기에 정미는 아버지에게 돈이 한 푼도 없는 줄 알았다. 미국에 온 후에도 큰오빠가 생활비를 댄다고 해 그런 줄 알았다.
나 죽으면 그래도 큰아들이 제사를 지내줄 것이고 또 앞으로 여생을 큰아들한테 맡겨야 하겠기에 있는 돈 다 줬는데 그놈이 배신했다고 치를 떨며 분해했다. 이제는 작은아들한테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단다. 그런데 돈이 조금밖에 없다는 것이다. 돈이 있다는 사실은 정미도 알고 있었던 일이다.
아버지가 불쌍했다. 아들한테 돈을 주어야만 당신 한 몸을 의탁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말 안됐었다. 그렇다면, 딸인 정미는 아버지를 도저히 못 모실 형편에 처해 있으니 돈을 한 푼도 줄 필요가 없다는 답이 나온다. 정미는 아버지한테 돈이 얼마 있느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3만 불”이라고 또렷이 말했다. 정미는 깜짝 놀랐다. 3만 달러라면 정미에게는 무지하게 큰돈인데 아버지는 ‘조금’이라고 한 것이다.
그렇다면, 큰오빠한테 도대체 얼마를 주었을까? 가물에 콩 나듯 가끔 와서는 개밥 주듯 던져주는 100 달러짜리 한 장, 코빼기도 안 내미는 큰올케를 생각하면 껄끄러운 기분이었으나 그래도 정미는 고맙게 받았었다. 그게 다 아버지 돈이었다고 생각하니 쓴웃음이 절로 나왔다. 아버지는 이제 돈 3만 달러를 들고 작은아들네로 들어가려고 하는 것이다.
작은며느리는 좋은 점을 많이 가진 여자다. 할 말은 다 하면서도 자신의 의무에는 충실하고 또 아주 싹싹하다. “아버님, 아버님” 하면서 시아버지를 자상스럽게 대해주어 아버지는 작은아들은 제쳐놓고 며느리에게 이런저런 상의를 한다. 무능한 남편 때문에 거의 평생을 직장 생활을 하며 혼자서 가계를 꾸려나가고 있지만, 그녀는 늘 명랑하다. 어릴 때부터 큰아들만 편애한 시아버지를 은근히 원망하면서도 그런 내색은 안 한다. 그 바쁜 중에도 자주 찾아뵙지 못해 죄송하다면서 정기적으로 안부 전화를 걸고 정미한테도 수고한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 그리고 위층에 사는 딸의 고충도 잘 알아 늘 위로를 해준다. 그렇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시아버지를 모실 작은며느리는 결코 아니다.
“아버지, 한국 사람도 없는 외딴 데서 온종일 집 안에 갇혀 어떻게 사신다고 그러세요? 작은오빠네는 아버지가 계실 방도 없잖아요?”
아버지는 얼른 방을 하나 들이면 된다고 했다. 돈 3만 달러가 있으니 방 들이는 값은 당신이 부담하겠다는 뜻일 게다.
“아버지, 돈하고 아버지 모시는 거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어요. 아버지가 돈이 한 푼도 없다 하더라도 정 계실 곳이 없으면 자식이 마땅히 모셔야죠. 그런데 지금 아버지는 그게 아니잖아요. 집도 있고 돈도 있고 부인도 있잖아요. 아버지가 우겨서 한 결혼이니까 그 결혼에 대한 책임을 지고 끝까지 잘 살아야죠. 어쨌든 지금 아버지는 할머니하고 살아야 해요. 싫어도 할 수 없어요. 그만하면 할머니 아무 나무랄 데 없는 사람이에요. 아버지가 할머니하고 잘 살아야 오빠들도 자주 오지, 맨날 못 살겠다고 그러면 부담을 느껴 오기도 싫어한다고요.”
아버지는 이야기를 듣는지 마는지 계속 큰아들 욕만 했다.
“아버지, 아들네로 들어갈 생각 마시고 그 돈 가지고 아버지 펑펑 쓰고 사세요. 아니면 차라리 할머니한테 몽땅 맡기세요.”
아버지는 또 젊은 놈, 운운하면서 그녀한테는 돈을 맡길 마음이 없는 것 같았다.

그날 밤, 정미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돈 관계에 생각이 엉켜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뒷바라지는 자기가 다했는데, 아들만 자식이고 딸은 자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아버지가 야속하고 괘씸했다. 한데, 돈 3만 달러를 어디에 감춰놨는지가 제일 궁금했다. 아버지도 은행에 비밀 박스라는 것을 가지고 있을까? 말이 나왔을 때 물어볼 걸 그 생각을 미처 못 했었다.
느닷없이 자동차 한 대가 눈앞에서 왔다 갔다 했다. 낡은 차였으나 그런대로 잘 굴러가는 도요타를 가지고 있었는데 한 두어 달 전에 그만 차가 서버렸다. 고치는 값이 너무 비싸, 버리다시피 차를 없애고 보니 불편하기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금까지 아버지 전용 운전사였으니 차 한 대쯤은 사줄 수 있지 않겠는가? 한, 1만 달러만 있으면 쓰던 차라도 괜찮은 것으로 살 수가 있다. 이런저런 생각에 밤새 뒤척거리면서 정미는 한없이 치사해져 가는 자신이 비참했다. 그러나 기회 봐서 한 번 말을 꺼내보기로 작정을 했다.

아버지는 기어이 작은아들 내외를 불러 본인의 의사를 밝혔다. 무슨 맘에서인지 돈 3만 달러에 대한 이야기는 일절 안 하고 다만 웰페어를 내놓으면 너희에게 좀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는 말만 했다. 작은며느리는 분명하게 말했다.
“아버님이 안 도와주셔도 저희는 잘사니까 그런 걱정은 조금도 마세요. 아버님이 할머니랑 정 못 사시겠다면 차라리 양로원으로 가시는 것이 어떻겠어요. 요새는 양로원이 많이 좋아져 내 집처럼 편안하다고 그래요.”
아버지가 가장 싫어하는 단어를 들먹거리면서도 작은며느리는 지극히 태연했다. 그 말씨도 아주 부드러웠다. 참으로 시아버지를 위해서 하는 소리 같았다. 아직도 건강한 시아버지 앞에서 그런 소리를 하다니·…. 아버지는 잠자코 듣기만 했다. 그야, 무능한 작은아들을 생각하면 암말 못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기도 하다. 우두커니 앉았던 작은아들이 아내의 말에 당황했는지 얼른 아버지 계실 방이 없다는 핑계를 댔다. 드디어 아버지가 소리를 질렀다.
“뭐 방이 없어? 옛날에는 단칸방에서도 늙은 부모 모시고 살았다. 다 그만둬라. 나 하나 나가 없어져 버리면 될 거 아니냐? 차라리 자결을 하겠다.”
결혼 발표를 했을 때도 자식들의 반대에 자결을 무기로 들고 나왔던 아버지다. 이혼을 하겠다면서 또 자결을 무기로 들고 나왔으나 이번에는 통하지 않았다. 마침, 외출 중이던 숙자 씨가 들어오는 바람에 아버지의 노기는 그것으로 그치는 수밖에 없었다. 다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정말로 이상한 아버지다. 이혼하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있으면서도 할머니한테 그 말은 절대로 안 한다.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며 나가라는 말을 함부로 하면서도 이혼이라는 두 글자는 입에 담지 않는 것이다. 또 정미보고도 할머니한테는 일체 암말 말라고 신신당부까지 하는 아버지다. 괜히 자식들의 관심을 끌려고 그러는 것일까? 아니면 남편 말대로 정말 망령이 든 것일까?
그 며칠 후, 내려가 보니 두 분이 사이좋게 마주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아버지의 얼굴은 아주 평화스러웠다. 돈을 숙자 씨한테 몽땅 줘버렸나? 한 번은 그녀가 없는 틈을 타서 아버지한테 돈 이야기를 꺼냈다. 할머니에게 돈을 맡겼느냐고 물어본 것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돈은 갑자기 무슨 돈이냐고 되묻는 것이었다. 정미는 아버지가 3만 달러 있다고 했는데 그게 지금 어디 있느냐고 다시 물었다. 아버지는 펄쩍 뛰었다.
“내가  3만 불이 어디 있냐. 나 그런 돈 없다. 네가 3천 불을 3만 불로 잘못 들었나 보다.”
그래도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잡아떼지는 않고 돈 액수를 10분지 1로 확 내리깎았다.
“됐어요, 아버지. 아버지한테 돈이 있든 없든 간에 나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어요. 그저 할머니하고 이혼하겠다는 말만 안 하시면, 아버지가 저한테 백만금을 주는 것보다 저는 더 좋아요.”
아버지는 화난 음성으로 소리를 높이며 “알았다. 그거하고 살 테니 걱정하지 마라.”라고 역정을 냈다.
“아버지, 그 말씀 예전에도 하셨어요. 이번에는 진짜예요. 큰오빠, 작은오빠 둘 다 아버지 못 모신다고 분명히 말한 거 기억하시죠? 작은올케 말대로 할머니하고 이혼하면 아버지 정말 양로원 가셔야 해요.”
작은 올케한테서 힘을 얻었는지 드디어 정미의 입에서도 양로원이라는 소리가 나오고 말았다. 뒤이어 아버지의 노한 음성이 온 아파트가 떠나갈 듯이 방안을 진동했다.
“지난번에는 감옥 간다고 공갈을 치더니 이번에는 너까지 양로원이냐? 왜 내가 네 신세 질까 봐 그러냐? 네 신세 안 질 테니 그딴 소리 하지 마라.”
정미는 찔끔했다. 본심을 들켜버려 얼굴이 화끈거렸다. 쓰던 차라도 한 대 살 수 있을까 하던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잠 못 이루고 뒤척인 그날 밤을 생각하니 자신이 너무 한심스러워 쓴웃음이 일었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그녀한테 엎어져버리는 결정적인 사건이 터졌다. 아버지가 응급실에 실려 가는 불상사가 발생한 것이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정미에게는 불상사가 아닌 전화위복의 기회였다.
언제부터인가 소변이 시원하게 나오지 않고 아랫도리가 찌릿찌릿한 느낌이 있었다. 화장실을 가는 횟수도 잦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나이가 들어서이겠지 하고 대수롭잖게 넘겼었는데 그만 하루아침에 요도가 막혀버린 것이다. 방광결석과 전립선 비대가 요인이었다. 오래된 집의 하수도가 막힌 것과 같은 이치이다.
결석은 레이저로 깨뜨려 꺼냈으며, 비대해진 전립선은 마이크로웨이브 시술로 고온을 가해 지져서 축소를 시켰다. 시술은 완벽하게 잘 되었고, 요도도 뚫려 고통은 가셨는데 그 후의 일이 아주 번거로웠다.
일주일 정도는 카테터(catheter, 방광의 요도에 연결하여 소변을 제거하는 기구)를 달고 있어야 했다. 그리고 소변을 자주 비워내야 하니 여간 귀찮은 노릇이 아니었다. 정미는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그녀가 아버지를 내팽개치고 계속 나가다니면 어쩌나 하고 걱정이 되었다. 그동안 집안에 이혼의 물살이 소용돌이 쳤는데도 숙자 씨는 아는지 모르는지 아무런 내색이 없었기에 더 불안했다. 이제 겨우 아버지의 마음이 가라앉은 듯한데 숙자 씨가 반전으로 치고 들어오면 정미는 그대로 당하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지 않는가? 도무지 그 속을 알 수가 없어 불안감에는 점점 가속도가 붙었다. 숙자 씨가 나쁜 마음을 먹는다면야, 쥐도 새도 모르게 ‘에라 이때다.’ 하고 사라져버릴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꼼짝도 않고 숙자 씨를 부려먹었다. 어찌나 엄살을 떠는지 참 뻔뻔하기도 했다. 본인이 해도 될 일이었으나 아버지는 카테터를 달고 있다는 자체를 역겨워해 내려다보기도 싫어했다. 숙자 씨는 묵묵히 그 시중을 다 들었다. 노인 학교에도 가지 않고 일체 외출을 삼가면서 시간에 맞추어 약을 대령했다. 접촉 부위에 염증이라도 생기면 큰일이라 항생제를 하루에 세 번 씩 챙겨먹어야 하고, 그 외에도 처방약을 시간 맞춰 먹어야 했다. 그동안에 병원도 멀리 하고, 약도 모르고 산 그에게는 참으로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아버지는 약은 독이라며 평생 비타민 한 알을 안 잡수신 분이다.
조마조마하던 정미의 가슴은 진정이 돼 갔다. 휴우 하고 안도의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의사가 말한, 일주일이 지나자마자 아버지는 바로 병원으로 달려가 카테터를 떼버렸었는데, 그날 밤 또다시 응급실로 향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다시 카테터를 달고, 이번에는 열흘 이상을 견뎌내야 했다.

어느 할아버지는 좀 편해 보려고 재혼을 했는데 도리어 거꾸로 된 예도 있었다. 여자가 꼬랑꼬랑 아파서 할아버지가 그 시중을 들어야만 했다. 튼튼한 숙자 씨, 이런 일을 당하고 보니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잠시라도 그녀를 의심한 것이 미안했다. 숙자 씨는 참으로 아버지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정미는 음식을 만들어 여느 때보다 자주 내려갔다. 그리고 “시중들기 힘드시지요?” 하고 고맙다는 말로 그녀를 추어주었다. 
“할아버지가 약도 제 때에 못 챙겨 잡수시는데 어떡해요? 이런 시중은 얼마든지 들 수 있으니 괜찮아요. 호. 호. 호. 호. 나한텐 도리어 전화위복이 됐다고요.”
밝은 얼굴로 소리 내어 웃는 그녀를 바라보며 정미도 따라 웃었다. 전화위복? 그럼, 이런 시중이 아닌 저런 시중이 있었다는 말이 아닌가? 그러고 보니 이 ‘전화위복’은 정미이게도, 아버지한테도, 또 숙자 씨에게도 다 해당이 되는 말이 되었다.
그 후부터는 자식들보다 숙자 씨가 낫다는 결론에 도달했는지 아버지는 이혼에 관해 거론하지 않았다. 숙자 씨가 웰페어 못 타는 것을 늘 불평했는데, 그 돈을 받을 날도 가까워오고 있으니 그것도 이혼을 거론하지 않게 된 하나의 이유일 수 있다. 정신은 흐려져도 이해타산에는 밝아만 가는 아버지를 보면서 연민을 느끼기도 하나, 어쨌든 올바른 판단을 한 것은 틀림없다. 응급실은 아니더라도 앞으로 병원 출입이 잦아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아버지도 분명히 깨달았을 것이다.

아들 둘이 늙어 가는 모습이 측은해서 더는 이혼 소리를 안 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천하를 손에 넣을 듯이 기세가 등등하던 큰아들도 지금은 완전히 기가 꺾였고, 작은아들은 형보다 더 늙어 보인다. 자식들을 들들 볶으면서도 아버지의 얼굴은 언제나 훤하다. 세 부자의 얼굴이 그냥 삼 형제 같다. 세월이 흐를수록 그들은 더 똑같은 얼굴이 되어간다. 걸음걸이와 목소리도 어쩜 그렇게도 닮았는지, 옆으로 스칠 때는 느낌이 똑같아 누가 누군지 분간이 어렵다.
이제는 모두들 자신의 인생에 쉼표를 찍는 일이 빈번해져야 한다. 정미도 마찬가지다. 자리에 앉아 쉬며, 온 길을 돌아다보면 발아래 까마득한 저 길, 참 많이도 왔다. 여기저기 아프고, 어떤 땐 밥해 먹는 것조차도 귀찮다. 깐깐한 남편에 매이다 보니 가끔은 한 달만이라도 좋으니 과부가 되어 봤으면 하는 생각을 하다가 혼자 쓴웃음을 짓기도 한다. 튼튼한 숙자 씨가 아직까지는 내색 않고 있지만 앞으로는 모를 일이다. 그것도 자기밖에 모르는 90 노인 치다꺼리를 해야 하니 말이다. 조강지처도 아닌 처지에.

오랜만에 정미는 아버지와 함께 어머니 산소를 찾았다. 이번에는 숙자 씨도 동행이다. 웅장한 철문을 들어서니 눈앞에 탁 트인 푸름에 정미의 가슴도 활짝 열렸다. 코끝을 스치는 싱그러움이 무척이나 상쾌했다. 큰오빠가 하와이로 떠나면서 차를 주고 갔기에 정미의 기분이 더 날아갈 듯 상쾌하다. 그것도 새 차나 다름없는 캐딜락을 갖게 되었으니 말이다. 보험 등등 차에 드는 모든 비용은 큰오빠가 부담하겠다고 했다. 아버지와 정미의 섭섭했던 감정이 차 한 대로 다 풀려버렸다.
호숫가에는 하얀 오리 떼가 한가로이 노닐고, 한없이 펼쳐진 파란 잔디 위에 즐비하게 늘어선 소나무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군데군데 장식해놓은 조각들은 그 그림을 더욱 돋보이게 해주었다. 산등성이에는 무성한 잎사귀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그곳의 숲 향기가 향수처럼 달콤하게 퍼지고 있었다. 그 달콤함에 이끌려 눈부신 햇살이 숲을 향해 달려들어, 잎사귀들은 반짝반짝 눈망울을 굴렸다. 온통 초록으로 뒤덮인 묘지, 그곳에는 생명의 힘이 용솟음 쳤다. 묘지의 의미와는 상반되는 생명력이다. 정미는 죽은 이들도 초록의 싱그러움을 한껏 마시며 숨을 쉬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로스앤젤레스 근교에 자리 잡은 이곳 글렌데일 묘지는 동양인이 발을 들여놓지도 못한 시절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 비문들을 둘러보면 중국 사람들을 비롯해 한국 사람들의 성씨가 숱하게 많이 눈에 뜨인다. 어머니의 산소는 아름답게 펼쳐져 있는 전망을 한눈에 만끽할 수 있는 높은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당신 떠나고, 여기 이 사람이 나를 잘 돌봐주고 있고, 또 앞으로도 내 옆에 계속 있겠다고 했으니 아무 걱정하지 마라. 나도 이제 당신 곁으로 갈 날이 머지않았으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늘 그랬듯이, 어머니와 마주앉아 주고받는 식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정미가 같은 아파트에 살아 많이 의지가 된다는 말은 올 때마다 반복되는 말이다. 큰아들이 좋은 차를 정미한테 주었으니 당신도 기뻐하라는 둥, 숙자 씨의 존재에는 아랑곳없이 아버지는 계속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었다.
정미가 민망해 고맙다는 말을 하려고 그녀의 손을 잡는데 갑자기 콧잔등이 시큰했다. 얼른 고개를 젖혀 하늘을 쳐다보았다.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이 바람에 실려 어디론가 떠가고 있었다.
떠가는 구름 속에 환히 웃는 어머니의 얼굴이 보였다.





  김영강(소설가) 경남 마산 출생. 이화여대 국문과 졸업.1972년 도미
  제 22회 미주한국일보 문예공모 소설로 등단, 제 12회 에피포도
  문학상 소설부문 금상, 제15회 해외문학상 소설 대상 수상
  2010년 동인지 「참 좋다」 2011년 소설집 「가시꽃 향기」
  2013년 장편소설 「침묵의 메아리」 출간
  미주한국소설가협회, 미주한국문인협회, 해외문인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