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폭―안 설 희(미국)                              날짜 : 07-08-05 05:01     조회 : 525   

 

꿈에 선녀를 보았다
을지로 2가나 3가 쯤으로 되어 보이던 곳에서였다. 길을 건너려던 나는 건너편 인도를 가득 메운 사람들 틈에서 우연히 그녀를 발견하고는, 반갑고 다급한 김에 '선녀야, 선녀야’ 하고 큰 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부르다가 실제로 터져 나온 내 음성에 놀라 퍼뜩 잠이 깨어 버렸다. 꿈이었구나 ‥‥ 속으로 중얼대면서, 나는 슬며시 코 끝이 아릿해지 슬픔 비슷한 느낌 속에서 눈을 떴다.
  식은 땀을 흠씬 빨아들인 축축한 내의가 불유쾌한 현실의 피막인 양 내 몸에 밀착되어 있었다. 벌써 며칠 째 오르내리던 고열도 오한도 말끔히 가신 것으로 미루어, 지난 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삼킨 두 알의 타이레놀이 어김없이 그 약효를 낸 것이리라. 그러나 밤새 푹 자고 났는데도 온 몸이 나른하기는 여전하거니와 장에서 깨어나기가 바쁘게 다시 바튼 기침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쿨룩쿨룩 기침을 하는데, 문득 어젯밤 내가 바텐더로 일하고 있는 카페 <에스케이프>의 바 뒷 정돈을 마치고 귀가를 서두르던 내게, 웨이터 브라이언이 불쑥 던진 기분 나쁜 소리가 생각났다.
  "헤이, 경수 왜 요즘 그렇게 비쩍 말라가지고 빌빌거리지? 혹시 그거 걸긴 건 아냐?"
  "그게 뭔데?"
  나는 브로드웨이쇼에 어찌다 한 번 엑스트라로 출연하는 3류급 연극 배우인 브라이언이 그의 장기인 우스개 소리포 나를 놀려주려고 수작을 거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었다.
  "에이즈말이야. 에이즈도 몰라?"
  정색을 하고 내 얼굴을 찬찬히 훑어보던 그는 지난 한 달 동안에만 해도 그의 젊은 예술인 친구 두 명이 에이즈에 걸려 갑자기 죽었다고 묻지도 않은 얘기를 했다. 내가 아는 누구누구도 그 병에 걸려 쨍하니 마른 몰골로 오늘 내일 한다는 것이었다.
  "이것 좀 보라구."
  그가 손에 들고 있던 주간지 한 권을 내 앞에 불쑥 내밀었다. 얼결에 받아든 뉴스위크지의 표지는 놀랍게도 에이즈에 감염되어 사망한 사람들의 사진으로 가득 메워져 있었디. 그 중간 부분에 붉은 색으로 인쇄된 AIDS라는 단어가 눈길을 끌었다
  호기심에서 그 주간지를 뒤적이던 나는 그 안에 실린 에이즈에 관한 특집기사와 함께 몇 페이지를 넘겨도 넘겨도 계속되는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에이즈 희생자들의 사진과 그 아래 명기된 간단한 신상명세서를 훑어보다가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그건 자못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이미 고인이 된 그들은 이웃이나 길가 어디에서고 마주칠 수 있음직한 평범해 보이는 젊은 남녀들이었고, 그들의 직업 또한 연예인, 예술인, 사업가, 회사원, 막노동자, 의사, 변호사, 서비스 종업원 등 천차만별이었다.
  개중엔 가정을 가진 중년의 남자와 어쩌다 동양인의 사진도 군데군데 끼어 있었다. 얼핏 쳐다본 브라이언의 얼굴에 두려움과 근심의 빛이 역력했었던 것 같다
  나는 잠자리에 그대로 누운 채 혹시 내가 그의 말마따나 요즘 뉴욕, 아니 전 미주지역과 세계 각국을 중세기의 전염병 페스트처럼 휩쓸고 있는 에이즈에 걸린 건 아닐까 하는 겁나는 가상을 해본다.
  그럴 리가 없다. 환쟁이 노릇만으로는 먹고 살면서 그림 재료값 대기가 영 벅차, 동성연애자들과 마약중독자들이 득시글거리는 브룩클린의 한 카페 <에스케이프>에서 밤에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지만, 는 맹세코 그들과 어떤 짓거리도 한 적이 없으니 말이다.
  기실 폴이나 베이빗처럼 노골적으로 나를 유혹하려드는 녀석들도 있지만, 껴안고 키스하고 그 짓까지 한다는 건 나로서는 이해가 안가거니와 상상만 해도 메스껍다.
  팔뚝이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주사기로 찌른 바늘자국이 역력한 마약중독자나 굵직한 금목거리로 치장을 한 수상쩍은 녀석들이 내게 크랙이나 헤로인, 코케인, 마리화나 등의 마약을 팔려고 접근을 해 오면,나는 으례 영어를 잘못 알아 듣는 척 딴전을 부리곤 했다. 미국이 멜팅괏(Melting Pot)이라는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백인종, 황인종, 흑인종이 골고루 섞인 ,카페 <에스케이프>의 단골 중에는 하룻밤 쯤 품어
봤으면 싶은 늘씬한 금발의 창녀들도 여럿이 있었지만, 나는 그네들의 터질 듯이 풍만한 젖가슴께와 아슬아슬하게 짧고 꼭 끼는 미니 스커트 아래로 드러난 미끈한 허벅지를 어쩌다 슬쩍 훔쳐보았을 뿐, 그들 중
누구와도 함께 자본 적이 없었다.
  잘 되어봤자 열여섯이나 열일곱 살 밖에 안 되어 보이던 어린 창녀가 내게 동전만한 크기로 돌돌 말린 콘돔 한 개를 꺼내 보이며 '안전한 섹스'라고 음탕한 어조로 속삭였을 때도, 나는 그냥 못 들은 척 해 버렸다. 창녀와 잔다는 게 왠지 불결하고 찝찝하기도 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는 나보다 그런 면에서 엄청나게 경험이 많은 여자와 동침한다는 것에 대해 은근히 위축감을 느낀다. 그렇듯 청렴 결백(?)한 내가 에이즈에 걸렀다는 건 말도 안 된다.
  나는 자신 있게 내가 지독한 감기에 걸린 거라고 확신을 할 수가 있었다. 오늘은 몸살기운도 있으니 상가에 초상화단을 들고 나가지도 말고 집에서 종일 푹 쉬리라고 작정을 했다. 지나가는 행인들을 설득해서 의자에 붙들어 앉히고 즉석에서 초상화를 그려주고 돈을 버는 길거리의 화가 노릇은, 지난 봄에 파리에서의 생활고에 쪼들리다 못해 일 년 만에 다시 뉴욕으로 되돌아 올 수밖에 없었던 내가 호구지책으로 시작한 벌이 중의 하나이다. 파리에 기거하는 동안 그 도시에 우글대는 가난한 화가들이 몽마르뜨 언덕 위에 장사진을 친 틈에 끼어 버둥거려 보았는데, 그게 보기처럼 쉬운 게 아니었다.
  비굴한 미소와 아첨 섞인 말로 그곳에 몰려드는 관광객들을 자신의 고객으로 서로 끌어 들이려는 경쟁부터가 장사 아치들의 그것만큼 치열했다. 심지어는 자리 다툼, 고객 다툼으로 화가들 사이에 욕설과 주먹질이 오갈 때 있었다. 처음으로 그들의 생태를 목격했을 때의 내 심정은 씁쓸하기 짝이 없었다. 나는 그들이 돈 때문에 어쩔 수없이 자존심을 팔아먹고 사는 타락한 예술가라는 진득한 연민의 정을 금치 못했었다. 그러나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대로 뉴욕에서 푼푼이 모아가지고 갔던 얼마되지 않는 돈이 바닥이 나 버리자, 나는 어쩔 수없이 그들과 한 통속이 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수치심에서 호객을 못하고 화구를 든 채 구석자리에서 어정거리던 내가 저들과 같은 숫기와 적극성을 익히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던 것 같다.
  몽마르뜨 언덕 위의 화가들 중에는 동양인이 드물었던 까닭인지 나는 유난히 동양인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그들 대부분이 단체로 몰려다니는 일본인 관광객들이었는데, 어쩌다 한국 사람을 만나게 되면  반가우면서도 공연한 창피함에 얼굴이 벌게지곤 했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실제의 자기 얼굴보다 보기 좋게 그려주어야 좋아 한다는 파리 본토박이 화가 쟝의 충고는 골백번 맞는 소리였다. 나는 아첨을 떠는 장사꾼처럼 스켓치에 기교를 부려서 고객들이 기분 좋게 선뜻 그림 값을 내게 했다.
  그러한 나의 예술적 매음 행각을, 먹고 살기 위해서 라는 변명으로 철저히 합리화시켜온 만큼, 나는 그걸 보상이라도 하려는 심리에서인지는 몰라도 내 본 작업에 있어서만큼은 가혹하리만치 비판적이다. 생활
비를 벌기 위해 쇼핑센터나 길가에서 초상화를 스케치하거나, 일주일에 사나흘 밤에 바텐더로 일하는 시간 이외의 시간에 나는 성직자나 수도승의 그것과 같은 진지한 화가의 자세로 5피트, 6피트 사방의 캔버스 위를 종횡하며 이리 긋고 저리 칠하고. 덧칠하고, 뿌리고, 뭉개며 나만의 선과 색채와 명암과 구도, 형체를 그려내느라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러나 항상 나를 우울하게 하는 것은 여태 '이거다' 싶은 흡족한 작품을 하나라도 완성시키지 못했다는 점이다. 파리에 비해서 생활비나 물가가 싸고 취업이 쉬운 이곳에서 개같이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이 모아지면, 다시 파리로 가서 그림을 그리는 게 나의 소원이다. 무어 그림을 꼭 파리에 가서 그려야만 맛이겠느냐, 쥐뿔도 없는 주제에 건방진 소리 말라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내게 있어서 파리는 글자 그대로 예술가의 요람이며 성지일 수밖에 없었다.
  그 낭만적인 예술의 도시 전체에 감도는 뭐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수 없는 어떤 분위기, 그것은 내게 이전에 느껴본 적이 없는 무한한 예술적 영감을 불어 넣어 주었다.
  그곳에 머무는 동안 나는 광기에 들뜬 듯이 새로운 차원의 그림을 그리는 데 열중할 수 있었다. 내가 그곳에서 만난 갯벌에 묻힌 진주 같은 숱한 무명 화가들은 청량한 자극제 역할을 했었던 것 같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과 우애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갈고 닦는 부빔돌이었으니까. 나와 각별히 친분이 두터워진 세느강변의 조그만 미술재료 상점의 여주인 르네가 그때 내가 그린 그림들을 보관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그녀에게 안부 편지를 낸 지도 꽤 오래된 것 같다. 지난 크리스마스 때 카드 한 장을 그려 보낸 게 마지막으로 기억되니 말이다.
  나는 나른한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며 새우잠을 자는 둥 마는 둥 궁싯거리다가 한 나절이 되어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군가의 아파트에서 생선을 기름에 튀기는 역겨운 냄새가 내 빈 속을 느글거리게 했다.
  빌어 먹을‥‥나는 화장실로 가서 참았던 오줌을 누면서 속으로 투덜거렸다. 주로 저소득층의 흑인들과 히스패닉계 이민자들이 세들어 살고 있는 이 낡고 우중충한 아파트 건물 안에는 바퀴벌레와 생쥐 떼가 시도 때도 없이 극성을 부릴 뿐만 아니라 언제나 제때 치워가지 않은 쓰레기에서 나는 악취와 저 생선튀기는 비린내가 나를 괴롭혔다. 남들이 다 잠든 한 밤중에 바에서 돌아와 발을 디딜 적마다 삐꺽대는 낡은 층계를 오를 때도 맨 처음 내 예민한 후각을 자극하는 것이 바로 저 불쾌한 냄새였다. 그 시간쯤에는 집집에서 새어나온 온갖 냄새가 적당히 버무려져 퀴퀴하고 곰팡내 나는 탁한 공기가 되어 그 건물 안에 스며 있었다.
  나는 덜 마른 유화에서 풍기는 털펜타인 냄새가 상쾌한 202호 내 아파트 안에 들어설 때까지, 될 수 있으면 그 역겨운 냄새를 덜 맡기 위해 문간에서 숨을 깊이 들어 쉬었다가 서둘러 내 아파트 문을 열고 들어서기가 바쁘게 후 하고 내쉬곤 했는데, 그건 내가 어려서 강물 속에 뛰어들 때 하던 자맥질과 비슷한 짓거리였다. 저 냄새가 역겨워서라도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기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지만 이곳처럼 아파트세가 싼 곳을 구하기가 쉽지 않으니 지급의 내 형편으로는 별 도리가 없다.
  나는 내 공간을 침투한 생선 비린내를 없애 볼 심산으로 뻑뻑해서 잘 열리지도 않는 거실의 창문을 간신히 열어 제꼈다. 거리의 소음과 함께 밀려든 차가운 바깥 공기가 상쾌했다. 언제 보아도 삭막하기 그지  없는 대도시의 뒷골목 풍경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섰노라니, 아직도 땀에 젖어 축축한 내의를 입고 있어서인지 금세 으스스 한기가 느껴졌다. 나는 창문을 삼분의 일 쯤 열어둔 채로 침실로 걸어가 얼룩덜룩 페인트 칠이 벗겨진 옷장 서랍을 열었다. 한참이나 뒤적거린 후에야 빨아서 아무렇게나 쑤셔 박아두었던 내의 한 벌을 찾아 낼 수 있었다. 짝짝이 양말과 티셔츠, 팬티, 스웨터 등이 뒤죽박죽 섞여있는 이 서랍 속을 작년 가을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보셨더라면, 아마도 내가 장가를 들 때까지는 눈을 못 감으셨을 것이다. 나는 항공료가 없어서 어머니 장례식에도 못 간 불효자식이 되어 버렸다. 가슴 아프게도‥‥‥‥
 땀이 밴 내의를 갈아입던 나는 옷장 거울에 비친 몰라보게 수척한 내 알몸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요즘 구미가 뚝 떨어져서 제때 제대로 잘 챙겨 먹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운푹 꺼진 양 뺨이며 갈비뼈가 아른거리고 비칠 정도로 몸 전체에서 소모된 근육이 전에 없이 허약해 보였다. 나는 조만간에 다운타운의 한식집(미락)에 가서 불고기와 설렁탕으로 몸보신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바로 그때, 쿵쿵,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놀란 토끼마냥 후다닥 옷을 주어 입기 시작했다. 쿵쿵, 쿵, 내가 이곳에 이사 오기 전부터 망가져 있었던 초인종 대신 또 한 차례 문짝이 울렸다. 나는 색색의 유화물감이 얼룩덜룩 묻은 청바지에 재빨리 다리를 끼면서 '후 이즈 잇?' 하고 문쪽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저예요. 인희예요."
  뜻발에도 문밖에서 또랑또랑한 인희의 음성이 들려왔다. 인희라구? 오늘이 인희가 오는 날이었나? 아, 그러고 보니 나는 오늘이 수요일인 것조차 까맣게 잊고 있었다.
  나는 서둘러 침대 밑에서 찾아낸 두툼한 스웨터를 입고 나서야 허둥지둥 문을 열었다.
  "미안해, 인희, 마침 옷을 갈아 입던 중이라서…"
  대낮인데도 어두컴컴한 복도에는 농도 짙은 생선 튀김 냄새가 진동을 했다.
  "선생님, 감기 좀 나으셨어요?”
  인희가 배시시 웃으며 내 아파트 안으로 들어섰다.
  "응. 많이 나았어."
  이렇게 말하는데 그만 눈치 없게도 기침이 쿨룩쿨룩 나와 버렸다.
  "감기로 꽤 오래 고생하시는 것 같아요. 그러시다가 폐렴이라도 걸리면 어쩌시려고요? 진찰 한 번 받아 보시지 그러세요."
  그녀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아냐, 괜찮다구, 정말 많이 나아졌어. 젊은 놈이 그까짓 감길 가지고 뭘,"
  나는 얼른 작업실로 쓰고 있는 거실로 가서 조금 전에 열어 두었던 창문을 닫은 후에 이동식 전기난로의 스위치를 켰다. 잉-하는 소음과 함께 난로의 코일이 금세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밖이 춥지?"
  "아뇨. 어제보다는 날씨가 많이 풀렸어요."
  이렇게 말하면서 인희는 입고 온 진고동색 밍크코트를 벗어 의자 위에 걸쳐 놓았다. 그리고는 장미빛 실크 블라우스와 검정색 스커트를 벗는다 했더니, 재빨리 슬립과 브래지어, 스타킹, 팬티도 벗어 그 위에 얌전히 포개 놓았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그녀는 맨발로 사뿐히 흰 시이트가 씌워진 긴 소파로 걸어가더니 그 위에 비스듬히 누워 포즈를 취했다.
  나는 눈이 시릴 정도로 아름다운 그녀의 발가벗은 몸을 정신없이 바라보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꼴깍 침을 삼켰다. 내 몸 한가운데 불끈 솟는 동요가 민망스러워져서 나는 '으흠' 하고 헛기침을 했다.
  "선생님, 이렇게, 괜찮아요?'
  한 팔을 괴고 비스듬히 누워 이쪽을 바라보며 인희가 물었다. 그제서야 나는 허겁지겁 이젤 위에 놓인 캔버스 위에 씌워진 천을 걷어내고 내가 그리다만 선녀, 아니 인희와 그녀의 포즈를 요렇게 저렇게 비교해 보았다.
  "으응, 괜찮아, 아주 좋아. 가만 있자…인희, 고개를 조금만 더 아래로 숙이고, 옳지, 옳지. 왼쪽 어깨를 좀 더 가즈런히 해보지."
  "이렇게요?”
  "아니, 조금 앞쪽으로 당기는 듯 싶게‥‥.”
  그러나 인희가 몸을 움직일수록 그녀의 포즈는 더욱 흐트러져 버렸다. 나는 할 수 없이 그녀에게 다가가서 자세를 고쳐 주었다. 매끈하고 보드라운 그녀의 맨살에 내 손이 닿자 나는 순간적으로 불에 데이는  듯한 뜨거움을 느꼈다. 나는 또 '으흠'하고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캔버스 앞의 내 위치로 되돌아와 작업에 들어갔다.
 언제나 그랬듯이 일단 그녀를 그리기 시작하면 나는 금방 인희를 가지고 싶다는 원색적인 충동을 까맣게 잊을 수가 있었다.
  나는 옥으로 빚은 듯한 아름다운 나신에, 잠자리 날개와 같이 반투명한 날개옷을 걸친 선녀의 와상(臥象)을 그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우연히 뉴욕 시내 한 복판에서 십년 전에 나를 헌신짝처럼 저버린, 내가 몹시도 사랑했던 이선녀와 놀라우리만치 닮은 박인희를 발견하고는 애걸복걸 하다시피 통사정을 한 끝에 마지못해 동의한 그녀를 모델로 이 그림을 그리게 된 지도 벌써 두 달째가 되어 간다. 인희는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매주 수요일 오후 두시에 내 누추한 아파트로 찾아왔다. 그녀가 내 작업실에 들어섰던 첫날, 사방 벽을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 구석구석에 포개어 세워 놓은 내 작품들을 유심히 들여다보던 인희에게 내가 그리고 싶은 작품의 내용을 설명하면서 옷을 벗어 줄 수가 있겠는가 하고 조심스럽게 물어 보았다.
  나는 그때 그녀가 얼굴이 새빨개져서 대뜸 거절을 하거나 화를 낼 거라고 지레 짐작을 했던 터라, 그렇게 되면 얼굴과 포즈 이외의 나신은 상상으로 그리겠다는 대책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내 맡이 끝나자마자 인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그 자리에서 입고 온 옷을 홀랑 벗어버림으로서 오히려 나를 놀라게 했다. 퍼뜩 그녀가 보통 여자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녀를 불편하게 할까 봐 일체 그녀의 신상에 관한 것은 물어 보지 않았다. 인희는 내가 그린 작품들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더니, 그냥 미스터 김이라고 부르라고 했는데도 굳이 나를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나는 그러한 선생님이 모델의 육신을 예술적 목적 이외로 탐해선 안 된다고 몇 번이나 스스로에게 타일렀다. 게다가 인희의 왼쪽 네 번째 손가락에는 그녀가 결혼한 몸이라는 것을 알리는 엄청나게 큼직한 다이아몬드 반지가 번쩍이고 있었다.
  인희가 찾아온 세 번째의 수요일이었던 것 같다. 그림을 그리다가 잠시 휴식을 취하는 동안 흰 시이트로 알몸을 둘둘만 채 내가 끓여다 준 커피를 홀짝거리며 마시던 인희가 묻지도 않았는데 자신에 대한 애기를 털어 놓았다.
  “저 스물세 살이예요. 더 돼 보이죠?”
  그렇게 말문을 연 인희의 사연은 이랬다. 그녀는 서울에서 모여대 2학년까지 다니다가 그녀의 부친이 사업에 실패를 하고 중풍에 걸려 고생 끝에 돌아가시자 가정 형편상 하는 수 없이 학교를 그만두고 변두리의 전축 회사에 비서로 취직을 했었다거 했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녀가 받는 쥐꼬리만한 월급으로는 병약한 모친과 그녀 아래로 줄줄이 셋이나 되는 동생들의 뒷바라지를 하기에는 어림도 없어서 전전긍긍하던 차에 안면이 있는 다방 마담의 권유로 콜걸이 되어 상당한 보수를 받으며 주로 외국인을 상대했었다. 그런 밑바닥 생활을 하던 중에 인희는 사업차 서울에 들릴 적마다 그녀를 찾던 부유한 미국인의 청혼을 받고는 후딱 결혼을 하고 일년 전에 뉴욕으로 왔다는 거였다.
  인희는 남편이 결혼 전에 약속했던 대로 그녀 동생들의 학비와 가족들의 생활비 일체를 매달 서울로 꼬박꼬박 송금을 해준다고 했다.
  "남편은 나이가 지긋하신 분인가?"
  왠지 그럴 것 같다는 내 생각은 적중했다.
  “마흔 여섯요. 그 사람, 이렇게 뚱뚱해요."
  두 팔을 한 아름 벌려 보이며 이렇게 말하곤 인희는 철부지 소녀처럼 까르르 웃었다. 나는 그녀를 따라 웃지 않았다. 그녀의 어린애같은 제스츄어가 우습기는 커녕, 오히려 임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이를 보는 듯 인희가 측은해졌다. 한창 젊고 아름다운 그녀가 밤마다 돼지같이 비만한 그 사내 밑에 깔릴 것을 생각하니 까닭모를 울분같은 것이 치밀었다.
  "선생님, 선녀가 누구예요?"
  이번엔 내 차례라는 듯이 인희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그녀는 이따금 자기 이름을 선녀로 오발하는 내 실수를 안중에 두고 있는 거였다.
  "선녀? 선녈 몰라? 선녀는 ‥‥ 하늘을 날아다니는 여자 신선이지. 그 왜 서양에선 엔젤이라고 하지. 옷과 인종이 다를 뿐 동양의 선녀와 엔젤은 같은 종류일 거야?”
  나는 가슴이 뜨끔한 걸 감추고 능청을 떨었다.
  "아이, 선생님도. 그러지 마시고 솔직히 털어 놔 보세요. 저는 제가 전직 콜걸이었다는 것까지 다 말씀 드렸잖아요."
  인희가 곱게 눈을 흘겼다. 그래 놓으니 더 이상 발을 뺄 수가 없었다. 이선녀에 대해 간단히 말해 주었다. 선녀는 옛날에 내가 사랑했던 여자의 이름이고, 그리고 그녀는 인희처럼, 천상의 선녀같이 예뻤다고. 그러자 인희는 내 앞으로 바짝 다가앉으며 어린 아이마냥 졸라댔다.
  "선생니잉, 선녀씨하고 사랑했던 얘기 좀 해주세요. 어서요."
  나는 마지 못해서 오래 전에 <에쿠우스> 음악을 보러 갔던 덕수궁 근처의 소극장에서 실수로 이선녀라는 음대 여학생의 발등을 밟는 바람에 그녀를 알게 된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내가 미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군대에 가기 전까지, 삼 년간의 아기자기했던 사랑의 세월을 마치 옛날에 본 영화얘기를 하듯이 주욱 얘기했다. 무릎을 세우고 앉아 내 이야기를 흥미롭게 듣던 인희가 엉뚱한 질문을 했다.
  "잠깐만요, 선녀씨랑 육체관계 같은 것 있었어요?"
  "육체관계? 육체관계라‥‥‥‥.”
  나는 곰곰이 기억을 더듬다가 대답했다.
  "아니, 그럴 기회는 있었지만 선녀와 나는 우리가 약속했던 결혼 초야의 순결을 지키기 위해서 그것만은 피했지. 우린 그냥 순수한 사골을 했던 거야."
  이렇게 말하고 나선 '아차'했다 순결이니 순수니 하는 단어를 인희가 자격지싱에서 껄끄럽게 느낄까 싶어서였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개의치 않는 낯빛을 보고는 안심을 했다.
  "그래서요? 그래서 그담엔 어떻게 됐어요? 선녀 씨랑 결혼을 하긴 했었어요?"
  "아니‥‥‥.”
  그러고 나서, 나는 갑자기 말문이 꽉 막혀버렸다. 이상한 일이었다. 별안간 그 이후에 있었던 일이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 거였다. 그것은 내가 중학교 다닐 적에 있었던 일과 같은 현상이었다. 어려서부터 노래를 꽤 잘 불렀던 나는 학예회 때 교육청에서 오신 장학사님들과 학부형들 앞에서 '그집앞'을 독창으로 부르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한 달 전부터 방과 후에 남아 수십 번도 더 연습을 했던 그 노래가 잘 나가다 말고 -그리워 나도 몰래 발이 머물고- 에서 뚝 그쳐 버렸다. 어찌된 영문인지 그 다음의 가사 -오히려 눈에 띌까 다시 걸어도 되오면 그 자리에 서졌습니다- 가 하필 그 중대한 순간에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 거였다. 당황해서 얼굴이 귀밑까지 화끈거리던 나는 몸둘 바를 모르는 채 그대로 강당 무대 위에 서서 우물쭈물대다가 내 나머지 노래가 결여된 음악선생님의 반주가 끝나자 꾸벅 인사를 하고 무대를 내려 왔었다. 나는 그때 아무런 꾸중은 안하셨지만 몹시 화가나 보이던 음악선생님의 얼굴과,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던 수치심을 두고두고 잊지 못했다. 그때처럼, 그 이후의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었더랬는지 한참 잘 돌아 가다가 툭 끊어져 버린 영화필름처럼 내 머리 속의 화면엔 빗줄기같은 선이 확확 그어진 공백만이 가득했을 뿐이었다.
  난처해진 내 표정을 살피던 인희가 한숨을 포옥 쉬더니 말한다.
  "그만하세요, 선생님. 선녀씨가 갑자기 죽었던지, 무슨 수가 났었군요."
  이렇게 제멋대로 내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그 말에 힌트를 얻은 듯이 내 입에서 응 야유 속에 다시 이어져 돌아가는 시골 극장의 낡은 영사기 필름같은 그 나머지 이야기가 생각났다. 내가 삼 년 만에 군대를 제대하고 나왔을 땐 나를 기다리겠다고 했던 선녀는 이미 그녀 부모님의 성화에 못 이겨 독일로 유학을 가는 부잣집 아들과 결혼을 한 후에 서울을 떠난 지가 오래였다. 한동안 선녀로부터 편지가 오지 않아 불길한 예감에 가슴을 졸여왔던 나였지만, 나는 정말이지 그녀가 그렇게 쉽게 나를 저버렸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나는 '견우와 직녀' 전설속의 우매한 나뭇꾼처럼 날개 옷을 걸치고 홀연히 먼 하늘가로 날아가 버린 야속한 선녀를 그리워도 하고 원망도 하며 발을 동동 구르다가 시내의 약국 몇 군데를 전전하며 조금씩 사 모은 수면제를 한 웅큼 입안에 털어 넣고 자살을 기도했다. 그때의 내 심정으로는 정말이지 칵 죽어 버리고만 싶었다.
  비관하며 괴로워하던 내게 술을 사주면서 사내 녀석이 실연 한 번 당한 걸 가지고 뭘 그러냐, 이 세상에 흔해 빠진 게 여잔데, 잊어 버려. 어쩌구 하면서 주위의 친구들이 나를 위로했지만, 그런 말들은 하등의 도움이 되질 않았다. 나는 죽음 일보 직전에 어머니에게 발견되는 바람에 인근 병원에서 위세척을 받고 의식을 되찾았다.
  가슴 속이 알맹이를 잃은 소라껍질처럼 공허해진 나는 '선녀가 없는 이 땅에 나만 남을소냐, 나도야 간다' 식으로 때마침 내게 주어진 미국행의 기회를 두 번 다시 생각해 보지도 않고 택해 버렸다.
  "그게 벌써 십 년 전의 일이니 참 세월이 빠르기도 하지."
  나는 거기서 말을 맺었다
  "선생님은…… 아직도 선녀씨를 사랑하고 있죠?"
  "뭐라구?"
  나는 인희의 의외의 물음에 어디 아픈 곳을 찔린 것처럼 소스라쳤다.
  "아니야, 다 잊어 버렸다."
  나는 고개까지 가로 저으며 완강히 부인하다가, 아직도 이따금 선녀 꿈을 꾼다는 것 기억해 내고는 어쩌면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듣고 보니 참 슬프게 끝난 사랑이네요. 그렇지만, 저는 이 나이가 되도록 그 흔한 연애나 사랑이란 걸 한 번도 못해 봤는 걸요. 불쌍하죠?"
  눈을 내리깔며 혼잣말을 하듯이 중얼거리던 인희는 결코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서로의 속 이야기를 털어 놓아서인지, 그 세 번째 수요일 오후 인희와 나는 급속도로 가까워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내게 있어선 또 하나의 고통의 시작이었다.
  나는 열심히 화폭 위에 붓을 놀렸다. 그림속의 선녀는 거의 마무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제 한두 번만 더 손을 보면 완성이 되리라. 극심한 피로를 느낀 나는 다른 날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작업을 중단했다
  "인희, 다음 수요일 날 계속하기로 하지‥‥.”
  "그러죠."
  인희는 얼른 대답을 해놓고도 옷을 입을 생각은 않고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 있더니. 한 웅큼의 크고 작은 붓을 덜펜타인 용액에 헹구어 페이퍼타올에 닦고 있는 내 앞에 다가섰다.
  “선생님·드릴 말씀이 있어요."
  나는 무언가 심상치 않은 낌새를 느끼곤 긴장 했다.
  "뭔데? 어서 말해 봐."
  인희는 대답대신 슬그머니 내 두 손을 잡아 자신의 따뜻하고 풍만한 젖가슴 위에 얹었다. 나는 자지러질 듯이 놀라 뒤로 물러서려고 했으나 감전이라도 된 듯이 꼼짝할 수가 없었다. 인희가 말없이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맑고 커다란 그녀의 두 눈동자 속에 깃든 무수한 언어를 읽었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나는 인희와 사랑에 빠져 들어선 안 된다고 속으로 부르짖었다.
  "안돼. 인희, 이러면 못써."
  나는 와락 그녀를 끌어안고 나딩구는 대신 재빨리 손을 빼내어 그녀의 가냘픈 어깨 위에 옷가지를 걸쳐 주었다. 고개를 떨구고 돌아서는 인희의 두 눈에 눈물이 그렁하게 고였다.

  밤이면 더욱 심해지는 기침때문에 밤마다 잠을 설쳤다. 여전히 오르내리는 고열에 들떠서 어떻게 며칠을 지냈는지도 모르겠다. 지난 화요일 밤 이후로는 카페 <에스케이프>에도 초상화를 그리러도 나가지 못하고 어둡고 벌렁한 내 아파트 안에 틀어박혀 끙끙 앓았나 보다.
  모처럼 허기를 느낀 나는 아침 겸 점심 삼아. 라면에 계란 하나를 풀어 끓여 먹고 침대로 되돌아오다가 문밑에 누군가 들여 밀어 놓고 간 흰 봉투를 발견했다. 짐작했던 대로 렌트사무실에서 보낸 밀린 아파트세 독촉장이었다. 나는 오래간 만에 외출을 감행하기로 작정을 하고는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손가락 틈새로 대충 쓸어 넘기고 옷을 잔뜩 껴입었다. 실내의 온도로 미루어 밖이 꽤 추울 것 같아서였다. 나는 작업실 구석에 먼지를 홈빡 뒤집어 쓴 채로 포개어져 있는 유화 중에서 크기가 작은 것으로 세 점을 골라 무명 천에 둘둘 말아 싸들고는 굴속같이 어두침침한 아파트 건물을 빠져나왔다
  현관문을 밀고 나서자 갑자기 밝은 햇빛에 노출이 되어서인지 아찔 현기증이 일었다. 휘청대는 몸을 가누느라고 아파트 건물의 벽을 한 손으로 짚고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옅은 잿빛 구름 위에 희뿌옇게 빛나고 있는 열기를 잃은 해는 사실 그리 눈이 부신 것도 아니었다. 이른 봄인데도 불구하고 날씨는 여전히 쌀쌀했다. 나는 휴지조각과 빈 맥주깡통이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지저분한 거리를 걸어 나와 큰 도로변에 꺼멓게 입을 벌리고 있는 지하철 입구의 계단을 내려갔다. 매표소에 이르기까지 내71 다가와서 손을 벌리는 걸인을 네 명이나 만났다. 나는 손에 잡히는 대로 잠바 호주머니 속의 동전을 몇 푼씩 그들의 때국 묻은 손바닥 위에 얹어 주었다. 지하철 매표소 옆의 시멘트 바닥에는 백레이디(Bag La요·)고 불리우는 거지 노파가 온갖 잡동사니를 잔뜩 쑤셔 넣은 쇼핑백 서너 개를 늘어 놓은 채 그중의 하나를 베개삼아 베고 모로 누운 채 잠이 들어 있었다. 나는 주머니 속에 남은 동전을 몽땅 털어 긍년에도 호되게 춥던 겨울을 용케 얼어 죽지 않고 살아남은 그 노파의 머리맡에 슬그머니 놓아 두었다. 다운타운으로 가기 위해 표를 사들고 개찰구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들고 온 그림 세 점이 그렇게 무거울 수가 없었다. 이리저리로 개미굴같이 뚫린 지차도 안에는 무표정한 얼굴의 뉴욕커들이 분주한 개미떼마냥 빠른 걸음으로 오고 갔다.
  다운타운으로 가는 전철이 플랫폼에 닿자마자 나는 출구께로 몰리는 사람들에게 떠밀리다시피 열린 문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전철 안은 만원이었다. 이건 예전에 서울에서 타던 만원버스 이상이었다. 나는 간신히 타임스케어에서 내려 한참을 걸었다. 맨하탄에 자리 잡고 있는 <엑셀시오> 갤러리에 들어섰을 땐 나는 그야말로 소금물에 절여진 배추마냥 후줄근히 지쳐 있었다. 갤러리 주인인 코헨씨가 나를 보더니 아는 체 했다. 나는 그가 계산을 마친 중년신사에게 포장한 그림을 건네줄 때까지 한 구석에 우두커니 서서 기다렸다.
  갤러리 안에는 내가 보기엔 좀 유치하다 싶어 뵈는 각양각색의 유화와 조각품들이 고급스런 분위기 속에 잔뜩 진열이 되어 있었다. 그것들을 둘러보는 부티가 나는 고객 몇 명이 눈에 띄었을 뿐, 전에 왔을 때보다는 한산한 편이었다.
  "하이, 경수 요즘 통 안보이길래 어딜 갔나 했지. 행여 파리에라도 가버렸나 했다구."
  코헨씨가 굵직한 시가에 라이터 불을 붙여 물고 나서 말을 건넸다.
  "그동안 지독한 감기에 걸려서 고생 좀 했어요."
  나는 그에게 다가가서 들고 온 유화 세 점을 계산대 위에 올려놓았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내 작품을 이런 식으로 파는 거였다. 언젠가 열 내 개인 전시회를 위해 한 점 한 점 혼신을 다해 그려온 그림을, 당장 돈이 궁해서 이곳에 들고 올 적마다 혈액은 행에 피를 뽑아 파는 것 같은 비참한 심정이 되곤 했다.
  내 그림들을 유심히 들여다 보던 코헨씨가 물었다.
  "얼마를 원해?"
  나는 얼른 대답을 못하고 양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내가 주워 배운, 잘 모르겠다는 미국식 제스츄어였다. 나야 돈을 많이 받을수록 좋지만, 얼마라고 내가 내 작품에 가격을 매기기가 영 어색해서였다. 나는 솔직히 순수한 예술품을 돈으로 거래한다는 그 자체에 식상한 녀석이었다. 코헨씨가 금고를 열더니 얼마간의 현금을 세어 내 앞에 내놓았다.
  "세 점 다 놓고 가. 사백달러야. 괜찮지?"
  그가 큰 선심을 쓴다는 어조로 거만스럽게 말했다. 내 손이 금방 그리로 가지 않은 건 조금 전에 이 갤러리로 들어서려다 유리 진열장 안에 전시해 놓은 내 그림 한 점에 칠백오십 달러라는 가격이 붙어있는 걸 보았기 때문이었다. 지난번에 그는 그 그림 값으로 내게 고작 백달러도 안 되는 돈을 지불했었다.나는 늘 아직도 계산대 위에 놓여있는 내 그림 세 정을 도로 싸들고 그곳을 뛰쳐나오고 싶은 걸 꾹 참고 허겁지겁 그 더러운 지폐를 집어서 내 잠바 호주머니 깊숙이 쑤셔 넣었다.
  '사백달러면 우선 밀린 한 달치 아파트비 해결은 될테니깐' 하는 자위와 함께.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무거운 그림 세 점을 끌고 거의 한 시간이나 걸려서 온 길을 되돌아 갈 것을 생각하니 까마득하기도 해서였다.
  "땡큐, 미스트 코헨."
  나는 겉치레나마 그에게 감사의 표시를 하는 것을 잊지 않고 돌아섰다.
  "이봐. 경수 잘은 몰라도 자네 그림엔 뭔가가 있어. 그걸 내가 알아. 그렇지만 앞으로는 이런 추상적이고 난해한 그림 말고 대중이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그림, 말하자면 고객이 거금을 턱 내놓고 사다가 거실이나 로비메 걸어놓고 싶어 할 그런 그링을 그려 오라구. 거 왜 요즘도 정물화나 풍경화 같은 게 주로 잘 나가거든."
  나는 문간까지 따라 나오며 떠벌리는 그의 개기름이 번지르르한 면상을 한 대 갈겨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에게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지만, ‘당신은 내게 매음을 하라고 추근대는 포주나 가난한 화가의 고혈을 빨아먹고 사는 기생충같은 놈이요’하고 속으로 칵 욕을 해주었다. <엑셀시오>를 나와 오던 길을 되들아 오면서 나는 갑자기 몹시도 울적하고 허탈해졌다. 춘삼월이라고는 하지만 괴물처럼 거대한 이 도시엔 봄기운이라고는 찾아 볼래야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어쩌면 금년에는 봄이 영영 찾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조차 들었다. 나는 지하철을 타려다가 때마침 바스 스톱싸인 앞에 정차한 브루클린 쪽으로 가는 시내버스에 올랐다. 다시 그 음침한 지하도 속으로 들어가 땅속을 달리는 것보다는 그 편이 훨씬 나을 것 같아서였다. 나를 태운 버스가 센츄럴 공원 잎을 지날 때. 긴 담장 너머로 물이 오르는 연두빛 나뭇가지들을 보았다. 최소한 그곳에 만은 여린 봄기운이 숨어 들 수 있었나보다.
  다시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는 오한을 느끼며 버스에서 내리기가 무섭게 서둘러 내 아파트로 돌아왔다. 냄새고 뭐고. 나는 층계를 올라오는 데도 숨이 차서 헐떡거렸다. 천리길이라도 달려 온 양 몹시 피곤했고 온몸에 진땀이 부쩍 솟았다. 나는 그 길로 곧장 침대로 다가가서 고꾸라질 듯이 털썩 누웠다.
  얼마를 잤을까. 나는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방안은 어느 새 초저녁의 짙푸른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누굴까? 목이 탔다. 오랫동안 눈밭에 쓰러져 있었던 것처럼 추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온몸이 사시나무 떨리듯이 덜덜 떨려왔다. 나는 간신히 휘청대며 문 앞으로 다가갔다
  "후 이즈 잇?”
  나는 문 밖에 선 작자가 아래 층의 이발사 톰일 거라고 짐작했다. 녀석은 툭하면 뭘 빌려 달라거나, 잔돈을 꾸기 위해 내 아파트 문을 두드리곤 했다. 그러나 뜻 밖에도 문 밖에서 들려온 음성은 귀에 익은 인희의 것이었다.
  "선생님, 저예요. 인희예요."
  오늘이 벌써 수요일이 아닌 것만은 확실한데 오후 2시도 아닌 저녁 때 이렇게 불쑥 인희가 나타난 건 뜻 밖이었다. 하기사 전화도 못 놓고 사는 그녀가 미리 연락을 취할 수도 없었겠지만.
  "왠 일이야, 인희?"
 잠긴 문을 열어주며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제임스가 서울로 출장을 갔어요. 선생님 드리려고 갈비 좀 재우고 맛있는 총각김치랑 마늘장아찌 좀 가져왔어요. 아유, 방안이 왜 이렇게 어두워?"
  아파트 안으로 성큼 들어서면서 벽의 스위치를 눌러 불을 켠 인희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어머, 선생님 많이 편찮으신가 봐요."
  그녀는 들고 온 누런 봉투를 얼른 내려놓더니 내 이마부터 짚어 보았다. 그녀의 손은 상쾌하리만치 차가웠다.
  "어머머, 열이 대단하네요. 불덩어리 같아. 안되겠어요. 선생님 이러시다간 큰일 나겠어요. 당장 병원으로 가요. 제가 모시고 갈게요."
  인희는 다짜고짜 내 코트를 찾아 입혀주며 서둘렀다.
  “아니야. 병원에 갈 필요없다구. 타이레놀 두 알만 먹으면 금방 열이 내릴텐데 뭘 그래."
  나는 내게 의료보험이 없는 것을 안중에 두고 한사코 버티었지만 인희는 막무가내로 나를 자기 차에 태워서 인근의 병원으로 갔다.
 
·  “미스터 김. HIV 바이러스 검사 결과가 양성으로 나완군요.”
  병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내 담당의사인 닥터 스미스가 침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무슨 뜻이죠?”
  나는 입술께로 흘러내린 산소비강카테터를 고쳐 끼우며 물었다.
  “혈액검사를 해보니 불행하게도 당신이 에이즈에 감염이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거짓말!"
  나는 용수철에라도 튕겨나듯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어요, 닥터 스미스. 제가 전에도 말씀드렸잖아요. 난 한 번도 마약주사를 맞아 본 적도 없고 동성연애도 해본 적이 없다구요. 나는 난잡한 성관계와도 거리가 먼 사람이요."
  내 말을 묵묵히 듣고서도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미스터 김의 차트를 보니까 1984년도에 수혈을 받은 적이 있다고 기록이 되어 있더근요."
  "그래서요? 그게 그것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입니까? 그때, 내가 펜스테이션 근처에서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병읜 측에서 피를 너무 많이 흘렸으니 수혈을 받아야 된다고 해서 따른 것 뿐인데요?"
  "내 생각엔 에이즈 환자 중에는 드문 케이스이긴 하지만 미스터 김이 그때 수혈을 통해서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된 게 아닌가 싶군요. 1985턴 3월 이전에 수혈을 받은 사람에게는 그럴 가능성이 있거든요."
  이게 무슨 청천의 날벼락같은 소리 인가!
  "아니, 세상에… 병원에서 어떻게 에이즈 균에 오염이 된 혈액을 환자에게 버젓이 수혈을 해 줄 수가 있었단 말이요?”
  흥분에 겨워 격해진 내 음성의 끝이 갈라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에이즈는 잘 알려지지도 않았던 때라서, 혈액은행에서 채혈된 혈액준비 과정에 HIV바이러스 스크린 이라는 게 없었지요. 그 바이러스에 일단 감염이 된 후에 발병증상이 나타날 땐까지는 미스터 김의 경우처럼 몇 년이 걸릴 수가 있어요. 잠복기간이 기니까요. ·그러니까 앞으로 지금은 멀쩡한 사람들 중에서도 더 많은 에이즈환자가 보고될 거란 얘기지요."
  그는 얄밉도록 침착하게 말을 할 줄 알았다. 아, 아, 믿을 수 없는 무서운 일이 내 앞에 벌어지고 있었다.
  문득 에이즈에 걸려서 죽은 사람들의 사진으로 가득 채워져 일던 뉴스위크지가 생각이 났다. 그 속에 내 사진이 끼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할 수가 없었다. 멍하니 넋을 잃고 앉아있는 내가 안돼 보였던지 닥터 스미스는 내 등을 툭툭 두드려 주며 말했다.
  "미스터 김, 의학연구 보고서에 의하면 현재로는 AZT라는 새로 개발된 약이 최소한 에이즈 병세를 지연시킬 수 있다고 하니, 그걸 투약해 보기로 합시다."
  이렇게 말한 후에 그는 병실을 나갔다. 내게 뜻하지 않은 죽음의 전갈을 가지고 왔던 그가 내 눈 앞에서 사라지고 나자, 불현듯 내가 몹쓸 꿈을 꾸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그러나 그것이 꿈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얼마 후에 간호사가 노란 일회용 덧가운을 입고 마스크와 고무장갑까지 착용하고 들어오더니 내게 AZT라는 캡슐이 든 종이 약컵을 내밀었다. 그것을 계기로 병원직원들은 필히 용무가 있을 때만 방역 뭍품으로 중무장을 하고 내 병실에 잠시 들어왔다가는 볼 일을 마치기가 무섭게 후딱 나가 버렸다.
  그들조차 나를 오염된 짐승인 양 접촉하기를 꺼려한다고 생각하니 견딜 수 없이 서글퍼졌다. 며칠 전에 인희의 성화에 못이겨 응급실로 들어섰을 때만 해도 나는 진찰이나 받고 감기약 처방이나 들고 그 길로 집에 가리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랬던 것이 의사가 급성 폐렴이니 일단 입원을 해야 한다고 해서 인희가 나를 입원시켜 버렸다. 시간에 맞추어 내 몸에 투약이 되는 온갖 항생제에도 불구하고, 입원한 지 며칠이 지나도록 폐렴증세가 호전이 되기는커녕 임파선이 부어 가래톳이 서고, 매일 체온이 화씨 102도를 오르내리며 호흡이 점점 가빠졌다. 그래도 나는 곧 나으리라고 믿고 있었는데, 내가 에이즈에 걸려 죽어가고 있다니, 도무지 믿기어지지가 않았다. 이상하게도 나는 이 세상 사람들이 다 죽어 없어져도 나에게 만큼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거나, 내가 늙어 죽을 날은 까마득하게 먼 훗날에나 있을 거로 여기고 있던 참이었다. 이 병원에 입원한 이후로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를 찾아와 시중을 들어주고 말동무가 되어주던 인희는 오늘따라 저녁 식사시간이 다 되도록 나타나지를 않았다. 나는 간호 보조원이 덜렁 들여다 놓고 가버린 저녁음식에 손을 댈 생각도 않고 점점 어두워지는 병실에 혼자 누워 있었다. 풀무처럼 쌕쌕거리는 가뿐 숨소리가 아직 내가 살아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데도, 나는 좌초된 배가 서서히 심연으로 가라앉듯이 그대로 깊고 어두운 죽음의 늪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그러자 갑자기 억울하다는 생각이 울컥 치밀었다. 잘못한 것도 없는 내가 장가도 못가보고 이 젊은 나이에 죽어야 한다니, 원통하기 그지 없었다. 그것도 불의의 사고나 암에 걸려서도 아니고 에이즈라는 치욕스러운 병명을 달고 죽게 되다니 ‥‥나는 솟구치는 분노를 이기지 못해 '왜 하필이면 나냐’고 애꿎은 나를 점찍은 운명의 신에게 대들고 싶었다. 내 생명을 죽음의 올가미에서 구해줄 수 있는 신(神)이 있다면 그가 예수님이든지 부처님이든지, 알라신이거나 하다못해 성황당의 신령림이래도 좋았다. 그 신이 하라는 것은 뭐든지 할 것이다. 나는 세상 사람들이 믿는 모든 신들을 향해 울부짖었다. '살고 싶다고, 제발 살려 달라고.' 그러나.… ·내 귓가에 들려오는 것은 서서히 내게로 다가오고 있는 끔찍한 죽음의 발자국 소리 뿐이었다. 나는 울 수조차 없었다.
  갑자기 눈이 부셨다. 환하게 쏟아지는 형광등 불빛 아래 빨갛고 노란 튜울립 꽃 한 다발과 우편뭉치를 가슴에 안은 인희가 서있었다. 그녀는 내 병실 밖에 나붙은 격리환자에 관한 병원 규칙을 무시하고 노란 덧가운 뿐이 아니라 마스크, 고무장갑도 끼지 앉은 채였다.
  “오는 길에 선생님 아파트에 들러서 그동안 쌓인 우편물들을 가져 왔어요."
  그녀는 내 앞에 고무줄로 묶은 우편물과 잣죽이 든 찬합을 내려놓았다. 태연하게 행동하려고 애쓰는 그녀의 갸름한 얼굴이 해쓱하게 질려 있었다. 나는 그녀가 이미 내게 에이즈 진단이 내려진 것을 병실로 들
어 오는 길에 간호사에게 물어서 알고 있으리라고 직감했다. 이 병동의 의사나 간호사들은 모두 인희를 내 아내인 줄로 아는 눈치였다.
  "인희, 나가서 가운이랑 마스크하고 고무장갑 끼고 들어와. 안 그러면 당장 여길 나가던가."
  나는 화난 음성을 내며 명령조로 말했다
  "싫어요, 선생님."
  인희는 그제서야 의자에 폭삭 주저앉으며 양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내일부터는 여길 오지마."
  나는 대답대신 인희의 흐느낌을 들었다. 애써 태연을 가장하느라고 안중에도 없는 우편물을 들척이던 나는 두툼한 한공봉투를 밭견하고는 흠칫 놀랐다. 발신인은 파리의 르네 말뀌드였다. 서둘러 겉봉을 뜯고
서투fms 영어로 쓰인 르네의 펀지를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클클클 웃음이 나왔다. 나는 내 웃음소리를 듣고 어리둥절해 하는 인희에게 편지 내용을 말했다.
  "르네가 보관하괴 있던 내 그림을 금년도 파리 미술대전에 출품을 했고, 그 작룸이 입상을 했다고 해, 그리고 이제는 입상 상금만으로도 내가 마음 놓고 파리에 와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대. 그러니 속히 오라는 거야."
  나는 르네의 편지와 동봉된 파리행 한공티켓을 인희에게 던져주고는 미친 듯이 껄껄대고 웃어댔다. 이건 사람을 웃겨도 보통 웃기는 게 아니었다. 다 죽게 된 녀석에게도 짓궂은 운명의 신은 유모어를 던지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잦아들던 내 웃음소리는 어느 새 가슴이 미어질 듯안 오열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나는 인희가 거기 우두커니 서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엉엉 소리를 내어 울었다. 그것은, 내 자신의 죽음을 애도하는 비장한 통곡이었다.

  며칠이 지났다. 나는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었다. 이제 나의 죽음은 움직일 수 없는 기정사실일 뿐이었다.
  "인희."
  나는 사랑스러운 그녀의 이름을 가만히 불러 보았다.
  "네. 선생님."
  온 종일 내 침상가를 지키고 앉았던 인희가 내 앙상한 손을 꼬옥 잡아 주었다. 참으로 따스하고 보드라운 손이었다.
  "인희, 그동안 너무 고마왔어. 나 때문에 수고랑. 고생이 많았지? 미안해 ‥‥이것도 다 우리가 전생에 무슨 인연이 있어서일까?"
  그녀는 말없이 미소만 살포시 지었다.
  "나 죽으면 내가 그리다 만 (선녀 와상)은 인희가 원하면 가져도 돼. 조금만 더 손을 보면 완성이 될텐데 ‥‥그리고 내 작업실의 유화들은 맨하탄에 일는 <엑셀시오> 갤러리에 가져가면 얼마쯤 돈이 될 거야. 그걸로 내 병원비나 될 수 있을지‥‥‥‥‥.”
  나는 숨이 가빠서 헐떡거렸다.
  "인희 나를 화장시켜 줄 수 있을까? 고작 해 봤자 한 줌의 재밖에 안되겠지. 그걸 롱아이랜드 비치에 가지고 가서 바닷물에 후욱 뿌려 주었으면 좋겠는데… 그러면 나는 오대양의 물이 되어 세계 곳곳의 기슭을 만져 볼 수가 있겠지 ‥‥고국에도 가고, 파리에도, 그리고 화가 고갱이 살았던 타히티 섬에도‥‥‥‥.”
  나는 어느 새 내가 횡설수설하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눈치챘다. 때마침 환자 방문 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방송이 병원 내에 울려 퍼졌다.
  "선생님, 너무 피곤해 보이시네요. 한잠 푹 주무세요. 내일 또 올게요."
  양 뺨을 타고 줄줄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치며 일어선 인희가 내 베개와 침구를 만져주고 돌아갔다. 나는 왜 그런지 다시는 그녀를 보지 못할 거라는 예감에 슬퍼졌다.
  "불을 끌까요?"
  밤 당번 간호사가 물었다.
  "아뇨, 그냥 켜 두세요."
  가뿐 숨을 몰아쉬며 내가 말했다. 나는 오늘 밤 나를 찾아올 것만 같은 죽음의 사자를 밝은 불빛 아래 똑똑히 보고 싶었다.
  간호사가 조용히 병실 문을 닫고 나갔다. 나는 먼 길을 떠날 채비를 마쳤다. 더 이상 부당하고 오만한 운명의 신과 어떠한 흥정도 애걸도 하고 싶지가 않았다.
  체념. 그것은 한편으로는 인간인 나의 승리이기도 했다. 흐물흐물 녹아내리듯 혼미해지는 의식 속에서 나는 보았다. 내 눈앞에 흘연히 펼쳐져 있는 커다란 공백의 화폭을. 나는 소스라칠 듯이 놀라서. 지지 내리 감기는 두 눈을 크게 치켜떴다. 그러자 그것은 금세 네가 누워있는 병실의 하얀 벽이었다가는. 다시 화폭으로 변했다. 나는 갑자기 먼 길을 떠나기 전에 저 거대한 화폭 위에 마지막으로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무엇을 그릴까? 그리고 싶은 소재는 무던히도 많은데 떠날 시간이 임박해졌으므로 안타까워졌다 고심하던 차에 불현듯 역설적인 상념이 고여 들었다.
  '무(無)는 곧 유(有)이다' 라는…….
  그렇다1 존재하지 않는 것은 무한한 존재의 가능성일 수가 있다. 그렇다면, 아무 것도 그려져 있지 앉은 저 화폭은 생각하기에 따라서 시시각각으로 다르게, 내면의 안목으로 바라볼 수 있는 무수한 그림일 수가 있다. 거기에 생각이 이르자, 내 가슴 속은 안도의 기쁨으로 차올랐다.
  나는 자꾸만 내리 감기는 눈을 크게 뜨고 내 앞에 놓인 거대한 화폭을 다시 한 번 바라보고는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그것은 서른다섯 살의 나이로 이 세상을 떠나는 내가 남기는 내 일생일대의 걸작- 하얀 공백의 화폭이었다.(*)


* 안설희 : 1955년 강원도 강릉 출생. 1990년 <워싱통문학상> 소설부문 수상. 1991년 <한국일보> 뉴욕 공모 소설부문 수상. 2000년 <자유문학>(한국) 추천으로 등단. 주요작품은 <옥수수밭 이야기>, <아버지의 눈>, <나일강의 꿈>, <귀향>, <킬리만자로> 등 다수. 현재 워싱톤문인회 회원, 워싱톤 문예창작원 강사(소설 부문)

 

 

 

 

 

푸른 나신―소 정 화(미국)

 

날짜 : 07-08-05 04:57     조회 : 754   

 

 

내 차 앞바퀴에 무언가 작은 물체와 부딪히는 반동의 충격을 느끼는 순간 나는 불길한 예감에 휩싸여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하필이면 내 차를 향해 고놈의 다람쥐가 뛰어들게 뭐람! 오늘 아침은 평소와 달리 차들이 많지 않았다. 탁 트인 시야에 미니 밴 한 대만이 내 차 뒤를 바짝 따라오고 있을 뿐이었다. 정말 그것은 순간이었다. 다람쥐 한 마리가 길을 가로질러 달음질치다가 차 엔진 소리에 놀랐던지 갑자기 방향을 바꾸어 왔던 길을 되돌아 간 것이 작은 생명 하나를 짓밟게 만든 것이다.
  “민창현씨 엊저녁에 죽었어.”
  약국에 들어서자마자 보조원 미쉘이 다가와 나직이 남기고 간 말 한마디. 나는 갑자기 시력이 흐려지면서 다리의 힘이 쭉 빠져 자칫 발을 헛디딜 뻔하였다.
 
  창현이가 재 입원된 지 3개월은 족히 되었으리라. 그날도 새로 입원된 환자들의 처방약을 컴퓨터에 입력하다가 낯익은 이름을 발견했었다. 민창현, 일년 전 통역을 해 준 것이 계기가 되어 나는 그와 몇 차례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창현의 처방약 중에 산도스테틴과 TPN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음식을 먹을 수 없는 중환자임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산도스테틴은 암환자나 췌장염환자에게 아픔을 경감시키고 장출혈을 멈추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주사제이고, TPN은 음식을 먹을 수 없는 환자를 위해서 각종 영양소를 혼합해서 만들어진 주사용 영양수액이다.
  창현이가 입원해 있는 S병동은 중환자들만 수용하는 병동으로 그에게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직감했다. 나는 자초지종을 알아보기 위해 서둘러 S병동으로 향했다.
  S병동은 몇 년 전에 새로 지은 유리가 많은 초현대식 건물의 삼층에 위치해 있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면 S병동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고, 들어가자마자 정면에는 삼면이 유리로 막혀진 간호실이 있었다. 간호실 왼쪽에 있는 휴게실에서 한 간호사가 이동식 약장 앞에서 환자들에게 약을 투약하고 있었다. 몇몇 환자들은 휠체어에 앉아 자기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거나 초점 잃은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백발이 제멋대로 헝클어진 유령같은 한 백인 할머니가 괴성을 지르고, 그 소리사이로 낯익은 창현이의 얼굴이 보였다. 그의 모습은 초라하게 일그러져 있었고, 귀공자 같던 흰 얼굴은 어느새 검푸르게 변해 있었다. 한국 사람치고는 유난히 건장하다고 느꼈던 어깨선도 볼품없이 줄어 있었다. 그는 고통이 심한지 양미간을 잔뜩 찡그리고 배를 움켜잡고 있었다. 이미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검푸른 얼굴 색깔 만이 아팠던 그의 마음을 대신하고 있었다.
  안면이 있는 간호사 카말라가 간호실 안에서 무엇인가 열심히 쓰고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초등학교 다닐 때 창경원에 갔던 기억이 순간 머리 속을 스쳐간다.
  카말라가 동물원 철장 안에 갇힌 침팬지 같다. 가무잡잡한 얼굴에 유난히 새까만 머리 색깔을 가진 그녀가 언젠가 자기는 필리핀에서 왔다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나는 민창현의 차트를 좀 보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특유의 눈웃음을 지으며 선뜻 차트를 내 눈앞에 내밀었다. 차트를 열자마자 눈에 뜨인 것은 자살기도라는 글자였다. 환자의 신상 보고서에는 환청, 조울증 등 환자의 정신질환에 대한 기록이 있었고, 이어서 투약하고 있는 약 명세서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제니! 나 요즘 뷰티케이라는 화장품 회사에서 판매원으로 일하고 있거든, 필요한 것 있으면 연락해, 20% 감해 줄게.”
  그녀가 내 손에 명함과 함께 쥐어준 뷰티케이의 주홍색 립스틱 선전 용지가 장미꽃 향기를 뿜으며 유혹하고 있었다. 그제야 나는 그녀가 눈웃음까지 웃으며 친절을 베풀었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내가 그녀에게 전화를 건 것은 저녁 8시가 훨씬 지난 시간이었다. 환자의 개인 신상에 관한 노출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환자에 대한 자세한 상황을 물어볼 수 없었다는 나의 설명에 그녀는 별 거부감 없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 환자는 면도날로 복부를 수도 없이 난자하여 창자가 다 나온 상태에서 대학병원에 입원했다가 이곳으로 보내졌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 지경까지 이르게 두었단 말인가! 딱히 누구에게 라고 말할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 가슴이 억죄어와 심장의 고동이 멈출 것 같은 아픔이 내 가슴을 짓눌렀다. 친절한 그녀의 설명에 나는 잠시나마 그녀를 동물원 침팬지처럼 보았던 것을 후회했다.
 
  내가 창현이를 처음 만나게 된 것은 한국어 통역이 필요하다는 병원 측의 요청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근무하는 곳은 정신병원으로 약사들이 의사나 간호사를 접촉할 기회는 많으나 환자를 만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가끔 Kim이라든지, Lee와 같은 한국 성씨를 가진 환자가 들어오면 궁금해 하면서 환자의 약을 지어 보내는 것이 고작이었다. 나는 약속된 시간에 맞추어 B병동으로 갔다.
  3월인데도 여전히 밖의 온도는 쌀쌀했다. 군데군데 쑥버무리처럼 푸슬푸슬 얼룩진 눈더미들이 아직도 질척하게 널려 있었다. 육중한 돌로 지어진 백년도 넘은 듯 한 B병동은 음울하고 스산했다. 건물 앞에는 퇴색된 회갈색 긴 나무의자가 놓여있고 그 옆을 회색 운동복 차림의 중년은 훨씬 넘은 환자가 시계추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가끔 밖을 거닐고있는 환자와 마주치면 담배 한 가치 있느냐, 또는 동전 25전만 달라는 등의 말을 걸어왔다. 나는 그런 경우를 피하려고 빠른 걸음으로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하이 제니.”
  발음이 어려워 한국 이름을 잘 부르지 못하는 그들 사이에서 나는 제니라고 불려졌다. 안면이 있는 간호보조원 야보로가 나를 휴게실로 안내했다. 오른쪽은 색 바랜 담황색 얼룩무늬의 커튼 사이로 파아란 하늘 조각이 걸려있고 맞은편 흰 벽에는 대 여섯 점의 피카소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유화가 걸려있었다.
  휴게실 중앙에 있는 둥근 책상을 둘러싸고 정신과 의사 닥터 허츠와 소셜워커 메지드, 그리고 간호사 하리엣이 이미 와서 무슨 말인가를 주고받다가 모두 일어나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닥터 허츠는 은회색 양복을 입고 있었는데 백발에 가까운 그의 흰머리와 잘 어울렸다. 간호사 하리엣은 북청색 바탕에 커다란 붉은 색 장미꽃 무늬가 군데군데 있는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그녀의 큰 엉덩이의 선이 실룩거렸고 울긋불긋 현란한 옷차림이 그녀의 비대한 거구를 더 두드러지게 만들고 있었다. 수년 전에 정신병 환자들이 흰 가운을 보면 두려워한다는 논문이 발표되면서 흰 가운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아예 아무도 입지 않는다.
  “이렇게 와 주어서 고맙습니다. 환자와 그 가족을 만나기 전에 통역해 주셔야할 내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렇게 서두를 꺼낸 닥터 허츠는 환자의 퇴원 문제를 놓고 가족의 의향을 알고 싶다고 했다. 이 환자는 우울증을 수반한 정신분열증(Schizoeffective) 환자로서 지금은 상태가 아주 좋아졌기 때문에 퇴원을 시키려고 하며, 가족 의사에 따라서 집으로 퇴원시킬 수도 있고, 그릅홈으로 퇴원시킬 수도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릅홈이란 면허를 가진 사람에 의하여 5-6명의 환자를 일반 주택에서 돌볼 수 있게 만들어진 조직이다.
  가족들을 불러오라는 지시에 따라 간호사 하리엣이 노부부와 환자를 데리고 왔다.
  ‘어디서 뵈었을까?’ 노신사의 모습은 생소한데 노부인의 얼굴은 무척 낯이 익었다.
  “의사 선생님께서 아드님을 퇴원시키려고 하는데 그 방법을 의논하고 싶다고 하세요”
  그리고 가족이 돌보기 어려우면 그릅홈에 보낼 수도 있다는 것을 덧붙이면서도 머리 속은 줄곧 그 노부인의 기억을 더듬고 있었다.
  “창현이는 제 막내아들이에요. 스물여섯 살이나 되었는데도 이직 사람 구실을 못하고 있어요. 내가 얘 때문에 심장병에 걸려 심장수술까지 받았어요. 우리아이 초등학교 때 이민 왔는데, 이곳 생활에 잘 적응을 못해 막 길로 뛰어나가고, 결국은 교통사고까지 났었지요. 그 때 다친 팔 때문에 지금도 아파서 저렇게 고생하고 있어요.”
  젊었을 때는 꽤 예뻤을 것 같은, 주름은 많지만 아직도 해맑은 피부를 가진 노부인은 아들의 아픈 팔이 그의 마음까지도 병들게 만들었다는 듯이 눈물까지 글썽이며 두서없이 늘어놓는다. 지금은 몸이 비대해 옛날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지만, 매끈한 이마와 유난히 희었던 살결은 고왔던 옛 모습이 아직도 남아있어, 그때 그 공연장에서 마주쳤던 새댁임을 쉽게 기억할 수 있었다. 언제였던가, 이민 초기시절 친구와 함께 간 한 공연장에서였다. 나는 두세 줄 떨어진 앞자리의 여인이 연속 뒤돌아보고 있음을 느꼈다. 그 여인 오른 편에는 남편인 듯 한 남자가 앉아있었고, 왼 편에는 초등학교 사오 학년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와 초등학교 일 학년 정도 되는 사내아이가 동석하고 있었다. 내가 중학교 다닐 때 문간방에 세 들어 살았던 배가 남산만큼 불렀던 그 새댁임을 기억해 내는 데는 쇼가 시작하고도 한참이나 지난 후였다. 내가 그녀를 뚜렷하게 기억했던 것은 눈썹 바로 위에 있었던 유난히 큰 검은 점이었다. 나는 그녀가 돌아 볼 때마다 그 새댁임을 확인하기 위해 점을 찾아보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2시간이 넘게 진행되었던 쇼가 끝나자, 내가 잘못 보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관객들에게 밀리며 출구를 향해 나오고 있었다.
  “흑석동 아가씨 아니세요?”
  그녀가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먼저 말을 걸어왔다.
  “아주머니? 어머머---! 나는 눈썹 위에 점이 안보여 아닌가했어요.”
  “너무 커서 보기 싫어 떼 버렸죠.”
  밀고 밀리는 관객들 속을 빠져 나오면서 우리는 겨우 전화번호만 주고받고 헤어졌다. 한 달쯤 후에 그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알고 보니 그녀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별로 멀지 않았다. 그녀와 대화하는 동안 그녀가 일년 전에 미국에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미국에 오자마자 친구의 도움으로 장사를 시작했는데, 매달 수 천불씩 적자를 내 한국서 가져온 돈 다 날리고서야 할 수없이 사업체를 정리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제는 두 사람 다 무슨 일이든 해야 하는데 학교에서 너무 일찍 돌아오는 막내를 보아주었으면 좋겠다는 얘기였다. 나는 그 당시 미국 약학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실습시간이 있는 이틀 동안을 제외하면 3일은 가능할 것 같았다. 3일만 와주어도 도움이 된다는 그녀의 간곡한 부탁을 뿌리칠 수 없어 그리하기로 했다. 막내 이름은 현이었다. 아이는 아주 조용했다. 그림을 그리거나 장난감 몇 개만 가지고도 몇 시간을 혼자 잘 놀았다. 나는 우선 내 공부가 바빴기 때문에 현이의 조용함을 무척 다행스럽게 여겼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현이는 그날따라 기운이 없어 보였다. 나는 늘 하듯이 아이에게 알파벳 쓰기를 시키고, 그 다음날 있을 시험공부에 온 정신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아이가 너무 조용하다는 생각이 들자 아이에게로 가까이 갔다. 알파벳 쓰기 숙제는 하다 만 채 아이는 잠이 들어 있었다. 똑바로 뉘려고 아이를 안는 순간 아이의 몸이 불덩이 같이 쩔쩔 끓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때 나는 정신없이 현이를 들쳐 업고 응급실까지 데리고 가서 치료를 받게 했었는데, 그런 일이 있은 후부터 현이는 나를 무척 따랐다. 인턴과정을 시작하면서 바빠진 나는 더 이상 현이를 돌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는 서로의 연락이 두절된 채 우리는 만나지 못했다.
  “저 기억나세요? 흑석동에 살던---.”
  “이게 누구시더라, 아이구 내가 아가씨를 못 알아 봤네.”
  노부인은 반가워하면서도 어딘가 난처해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아니, 얘가 현이에요?”
  마치 노부부와 나눈 대화를 읽어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같이, 심장까지 꿰뚫을 것 같은 닥터 허츠의 연 초록색 눈빛이 한낮에 내려 쬐는 따가운 땡볕처럼 느껴졌을 때에야, 나는 놀란 눈으로 노부인 옆자리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창현이를 주시하며 다음 말을 이었다.
  “집으로 퇴원시킬 경우에는 아드님을 돌볼 가족이 있어야 되나 봐요.”
  “제가 있지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옆에 있던 노신사가 부인의 말을 가로챘다.
  “저의 집사람이 심장 수술을 받았기 때문에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거든요. 만일 그런 경우엔 우리 창현이를 다시 이곳으로 보낼 수 있습니까?”
  돌 볼 가족이 없다고 입원될 수는 없지만 환자의 상태가 나빠지면 다시 입원할 수 있다고 노신사의 물음에 답변해 주는 닥터 허츠의 양미간에 어두운 그림자가 스쳐갔다. 순간, 나는 창현이가 왜 이렇게까지 되었는지 궁금해졌다. 학교로부터의 소외감, 가족들의 이해부족, 결핍된 사랑, 그리고 그로 인한 고독, 이런 것들이 뒤범벅이 되어 나타난 결과라고 할까. 히죽히죽 흐느끼듯 간헐적으로 흘러나오는 허탈한 웃음만이 그의 고통을 대신할 뿐, 환자의 얼굴에서는 전혀 고통이나 아픔을 엿볼 수 없었다. 가족과의 대화 중에서 먼저 알아챈 것은 환자의 어눌한 한국말이었다. 환자의 부모는 내가 지금 한국말로 통역을 해 주고 있는 것도 올바른 대답을 못하고 동문서답을 하고 있는데, 아들과 충분한 대화를 나누었을 리가 없다. 유성이 새까만 허공을 가르며 떨어진 어느 지점의 만남처럼 이것도 인연이리라.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가슴 한 구석에 애잔한 아픔이 물안개처럼 밀려왔다. 
 
  창현이의 죽음을 알렸던 미쉘은 굳어진 내 표정과는 무관하게 묵묵히 제자리로 돌아가 처방 약을 컴퓨터에 입력하고 있었다. 함께 일하는 다른 약사들도 자기 일에 각자 몰두하고 있었다. 나도 동료들처럼 컴퓨터에 입력된 약을 점검하고 있었지만 창현의 얼굴이 어른거려 도무지 정신을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가 두서없이 쏟아 놓았던 말들이 벌집을 건드렸을 때 터져 나오는 벌떼들의 아우성처럼 내 귓전을 때렸다.
  창현이 퇴원하기 일주일쯤 전이였던가? 지루한 오후의 탁한 공기를 벗어나고 싶어 잠시 밖으로 나와 천천히 걷고 있을 때였다. 반가운 목소리에 돌아보니 창현이 손을 흔들며 나를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제니씨! 화성에서 무전을 또 보내 왔어요. 화성이 곧 지구를 쳐들어 온다구요. 그런데 내 말을 아무도 안 믿어요. 제니씨만은 제 말을 믿어 줄 것 같아요.”
  환청에 시달리고 있는 창현이가 안쓰러웠다. 병원에 들어온 뒤로 서서히 줄어들었는데, 그래도 가끔 이렇게 전문을 받는다고 했다. 그는 내가 어릴 때 돌보아 주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나에게 기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것저것 물어볼 때마다 그는 주저함 없이 어린 시절의 얘기들을 고해바치듯 계속 풀어놓았다.
  그는 초등학교 때 개 목거리처럼 열쇠를 목에 달고 학교에 다녔다고 했고, 어느 날 선생님이 너의 집에 아무도 안 계시냐고 물어 보실 때는 대답을 못해 쩔쩔 맸었다고도 했다. 그는 그림을 그릴 때만이 마음이 편안해 진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매일 그림만 그렸다. 김포공항에서 본 큰 비행기도 그리고, 그가 떠나올 때 옆집에 주어버린 그토록 애지중지했던 바둑이를 화면 가득히 매일매일 그렸다고도 했다.
  “미국가면 똑 같은 강아지 사준다는 약속을 엄마는 까맣게 잊어 버리셨나 봐요.”
이렇게 말하는 그의 눈동자는 지금도 엄마를 원망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내가 그때 조금만 더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내 주었더라면 이렇게까지는 되지 않았을 것 같은 죄책감이 나를 괴롭혔다.
  “엄마한테 몹시 꾸중을 듣는 날은 학교에서 성적표가 보내오는 날이에요. 얼마나 공부를 못했으면 C나 D만 받았느냐며 엄마는 소리소리 치셨고 벌써 엄마 손에는 매가 들려 있었어요. 나는 무엇을 그렇게 많이 잘못했는지 모르면서 매 맞는 것이 무서워 머리를 조아리며 빌었어요. 엄마! C는 잘못한 것 아냐. C는 중간인데-----.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말은 목을 타고 넘어가 버렸어요.”
  어느 날 그를 슬프게 하는 중대한 일이 생겼다.
  아파트보다 훨씬 넓고 큰 단독 주택으로 이사를 하게 된 것이다. 온 가족이 모두 기뻐했지만 그는 기쁘지 않았다. 길 건너 편 아파트에 살던 에미를 볼 수 없는 것이 한없이 슬프기 때문이었다. 에미는 한 반 아이였다. 에미의 깊고 푸른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했다. 그녀의 금발 머리가 바람에 나부낄 땐 정말 예뻤다. 그래서 버스를 함께 타고, 함께 내리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12살이 되면서 버스 운전사나 선생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 불안하지는 않았지만, 집 뒤 빈 화분 속에 숨겨둔 열쇠를 찾아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 들어가는 것은 늘 무서웠다. 누나들은 대부분 집에 늦게 돌아왔다. 친구들이 차를 태워 주므로 쉽게 운동부에 들어가거나 연극반에 들어가서 특별활동을 했다. 그도 누나들처럼 운동이 하고 싶었지만 차 태워 줄 친구가 없어 하지 못했다. 특히, “라 크로스”가 하고 싶었다. 언제인가 같은 지역 사립학교 팀과 그가 다니는 공립학교 팀이 하는 “라 크로스” 시합에 응원 팀으로 참석한 일이 있었다. 라켓을 뺑뺑 돌리면서 공을 자기편으로 넘겨줄 때 얼마나 신이 났는지 모른다.
  어느 날 우연히 데이빗이라는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같은 버스를 타는 데이빗은 두 학년 위인 9학년 학생이었다. 데이빗이 내리고 나면 다음 장소는 그의 집이었다. 그 날은 데이빗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데이빗이 다정하게 자기 집에 놀러 오지 않겠느냐고 물어왔다. 부모님은 여행 중이라 집에 아무도 없다고 했다.
  그는 운전사 아저씨에게 데이빗과 함께 내리고 싶다고 말해 보았지만 한마디로 거절당했다. 집에 돌아와 그림을 그리려하나 머리 속은 데이빗이 한 말로 가득 차 있었다. 걸어서 데이빗 집이 얼마 안 되리라는 생각이 들어 그는 집을 나섰다. 15분 정도 걸으니 데이빗의 집 자색 현관문이 보였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누나들처럼 친구가 있다는 자부심이 그의 가슴을 뿌듯하게 만들었다. 도어 벨 소리에 데이빗이 고개를 내밀었다. 그런데 데이빗의 표정은 아까처럼 다정하지 않다. 데이빗은 아무 말 없이 문을 열어 주고는 컴퓨터 앞에 가서 앉는다. 그는 데이빗이 하고 있는 컴퓨터 게임을 신기하게 바라본다.
  “너 기분 좋게 해 줄까?”
  그는 막연한 기대와 함께 말 대신에 고개만 끄덕였다. 데이빗은 벌떡 일어나 지하실로 뛰어 내려가더니 말린 쑥 같은 것을 가지고 올라왔다. 그리고 말없이 그 일부를 하얀 종이에 말기 시작했다. 성냥을 그어댔다. 담배처럼 연기를 들여 마시는 것이 아니고, 빨고 내뱉었다. 그도 데이빗처럼 해 보았다. 연기에서 달콤한 향을 느꼈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몸이 두둥실 떠다니는 것 같았다.
  “너 누구한테 이야기하면 죽여 버린다.”
  데이빗의 으름장 놓는 소리를 뒤로하고 그는 달음박질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로, 그는 매일 데이빗 집으로 가는 것이 일과처럼 되었다. 집에 돌아오니 그 날은 엄마가 일찍 집에 들어와 계셨다. 그런데 엄마의 얼굴은 몹시 화가 나 있었다.
  “넌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마리화나를 피워? 어디 너 죽고 나 죽고 해보자. 일주일 정학에 일 년 근신, 잘 한다 잘 해.”
  변명할 틈도 없이 엄마는 소리소리 지르셨다. 그제야 데이빗과 함께 피웠던 쑥 말린 것이 마리화나였다는 것을 알았다.
  “아이고! 내 팔자야---, 너희들을 위해 고생한 보람도 없구나!, 으으으흐---, 너희들 때문에 낯선 곳에 와서 이 고생을 하는데---.”
  엄마의 울음 섞인 넋두리를 들으며 그는 방으로 올라와 침대에 벌렁 드러누워 버렸다. 정말 살고 싶지 않았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PSAT 시험 날짜도 며칠 남지 않았는데, 점수가 잘못 나오면 또 들어야 할 엄마의 넋두리가 지겹고 싫었다. 학교에서 온 편지대로 그 다음날부터 그는 학교에 가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집은 텅 비어 있었다. 그는 무작정 밖으로 나왔다. 데이빗 집을 향해 간다고 한 것이 데이빗 집 앞을 훨씬 지나 계속 걷고 있었다. 골목길을 벗어나니 큰길이 나왔다. 어느덧 봄이 성큼 다가와 진달래꽃이 만발한 집 앞을 지나갈 때였다. 갑자기 커다란 트럭이 무서운 속력으로 달려온다 생각했고 그리고는 기억이 없다. 창현이 깨어났을 때 그는 자신이 병실에 누워 있음을 알았다. 엄마는 곁에서 그의 손을 꼭 잡은 채 조용히 눈물만 흘리고 계셨다.
 
  그는 11학년이 되었다. 학교성적은 별로 좋지 않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SAT성적은 그런 대로 괜찮았다. 대학 진학상담 선생님으로부터 추천 받은 학교는 버팔로에 있는 로체스터 공과대학이었다. 버팔로는 뉴욕주 북쪽 나이아가라 호수 근처에 있는 도시이다. 컴퓨터나 기계공학에 중점을 둔 이 학교는 미술학과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에게 적합할 것 같다는 대학 진학 담당선생님의 의견을 존중하기로 한 것이다. 
  그는 예정대로 그 해 9월에 버팔로로 떠났다. 기숙사는 깨끗했으나 룸메이트와 둘이 쓰는 방은 무척 작았다. 룸메이트 에릭은 전공이 컴퓨터 학과라고 했다. 에릭은 학과 공부만 끝나면 낮잠을 자고, 컴퓨터 숙제로 종종 밤을 새우고는 했다. 에릭이 가끔 컴퓨터게임을 할 때 그는 구경을 하거나, 게임을 함께 하기도 했는데, 중학교 때 데이빗과 하던 게임과 거의 비슷했다. 여러 사람들이 각기 자기 컴퓨터에서 서로 얼굴도 보지 않은 채 하는 것만이 달랐다. 신기한 것은 그가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으면 세계가 좁아진다는 것이다. 캐나다에서, 홍콩에서, 또는 뉴욕에서, 어떤 때는 스피커를 통하여 서로 대화까지 나누면서 종횡으로 세계를 누비고 다닐 때는 세계가 손바닥에 있는 것같이 느껴졌다. 이렇게 몇 시간동안 컴퓨터 게임에 몰두한 날은 영락없이 화성으로부터 무전을 받았다. 지구를 쳐들어 올 새로운 무기의 도표를 그리라는 명령이었다. 그는 전령이 보내준 명령대로 도표를 그렸다. 그리고는 갖다 놓으라는 장소에 갖다 놓고는 다음 전령이 올 때까지 기다리곤 했다.
  그는 에릭의 잠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에릭이 자는 낮 시간에는 도서실에 가서 시간을 보냈다. 그림을 그릴 때도 있고 전령이 보낸 명령대로 새로운 무기의 도표를 그리기도 했다.
  그날도 그는 도서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금발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몸이 몹시도 가냘픈 한 여학생이 앞 테이블에서 무엇인가 열심히 쓰고 있었다. 그녀는 그와 눈이 마주치자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에미와 어쩌면 저렇게 닮았을까! 혹시 하고 이름을 물었더니 그녀 이름은 레벡카라고 했다. 그녀는 창작과 삼 학년 학생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온 종일 무엇인가 쓰고 있었구나!’ 그날 이후로 그는 가끔 그녀와 함께 점심도 먹고, 영화도 보러 갔다. 그녀는 자기가 쓰고 있는 작품 이야기도 들려주고, 그가 그리는 그림을 감상하기도 했다. 그가 화성에 보내고 있는 무기도표 얘기를 하면 그녀는 컴퓨터게임 같다며 깔깔거리곤 했다. 그렇게 그녀가 깔깔거리며 웃어 줄 때는 세상이 온통 보라 빛 라일락이 향기를 발할 때처럼 아름답게 느껴졌다.
  어느 날 갑자기 그녀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안절부절 온 종일 기다렸지만 그녀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재학생 명단에 있는 주소로 겨우 그녀가 살았던 집을 찾아갔지만 그녀가 이사 간지는 일 년이 다 되어간다고 했다. 그 후로 그는 매일 학과가 끝나면 창작과 건물에 가서 서성댔다. 언제인가는 그녀를 만나리라는 기대와 함께.
  그로부터 한 달쯤은 족히 지났으리라, 학과가 끝나자마자 그 날도 그는 창작과 건물을 향해 부지런히 걸어가고 있었다. 창작과 건물 앞 잔디 위에 그토록 찾아 헤매던 레벡카가 붉은 색깔의 곱슬머리를 가진 사내와 무언가 열심히 이야기를 하는 것이 보였다. 그는 너무 반가워 소리치며 그녀를 향해 달려갔다. 그녀에게 거의 가까이 갔을 때 붉은 머리 그 사내가 그녀를 낚아채듯 껴안는 것이 아닌가! 두 눈이 헷가닥 뒤집히는 순간 메고 있던 가방을 팽개치고 정신없이 뛰어가 붉은 머리의 면상을 친 것이다. 코피가 터지고 피범벅이 된 상황에서 사람들이 몰려들고, 경찰이 출두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결국 그는 폭행죄로 기소되었다. 수 없이 많은 법정싸움 끝에 정신질환이라는 판결로 끝을 맺었다. 그는 무죄로 풀려 나왔지만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신세가 되었다.
  창현이의 얘기는 대략 그랬다. 나는 뿌리를 옮겨 심은 한 이민가정의 아픔을 창현이를 통해 보고 있었다. 그것은 한 인간이 성장기를 통하여 자신의 존재의미를 잃어 가는 과정 속에서 정신과 육체가 어떻게 황폐하게 병들어가고 있었는가를 보여주고 있었다.
 
  창문너머로 보이는 하늘은 가을하늘처럼 높고 푸르렀다. 몇 개의 뭉게구름이 유유히 흐르다 사라지곤 했다. 언덕을 덮고 있던 푸른 잔디들이 어느새 한 여름의 열기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나는 그날 통역을 위해 다녀왔을 때처럼 엄습하는 편두통으로 눈을 바로 뜰 수가 없었다. 창현이 자꾸만 허공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약국은 매일의 일과대로 분주히 돌아가고 있었다. 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