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밤나들이>

― 안 설 희

뜰 안의 동백꽃이 무더기로 피었다.
가랑이를 활짝 벌린 요염한 계집처럼 짙붉고 화사하게 피어난 동백꽃들은 바람 자는 한낮에도 시들지 않은 송이채로 뚝, 뚝 지고는 했다. 섬뜩한 느낌이 들면서 단두대에 목이 잘린 마리 안토넷이 연상 되었다. 빗자루를 가져와 떨어져 누운 꽃송이들과 마른 잎들을 쓸어 담는데 주머니속의 핸드폰이 울렸다. 로자나였다. 오는 도중에 길이 막혀서 늦겠다고 했다. 서두르지 말고 조심히 운전하며 오라고 이르는 내 시야 안쪽에 세퍼드 암캐 루나가 잔디위에 얌전히 쪼그리고 앉아 오줌을 누고 있었다. 금세 강아지만한 치와와 잡종 개 미키가 쪼르르 달려와 킁킁대고 냄새를 맡더니, 꼴에 수컷이라고 뒷다리 하나를 번쩍 치켜들고 오줌을 찔끔찔끔 오래도 누었다. 개의 나이 한 살을 사람 나이 일곱 살로 친다는 누군가의 말에 따르자면, 미키의 나이가 올해 열두 살이니 곱하기로 이 칠은 십사 칠 일은 칠, 도합 여든네 살이다. 노후현상으로 대부분의 노인들이 그렇듯이 전립선 비대증이 생겨서 오줌발이 시원치 않은가 보았다.
미키의 흐릿한 눈에는 세 살 배기 루나가 스물 한 살 꽃다운 처녀로 보이는지 제 나이, 아니 키나 덩치는 염두에도 두지 않고 이따금 뭐가 동하면 미루나무에 매미가 달라붙듯이 송아지만한 루나의 아무데나 붙잡고 망측한 동작을 반복하다가 헉헉거리며 제물에 나가떨어지는 작태가 가관이 아니었다. 둘 다 일찍이 가축병원에서 불임수술을 받게 했는데도 그랬다.
로자나 일행은 오후 네 시가 넘어서야 도착했다. 온종일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던 아이들이 현관으로 달려갔다. 신문을 뒤적이던 남편도 아이들 뒤에 서서 그들을 맞이했다. 나는 저녁식탁에 올릴 불고기를 양념하던 손을 씻는 둥 마는 둥 몇 달 만에 보는 로자나를 반갑게 껴안았다. 그녀의 몸피가 부쩍 줄어 있었다.
“미진. 늦어서 미안해. 85번 고속도로에서 연쇄충돌 사고가 났었어. 부상자들을 수송 하느라 앰뷸런스뿐만 아니라 헬리콥터도 날아오고, 도로는 아예 주차장이 되고… 나중에 사고지점을 지나오면서 보니까 죽은 사람을 시트로 덮어놨더라. 아유, 끔찍해.”
거실의 소파에 앉자마자 로자나는 진저리를 치며 차가 밀린 상황부터 밝혔다. 장거리운전에다가 뜻하지 않았던 교통체증에 시달리기도 했겠지만, 그녀는 마치 홀로 어린자식들을 데리고 황량한 사막이라도 건너온 여인처럼 후줄근히 지쳐보였다. 아니, 어쩌면 얼마 전 늦은 밤중에 그녀가 울면서 전화에다 털어놓은 기막힌 소식을 들은 까닭에 그렇게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누가 알 수 있겠는가, 살다보면 예기치 않은 불상사가 곳곳에 복병처럼 숨어 있다가 별안간 요절을 낼 듯이 덮쳐 오는 것을……
그녀는 이혼 수속 중이었다. 외과의사인 남편을 따라 온 가족이 타주로 이사를 간지 서너 달밖에 되지 않았는데, 어느 날 느닷없이 그가 이혼을 요구하더란다. 그는 일 년 전 부터 인터넷의 포커 사이트에서 만난 젊은 여자와 틈나는 대로 잠자리를 같이 해왔으며 더 자주 만나기 위해 핑계를 대고 직장을 옮겼으리만큼 그녀를 사랑한다는 고백으로 거의 이십여 년 간 별 탈 없이 함께 살아온 아내를 까무러치게 했다. 가까스로 심신을 추스르고 난 로자나가 고민 끝에 아이들을 위해서 없었던 일로 하고 함께 부부상담을 받자고 하자, 이제 그 여자가 이혼을 하든지 아니면 절교를 하자고 하니 어쩔 수가 없다고 단언하더란다. 그는 이미 얼마 전에 아예 짐을 꾸려가지고 그 여자의 거처로 가버린 터였다. -나쁜 녀석. 케빈이 그렇게 이기적인 줄은 정말 몰랐어. 여기가 한국이라면 두 년 놈들을 간통죄로 유치장에 처넣을 수 있을 텐데, 미국법이란 게 이렇게 허술하니 다들 이혼을 밥 먹듯이 쉽게 생각하는 거라구.- 그들의 소식을 듣고 난 남편이 분개해서 한 말이었다.
나는 필리핀에서 온 로자나를 사오년 전에 헬스클럽의 요가반에서 처음 만났었다. 같은 동양인이라서인지 죽과 장이 맞은 우리는 금세 속을 털어놓는 친구가 되었다. 서로 나이가 엇비슷하다 보니 아들 딸 들도 같은 또래인데다가, 산부인과라서 과는 다르지만 둘 다 의료직을 가진 남편들까지 합쳐 두 가족이 자주 어울리고는 했었다. 서로 저녁식사 초대를 하거나 피크닉, 파티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학교행사나 운동경기에도 함께 참석했다. 로자나와 다니면 자매간이냐고 묻는 사람들도 종종 있었다. 여자 아이건, 머슴애건 어린아이들을 성추행 하는 범죄가 늘어나는 추세라서 슬립 오버(sleep over)를 겸한 친구들의 생일파티에는 늦게라도 반드시 아이들을 집에 데려와 재우지만, 우리들끼리는 서로 믿는 터이고 보니 이따금 주말에 아이들이 잠옷과 슬리핑백을 가지고 양쪽 집을 번갈아가며 밤늦게까지 놀다가 자고 오는 것을 허락해주었다. 각기 다른 나라에서 유년기를 보냈지만 그녀나 나나 어렸을 적에 친구네 집에서 자고오던 즐거운 추억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하튼 마른하늘의 날벼락 같은 그들의 이혼 소식은 모두에게 여간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우선 로자나의 아이들이 심리학 박사에게 카운슬링을 받아야 할 정도로 어린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불안 해 하고 우울증세 조차 보인다는 그녀의 말을 들으니 그 애들이 측은하기 짝이 없었다. 저희들이 뭔가 잘 못해서, 또는 아빠가 저희들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엄마와 이혼을 하게 되었을지 모른다는 터무니없는 죄의식조차 느끼고 있다고 심리학 박사가 귀띔을 해주더라고 했다. 우리 집 아이들도 막연하나마 이혼이라는 단어가 드리우는 어두운 그림자를 본능적으로 감지했는지 친구들을 염려하는 기색이 완연했다. 가정적으로 보이던 그녀의 남편이 일 년이 넘도록 몰래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워 왔다니……. 하긴 종종 주말에 그가 이런저런 이유로 혼자 어딜 갔다는 소리를 그녀에게서 듣고는 했었다. 가족동반을 환영하는 컴퍼런스에도 번거롭다는 이유를 들어 굳이 혼자 며칠간 다녀온다고 하기에, 언젠가 농담 삼아 -혹시 네 남편 어딘가에 숨겨놓은 여자가 있는 건 아닐까?-했더니, 그녀는 정색을 하고 펄쩍 뛰었었다. -내 남편은 진국이야. 어떤 여자가 거저 대줘도 절대로 딴 짓 할 사람이 아니지. -라고 자신만만하게 말하면서.
착한 여자 로자나. 사람을 의심할 줄도 모르거니와, 더더구나 교회에서 했던 결혼식에서 죽음이 두 사람을 갈라놓을 때까지 변함없이 사랑할 것을 하나님 앞에서 서약했던 남편을 향한 믿음과 신뢰를 당연시 여겨왔던 만큼 그녀의 극심한 고통은 옆에서 보기에도 아플 지경이었다. 친정이 태평양 건너에 있고 보니 등 비빌 데도 없는 로자나에게 내가 기껏 해줄 수 있다는 것이라고는 위로의 말과 그녀가 기대고 울 어깨를 내주는 것 밖에 없는 점이 안타까웠다. 아, 어제 애들을 데리고 와서 주말을 함께 보내자고 전화를 했을 때는 별안간 생각이 나는 대로- 한국 속담에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는 점으로 보아, 철석같이 믿어 온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거나 실망하는 경우는 너뿐만 아니라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있었던 일인가 봐. -라고 말해 주었다. 내 딴에는 그러니 더 이상 너무 상심하지 말라는 뜻이었는데, 전화 저편의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었다.

아이들은 일찌감치 우르르 이층으로 올라 가버렸다.
로자나는 명망 높은 이혼전문변호사에게 이혼 건을 의뢰해놓았다고 했다. 다과를 내오는데 그녀의 핸드폰이 울렸다. 뭐라고 한참 통화를 하고난 그녀가 모처럼 환해진 낯으로 내게 물었다.
“헤이, 미진. 오늘밤 여자들만의 밤나들이 (girls' night out) 어때? 방금 엘렌이 전화를 했는데, 나 여기 내려 온 김에 오늘밤 친구들과 나가기로 했으니 너랑 같이 오래. 그렇지 않아도 엘렌에게 이혼에 관해서 물어볼 것도 있거든.”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엘렌이라면 심장전문의사인 남편의 거동을 수상쩍게 여긴 나머지 사설탐정을 고용해 정사현장을 덮치고는, 그를 재정적으로 탈탈 털어내다시피 해서 내쫓고 이혼을 해버렸다는 당찬 미국여자로 나와 안면이 있는 사이는 아니었다. 게다가 나는 말만 들었지 늦은 결혼을 하자마자 미국으로 이민을 온 이후로 그런 밤나들이라는 것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으므로 별로 내키지가 않았다.

난 안 돼. 밥해야 돼. 애들이랑 집에서 저녁 해 먹고 놀고 있을 테니깐 너나 다녀오렴. 늦더라도 잠은 우리 집 객실에서 자고.”
손사래까지 쳐가며 사양을 하는 나를 보더니, 뜻밖에도 남편이 허허 웃으며 끼어들었다.
“저런, 촌 여편네마냥 ‘안 돼. 밥해야 돼.’가 뭐야? 당신도 모처럼 로자나랑 나가서 바람 좀 쐬고 오구료. 거 왜 남자들도 가끔 모여서 맥주 마셔가며 축구시합 중계방송도 보고 그러잖아. 저녁밥 걱정일랑 말아요. 애들이 좋아하는 피자 시켜다 먹을 테니깐.”

“이라사이 마세이-”
새로 생긴 일식당 <와사비> 문을 밀고 들어서자, 기모노를 입고 문간에 서있던 동양여자가 간드러지게 목청을 뽑으며 허리 굽혀 인사를 했다. 이 동네에 일녀가 있었나 싶어 다시 보니 아니나 다를까, 그 여자는 얼마 전에 불경기로 문을 닫았다는 중국식당 <만리장성>의 여주인이었다. 언제인가 그 식당 벽에 한문 복(福)자가 쓰인 족자가 거꾸로 걸려있는 것을 보고 실수로 그랬나 싶어 지적을 하자, 하늘에서 복이 술술 쏟아져 내리라고 일부러 그랬다더니, 그 복이라는 것이 감나무에 방패연 걸리듯 어디쯤엔가 걸려 내려오지 않았나 보았다. 이번에는 물구나무 선 복자 대신 어디서 구했는지 실물 크기의 복제 사무라이 투구와 갑옷, 장검을 문간에 전시 해 놓았거니와 실내 여기저기에다 막 포말을 일으키며 휘말리려는 큰 파도, 가는 눈이 치켜 올라간 게이샤와 스모선수 그림, 후지산 풍경 등으로 왜색이 짙게 장식을 해놓았다. 중국음식을 좋아하는 아이들의 성화로 자주 드나들어서 안면이 있건만, 사업체를 바꾸면서 둔갑이라도 한 듯이 게다짝까지 딸깍딸깍 끌며 시침을 떼는 그 여자의 꼬락서니가 생경스러웠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이나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나생문>,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 등등 감명 깊게 읽은 일본소설이 적지 않은 나로서는 굳이 일본에 관한 모든 것을 배척하지는 않지만, 독립투사로 만주벌판을 말달리며 일제에 항거했던 할아버지가 끝내는 일경에게 체포되어 모진 고문 끝에 옥사를 했거니와, 그 당시 어린처녀였던 고모가 정신대에 끌려가 영영 돌아오지 않은 집안내력으로 인해 여태 반일감정을 곰 삭이지 못한 남편이 보았더라면 눈살을 찌푸릴게 뻔했다.-아무리 돈 버는 것이 좋다지만 과거에 제 나라나 우리나라가 일제치하에서 당했던 뼈에 사무치는 수모를 생각한다면 이러진 않을 걸,-하고 투덜대면서.
“아직 안 왔네.”
토요일이라서인지 꽤 붐비는 식당 안을 휘 둘러 보고난 로자나가 중얼거렸다. 기모노가 안내 해준 테이블에 마주 앉았을 때야 나는 새삼스레 그녀의 변모를 알아챘다. 은은한 화장을 하고 군살을 뺀 몸매가 돋보이는 자줏빛 원피스로 갈아입은 로자나는 내가 여태 알아온 그녀보다 십년은 더 젊어 보이고 매력적이었다. 내 느낌을 보탬이 없이 말하자, 그녀는 고개를 젖히고 소녀처럼 까르르 웃었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그녀의 웃음소리가 이제 진흙구덩이는 벗어났나 보다, 는 안도감을 주었다.
“그렇게 보인다니 다행이네. 고통도 밤낮으로 겪다가 보니 견딜만해 지나봐. 이미 엎질러진 물,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마음을 다 잡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 자기관리의 일편으로 명상도 하고, 운동과 다이어트도 열심히 하고……. 아, 저기들 온다.”
출입문 쪽을 향해 앉은 로자나가 반가운 기색으로 손을 흔들어 보였다. 화사한 꽃다발이 둥둥 떠오듯이 성장을 한 세 여자가 다가와서 합석을 하자 우리들은 인사하랴, 소개하랴, 한동안 부산을 떨었다. 갈색의 쇼트 컷이 잘 어울리는 늘씬한 몸매의 미인이 엘렌이고, 어깨까지 풍성하게 늘어뜨린 금발에 파란 눈과 부풀어 오른 것 같은 입술이 섹시해 보이는 여자가 다이앤, 그리고 얼마 전에 본 영화 <게이샤의 추억>에 나오는 여주인공이 나이가 든다면 그런 모습일 것 같은 동양여자가 지영 김이라고 간단히 자기소개를 했다. 이름으로 미루어 -혹시, 한국 분이세요?- 하고 한국말로 물어 보았다. -네- 대답을 하자마자 시선을 내리까는 그녀의 여윈 뺨에 타인일지라도, 게다가 같은 한국사람에게는 더더욱 보이고 싶지 않은 치부를 우연히 들킨 것 같은 당혹감이 얼핏 스치고 지나갔다. 로자나는 이혼진행중인데, 알고 보니 놀랍게도 그녀들은 하나같이 남편의 외도로 이혼을 감행한 중년 여인들이었다. 다이앤의 전남편은 변호사이고, 지영의 전남편은 사업가라고 했다. 나는 주책없이 끼지 말아야 할 자리에 앉아있다는 후회감에 슬그머니 불편해졌다. 이런 줄 알았더라면 그녀들끼리 거리낌 없이- 인륜도 모르는 개x끼들아, 엿 먹어라. -어쩌고 하는 단합대회(?)를 갖도록 내버려둘 걸, 괜히 왔다 싶었다. 메뉴를 들여다보며 다들 음료수와 식사를 주문하고 나자, 그들 중 활달해 보이는 엘렌이 내게 질문을 쏘았다.
“미진, 그 쪽은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계시나요?”
순간 조용해진 좌중의 시선이 내게로 쏠렸다. 왜 그런지 미안한 생각부터 들었다. 우리들 중에서 나만 평탄하게 부부가 사는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행여나 그녀들의 불행감을 가중시키지나 않을까, 조심스러워졌다.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여태 내 결혼생활의 행불행을 저울질하게끔 만든 일도 없었거니와, 매일 지지고 볶으며 살기에 바쁘다 보니 그런 걸 생각해 볼 겨를도 없었으므로.
난처해진 나는 외눈박이 나라에 온 두눈박이인 양 주눅이 든 목소리를 깔았다.
“… 글쎄요. 뭐 아무래도 각자 자라온 환경이 다른 사람들끼리 짝을 지어 살다 보니 행복할 때도, 그렇지 않을 때도 있죠. 자질구레한 일로 가끔 말다툼도 하지만 큰 문젠 없었고, 아직은 남편이 딴 여자와 바람을 피우는 것 같지는 않네요.”
“아직은?”
엘렌이 짓궂게 내말을 되받자 모두들 와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그제야 나는 마치 갱단의 신고식을 무사히 통과한 이방인처럼 긴장을 풀고 그녀가 쪼끄만 사기잔에 따라준 알맞게 덥혀진 사께를 한 모금 마셨다.
“참, 남편이 산부인과의사라니 생각이 나는데요. 난 수많은 여자들의 거시기를 매일 지겹도록 들여다보는 직업을 가진 남자가 잠자리에서 자기 아내 거시기를 보면 흥분이나 될까, 의아스러워한 적이 있답니다.”
“글쎄요…….”
나는 엘렌의 말에 낯이 달아오름을 느끼며 웃음을 베어 물고 얼버무렸다. 이 여자는 도대체 솔직한 건가 아니면 당돌한 건가, 가늠하기가 어려웠지만 불쾌하지는 않았다. 그녀의 맑고 큰 청자색 눈에서 악의라고는 찾아 볼 수도 없었거니와 생각은 자유로운 것이니깐.
“아, 저 광고는 정말 기찬 아이디어야.”
우리들의 대화를 들으며 웃던 끝에 어쩌다 스시 바에 비치되어 있는 텔레비전에 시선이 머문 다이앤이 빈정거리며 말했다. 축구중계 막간에 남성 발기제 비아그라 선전광고가 나오고 있었다. 흰머리가 듬성듬성한 중년남자 대여섯 명이 청년들처럼 청바지에 티셔츠차림으로 둘러앉아 제각기 기타, 드럼, 키보드, 베이스 등을 연주하며 희희낙락하게 생의 찬가를 부르듯이 비아그라- 하고 합창을 하고 있었다.
엘렌이 생글거리며 물었다.
“비아그라를 삼키다가 목에 걸리면 어떻게 될까요?”
“캑캑거리겠죠.”
지영이 냉큼 대꾸를 했다.
“아니요. 목이 장시간에 걸쳐 빳빳해진답니다.”
목을 쭉 뽑으며 엘렌이 익살을 부리는 바람에 우리들은 배꼽을 쥐고 웃었다.
“여하튼, 왜 대부분의 남자들은 젊었던 늙었던 간에 기를 쓰고 섹스를 밝히죠?
고개를 갸웃거리는 다이앤의 아리송한 표정이 사뭇 귀여웠다.
“글쎄요, 아마 잠재해 있는 종족번식의 본능 때문인지도 모르지요.”
내 추측을 말하자 남성위주의 성문화니, 윤리의식의 타락이니, 심지어는 생리적으로 정낭에 정액이 찰 때마다 성충동을 느끼기 때문 일거라는 둥 의견이 분분했다.
“내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남이 하면 불륜이고 자기가 하면 사랑이라고 우긴다는 혼외정사를 저지르는 남녀의 비율은 7대3 정도로 단연 남편들이 바람을 더 많이 피우고, 중년의 위기 때 탈선하는 예가 흔하다는 군요. 심리학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망설이다가 한번 외도를 하게 되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기라도 한 것처럼 젊은 날의 열정과 구태의연한 삶에 활기가 되살아난대요. 그 짜릿함과 스릴에 현혹이 되어 외도를 반복하게 되고, 그럴수록 죄의식도 차츰 마비되면서 무의식적으로 자기 합리화를 하기 위해 배우자를 탓하거나 비난하게 된다는군요. 그러나 난 세상에는 스스로 가정과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는 사람들이 더 많다고 생각해요.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나는 이번만큼은 반드시 제대로 된 남자를 만나 사랑을 하고 재혼도 할 작정 이예요.”
엘렌이 마치 연구발표라도 하듯이 설명조로 늘어놓았다. 로자나가 다짜고짜 분통을 터뜨렸다.
“어쨌든 간에 내가 참을 수 없는 건 불공평하다는 점이예요. 남편들은 나이가 들어 대머리가 까지고 똥배가 나와도 연륜을 따라서 축적이 된 돈이나 지위를 밑천으로 젊은 여자를 꾀어낸다지만, 남편과 아이들에게 헌신하느라 젊음을 흘러 보내고 난 후에 버림을 받은 여자들은 무엇으로 살지요? 그까짓 위자료? 하, 아무리 많은 돈으로도 갈기갈기 찢겨져 피 흘리는 마음의 고통이나 비참함을 보상 할 수는 없어요. 뒤늦게 일방적으로 ‘나는 이제 네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사랑하므로 너를 떠난다.’는 이기적인 변심은 신성한 결혼서약 위배를 제쳐두고라도 배우자를 믿고 사랑하던 지순한 한 인간에게 가해지는 최악의 폭력이자 유린이예요. 난, 생각해 볼수록 너무 억울해서 밤에 잠이 안 올 지경인걸요.”
문득 까맣게 잊고 있었던 ‘젊음만은 못 당하겠더라.’는 한숨 섞인 엄마의 허탈한 음성이 먼 기억의 구릉 너머에서 들려 왔다. 호탕한 아버지가 친구들과 어울려 이따금 술집 여자들과 오입을 하는 것쯤은 모른 척 눈감아 주었던 엄마였지만, 아버지가 큰언니보다 겨우 세 살이 더 많은 여비서에게 푹 빠져 살림까지 차려 주었을 때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길길이 날뛰었다. 아파트를 찾아가서 그 여자의 머리채를 끌어 잡고 호통도 치고 위협을 하다못해, 돈뭉치를 싸들고 가 ‘앞날이 구만리 같은 처녀가 할 짓이 아니다, 제발 평탄한 가정을 파괴하지 말고 돈은 달라는 대로 줄 테니 내 남편에게서 떨어져 나가달라’고 통사정을 하며 그녀의 양심에 호소도 해 보았지만 다 소용이 없었다. 고 깜찍한 계집년이 ‘저는 이제 사장님 없이는 살 수가 없으니 사모님 마음대로 해 보시죠,’ 하며 뻗대더라고 했다. 결국, 학력이나 인품, 외모를 따져 보아도 누구에게든 꿀릴 데가 없던 엄마가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단지 아버지가 매료당했던, 그때쯤에는 당연히 엄마에게서 소진되어 버린 그 여자의 풋풋한 젊음을 당해내지 못하였음으로…….
다이앤이 로자나의 잔에 사께를 따라주며 달래듯이 말했다.
“나도 겪어봐서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해요. 다행히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억울함과 배신의 아픔도 차츰 가시게 된답니다. 이혼은 불행 끝 행복 시작이라는 말도 있듯이, 이제 우리들은 먼 길을 되돌아와 새로운 길로 접어드는 거예요. 삶이 계속되는 한 누구나 행복해질 권리가 있지요. 내 주위만 하더라도 뒤늦게 재혼을 해서 금실 좋게 잘 사는 부부들이 허다한걸요.”
“정말 그래요. 로자나 걱정 할 것 없어요.”
엘렌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맞장구를 쳤다.
“그러나 저러나 다들 서로 사랑했기 때문에 결혼을 했었을 텐데, 어떻게 남편이라는 사람들이 나중에 와서 그럴 수가…”
슬그머니 속상해진 나머지 나도 모르게 새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그거야 현실은 신데렐라나 백설 공주 동화처럼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죠. 세상의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해요. 다시 말해서 변하지 않는 것은 없어요. 세월이 흐름에 따라 아무리 뜨거웠던 사랑도 차츰 식어지게 마련이고, 권태롭고 무관심해지다 못해 외도를 하거나, 심지어는 서로를 증오하게 되는 경우도 있겠죠. <장미의 전쟁>이라는 할리우드 영화 속의 부부처럼 말이예요. 나는 영원한 사랑이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평생 그대로 가슴속에 아름답고 애틋하게 남아있는 추억속의 사랑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깐, 결혼은 연애의 무덤이다 라던가 연애는 사랑하는 사람과 하고 결혼은 조건이 좋은 사람과 하라는 말도 일리가 있다고 보아야겠지요.”
입가에 냉소를 머금고 지영이 시니컬한 어조로 말했다.
“하지만 활활 타오르던 장작불의 화염이 저절로 사그라진 후에도 숯불처럼 은은하고 따스한 사랑이랄까, 정으로 서로를 존중하고 보살펴 가며 백년해로를 하는 부부들도 많아요. 나는 초혼이던 재혼이던 간에, 허리가 구부정한 은발의 노부부가 더딘 걸음으로나마 서로 의지하며 공원을 산책하거나, 휠체어에 병약하고 치매에 걸린 일생의 반려자를 앉히고 힘겹게 밀고 가는 모습을 볼 때면 가슴이 짠해 지고는 해요. 이 험난하고 사연도 많은 지구라는 행성에서 오랜 세월 동안 참 아름다운 인간의 관계를 몸소 엮어 낸 그분들을 존경하지 않을 수 가 없어서이지요.”
나는 마치 내 스스로 무엇이라고 정의하기에도 모호한 <남녀 간의 사랑>을 옹호하듯이 말했다. 마침 웨이트리스가 연이어 음식을 잔뜩 날라 오는 바람에 다들 어쩌다가 열띠고 진지해진 토론을 접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스시와 사시미, 새우 뎀뿌라, 다시마 샐러드는 신선하고 맛깔스러웠다. 멋모르고 후각을 톡 쏘는 연둣빛 와사비와 핑크 진저를 캘리포니아 롤 위에 듬뿍 얹어 입에 넣은 로자나가 만화영화의 캐릭터처럼 눈물 콧물을 흘리며 씩씩거리는 모습이 어찌나 우습던지 하마터면 사레에 걸릴 뻔했다.
식사를 마치고 화장실을 다녀오니, 그녀들은 분위기를 바꾸어 개젵(gadget) 어쩌고 하면서 왁자지껄 웃고 난리였다. 영문을 모르는 내가 자리에 앉으면서 전기용품에 관한 얘기냐, 고 묻자, 웃음소리가 와락 더 커지는 바람에 나는 더욱 어안이 벙벙해졌다. 로자나가 웃음을 거두며 다들 이차를 가기로 했다 고 하기에, 나이트클럽이나 바에 가는 거냐고 물어 보았다. 엘렌이 정색을 하더니, 우린 그런 고기마켓에는 가지 않는다고 잘라 말하면서 좋은 와인이 있으니 자기 집으로 가자고 했다. 모두들 동의하고 각자의 식대에 팁을 가산해서 내놓았다. 처음 해보는 더치페이가 부담감도 없거니와 홀가분했다. 나는 우리 집 손님이라는 이유를 붙여 로자나의 식사비를 내주었다. 그녀가 무척 고마워했다.
나이에 비해 쭉쭉 빵빵하달 수 있는 중년의 미녀군단이 출입문을  향해 몰려나가자, 식당안의 뭇 남자들 시선이 따라 붙었다. 고개를 외로 비틀며 쳐다보다가 옆에 앉은 마누라에게 넓적다리를 꼬집히는 나이 지긋한 남자도 눈에 띄었다. 공연히 나까지 덩달아 기분이 달떴다.
어느새 걱정근심을 잊은 듯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로자나를 옆에 태우고 엘렌의 신형 벤츠를 뒤따라 오래간만에 휘황한 불빛이 명멸하는 밤거리를 달리자, 잠시 새장을 빠져나온 새가 따로 없었다. 새라니… 어느 책에서인가 <새와 새장에 관한 명상>을 읽은 적이 있었다. 새장속의 새는 외부의 모든 위협으로부터 보호를 받으며 먹을 것 마실 것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지만 푸른 하늘을 마음껏 날아다니는 새들의 자유를 꿈꾸고, 새장 밖의 새들은 새장 안에 넘치는 풍요로움과 안정을 부러워한다, 결혼은 곧 새장이 아닐까. 라는 요지의 글이었다.
라디오의 볼륨을 높였다. 오래전에 죽은 엘비스 프레슬리가 달콤한 음성으로 <러브 미 텐더>를 더 크게 불렀다.
엘렌의 차는 수위가 정문을 지키는 고급 주택가로 접어들었다.
“저 친구들은 평생 일을 하지 않고도 편안히 살 만큼 위자료를 충분히 받아냈지만, 내가 보기엔 아직도 치유과정에 있는 것 같아. 그래서 동변상련이랄까, 가끔 같은 처지의 친구들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서로 큰 위로를 받지. 난, 저 친구들을 알게 된 걸 정말 불행 중 다행으로 생각해. 너는 더 말할 것도 없고……. 그런데 말이야, 지영은 유별나게 자존심이 강한 여자인가 봐. 글쎄, 위자료 일체를 거절하고 자기 손으로 돈을 벌면서 일찍 결혼하느라고 중퇴했던 대학교엘 다니고 있대. 이 나이에 말이야. 뒤늦게라도 자기만의 인생을 만들어 가겠다나, 그뿐만 아니라 이혼을 하자마자 제일 먼저 한 것이 남편 성을 떼 내고 자기 성을 되찾은 거였대. 그녀를 YMCA 수영장에서 알게 된 다이앤도 번거로워서 여태 그냥 둔 남편 성을 곧 메이든 네임으로 고칠 거라고 하더군.”
나는 김지영이 무척 대견스러워졌다. 그녀는 개성이 강하고 속이 꽉 찬 배추 같은 꽤 괜찮은 여자일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아들 둘이 타주에서 대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엘렌의 집은 혼자 살기엔 터무니없이 컸다. 고급스러운 가구와 실내 장식이 그녀의 고상한 취미를 엿보이게 했는데 수반의 꽃꽂이가 마음에 썩 들었다. 엘렌이 쟁반에 사비뇽 블랑과 와인 잔, 캐비어, 크랙커를 담아 내왔다. 이웃집에 산다는 다이앤이 뒤늦게 쇼핑백을 들고 와서 부스럭거리더니, 기막히게도 분홍색 모조남자 성기를 태연히 꺼내 티 테이블위에 올려놓는 바람에 기절초풍을 할 뻔했다. 어찌나 큰지 내 눈에는 흉기로 보일 정도였다. 로자나는 탄성을 질렀고, 지영의 얼굴이 수박화채 빛으로 물들었다. 실리콘으로 정교하게 만든 귀두에 이어진 굵고 긴 음경에는 나뭇가지처럼 혈관까지 도드라져 있었다.
“먼젓번 것은 한 달도 안 됐는데 고장이 나버려서 오늘 낮에 새 걸로 사왔어요. 신형으로, 요건 클리토리스를 자극하는 것이라고 노블티 가게 점원이 그러더군요.”
다이앤이 아무렇지도 않은 음성으로 말하면서 그 물건에 연결이 되어있는 단추만큼 작고 둥근 흡반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세상에, 오죽했으면 한 달도 못가서 그게 고장이 다 나버렸을까.”
상상을 촉발하는 혼자말로 모두를 요절복통하게 만든 로자나가
호기심에 찬 눈빛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거, 얼마 주고 샀어요?”
“85불. 배터리를 포함해서 먼젓번 것보다 15불이나 더 비싸요.”
그 말을 듣자 어처구니가 없게도 엘렌이 쪼르르 이층으로 올라가더니, 마치 인형놀이를 하는 여자아이가 친구들에게 제 인형을 보여 주며 뽐내고 싶어 하듯이 그것과 흡사한 파란색 모조성기를 들고 내려왔다.
“내건 조나단이라고 해요. 심리 요법사가 일러주는 대로 이름을 지어 줬죠. 스위치를 눌러서 이게 한번 작동을 했다하면, 우- 끝내주지요. 난 전 남편하고 이십 삼년을 사는 동안 한 번도 오르가즘을 못 느꼈지만, 그 남자 자존심이 상할까봐 내내 좋은 척  거짓 교성만 질러댔었는데, 그러기도 쉬운 노릇이 아니더라고요.”
그녀의 말에 우 하하하 폭소가 터졌다. 미국여자들이라서 그런가, 적나라하군,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엘렌. 정말 심리 요법사가 이런 걸 권했단 말이예요?”
지영이 미심쩍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요. 진실한 파트너를 만날 때까지는 이걸로 혼자 리비도를 안전하게 해결하는 것이 심신건강에 좋다고 하더군요. 인간의 기본적인 성적 욕구 때문에 아무하고나 잘 수는 없잖아요. 에이즈에 걸릴 위험도 있고.”
그제야 나는 그들이 식당에서 얘기했던 개젵(gadget)의 은밀한 의미를 알았다. 불현듯이 오래전에 한국에서 본 영화에서 청상과부가 기나긴 밤 솟구치는 뜨거움을 이겨내느라 바늘로 허벅지를 찌르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러자 사랑과 변심과 헤어짐과 그리고 살아간다는 것……. 그런 문구들이 전광판에 연이어 지는 활자들처럼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다이앤과 엘렌이 그 요상한 물건들을 걷어치운 다음에 우리들은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카드놀이도 하고 둘러앉아 와인 잔을 기우리면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홀로 서기, 독신 남녀들의 인터넷 사이트나 모임뿐만이 아니라 신간서적, 연극, 영화, 여행, 지구의 온난화 현상, 이라크 전쟁, 쓰레기 재활용을 거쳐 부모님들의 건강문제, 아이들의 교육 등등….
여자들끼리 모여 모처럼 실컷 웃고 떠들고 나니 묵은 체증이라도 가신듯이 속이 다 후련 해졌다. 뜬금없이 오늘밤 내 등을 떠밀던 남편에게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를 존중하고 늘 잘 해주고 싶어 하는 것처럼 그이 또한 그러하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고 나자, 가슴속에 따스한 사랑의 느낌이 일렁거렸다. 그리고 행복했다. 참 이상한 밤이야, 하고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안에서 로자나가 예전처럼 멀쩡해진 음성으로 물었다.
“어땠어? 오늘 밤나들이?”
“아주 좋았어. 즐거웠어.”
“나도.”
찰나, 긴 꼬리를 끌며 유성이 별들의 잔치로 흥겨운 밤하늘을 그었다. 나는 별똥별이 떨어질 때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미국에 와서 주워들은 이야기가 생각이 나서 마음속으로 소원을 말했다. -살아 있는 이들은 모두 사랑을 가꾸고 행복 하라-고.(*)

* 안설희 : 강원도 강릉 출생, 미국 메릴랜드대학 심리학과 졸업. 1990년「워싱톤문학」신인상 소설부문 수상. 1991년 뉴욕한국일보 공모 소설부문 수상. 2000년 「자유문학」신인상 소설부문 당선 등단. 서저로 단편소설집「옥수수밭 이야기」 (2003)「워싱톤 문인회」회원.「한국문인협회」회원.「해외문인협회」회원.

 

 

날짜 : 08-03-02 04:15     조회 : 854  

 

 

고향을 잃은 사람들―이 종 학(캐나다)

 

 

민귀숙여사 일행 이십 명은 오전 9시에 캘거리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곧바로 캐나다 동부에 가서 나이아가라 폭포 등 명소를 관광하고 나서 이제 거대한 자연의 품으로 불리는 캐나디언 로키를 보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다. 이 관광단은 모두가 육십 대 중반의 노년기에 들어선 부유한 가정의 마나님들이다.
  공항에는 관광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들의 관광 안내를 맞고 있는 밴쿠버 한인 여행사의 전용 버스다. 몸체에 빨간 글씨로 ‘아리랑 관광’이라고 써 있는 버스를 보자 그녀들은 온몸의 긴장이 풀리는 듯이 말수가 갑자기 많아졌다.
  버스 ‘아리랑’은 카우보이와 들소의 이미지로 알려진 캐나다 서부 도시 캘거리 시내를 한 바퀴 돌고 나서 로키 산맥을 향해 서쪽으로 방향을 돌리고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평원 한복판에 일직선으로 나 있는 하이웨이에 들어섰다. 캐나디언 로키의 남쪽 관문이며 관광의 중심지로 알려진 밴프까지는 백이십팔 킬로미터, 6월의 하늘은 맑고 노면 상태는 쾌적했다. 오래지 않아 차창 밖으로 멀리 만년설을 뒤집어쓰고 있는 로키 산맥의 위용이 보이고 광대한 평원이 점점 좁아지면서 푸른 침엽수림이 좌우에 병풍을 두르듯 늘어섰다. 본격적으로 캐나디언 락키의 관문 밴프에 접근하기 시작한 것이다.
  버스 아리랑은 11시에 목적지인 밴프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 바위라는 이름 그대로 해발 삼천 미터가 넘는 거대한 바위산들이 눈과 얼음 모자를 쓴 백두(白頭)의 모습으로 북쪽으로 희뿌옇게 끝도 없이 이어졌다. 등정 불가능한 산들이 수두룩하다. 그리고 밴프는 이들 산들로 둘러싸인 표고 천삼백팔십 미터에 자리 잡고 있는 관광의 요지로 이름값을 하는 작은 산협 도시이다. 미리 예약한 중세기 풍의 고딕식 고급 호텔 스프링스에 여장을 푼 민여사 일행은 시내 한복판에 있는 일식 레스토랑에서 늦은 아침 식사를 하고 주변에 널려 있는 명소의 관광에 나섰다.
  우선 조물주도 절경이라고 감탄했다는 설퍼 산을 곤돌라를 타고 이천이백오십 미터 정상에 오르면서 몸 가까이에서 장엄한 로키 산맥의 위용을 접했다. 기라성 같은 거대한 준봉과 준봉의 연속, 계곡과 강과 산정 호수의 파노라마가 태곳적 그대로 숨이 막힐 듯이 시야 가득히 들어온다. 민여사 일행은 이 신비의 극치에 감탄사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서로 손과 손을 땀이 배이도록 맞잡고 있을 따름이었다.
  다음에는 미네완카 호수를 찾았다. 인디언 말로 ‘영혼의 호수’라는 뜻이다. 숲과 호수의 기막힌 조화, 그 속에서 에메랄드빛과 짙은 초록으로 비쳐진 호수면의 색감은 완전히 환상적이다. 이 호수에서 크루즈 관광선을 탔다. 침엽수림과 고생대, 중생대, 제3기 지층의 단층애(斷層崖)를 일목요연하게 드러낸 절벽의 연속, 모두가 타임머신을 타고 태고의 시간 속에 들어가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그리고 대자연을 창조한 조물주의 위대한 손길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질 따름이다.
  이밖에도 버밀리언 호수, 노케이 산 그리고 몇몇 인디언 방물관 등을 찾아 거의 일곱 시간 가까운 관광을 감탄과 경탄 속에서 마치고 민여사 일행은 일단 호텔로 돌아왔다가 간단한 저녁 식사를 하고 밴푸 시내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어퍼 온천장에 들어갔다. 계속 비경 속을 다니느라 피곤한 몸을 다스리는 데는 온천욕이 제격이라는 안내원의 말을 따르기로 한 것이다. 유황 함유량이 많아 인체에 좋다는 어퍼 온천장은 노천으로 되어 있어서 사방으로 드높은 산봉과 산림을 바라볼 수 있었다. 마치 한데서 목욕을 즐기는 듯한 묘한 느낌을 갖게 했다. 온천장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대부분이 관광객인 듯 여러 피부색의 인종들이 뒤섞여 있었다. 겨울에는 눈발 속에서 온천욕을 즐기는 정취 또한 일품이라고 한다.
  민여사는 일행과 함께 온천수에 몸을 푹 담그고 사방으로 가까이 바라보이는 드높은 산봉들에 정신을 빼앗기고 있다가 문득 온천장 한편에 시선을 옮겼다. 막 온탕으로 들어오려고 하는 백발이 성성한 남자가 어딘지 낯이 익었다. 그 남자는 막 토하기 시작한 석양의 붉은 노을에 노출된 모습이었지만 분명 그녀의 마음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민여사는 부인하듯 고개를 서너 번 흔들고 나서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설마 그 사람이?… 그러나 그녀의 시선은 다시 돌아오려고 조바심을 치고야 말았다. 온천에서 피어오르는 아련한 수증기 속에서 이내 그 사람을 다시 찾았다. 그 남자 역시 일행인 듯한 다른 두 사람과 함께 천천히 온탕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그러다가 조금씩 이쪽으로 가까이 다가오면서 걸터앉을 곳을 찾는 것 같았다. 십 미터 거리로 좁혀졌다. 민여사는 목에 감고 있던 빨간 손수건을 풀어서 안경알을 닦았다. 앞이 한결 선명하게 보였다. 수면 위로 가슴 위만 보이는 그 사람의 모습은 처음보다도 더 명확하게 낯이 익었다. 민여사는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얼굴이 확확 달아올라서 온천에 더는 몸을 담그고 있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추석인! 바로 그 사람이 틀림없다. 젊었을 때의 모습은 거의 소멸되었지만 외모에서 풍기는 인상은 전연 퇴색되지 않았다. 민여사의 의식은 갑자기 사십육 년 전으로 곤두박질쳤다. 그녀에게 상실과 분노의 추억을 안겨 주고 떠난 첫사랑이 하필이면 여기에 나타나다니! 이대로 지나쳐 버릴 것인가? 그럴 수는 없다. 언제든 만나고 싶었던 사람이다. 사십육 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에게 물어 보고, 따져 보고 싶은 일념에는 변함이 없다. 무엇은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드니 외국 땅 온천장에서 수영복 차림으로 추석인과 기막힌 해후를 하게 될 줄이야. 운명의 끈이 끈덕지게도 남아 있다는 생각에 그녀는 머리를 흔들었다.
  민여사는 주위를 돌아볼 것도 없이 주춤주춤 물 속에서 앞으로 발을 옮겼다. 옷을 입고 온천장 출입구에서 기다렸다 만나는 게 옳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도 했지만 그것은 잠시였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틈에서 놓치면 안 된다는 조바심이 방아쇠를 맞은 총알처럼 튀어나갔다.
  민여사는, 추석인으로 보이는 남자에게로 슬며시 다가갔다. 오른쪽 귀뿌리에 눈에 익은 검은 사마귀가 선명했다. 긴가민가하던 망설임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 남자는 일행하고 이야기를 하느라 이쪽에는 전연 무관심이었다.
 “실례합니다.”
  민여사의 말에 그 남자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이쪽을 알아보지 못하는 기색이다.
 “혹시 한국 분이신가요?”
 “그렇습니다만…”
 “추석인 씨, 나를 알아보시겠어요?”
  그 남자가 눈을 끄먹거리며 기억해 내려 하고 있을 때 저쪽에서 일행 중 누군가가 민여사! 하고 크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어디를 가나 요즘 한국 여인들은 거침없이 목청을 돋우는 게 특징이다.
 “…민여사?”
  그 남자가 중얼거리는 것과 동시에 조금씩 눈이 커져 갔다.
 “그럼, 민-귀-숙?…”
 “맞아요. 귀숙이에요. 민귀숙.”
 “아니, 이럴 수가!”
 “정말 오랜만이네요. 영 못 만날 줄 알았는데.”
 “그런데 여기는 어떻게?”
 “캐나다 관광을 왔다가 여기에 들렸어요. 추석인 씨야말로 어쩐 일이에요?”
 “나도 친구들하고 놀러 왔소. 밴쿠버에 이민 와 살고 있으니까 여기엔 가끔 오는 편이지.”
 “이민 와 살고 있다구요?”
 “벌써 사십 년이 넘었는걸.”
 “그랬군요.”
  민여사의 가슴에서 시멘트 바닥에 생철 조각 긁는 소리가 났다.
서로 세월이 엄청 묻어 있는 모습 속에서 옛날을 찾으려고 두 사람은 상대의 얼굴에서 좀처럼 시선을 옮기지 못하고 있었다.
  추석인이 두 손으로 얼굴에 묻은 물기를 닦아내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어떻게 지내고 있어요? 우리가 사십 몇 년 만에 만나는 셈인가?…”
 “오십사 년도니까 꼭 사십육 년이 됐어요. 나는 잘 살고 있지요. 아들 딸 남매에 손자손녀가 넷이랍니다. 그런데 추석인 씨가 외국에 나와 살고 있다니 정말 뜻밖이네요.”
  추석인은 선뜻 말을 받지 못했다. 민귀숙이 서로 헤어졌던 햇수를 지체 없이 연도까지 정확하게 집어내는 바람에 기가 꺾이고 말았던 것이다. 더구나 말을 하고 나서 그녀의 처연한 시선이 석양에 붉게 물들고 있는 만년설을 머리에 얹은 산봉들에게 멀리 가 있는 것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온천수에 머리를 집어넣고 말았다.
  민여사와 추석인은 각기 일행들이 있는 처지인지라 밴쿠버에서 다시 만나기로 다짐하듯 약속했다. 민여사는 온천욕 후에 밴프 시내 어딘가에서 따로 만나자고 했으나 추석인이 일행과 함께 밴쿠버에 돌아가야 한다고 해서 일단 헤어지기로 했다. 민여사 일행은 이튿날 재스퍼에 가서 하루를 묵으며 하늘이 내려줬다는 로키의 장관을 더 만끽하고, 밴쿠버로 가서 다시 이틀간의 관광과 골프를 즐기고 귀국하기로 일정이 잡혀 있었다.
  민여사는 호텔로 돌아와서 일행들과 한바탕 맥주 파티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온천장에서 실로 사십육 년 만에 기적처럼 만난 추석인의 모습이 자꾸만 신경을 자극하며 수면을 방해하는 것이었다. 첫사랑의 남자,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가정적으로 결혼 조건이 맞지 않아 더는 교제를 계속할 수 없으니 헤어지자는 매정하고 무책임한 말을 내던지고 홀연히 떠나가 버린 남자가 아니던가. 그가 짓밟고 지나간 그녀의 상실시대는 너무나 괴롭고 원망으로 채워져 견디기 힘들었었다. 이런 감정의 소용돌이는 사십육 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녀의 가슴속에서 꺼지지 않은 화염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다.
민여사 일행은 이튿날 8시에 스프링스 호텔을 떠났다. 해는 벌써 높은 적설(積雪)의 산봉 위에 떠오르고 있었다. 이곳의 6월은 새벽 5시에 해가 뜨고 밤 10시라야 해가 지는 전형적인 북극 초입의 소위 극기후(極氣候)를 나타낸다. 캐나디언 로키의 북쪽 관문인 재스퍼를 향해 관광버스 아리랑은 골든 루트 또는 원더 트레일이라고 불리는 세계적으로 아름다운 하이웨이를 달렸다. 목적지인 재스퍼를 가는 도중에 이름난 관광지 몇 곳을 찾기로 했다. 차는 마치 장엄한 대자연의 신비한 세계로 들어가는 길목같이 웅대한 바위로 이뤄진 산봉우리들과 침엽수대를 누비며 시원하게 달렸다.
  런들 산과 존슨 캐니언을 거쳐서 세 시간 뒤에 로키 절정이라고 하는 신비의 루이스 호수에 당도했다. 산중턱에 있는 삼백여 평방마일의 이 빙하호(氷河湖)는 과연 세계 십대 절경중의 하나로 손꼽힐 만했다. 호수 뒤에는 완전히 빙하로 덮여 있는 삼천사백육십사 미터의 빅토리아 산이 높이 솟아 있는데 그 모습이 수심 칠십 미터의 영험스럽기까지한 맑은 호수 면에 투영되어 또 하나의 거대한 빙산을 보여주고 있다. 옷깃을 여미게 하는 신비의 수경(水景)이다. 그리고 그 호숫가에는 갖가지 아름다운 야생화들이 호수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요염한 자태로 살랑거린다. 그야말로 비경중의 비경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최고의 절경에 묻혀 연신 감탄하면서도 민여사는 어제 온천장에서 만난 추석인을 떼어버리지 못하고 마음 한구석에 묵직한 혹처럼 지니고 다녔다.
  1953년 봄 영화 쿼바디스가 단성사에서 개봉됐을 때였다. 6․25전쟁 중이었음에도 성서를 배경으로 한 일종의 애정 영화는 아직도 전쟁의 상흔이 곳곳에 남아 있던 장안의 화제가 되어 있었다. 민귀숙은 추석인을 따라 극장에 나란히 앉았었다. 쿼바디스가 문둥병에 걸린 어머니와 누이동생을 내밀히 만나는 장면이 화면에 비쳤을 때, 귀숙의 한 손이 더듬거리는 추석인의 손에 잡혔다. 순간 온몸이 완전히 전류에 휘감기고 말았다. 애잔한 화면과 추석인의 화끈한 손이 동시에 그녀의 심장을 요동치게 했다. 영화를 보고 온 날밤 귀숙은 추석인에게 몸을 허락했다. 천신만고 끝에 사랑을 이룩한 영화의 사랑이야기에 감동된 탓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그녀는 추석인을 마음 깊이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대학 1학년 때였다.
관광버스 아리랑은 루이즈 호수를 떠나 백이십팔 킬로미터를 달려서 북반구 최대의 대빙원의 파노라마가 펼쳐지는 컬럼비아 아이스필드 파크웨이에 당도했다. 민여사 일행은 막바로 빙원을 달리는 특수하게 제작된 눈차(Snocoach) 관광 투어에 나섰다. 여기에서 직면한 거대한 빙괴(氷塊)는 하얀 게 아니라 가을 하늘색에 가까웠다. 얼음이 쪼개진 사이로 흐르는 물색도 역시 하늘색으로 섬뜩하게 청명하다. 그녀들은 난생 처음 빙원 위를 걸으면서 얼음물도 마시고 얼음도 깨물며 어린애들처럼 좋아했다. 전인미답의 북극에 서있는 듯한 황홀한 흥분에 취했다.
  그러나 이런 즐거움 속에서 민여사는 엉뚱하게 추석인의 모습을 다시 떠올렸다. 눈과 얼음의 이미지는 가끔 그녀의 과거를 뒤적이게 하는 버릇이 있는 터였다.
  그 해 2월은 유난히 춥고 눈도 많이 내렸다. 밤 9시경이었다. 민귀숙은 한성여고 근처에 있는 집으로 가려고 삼선교를 막 지나 성북동 쪽의 골목을 한참 걸어 올라가다가 빙판에 미끄러져 넘어지는 바람에 오른쪽 발목을 접질려 쓰러졌다. 어머니 심부름으로 명륜동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그 때만 해도 가로등이 없는 껌껌하고 사람들의 왕래가 적은 음습한 좁은 길이었다. 귀숙은 가까스로 몸을 일으켰지만 오른쪽 발목이 아프고 시근거려서 한 발짝도 내딛질 못하고 도로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신음과 눈물이 저절로 나왔다. 칼바람은 매섭게 불었다. 바로 이 때 누군가 이쪽으로 걸어오는 인기척이 들렸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건장한 젊은이였다. 그는 귀숙이 곤경에 처해 있는 것을 보고 선뜻 나서서 그녀를 부축해 일으켰다. 그리고 걷지 못하자 거침없이 그녀에게 등을 들이댔다. 움직이려면 이런 방법밖에 없었다. 그리고 통행금지 시간이 10시로 되어 있다. 전시라서 통행금지는 엄중했다. 머뭇거리고 어쩌고 할 상황이 아니었다. 귀숙은 부끄러움과 염치를 무릅쓰고 낯선 남자의 등에 업히지 않을 수 없었다. 집으로 가는 길은 갈수록 점점 비탈졌다. 체격이 좋은 젊은이지만 오래 가지 않아 숨이 가빠 헉헉거렸다. 열아홉의 성숙한 귀숙이 또한 작은 몸매가 아니었다. 여러 번 쉬면서 가까스로 귀숙의 집에 당도했을 때 혹한이 위용을 떨치는 밤임에도 젊은이의 등이 땀에 촉촉이 젖어 있었다. 통행금지 시간 10분 전, 젊은이는 귀숙의 어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집밖으로 뛰어 나갔다.
  귀숙은 십여 일을 꼬박 누워 있다가 겨우 기동을 했다. 그 동안 졸업을 얼마 남기지 않은 고등학교도 쉬어야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절박한 상황에서 자기를 집에까지 업어다 준 학생을 만나 고마움을 표하는 일이 급했다. 통행금지 시간이 임박해서 집밖으로 나간 그가 무사히 집에 돌아갔는지도 몹시 궁금했다. 다행히 그 학생을 만날 희망은 있었다. 그의 웃옷에서 대학 배지를 눈여겨봐 놓았기 때문이다.

  2월말 무렵이다. 귀숙은 학생이 다니는 대학 교문 앞에서 아침부터 기다렸다. 등교하는 수많은 학생들 속에서 그를 찾아야했다.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이틀이고 사흘이고 만날 때까지 단념하지 않을 각오로 처음부터 임했다. 요행히 정오 무렵에 귀숙은 그 학생을 찾았다. 어둔 밤에 본 얼굴이지만 금세 알아볼 수 있었다. 그녀는 뛸 듯이 기뻤다. 옆구리에 노트 서너 권을 끼고 교문에 들어가려는 그를 발견하고 귀숙은 달려가 무조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저, 저를 기억하시겠어요?”
 “?……”
  처음에 그 학생은 귀숙을 알아보지 못했다
 “얼마 전에 저를 업고…”
  얼굴이 홍당무가 된 귀숙은 말을 다 맺지 못했다.
 “아아, 이제 알겠어요.”
  그 학생 역시 안색이 붉어지면서 입가에 계면쩍은 웃음기를 주었다. 그가 바로 추석인이다. 이렇게 빙판에서 만난 게 인연이 되어 귀숙과 추석인은 사랑의 감정을 불태우기에 이르렀다.
  갑자기 빙원 아득한 저쪽에서 싸늘한 바람이 불어오면서 희끗 희끗 눈발이 날렸다. 몸에 한기가 찾아들었다. 이곳 아이스 필드는 한여름에도 가끔 눈이 내리면서 기온이 급강하하는 때가 있다. 민여사는 몸이 오싹하면서 옛날을 헤매고 있는 상념에서 겨우 헤어났다. 
  아이스 필드에서 내려온 민여사 일행은 오두막식 건물인 살레에서 패스트푸드로 점심을 하고 다시 재스퍼를 향해 떠났다. 여기서 목적지까지는 백사 킬로미터나 된다. 관광버스 아리랑은 좌우로 거대한 산봉우리들과 장려한 녹색 수림들을 다시 거느리고 산악 관광 도로를 쾌적하게 달렸다. 표고 이천사백이 넘는 캐나디언 로키를 대표하는 고산들로 둘러싸인 인구 사천의 도시 재스퍼에는 오후 4시경에 도착했다. 영어로 옥(玉)이라는 뜻인 재스퍼는 락키의 보석으로 알려져 있다.

  민여사 일행은 예약된 특급호텔 재스퍼 파크로지에 여장을 풀고 커피와 음료수로 목을 축이고 나서 각기 냅색을 메고 다시 관광 코스를 따라 나섰다. 노년기의 여인들이지만 평소에 등산으로 단련된 몸들이라 조금도 피로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먼저 트램웨이로 휘슬러 산 정상 전망대에 올라가서 수많은 영봉과 호수의 또 다른 캐나디언 로키를 한눈으로 바라봤다. 그러고 나서 울창한 나무숲을 헤치고 들어가 신비한 스프릿트 아일랜드로 유명한 말린 캐니언과 호수를 비롯해서 로키의 비밀 포인트라고 하는 에디슨카벨 산을 구경했다. 어딜 가나 웅장하면서도 신비하고 오묘한 자연 그대로의 자태에 할 말을 잃고 연신 탄성을 지를 뿐이었다. 모두가 신의 무궁무진한 조화로 이루어졌음을 더욱 확신케 했다.
  밤 8시경에 재스퍼 시내로 돌아온 민여사 일행은 한식집 김치하우스에서 맛있는 저녁식사를 하고 나서 관광 도시답지 않게 조용한 거리를 산책하다가 호텔로 돌아왔다. 한 패는 화투에 빠지고 또 몇몇은 호텔 부대시설로 되어 있는 미니골프 클럽에서 골프를 즐겼다. 야간에도 골프를 칠 수 있다.
  민여사도 골프를 치다가 슬며시 스탠드바가 갖춰진 라운지로 올라가 브랜디 한 글라스를 시켜놓고 노천 라운지에 마련한 탁자에 앉았다. 그녀는 애플 브랜디를 즐겨 마시는 편이다. 밤하늘의 별빛이 유난히 크고 밝았다. 그리고 주위에 솟아 있는 산봉들은 어둠에 동화되고 그들이 얹고 있는 만년설이 마치 허공에 떠 있는 듯한 형상으로 보였다. 사위는 너무나 고즈넉했다. 거대한 산들이 모든 소음을 걷어 품고 있기 때문일까.
  무남독녀인 민귀숙은 어머니와 단 둘이서 6․25전란 때 월남했다. 평양 근교의 대농가였는데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아버지는 8.15해방 이듬해 친일 반동으로 몰려 처단되었고 가산은 거의 몰수당했다. 이 어이없는 폭거의 주동자는 바로 아버지가 가장 아끼던 제자였다. 귀숙과 그녀의 어머니는 근근이 목숨이나 유지하면서 살고 있다가 국군이 북진하자 제일 먼저 남하했다. 마침 서울에는 사촌오빠가 살고 있었다. 그는 일찍 부모를 여의고 숙부인 귀숙의 아버지 슬하에서 성장했다. 서울에 가서 공부한 것도 숙부의 뒷바라지 덕이었다. 전문학교를 나와서 서울 검찰청의 유능한 서기관으로 근무하고 있으면서 법관이 되는 꿈을 버리지 않는 면학 파였다. 귀숙보다 열 살이나 위였지만 어릴 적부터 이들 사촌 남매는 무척 의가 좋았다. 그래서 월남하자 귀숙과 어머니는 줄곧 사촌오빠 집에서 살았다. 귀숙은 오빠의 주선으로 여고에 전입했고 대학에도 들어갔다. 이북에서의 학년을 그대로 인정받았던 것이다.
  귀숙은 월남 피난민이었지만 사촌오빠의 덕으로 생활의 어려움을 몰랐다. 그리고 혼신을 다하여 사랑하는 추석인이 있어 마냥 행복했다. 추석인은 부산 태생이다. 아버지가 어선을 여러 척 갖고 있는 선주인 데다가 전쟁의 피해를 받지 않은 터라 가정이 유복했다. 추석인은 자기 주관이 뚜렷한 의지적인 청년이었다. 당시 자유당 정권의 일인 독재 체제에 항거하는 민주화 투쟁 대열에 서서 민주 정치를 열렬하게 부르짖었다. 그 남자다운 당당한 패기에 귀숙은 완전히 매료되었다. 귀숙은 모든 걸 잃어도 그만 있으면 천하의 행복을 얻는 것이라 여길 정도로 그에게 사랑을 쏟았다. 그리고 몸을 허락하며 장래를 굳게 약속했다.
그러나 사랑은 아름답고 위대하면서도 항상 아픔과 변절을 잉태하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 추석인의 대학 졸업식이 있던 날이었다. 부산에서 상경한 추석인의 어머니는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 나온 귀숙을 따로 만나 아들과의 교제를 절대 허락할 수 없다고 했다. 이북에서 피난 와 근거를 알 수 없는 집안과는 인연을 맺을 수 없다는 단호한 선언이었다.
  그리고 이미 아들에게 정해진 혼처가 있다고 했다. 청천벽력과 같은 말이었다. 공산당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향을 떠난 것이 어찌 허물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시대를 잘못 만나 불행에 처한 월남 피난민들에게 위로는 못해줄망정 차별하고 천대하는 인심에 몹시 격분하고 슬펐다. 그래도 그녀는 서로 몸과 마음으로 사랑을 엮어 온 추석인을 철석같이 믿었다. 평생을 같이 하기로 한 맹세가 서로의 가슴에 깊이 각인 되어 있지 않은가.
  이런 반석과 같은 추석인에 대한 애정의 신뢰도 무참하게 무너졌다. 추석인 역시 결혼 여건이 서로 맞지 않는다는 매정한 말을 남기고 냉정하게 떠나갔다. 그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해 버렸다. 귀숙은 실의에 빠졌다. 아버지에게 배은망덕한 자는 바로 가장 아끼고 신뢰했던 제자였으며, 그녀를 배신한 자는 그녀가 일편단심 사랑했던 연인이 아닌가! 배은과 배신이 흑암처럼 녹아내리는 가운(家運)이 원망스러웠다. 절망과 분노가 그녀의 온몸을 짓밟고 마구 짓이겼다. 
  불행은 열을 지어 찾아온다더니 설상가상으로 기둥처럼 의지했던 사촌오빠가 교통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귀숙은 당장 생활에 위협을 받아야 했다. 그녀는 학교를 쉬고 생활 전선에 나섰다. 어머니는 바느질품을 팔고 그녀는 여기저기 일자리를 찾아 다녔다. 심신이 고단하고 앞날이 흐려 보일 때마다 그녀는 추석인의 배신에 몸을 떨었다. 어디 누가 더 잘 사는가 보자! 피멍이 들도록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민여사 여기 있었구먼. 혼자서 뭘 하고 있는 게야?”
  민여사는 놀라서 상념을 털어 버렸다. 제일 가깝게 지내는 박여사가 앞에 서있었다. 국회의원의 사모님인 박여사도 함경도에서 월남한 피난민 출신이다. 그래서 더 친숙하게 지내는 지도 모른다.
 “박여사도 술 한 잔 할래?”
 “좋지. 민여사가 풍기는 분위기를 보니 아무래도 오늘밤은 브랜디 한 병은 마셔야할 것 같은걸.”
박여사가 브랜디 한 병과 안주 한 접시를 시키고 마주 앉았다.
 “민여사, 왜 갑자기 이상해졌어?”
 “내가?”
 “밴프 온천장에서 누군가 남자를 만나고부터는 사람이 영 달라졌어. 뭘 골똘히 생각하느라 한눈파는 시간이 많아지고 말야.”
 “내가 그렇게 보였어?”
 “그렇게 보였어가 뭐야. 민여사답지 않게 속으로 꿍꿍거리지 말고 나한텐 이실직고하지 그래.”
  민여사는 글라스를 입에다 깊이 기울이면서 생각했다. 월남 출신들끼리니까 속 시원히 털어놓고 말까?…
박여사는, 민여사의 고백을 재촉하듯 그녀가 막 비워놓은 글라스에 다시 술을 따랐다.
  민여사는 글라스를 만지작거리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실은 말야. 어제 그 온천장에서 사십육 년 만에 첫사랑의 남자를 만났어.”
 “뭐야? 그게 정말이야?”
  박여사는 펄쩍 뛸 듯이 놀란다.
 “사십여 년 전에 밴쿠버에 이민 와 살고 있대.”
 “그런데 민여사, 첫사랑이 있었다는 러브스토리는 나한테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었잖아. 정말 섭섭한데.”
  민여사는 빙긋이 웃으며 글라스를 입에 가져갔다.
  그랬다. 민여사는 추석인과의 과거를 누구에게도 털어놓은 적이 없다. 너무나 비애와 분노에 절은 시절을 반추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 시절의 심적인 방황은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 자칫 상처가 다시 화농될 두려움까지도 배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추석인을 만난 지금 박여사에게까지 지난날을 더는 숨기고 싶지 않았다. 민여사는 얼음판에서 추석인을 만난 운명적이랄 수 있는 인연으로 두 사람은 곧 사랑에 흠뻑 빠졌던 일과, 소위 삼팔따라지라는 이유로 추석인의 부모가 반대를 했고 급기야 추석인까지 철석같은 장래의 약속을 헌 신짝처럼 버린 참담했던 사실을 모두 털어놨다.
 “사상전쟁으로 고향을 잃은 같은 민족을 멸시하던 사람이 어찌 나라를 떠나 타국에서 이민살이를 하고 있을까. 안 그래. 민여사?”
  박여사의 어투에는 비아냥기가 가득했다.
 “나도, 그 사람이 이민 와 있다는 말에 아주 놀라고 실망했어.”
 “피난이나 이민이나 고향을 떠났다는 데는 다를 게 없지. 하지만 월남은 어디까지나 타의에 의해 고향을 잃은 거지만 이민은 온전히 자의에 따라 고향을 떠난 거잖아.”
 “그래 맞아. 피난과 이민은 근본적으로 다르지.”
 “민여사의 첫사랑을 비난해서 안 됐지만 속이 맹물로 가득 찬 위인 아냐? 그리고 말야. 기왕에 말이 나왔으니 한 마디 더 해야겠어. 일인독재 타도를 부르짖으며 나라를 걱정했다면서 왜 그렇게 소중한 나라를 젊어서 떠났을까? 누구 말마따나 자식들 교육 때문이라고 핑계를 댈까? 허울 좋은 개살구 같은 인간이나 할 짓이지. 민여사, 내 말 틀렸어?”
  박여사의 입에서 추석인을 매도하는 소리가 거침없이 이어져 나왔다. 그녀도 삼팔따라지 출신이기에 더불어 자존심이 상해 더욱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리라.
  민여사는, 추석인이 훌쩍 떠나버렸어도 그의 거취가 신문 같은 데를 통해 알려지리라고 은근히 살펴봤었다. 나라의 민주화를 걱정하고 부패한 위정자들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열렬히 토로했던 그의 기개로 보아 애국적인 활동을 계속하리라 여겨 왔었다. 그런데 일찌감치 타국살이를 하면서 머리가 허옇게 퇴색되어 나타나다니, 정말 그 덧없는 모습이 너무나 처량했다. 아직도 사기지 못하고 남아 있는 미움과 분노의 한편으로 연민의 정도 고개를 내미는 것을 어쩌지 못했다.
  민여사는 이런 모든 의문을 추석인에게서 직접 듣고 싶었다. 그리고 삼팔따라지라는 이유로 한마디 항변도 못하고 배신당해야 했던 이 민귀숙이,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꼭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밴쿠버에 가는 길로 추석인과 만나기로 온천장에서 약속을 했던 것이다. 민여사 일행이 숙박하기로 예약한 호텔로 추석인이 찾아오기로 했다.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오리라는 추상같은 기대로 어금니를 물고 얼마나 정신없이 뛰던 세월이었던가.
  이튿날 민여사 일행은 아침 일찍 관광버스 아리랑을 타고 재스퍼를  떠나 마지막 행선지인 밴쿠버를 향했다. 칠백구십사 킬로미터, 장장 10시간 이상의 버스여행 길이다. 관광버스 아리랑은 재스퍼 시내를 벗어나자 경치 좋은 롭슨 파크를 거쳐 캠룹스에 이르자 뜻밖에 준 사막지대(準沙漠地帶)가 나타났다. 사막성 식물 등 사막 특유의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사막 길을 달린 지 두 시간 후 버스는 사막 풍경을 털고 유명한 휘레이저 계곡에 들어섰다. 강물이 용트림하며 굽이쳐 흐르는 계곡은 장관이었다. 여기서 잠시 버스를 세우고 계곡과 헬스 게이트(지옥문)를 구경했다. 이곳을 지나면 이내 밴쿠버로 통하는 시원한 하이웨이에 들어선다.
  관광버스 아리랑이 밴쿠버에 도착한 것은 오후 6시, 해는 아직도 서산에서 많이 떨어져 있었다. 10시가 넘어야 해가 진다. 세계 4대 미항(美港)중의 하나인 밴쿠버 지역은 겨울철에는 비가 많지만 여름에는 건조한 편이고 매우 쾌적하다.
  민여사 일행은 호텔에 여장을 풀자 곧 시내 관광에 나섰다. 오는 길에 신비의 경지에 이르는 경치가 계속되고 또한 많은 볼거리들이 있어서 그런지 모두에게 피로한 기색은 없었다. 2박3일의 일정으로 산과 숲과 들판과 바다가 어우러져 묘한 조화를 이룬 즐비한 명소를 찾아 밴쿠버를 관광하자면 바삐 서둘어야 했다. 거기다 골프까지 즐기기로 했으니 시간이 빠듯하다.
  먼저 세계적인 스탠리 파크를 찾았다. 태평양을 끼고 있는 이 공원은 태고와 현대가 공존하고 서부 해양성 기후로 인한 울창한 자연림과 항구가 조화를 이루고 있어 무척 감동적이었다. 이어서 롭슨 거리를 거쳐 북미에서 두 번째로 크다는 차이나타운에서 늦은 만찬으로 북경요리를 먹고 10시경에 호텔로 돌아왔다.
  호텔 라비에서는 추석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민여사는 호텔 방에 들어가 산뜻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그녀는 좀 떨어져 서 있는 박여사에게 고개를 살며시 끄덕이고 나서 추석인을 따라 밖으로 나왔다. 야무지게 따지겠다는 언외의 암시가 담긴 고갯짓이었다. 추석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두 사람은 시내를 벗어나 요트 하버 가까이에 있는 카페에 들어갔다. 시내와 바다의 야경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무드 만점인 곳이다. 대화를 나누기에 적당해 보였다.
  민여사의 의견에 따라 두 사람은 애플 브랜디 위스키 한 병을 시켜놓고 마주 앉았다. 곡목을 알 수 없는 샹송이 은은하면서도 선정적으로 흘러나왔다. 서울 무교동에 있었던 판잣집 이층 다방 한구석에서 추석인과 은밀히 손을 잡고 54년도 당시 한창 유행했던 이브 몽땅의 ‘고엽’ 등의 샹송을 듣던 옛날이 되살아났다. 민여사는 회상을 털어 버리듯이 고개를 서너 번 흔들면서 큰 결단이라도 하듯 먼저 입을 열었다.
 “캐나다에서 이민생활을 하시다니 정말 뜻밖이네요. 그래 그 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민여사는 브랜디를 스트레이트로 마셨다. 그리고 강한 시선으로 추석인의 얼굴을 덮었다.
추석인은 말없이 화이트와인 글라스만 만지작거렸다. 나를 배신하고 얼마나 잘 살고 있느냐고 단도직입적으로 추궁하듯 묻는 민귀숙의 질문에 당황하는 빛을 감추지 못했다.
 “나라를 염려하는 일념이 대단했었는데 어떻게 나라를 떠날 생각을 했는지 그게 정말 궁금하네요.”
민여사의 계속되는 말에는 이제 비아냥의 가시까지 내뿜고 있었다.
 “다 지나간 옛일이 아니겠소. 그때 상황으로 봐서 우리가 맺어지기에는 여건이 워낙 너무 나빴었소. 그래서 집안의 반대가 완강했었지. 더구나 내가 장손이다 보니 우리의 관계가 더욱 더 용납되지 않았던 거요.”
  추석인은 독백하듯 말했다. 끝까지 사랑하겠노라 철석같이 약조했던 여자에게 등을 돌렸던 떳떳치 못한 과거가 아직도 등덜미를 잡는 일말의 양심은 있었음인가.
  민여사는 곤욕으로 뒤덮인 추석인의 얼굴에서 시선을 비키고 말았다. 그의 주름진 얼굴을 더는 바라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칠십이 다 된 퇴물을 붙잡고 앉아서 너절한 변명 따위를 들어서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세월은 가도, 강물은 흘러서 다시 오지 않아도, 첫사랑의 아픔은 가슴 마디마디 도져온다고 노래한 시인이 있다. 
  민여사는 허리를 펴면서 술병을 들어 추석인의 글라스와 자신의 빈  글라스에 술을 가득 따랐다. 그리고 자기 글라스를 들었다.
 “자, 우리 건배나 하자구요. 건배!”
 “그럽시다. 건배!”
  추석인도 민여사의 안색을 힐끔 살피며 글라스를 들었다.
  민여사는 글라스를 비웠다. 그리고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면서 자신의 지나온 날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이것 역시 추석인을 만났을 때 들려주리라고 작심했던 레퍼토리의 하나이다.
 “추석인 씨가 떠나간 후 나에게 닥친 상실시대는 정말 견디기 힘들었죠. 하지만 좋게 생각하면 그것이 전화위복의 요인이 되었다고나 할까요.”
  민귀숙은, 추석인으로 인해 받은 상처를 견디지 못하고 죽을 결심까지도 했었다. 심한 모멸과 배신감에서 오는 역동적인 감정으로 타락하려고도 했다. 그러나 그도 저도 용납되지 않았다. 죽음과 좌절까지도 그녀를 외면했다. 노모와 그밖에 사촌오빠의 남은 유족들을 위해서 당장 돈을 벌어야 했다. 사촌올케의 친정도 이북이라 모두가 사고무친이었다. 이대로 방황을 계속하다가는 떼로 굶어죽을 절박한 지경에 처했다.
  귀숙은 마음을 다잡았다. 추석인 너, 누가 더 잘 사는지 두고 보자! 그녀는 추석인의 얼굴을 지워버리기 위해 몸을 혹사하듯 오기로 쉬지 않고 일을 했다. 어머니와 올케, 그리고 자신까지도 손끝이 야무진 점을 이용해서 각종 의류 제품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주로 미국 둥지에서 전시 구호물자로 보내 온 헌 옷가지와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오는 각종 군복 등속을 사들여 한국 사람들에게 맞도록 수선하고 재생해서 시장에 내다 팔았다. 당시 옷감이 없어 새 옷을 만들 형편이 아니었다. 또 시민들에게는 새 옷을 사 입을 경제적인 여유도 없었다. 시장마다 헌옷 거래가 성했다. 일감을 구하는 일은 귀숙이 전담했다. 구호기관이나 수혜 대상자들을 찾아다니며 지급되고 배급되는 헌옷가지를 돈으로 헐값에 사거나 혹은 곡식과 바꾸었다. 미군부대가 있는 여러 기지촌도 누비고 다녔다.
  이 착상은 주효했다. 힘이 들었지만 돈벌이가 쏠쏠했다. 장사가 잘되고 일이 많아지자 귀숙은 재봉틀을 구하고 손재주 있는 여인들을 고용했다. 밥만 먹여줘도 감지덕지하던 곤궁한 시절이다. 그래서 조금씩 기업화의 틀을 잡아갔다. 이 무렵 귀숙은 결혼을 했다. 같은 평안도 출신이었다. 추석인으로 인해 생긴 남자 증오 편집증은 그녀를 평생 독신으로 몰아갈 듯했으나 사업을 키우기 위해서는 능력 있는 남자의 손이 절실했다.
  과연 남편은 사업 수완이 대단했다. 남편은 헌옷의 수리 재생뿐만 아니라 우선 재래식 직조기를 만들어 새 옷감을 짰고 그것으로 옷을 지어 팔기 시작했다. 제품공장은 착실히 성장했다. 남편에 대한 귀숙의 정감도 자리를 잡아갔다. 아이도 남매를 낳았고 가정적인 행복의 의미도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지금 아들은 변호사 개업을 했고 딸은 출가해서 대학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의류 제품공장은 종업원이 삼백 명이나 되는 건실한 중소기업으로 성장했다. 남편과는 오년 전에 병으로 사별했지만, 귀숙은, 사위의 도움을 받아 공장을 오히려 확장했다. 지금은 당당한 여성 사업가로 알려지고 있다.
  추석인과 헤어져 호텔에 돌아온 민여사는, 궁금해서 기다리고 있는 박여사에게는 피곤하다는 핑계를 대고 샤워를 한 뒤 침대에 들었지만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집안의 장손임에도 추석인은 처가 쪽의 연줄로 일찍 캐나다에 이민 왔다. 수년 동안 이질적인 문화와 언어 등으로 마음의 갈등을 극복하기에 무척 힘이 들었노라고 했다. 슬하의 두 아들은 제각기 외지에서 직장에 잘 나가고 있다지만 몇 년 전에 상처한 추석인은 독신 아파트에서 고독하게 지내는 것 같았다. 그의 아파트에 같이 가서 직접 살고 있는 꼴을 확인하고도 싶었지만 고만두었다. 보지 않아도 독신 아파트에서 사는 형편이 오죽하랴. 나라와 민족이 걱정되어 거리로 뛰쳐나와 위정자들을 질타하던 추석인이 왜 남의 땅에 살기로 작정했는지에 관해서는 더 캐묻지 않았다. 역시 궁색한 변명을 들어 무엇하겠는가.
이튿날부터 민여사 일행은 밴쿠버에 흩어져 있는 관광지를 두루 돌아다녔다. 빅토리아의 버차트 가든을 비롯해서 유명한 명소를 두루 구경하고 한국에 돌아가기 전날은 하루 종일 골프를 즐겼다. 밴쿠버는 골퍼들의 낙원이라고 일컬어질 만큼 훌륭한 골프클럽이 많다. 부유한 가정의 여인들은 마음껏 호화스럽게 캐나다를 즐겼다. 돈을 미친 듯이 뿌린다는 한국 여인들답게 쇼핑도 했다.
  민여사는 귀국하기 전에 추석인과 다시 만났다. 그리고 그를 한국에 초청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오늘의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다. 추석인이 사양했지만 강권하다시피 초청에 응하도록 했다. 그녀의 의중을 읽고 있는 추석인은 결국 한국에 가기로 결심했다. 그녀를 참담하게 했던 과거의 과오를 조금이나마 보상하려는 심리가 크게 작용했다.
  가을빛이 막 나뭇잎에 찾아오기 시작할 무렵 추석인은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십여 년만의 귀국이다. 아버지의 부음을 듣고 온 이래 처음이다. 그 동안에도 한국은 많이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는 민여사가 보내준 차를 타고 서울 시내로 들어가 역시 미리 마련된 호텔에 들었다.
  이날부터 추석인은 민여사의 환대를 받았다. 삼백 평이 넘는 그녀의 호화 주택에 두 번이나 초대되어 과분하리만큼 차려진 성찬을 대접받았고, 삼백 명의 종업원이 움직이는 그녀의 혼백이 배어 있는 의류제품 공장도 보았다. 그녀 말마따나 삼팔따라지의 놀라운 자수성가는 자랑할 만했다.
  추석인은, 민여사가 하자는 대로 따랐다. 자신의 성공과 부를 과시하려는 그녀의 간절한 의도를 충분히 알고 있었기에 그 또한 과장하리만큼 놀라고 위축된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역시 배신의 참회를 아직도 자신 스스로가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고향에 가서 선형과 친척들을 찾아보고, 옛 친구들을 만나는 데도 운전기사가 딸린 고급 승용차를 민여사가 내주어서 추석인은 아주 편리하게 사용했다. 뿐만 아니라 만나는 사람들마다 대하는 태도가 달랐다. 빌려 타고 다니는 고급 승용차 하나가 갑자기 신분 상승의 절대적인 요인이 되고 있는 데 그는 새삼스럽게 놀랐다. 과연 부자는 귀신도 부린다더니 돈의 위력은 인간을 여러 번 변신케 함을 새삼 깨닫고 한편 씁쓸해짐을 어쩌지 못했다.
  일주일이 지났다. 캐나다로 돌아가기 전날 밤 민여사는 추석인의 몇몇 친구를 고급요정으로 초대해서 호화판 술자리를 벌여 주었다. 추석인과 열애 중이었을 때 알고 지내던 친구들도 있었다. 사랑했던 남자에게 삼팔따라지라는 이유만으로 버림받았던 여인이 지금 자신을 버렸던 남자 앞에서 어떤 모습으로 행세하고 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싶은 민귀숙의 의도적인 술자리였다.
  추석인은 노골적으로 귀숙의 배려에 감읍함을 드러내면서 친구들과 술을 마셨다. 친구들에게 자신이 초라하게 비쳐져도 개의치 않았다. 칠십이 다 된 나이다. 언제 다시 고국을 방문할지 모르는 처지이다. 이렇게라도 해서 귀숙에게 아직도 남은 상처가, 아니 그녀의 자존심이 조금이라도 회복된다면 천만 다행한 일이다. 이 일은 바로 추석인 자신도 가슴 한구석에 남아 있는 과거의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적당하게 취기가 오른 추석인은 밤늦게 호텔로 돌아왔다. 술자리를 마련해 주고 먼저 돌아간 민귀숙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술자리가 재미있었나요?”
  민여사는 아주 밝은 얼굴로 물었다. 의도한 일이 이루어졌을 때의 포만감이 얼굴에 가득했다.
 “고맙소. 대접을 너무 과분하게 받았소. 친구들도 아주 고마워합디다.”
 “그거 다행이군요. 그런데 벌써 캐나다로 돌아가셔야 할 날이 되었네요.”
 “그 동안 폐가 너무 많았소. 염치없는 노릇이오.”
 “천만예요. 이렇게나마 만나서 대접할 수 있는 여유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그리고 이것 받으세요.”
  민여사는 미리 준비해온 듯 봉투를 핸드백에서 꺼내 추석인 앞으로 내밀었다.
 “…이게 뭐요?”
 “변변치 않은 내 성의이니 거절치 마세요. 봉투에 미화 오만 불을 넣었어요. 혼자 사시는 형편이 어려우신 것 같아 조금은 도움이 될까 해서요.”
  추석인은 현기증이 이는 듯해서 눈을 스르르 감았다. 그러면서도 민여사의 다음 말을 놓치지 않았다.
“원하신다면 한국에 돌아와 살도록 내 주선할 용의가 있어요. 살만한 아파트를 마련하고, 물론 생활비는 걱정하실 필요가 없구요.”
  추석인은 여전히 묵묵부답인 체 이번에는 눈길을 창 밖 어둠 속에 던졌다.
 “어때요. 그럴 의향이 없으신가요?”
  민여사는 고개를 약간 갸웃하면서 추석인의 옆얼굴을 빤히 건너다봤다. 추석인이 비굴한 웃음을 담으며 감지덕지하는 반응이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추석인은 한참 만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귀숙씨가 이렇게 성공한 모습을 보니까 정말 더할 나위 없이 기뻐요. 그리고 변변치 못한 나를 환대해 주고 또 내 앞날까지 걱정해 주니 정말 고맙소. 많이 남지 않은 인생이지만 그 호의는 영원히 잊지 않으리다.”
 “내가 공치사를 듣자고 이러는 건 아니에요. 진심에서 하는 말입니다.”
 “왜 그걸 모르겠소. 하지만 현재의 처지에 나는 만족하고 있소. 캐나다 정부가 주는 노년 연금으로 생활에 어려움은 없어요. 그리고 용도 폐기된 몸이 조국에 돌아온들 뭘 하겠소.”
민여사는 미간을 찌푸렸다. 결혼 조건에 가정의 경제적 조건을 제일로 꼽았던 사람이고 보면 보상 없이 무조건 경제적인 도움을 주겠다는 데 주저할 까닭이 없지 않은가. 갑작스런 호의에 당황했겠지. 하긴 아무리 철면피한 인간이라도 선뜻 받아들이기는 힘들겠지. 좀 시간이 지나면 머리를 조아리며 손을 벌릴 것이다. 돈에 굴복하지 않는 위인이 어디 흔한가. 그녀는 더는 권하지 않았다. 추석인의 표정에서, 그녀의 위상을 높이 인정하고 또한 분명히 과거를 뉘우치는 듯한 심정을 읽은 것에 일단은 만족하며 시간의 여유를 갖고 그가 돈 앞에 머리를 숙일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추석인을 한국에 불러들인 의도는 어느 정도 이루어진 셈이다. 추석인의 배신으로 인해 가져야 했던 상실시대의 망가진 자존심과 아직도 남아 있는 분노가 이제 조금은 보상받았고 소멸된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가슴에 박힌 옹이를 이런 방법으로 빼내려고 얼마나 별러 온 세월이던가.
  추석인이 캐나다로 떠난 일주일 후였다. 민여사는 뜻밖에 추석인의 가장 가까웠던 친구한테서 골프를 같이 치고 싶다는 제의를 받았다. 추석인과의 교제가 한창일 때 자주 만나 친밀했던 사이며 모 부처의 차관까지 지냈던 사람이다. 그녀는 쾌히 그의 제의를 받아들었다. 추석인의 현재의 심중을 간접적으로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여겼다.
  민여사는, 박여사를 불러냈다. 자신의 첫사랑의 상처가 어떻게 봉합되어가고 있는가를 추석인의 친구를 통해 직접 들려주고 싶었다. 회원권을 갖고 있는 서울 근교 골프클럽에서 추석인의 친구와 만났다. 이날 민여사는 공이 잘 맞았다. 본시 핸디 15는 되는 실력이지만 18홀을 도는 동안 다섯 개의 보디를 잡는 평소 이상의 실력을 뽐냈다. 역시 골프는 심리적인 영향에 크게 좌우되는 운동이다. 추석인의 가장 가까웠던 친구의 요청으로 골프를 치고 있다는 사실이 그녀의 스윙을 정확하게 했던 것이다.
골프를 끝내고 나서 역시 추석인의 친구가 저녁 식사를 같이 하자고 제의했다. 세 사람은 골프클럽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유명한 불 갈비 가든으로 갔다. 갈증을 느낀 터라 모두 시원한 맥주를 마셨다. 불 갈비도 입에 맞았다.
  민여사는 자주 추석인의 친구에게 눈길을 주었다. 그가 본론을 꺼낼 때가 되었다 싶은 데도 뜸을 들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추석인이 지난날의 잘못을 반성하고 돌아갔다는 말을 전하는 한편 추석인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주길 바란다는 부탁을 하고자 골프 회동을 원했을 게 분명하다.
  맥주잔이 여러 번 돌고 불 갈비 어지간히 뜯고서야 추석인의 친구는 비로소 입을 열었다.
 “추석인, 이 친구의 말 못할 과거 사정을 이젠 털어놓을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추석인이 원하는 바는 아니에요. 하지만 이번에 추석인이 왔을 때, 이 친구에 대한 민여사의 심정이 아직도 편치 않음을 알고서야 이대로 더는 입을 다물고 있을 수가 없더군요.”
  옳거니, 그러면 그렇지. 이제야 추석인에 대해 동곳을 빼려는 구나, 하면서 민여사의 청각이 추석인의 친구에게 쏠렸다.
  추석인의 친구는 잔에 남아 있는 맥주를 마저 마시고 나서 말을 계속했다.
 “물론 민여사의 감정이 평온할 리가 있겠습니까. 너무나 당연합니다. 하지만 불가항력적으로 캐나다로 쫓겨 가야 했던 추석인의 비애와 좌절을 이제는 이해하셔야 합니다.”
민여사는 훔짓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박여사도 놀라는 그녀를 마주 보고 나서 추석인의 친구에게 의아한 눈길을 보냈다.
  민여사가 더듬듯이 물었다. 
 “쪼 쫓겨 갔다니요?....”
 “당시 독제 타도를 열렬하게 부르짖던 추석인은 정보기관의 주목을 받았었죠. 그래서 검찰에서 구속하기 직전에 있었어요. 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어업사업에도 특별 세무감사 등 갑작스런 압력을 받게 되었죠. 추석인은 종가 집안의 장손 아닙니까. 종친들이 모두 나서서 추석인의 안전을 도모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그러다가 마침 캐나다와 인연이 있는 가정의 규수를 소개받아 갑자기 결혼했고, 그 길로 캐나다 이민을 은밀히 결심한 겁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죠. 신변의 위협과 가정의 파탄에 초연할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