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 양

 

 

 

 박 봉 금

 

푸른 숲이 즐비하게 우거져 무더위를 식혀주던 때가 엊그제 같았는데, 어느덧 가을에 접어들어 형형색색 고운 빛으로 길손들 시야를 번쩍이게 한다. 가을은 내가 살아온 인생과 자꾸만 결부시켜 많은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꽃잎 하나에도 엷은 마음에 사로잡히기도 하고, 성급한 낙엽을 보면서 눈물 흘리기도 한다. 지저기는 새소리를 반주삼아, 나 자신에게 살아왔던 삶을 묻고, 때로는 고뇌에 찬 미소로 화답하기도 한다.

이순 길에 놓여있는 난 지금 얼마만큼의 열매를 맺고 있나! 세월의 빛을 잘 받아 고운색깔에 단맛이 풍부한 홍시처럼 기쁨에 찬 삶이였을까? 아님 겉만 화려해 향도 없고, 떫은 땡감처럼 슬픔이 가득한 삶일까? 가을은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허용함으로, 더불어 새로운 희망을 설계할 수 있어 쓸쓸하지만 행복한 계절이기도하다.

나는 오늘도 예정된 공원으로 산책을 나선다. 길가엔 자태를 뽐내는 사철나무 잎에는 밤새내린 이슬에 젖어 반짝이며 인사한다. 며칠 전부터 공원에 들어서면 마주치는 노부부가 있었다. 항상 안노인은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벤치에 앉아있고, 바깥노인은 체조하면서 변함없이 인사한다. 처음엔 그저 인사만 주고받으며 지나쳤는데, 자주 볼수록 무슨 사연

이 있을 것 같은 생각에, 오늘은 노부부 곁으로 다가가 나는 말하기 시작한다.

안녕하세요?

, 안녕하십니까?

매일 운동을 열심히 하시네요?

이렇게라도 해야 건강을 지키지요!

그런데 할머니는 어디 불편하신가요?

저 사람은 운동 잘 안합니다.

처음에는 같은 동족이면서도 그저 인사정도 나누었다. 그런데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달리 쉽게 말문을 열지 않았다. 내가 여쭙는 말에 그저 잔잔한 미소로 답변이 있을 뿐이었다. 쉽사리 마음을 열지 못하는 할머니에게 성큼 다가가서 좀 더 적극적인 면을 보여드리기 시작한다. 무슨 사연이 있기에 변함없이 한자리에 앉아있는지 물었다. 하지만 다가갈수록 거리감을 두며 속내를 비치지 않으려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성격이 밝은 할아버지가 나에게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할 때면 할머니는 할아버지 옆구리를 쿡 찌르면서 말한다.

남한테 쓸데없는 소리 하지마세요.

이 사람이! 쓸데없는 소리라니, 왜 말도 못하게 하는 거야?

노부부가 티격태격 다투기 시작해, 너무 서두른 내가 미안하여, 오늘은 그만 집으로 돌아가려고 일어서니, 할머니는 멋쩍은 듯 할아버지께 곁눈을 흘기면서 말한다.

내일 또 만납시다.

그럽시다. 할머니! 그럼 안녕히 가십시오.

그래도 할머니가 싫지 않은 여운을 남기고 가셔서, 다음번에는 좀 더 자세하게 사연을 나눌 수 있다는 기대감에 집으로 돌아왔다. 언제나 그랬듯이 하루일과에 문득문득 노부부가 떠올라 생각한다. 나 역시 지명(知命)을 지나 이순(耳順)에 접어든 길목에서 그 노부부와 무엇이 다르랴. 고희(古稀)에 접어든 할머니는 간간히 눈물을 닥아 내는 모습을 목격한 날은, 더욱더 내 마음이 아프기만 했다. 다음날 어김없이 그 자리에 또 앉아있는 노부부에게 다가가 인사한다.

 

[1]

밤사이 안녕하셨어요? 또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젊은 댁도 운동을 아주 열심히 합니다. 그려!

할아버지는 활발하시고 긍정적인표현으로 직설적인반면, 할머니는 내성적이면서 자신의 신변(身邊)에 대해 남에게 알려지는 것을 꺼려하며 조용했다. 항상 입가에 슬픈 미소로 화답하는 소수적인성격임을 알 수 있었다. 어제와는 달리 살갑게 대해주는 할머니에게 감사하였다. 나는 착 달라붙어 할머니의 거친 손을 만지며,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주고받기 시작한다.

1970년 중반에 4남매를 데리고 이민 와서 이곳에 정착한 노부부는 온갖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왔다. 오직 자식들을 위해 이국땅에서 말 한마디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살아왔다. 자식들만은 부모와 다른 행복한 삶을 살아가라, 정성을 다 쏟아 뒷바라지하며 성장시켰다. 자녀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각자 전공을 살려 좋은 직장을 구해 집을 나갔다. 그런 자식들을 보면서, 그제야 한시름 놓으며 건강하고 현명한 삶을 살아가기를 멀리서 지켜보며 살아왔다.

그러나 부모는 정성 드려 키워왔다 자부하지만, 자식들에게는 성장하는 과정에 뜻하지 않은 상처를 많이 받아왔던 그 앙금이 도사리고 있었다. 부모가 모르는 어떤 한이 가슴에 서려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늙은 부모에게 적개심으로 마음에 상처가 되는 말을 서슴없이 해댄다. 그동안 할머니께서 왜! 허공만 바라보며 눈물을 짓고 있었는지 조금은 의아심이 풀렸다. 서두를 끄집어내는 순간마다 한숨을 오르내리 쉬기를 연거푸 하였다. 우선 할머니의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고 싶었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분위기를 다른 쪽으로 유도하였다. 나는 먼저 명칭부터 고치자고 제의한다.

할머니! 저와 여덟 살 위이신 분에게 할머니라고 부르려니까 좀 그러네요! 할머니 생각은 어떠세요? 저는 언니라고 불러드리고 싶은데요.

나 역시 댁이 말끝마다 할머니라고 하니까 듣기 싫었는데, 앞으로 나에게 언니라고 불러.

어머나! 그러셨어요? 진작 말씀을 하시지요.

명칭을 고치자는 말에 서로 동의하여 한결 편안한자세로 말할 수 있어 좋았다. 객지 벗 십년이란 말이 있듯이 비슷한 또래는 아니지만, 그래도 속 있는 말을 주고받을 수 있으려면, 먼저 거리를 두어선 안 되겠기에 언니라고 부르기로 결정했다. 곁에서 듣고 계시던 할아버지는 내내 답답했던 아내가 모처럼 밝은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모습이반가워 내게 물으신다.

그럼 나한테도 할아버지라고 부르지 말아야지? 하하하

어떻게 불러드릴까요? 젊은 오빠! 호호호

이렇게 한바탕 웃음으로 가까운 이웃사촌이 되어, 할아버지, 할머니가 아저씨와 언니로 바뀌어, 잠시나마 시련을 잊을 수 있었다.

젊었을 때 저양반이 약주가 과해서 많이 힘들었어.

지금도 약주를 과하게 드세요?

지금은 먹고 싶어도 못 먹지!

나는 이말 끝에 곁에 계시던 아저씨의 얼굴 표정이 굳어지는 모습을 발견하고 말했다.

언니! 오늘은 이만 가십시다. 다음에 조용하게 둘이만나서 자세한 말씀 듣겠습니다. 지금 아저씨표정이 그냥 넘길 일이 아닌 것 같아 불안합니다.

그래, 다음에 내가 연락 할 테니, 그때 둘이만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그럼, 아저씨 오늘 하루도 행복하세요.

 

[2]

아저씨는 혹여 우리가 당신 흉이나 보지 않을까, 노심초사하시는 것 같았다. 나는 언니의 손바닥에 내 전화번호를 적어드리고 인사와 함께 돌아섰다. 그리고 며칠 후 마침내 언니한테서 전화가 결려와 주소를 받아들고 준비하여 찾아간다.

아저씨는 어디 가셨어요?

매주 두 번씩 친구 만나러 한인 타운에 나가곤 해.

그럼 언제쯤 들어오세요?

아침에 나가면 저녁이 다 되어서야 돌아오곤 해.

나는 시카고에서 이곳으로 도착해 6개월 동안 아무도 없어 참으로 외로웠는데, 모처럼 이웃언니를 만나 커피한잔을 앞에 놓고,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를 확 풀기 시작한다. 먼저 언니는 가족부터 소개한다. 넷 자녀 중에 큰딸(영희)은 가까이서, 둘째딸(진희)은 조금 떨어진 곳에, 셋째 딸(주희)New york에서 교사로 있으며, 막내인 아들(경식)Texas에 살고 있다한다. 처음 아들이야기부터 시작하려 한숨을 오르내리며, 목이 말라서인지 커피를 단숨에 들이킨다.

어휴 이 모든 것이 다 내 죄이지!

무슨 말씀이세요?

전생에서 지은 죄가 만아 이승에서 못 볼꼴을 평생 겪으며 살아온 내 심정을 그 누가 알겠어?

이렇게 자기의 죄라고 말하는 언니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교포라면 누구나 생각하지 못했던 일에 부닥치면, 정서적으로 먼저 자신도 모르게 지은 죄 값이 아닌가, 종종 그럴 때가 없지 않아 있기 마련이다. 한바탕 모정의 눈물 흘리던 언니는 이제야 마음이 안정이 되는 듯 이야기를 시작한다.

하나뿐인 아들 때문에 마음이 너무 아파서 어쩔 때는 내 가슴을 쥐어뜯곤 한다네.

순리대로 풀어가야지, 그렇다고 언니 몸에 자해를 해서는 안 되지요.

누구에게 이런 속마음을 시원하게 말할 수 있겠어? 누워서 침 뱉기지!

이제 저를 만났으니, 언니의 답답한 심정을 확 풀어내세요.

며칠 전 아들에게 다녀왔다는 언니는 차라리 보지 않았던 것보다 더 마음이 상했다. 그러나 자식이 어려움에 처해있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 없어 가서보니, 살아가는 꼴이 말이 아니더라는 언니는 또 답답한 가슴에 휴~휴 하며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 잠시 아무 말이 없던 언니의 얼굴에 누구를 원망하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세월이 물 흐름과 같아 한번 지나면 되돌아오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무슨 생각으로 삶을 그렇게 살아왔는지, 지금도 이해가되지 않는다며 과거를 떠올려 말하기 시작한다. 유난히 유교를 숭배하며, 봉건적사상이 투철했던 아저씨! 처음엔 이곳생활에 적응을 못해, 한동안 술로 허성세월을 보낸 적이 있었다고 한다. 철도나지 않은 어린자식들에게 자신이 살아온 삶과 삼강오륜(三綱五倫)과 삼종지의(三從之義)를 요구하며, 이곳 현실을 외면한 채, 자기 방식대로 교육을 시키려했다. 부모의 심리상태와 자녀에 대한 삶에 지대한영양이 따른다는 현실을 알지 못했다. 삶에 초조한 부모는 지나치게 엄격하여 성장하는 자식들에게 성격형성 장애를 초래하기 쉬운 법이다. 자기의 생각과 의견만이 올바르게 사는 삶이라, 자녀들 인격을 무시해버린다. 모든 사물판단까지 자신의 뜻에 따라야 직성이 풀리는 아버지였다. 결과적으로 경식은 자신의 판단이나 생각을 늘 인정 못하고 의심하였다. 항상 무언가 모자라 주눅 들다보니, 판단력이 흐려져 힘든 삶이 연속이라는 말을 한다.

 

[3]

정작 자식들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안은 시점에서 때로는 무력으로 다그쳤지만, 조선시대에나 통했을 법한 법도를 이곳에서 교육받고 성장하는 자녀들에게 무리였다. 또 요즘 여성사회참여가 활발해진 현실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의 견해나 관점을 중요시하며, 도덕적인신념으로 딸들에게 원했지만,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문다고 했듯이, 그런 아버지의 삶에 맞설 수가 없어 하나씩 곁을 떠났다.

새장에 갇혀있던 새들을 풀어놓을 때, 날개 활짝 펴 넓은 평야를 향해 날아간다. 하물며 인간이 봉건적인 답답한 공간에서 풀려나니, 거침없이 자유자재로 활개를 치며 굴레를 벗어나 넓은 세상 속으로 떠났다. 방어적 귀인이었던 아버지의 삶에 회유를 느끼며, 경식은 아버지와 똑같은 삶을 절대로 살아가지 않을 것이다. 호언장담하며 떠났던 경식은 독립한지 얼마 되지 않아 불행을 맞이하게 되었다.

경식은 매사에 하는 일마다 실패했을 때는 남의 탓으로 돌렸다. 그러다 하던 일이 잘되었다 하면 자기공이라 생각했다. 상대를 무시하며 독단적인행동에 불행을 자초하고 말았다. 성장하는 과정에 아버지의 관심과 염려가 지나치다보니, 자녀들의 인격형성방해가 되고 말았다. 스스로 지각과 판단이 흐려져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었다. 언니는 피는 못 속인다는 말을 연거푸 하였다. 가슴에 서린 한을 달래길 없어, 흐르는 눈물을 억제하지 못했다. 한없이 울고 있는 언니를 보면서, 나 역시 가슴이 답답해오며 눈물이 맺혔다.

딸들 역시 이기적이고 독선적인굴레를 벗어나 독립하여 떠났지만, 세상은 그리 만만치 않아 힘든 역경과 고난의 연속이었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으면서 새로운 국면에 부닥치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세상을 원망하기 이전에 부모를 원망하게 되었다. 그런데 한 가지 의아한 점은 딸들은 아들에 비해 생각하는바가 정반대라 했다. 한 부모에게서 태어나, 자라온 환경도 똑같은데, 성장해온 과정에 마음에 맺힌 한이 각각 달랐다. 나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무슨 뜻인지 이해가 잘되지 않아 자세한 설명을 듣기 시작했다. 매일 약주가 과했던 아저씨는 무슨 일이든 마음에 들지 않으면 폭언과 폭행을 일삼았다. 그런 아버지를 원망하기 이전에, 딸들은 엄마에게 쌓인 한을 풀어낸다고 했다. 폭행을 당한 엄마에게 위로는커녕 퍼붓는 말은, 무슨 잘못을 그렇게 많이 짖고 살아왔기에, 그 모진 수모를 당하면서 이혼하지 못하고, 끝까지 살아온 엄마의 마음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폭언과 폭행을 일삼는 아버지보다 엄마가 더 원망스럽고 얄밉다는 말로, 엄마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딸들, 그 말을 듣는 순간 자신의 모습이 너무 초라해 죽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럼 맞고 살아오셨다는 말씀이세요?

말도 못해!

아저씨는 처음 타국생활에 적응 못해 외로워 한잔 두잔 술로 위로삼아 계속 마셔댔다. 다음에는 술이 술을 마시게 되고, 결국엔 술이 아내와 자식들, 그리고 자신의 건강까지 해치고 말았다. 지나친 음주는 정력 감퇴, 피로, 신경의 판단력을 둔화시키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정신력과 분별력이 없어져, 인간답지 못한 행동을 하게 된다. 언니 역시 몇 번이고 이혼을 하려고 했었지만, 이국땅에서 여자 혼자 자식들을 키워나간다는 것이, 너무도 무섭고 두려웠다고 한다. 나는 잠시 내 삶을 견주어보았다. 평탄한 삶을 살지 못하고 굴곡이 많았던 내 삶을 생각하며, 내 설음에 언니를 따라 통곡하며 울어댔다. 그러한 가정에서 성장했던 딸들은 사회에 나와서도 모든 남자들을 적대시하였다. 매사조심하며 살아가는 영희에게 한 남자가 끈질기게 매달리어 뿌리치지 못하고 결혼을 했었다. 그러나 신혼여행을 떠난 그곳까지 찾아온 남편 친구들과 밤새 술을 마셔대다 싸움이 벌어졌다.

 

[4]

남편의 주사를 알아버린 영희는 다음날 아침 말없이 혼자 돌아와 곧 헤어졌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술에 취한 아버지의 행패 때문에 가슴에 멍이 들은 영희이었다. 자신은 엄마처럼 살아가지 않겠다는 굳은 신념으로 일사처리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둘째 진희는 술과 거리가 먼 남편을 만나, 매사에 아내를 존중하는 사위를 보면서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교직에 몸담고 있는 막내딸 주희에게 언니는 가끔씩 이렇게 묻는다고 한다.

이제 너도 시집을 가야하지 않겠니?

시집은 무슨 시집이야?

네 나이가 벌써 삼십 중반을 훌쩍 넘어갔지 않니?

나한테 아빠 같은 사람만나서 평생 엄마처럼 살아가라고?

그러니까 좋은 사람을 잘 골라서 가야지!

그런 남자가 어디 흔한가? 지금은 나 혼자서 살아가는 것이 너무 좋아.

한마디로 딱 잘라 말하는 주희에게 언니는 더 이상 말을 못하곤 했다. 아무리 부모자식 간에 원수 되어 잦은 왕래는 없다 해도 어떻게 인연을 끊을 수 있겠는가, 몇 해 전부터 아저씨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병원을 자주 찾게 되었다. 가장 큰 장애는 늙은 부모가 영어를 못하고 보니, 젊어서 자식들에게 잘못을 했다하더라도, 늙어 몸이 아파오니 자식을 찾게 되었다.

셋은 각각 다른 주에 살고 있으니, 어찌할 도리가 없다지만, 영희가 곁에 있어, 매사에 불려와 통역을 해야 하는 결과에 봉착되면서 심심치 않게 말다툼이 일어나곤 했다. 처음에는 군소리하지 않고, 부르면 달려와 일을 처리하곤 했었다.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했던가!아저씨는 영희가 하는 일마다 매사에 마음에 들지 않아 트집을 잡아내어 다투었다. 당신이 살아오면서 자식들에게 본의 아닌 상처준 것을 깨닫기는커녕, 너희들 때문에 고생하느라 말 한마디 배우지 못해, 늙어 이런 고생을 해야 한다고 불평을 늘어놓기 일쑤였다. 그럴 때마다 도와주기 싫다고 아버지에게는 말 못하고, 허물이 없는 엄마에게 퍼부어댄다. 늙었어도 기백(氣魄)은 더욱 굳세어, 가족들의 말은 콩으로 메주를 쓴다 해도 듣지 않으므로 가족들의 화합이 날이 갈수록 더욱더 어려워지게 되었다.

무더위가 한층 극성스러운 날, 아저씨는 변함없이 아침식사를 마치고 친구들을 만나려나가셨다. 그런데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 아니던가! 가족들에게는 지나온 자신의 삶이 후회가 되었을지라도, 가족 앞에서 자신의 잘못된 삶을 인정하는 일이 익숙하지 못하였다. 또한 남편과 아버지란 명목으로 자신의 체면이 상하는 것이 염려되어 더욱 강력하게 지속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다보니 습관적으로 다시 폭언과 폭력을 가하게 되고, 잠재한 가능성에 대해 인정을 못하게 되었다.

술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마셔댄다는 아저씨! 그날도 점심과 저녁을 건너뛴 채 친구들과 계속 술을 마셔대며, 자기의 삶 수준에 맞추어 이야기가 오고가다 말다툼이 일어났었다. 아무리 친한 친구일지라도 상대방을 무시하고 자기주장만 내새워 가르쳐이기려고 들면, 스스로 불행을 초래하게 된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새다라는 말이 있듯이, 남에게 엄격한 잣대를 갖다 대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방을 잡으려고 드니, 주위사람들에게 고통만 안겨주는 일이 빈번하기만 했다. 우리가 살다보면 이기고도 질 수 있고, 지고도이기는 이치가 있다. 아저씨는 남을 배려하지 못하고 이기적인습관성에 죽음의 문턱까지 가게 되었다.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아 과한 약주로 인해 심장대동맥이 막혀버려 응급실로 실려 갔었다.

 

[5]

연락을 받았던 언니는 아무리 미워도 남편이었기에, 병원으로 달려가서 눈감고 있는 아저씨를 바라보니,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최할 수 없었다. 수술실로 들여보내놓고, 혹시라도 잘못되어 치상(治喪)을 치루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언니는 자식들에게 연락했다. 장시간에 수술은 무사히 끝이 나고 입원실로 옮겨갔다. 객지에 머물고 있는 자식들이 하나씩 병원에 도착했다. 아주 오랜만에 가족들이 한곳에 모였다. 그러나 자식들은 슬픔에 앞서 술 때문에 이 지경까지 온 것에 툭 내뱉는 말이 엄마에게 충격이었다. 이유야 어찌되었던 아버지가 쓰러져 사경을 해매이고 있는데, 슬프지 않더라도 조금은 슬픈 표정을 지으며 말 한마디 따뜻하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먼저 진희가 말했다.

내가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어!

지금에 와서 그런 말이 무슨 소용이 있니! 죽지 않고 살아나면 또 마실 텐데, 내 말이 틀려 엄마 말해봐?

영희는 콧방귀를 뀌며 내뱉는 말이었다. 아버지의 무사함을 듣고, 타주에 살고 있는 아이들은 더 지체할 수 없다는 말을 남기곤 떠났다. 아버지가 회복될 때까지 영희가 수시로 방문하여 건강상태를 지켜보며 수고가 많았다. 나는 언니에게 지난 스토리를 들으면서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는데, 핸드폰이 울려 받으면서 창밖을 쳐다보니, 어느덧 해가 서산에 기울어, 이만 집으로 돌아가려고 일어서는 나에게 언니는 말했다.

동생 고마워 내 이야기를 들어줘서, 오늘은 이만 조심해서 가.

언니 너무 속상하게 생각하지 말아요.

조만간 내가 또 연락할게.

몇 시간째 엄마가 돌아오지 않아 걱정되어 걸려온 딸의 울음석인 목소리였다.

엄마! 지금 어디야?

! 지금 가고 있어, 조금만 기다려 알았지?

얼마나 걸리는데?

거의 다 왔어!

빨리 와?

나는 집으로 가다가 공원에 들러서 차를 세워놓고, 오늘 한나절 들었던 이야기를 정리해야 했다. 항상 언니가 서글픈 표정으로 앉아 있던 그 벤치에 앉아서 깊은 생각에 잠겼다.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이곳으로 이민 와서 살아가는 우리1세들은 한번쯤은 다 겪고 살아왔음이라. 밖으로 표현을 하지 않아서 모를 뿐이지, 어느 가정이든 크고 작은 일들을 겪으면서, 삶에 고통을 극복하며 살아온 가정들이 많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각자 주연만 다를 뿐이지, 인생이란 한 연극무대에서 날 주연으로 만들어줌으로, 그래서 인생은 연극이란 말이 있지 않은가. 오늘의 무대에서 무사히 마치고 나면, 또 내일 주어진 무대에서 내가 주연이 되어 열심히 연극의 막을 올린다. 때로는 울고 웃으며 그렇게 반복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남이 아닌 내 속으로 낳아 온갖 정성 드려 잘 키워왔던, 잘못 키워왔던 부모자식간이다. 속절없이 흐르는 세월 속에서 이기적인행동이 앞서가는 현실에,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세대 공감이 되어야한다. 또 이 시대에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이다. 언젠가는 각자 나이가 들어 부모입장에 서서 이해가 될 때는, 이미 때가 늦어 땅을 치고 통곡을 해도, 화살은 시위를 떠난 후임을 알아야한다. 사람에게 제일 즐거움 세 가지를 들어 말한다면, 첫째, 부모가 모두 살아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이다. 둘째,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고, 사람을 굽어보아도 부끄럽지 않아야한다.

 

[6]

셋째, 천하의 영재를 얻어 교육하는 것이라 한다. 서둘러 집으로 들어선 나에게 딸은 말한다.

도대체 엄마는 금방 온다고 하고서 왜 이제 오는 거야?

미안해!

얼마나 걱정을 한 줄 알아?

정말 미안하다.

언니와 이야기도중 걸려오는 전화가 방해될까봐 핸드폰을 잠시 꺼놓았었다. 그사이 딸은 전화를 받지 않는 엄마에게 무슨 사고라도 일어났음 어쩌나! 하며 별생각을 다 하면서 마음을 조이고 있었다. 미안하다는 말로 달래놓고 잠시 밀린 일을 해치우고, 또 하루 무사히 보내었음을 감사하며 잠자리에 들어간다.

또 하루를 맞이한 나는 멀리서 친구가 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친구가 도착하는 시간에 맞추어 사위를 따라 공항에 나가면서, 그만 하이웨이에서 빠져나가는 길을 놓치고 말았다. 도착시간은 촉박한데 두리번거리며 길을 찾아 해매이다 공항에 도착하였다. 친구는 벌써 밖으로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사위는 멋쩍은 듯 웃으며 우리를 태우고 돌아오면서, 잠시 커피 집에 들러 각각 주문하며 묻는다.

엄마는 무엇으로 드실래요?

우리는 Mocha Coffee로 사다줘! 너무 달지 않게 해달라고 해?

알겠습니다.

사위는 커피를 사가지고 차 안에 있는 우리에게 건네주었다. 우리는 커피를 받아들고 한 모금 마시는데, 이것은 완전히 설탕으로 범벅이 된 커피 맛에 그만 놀라워 오 마이 갓하였다. 그 소리에 사위는 우리를 바라보고 있어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중얼거렸다.

한국 놈이 한국말을 못 알아들으니 참으로 답답한 심정이다.

왜요 엄마?

아무것도 아냐, 잘 사왔어! 자네는 어때?

나도 너무 달아! 아무소리 하지 말고 그냥 마시자.

친구는 사다준 성의가 고마워 입에 맞지 않지만, 집에 도착하는 몇 십분 동안 마셔대느라 나와 곤욕을 치렀다. 도착 즉시 사위가 보지 않는 곳 쓰레기통에 버리고 말았다. 내 가족도 때로는 말이 통하지 않아 곤욕을 치를 때가 있는데, 하물며 남의 나라에 이민 와서 살며, 공부를 하지 않은 이상, 어느 곳이든 발길 닫는 곳마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우리1세들이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아가는지, 그 누구보다도 자식들은 알아야한다. 친구는 점심을 먹고 난 후 목적지로 돌아갔고, 나는 잠시 이웃 언니가 생각나서 수화기를 들고 안부를 묻는다.

언니! 접니다. 그동안 별고 없으셨어요? 아저씨도 안녕하시고요?

동생은 지금 뭐해?

오늘 친구 접대해 보내놓고, 언니 생각이 나서 안부전화 드렸어요.

내일 우리 집으로 좀 올 수 있어? 내가 너무 답답하여 동생에게 원정하고 싶어서.

그럼 제가 내일 찾아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못다 들은 이야기가 궁금하여 수시로 찾아뵈올 날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마침 내일 오라는 언니의 말에 마음이 급하여, 바쁘게 하루를 보내고 잠자리에 들어간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서둘렀다. 언니 집으로 향해가면서 가게에 들러 수박 하나사가지고 도착해서 초인종을 눌렀는데, 인기척이 없어 의아하여 뒷마당 문으로 들어섰다.

[7]

언니는 의자에 앉아 담배를 깊이 빨아드려 길게 내뱉는 모습이, 무엇인가 석연치 않아 보였다. 그런데 나를 보더니 당황하며 담배를 뒤로 감추는 장면을 보고 나는 말한다.

언니! 괜찮아요. 그냥 편안하게 피우시지 왜 감추는 거예요?

동생 놀랬지?

놀래기는요! 요즘 귀택이가 새파란 것들도 담배를 꼿꼿하게 물고 다니는 세상인데 어때요. 별말씀을 다 하시네요.

언니가 담배피우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담배연기를 길게 빨아드려 내뱉으므로 답답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해소되어, 안정을 찾을 수 있다면 하는 생각에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가끔씩 다른 사람들은 담배피우는 언니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비웃으며 말했다.

그 시간에 기도하세요. 쉬지 말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처리해 주실 것입니다.

참으로 좋은 말이긴 하지만, 감정의 동물인인간이기에 그리 쉽지가 않은 것이 또한 사실이다. 인신공격식의 상처를 받아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른다. 남의 일이기에 너무 쉽게 말할 수 있는 것 또한 인간이다. 언니는 커피한잔을 같다주면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한숨을 오르내리 쉬기에 나는 묻는다.

언니, 무슨 일이 있었어요? 아저씨는 어디에 가셨어요?

영감도 답답하니까 친구 만난다고 나갔어.

바로 그제 둘째딸 진희가 급한 목소리로 엄마에게 와 달라는 말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갔던 언니는 너무도 기가 막혀 말문이 막혔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처럼 급하다는 말에, 혹여 감당 못할 일이 일어났으면 어쩌나! 온갖 상상하며 마음속으로 빌고 빌며 정신없이 도착했던 엄마였다. 진희는 엄마에게 미리 말을 하여, 부모의 의사를 충분히 타진했어야했다. 매사 친정부모를 무시하였다. 두 내외가 여행을 떠나려 준비를 마치고, 사실대로 설명도 없이 급한 목소리에 달려온 엄마는 화가 치밀었다. 아무리 자기 속으로 낳은 자식이지만, 이기적인 행동에 언니는 속이 많이 상했다. 딸이 아버지를 조금만 생각했다면, 노부를 생각해서라도 미리 엄마에게 사실대로 말하고 양해를 구했어야했다. 지나온 세월에 원망도 많았고 미웠지만, 건강이 좋지 않아 신경을 곤두세워 영감을 보필해야 하는 언니로서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엄마가 도착하는 즉시 아이와 집을 엄마에게 맡겨놓고 여행을 떠나려고 했다. 자식이기에 걱정이 떠나지 않아 조금한일에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부모마음을 자식들은 모른다. 좋은 일이든 궂은일이든 자식이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가는 어미의 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멋대로 행동하는 진희에게 화가 난 언니는 영감 때문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 진희는 계획된 여행이 취소되어 분함에 영희에게 있는 말 없는 말을 다 끄집어내어 통곡하며 일러바친다.

언니! 엄마가 왜 저 모양이야?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우리 오래 전부터 계획했던 여행이 엄마 때문에 다 취소되었고, 아까운 돈만 다 날라 가버렸어, 너무 분해 죽겠어!

저녁에 언니는 걸려온 전화를 받아보니, 큰딸 영희가 고함을 지르며 엄마에게 퍼부었다.

여보세요?

나야! 진희가 오래 전부터 준비한 여행이라고 하던데, 무슨 이유로 엄마가 취소시켰어?

 

[8]

무슨 소리야? 내가 왜 여행을 취소시켜?

부모로서 자식들에게 해준 것이 무엇이 있다고 그러냐고?

네가 무엇을 안다고 어미한테 고함을 지르고 난리냐?

? 애한테 스트레스를 주고 그러냐고, 그게 엄마로서 할 짓이야?

도대체 아빠 엄마가 너희들한테 무엇을 얼마나 잘못했기에 끄떡하면 퍼붓고 지랄이냐?

하면서 더 이상 상처받기 싫어 전화를 끊어버렸다. 또 울리는 전화벨소리에 마침 들어오던 아저씨가 수화기를 들었는데, 엄마인 줄 알고 퍼붓기 시작하는 소리를 들었던 아저씨가 모든 것을 알게 되어 집안이 한바탕 시끄러웠다.

뭐 때문에 내가 말을 하는데, 왜 전화를 끊고 그래? 그러니까 여태 맞고 살아왔지! 진희도 부부가 못살고 이혼하기를 원해 엉?

너 이 계집애! 네 어미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퍼붓고 지랄이냐?

아저씨의 한마디에 겁났던 영희는 그대로 전화를 끊고, 두 번 다시 걸려오지 않았다. 지금까지 자식들과 있었던 이야기를 언니는 아저씨에게 말 하지 않았다. 그러나 더 이상 감추고 있을 수 없었던 언니는 다그치는 아저씨에게 사실대로 말했다. 모든 사실을 알게 되었던 아저씨는 다시 수화기를 드는 순간 언니와 실랑이가 벌어졌다. 한바탕 소란을 겪은 두 노인은 마음이 편하지 않아 먹는 것마저 소화해내기 어려운 지경에 놓여있었다. 매사 이런 식으로 오랜 세월 겪다보니, 언니는 우울증까지 겸해있었다. 말하며 떨고 있는 언니의 손을 나는 꼭 잡고 말한다.

언니! 진정해요.

한참동안 언니를 진정시키면서 나 역시 떨고 있음을 느꼈다. 되는대로 퍼붓는 이기적인행동에 원망스럽기만 하다는 언니는 한숨을 내리쉬며 말한다.

무자식 상팔자라 했던가!

자식을 위해 분골쇄신하며 성장시켜서 결혼까지 시켰으면, 각자 알아서 자기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세상 이치인 것을, 헌신해온 부모에게 감사하기는커녕 대들고, 퍼붓고, 짜증으로 몰아새우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알 수 없다는 언니의 말에, 내 몸 뼈마디마다 찬바람이 스며드는 것처럼 시리고 아팠다.

동생 들어보게, 어미가 무슨 죄가 있어 퍼붓고 지랄이냐 말이야!

무슨 죄가 만아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며 살아가야하는 신세가 너무도 처량하여 죽고 싶다는 언니의 말에 눈물이 앞을 가려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쯧쯧쯧 혀만 차고 있었다. 오늘날까지 속 시원하게 말 한마디 못하고 답답한 마음에 속병까지 앓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우울증마저 심한 언니에게 혹여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생각이 순간 내 머리를 스쳤다.

내 황혼에 지고 가야할 이 현실이 너무 버거워 무섭고 두렵기만 하다네.

언니! 그렇게 생각하지 말고, 그저 담담하게 마음을 가지세요.

언니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는 말이 떠오르지 않아 난감하기만 했다. 그래서 잠시 내 입장에서서 생각해보았다. 나라면 이 현실을 얼마나 과감하게 견디어 내겠는가! 또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이런저런 생각에 몰두하자 온몸이 굳어지는 느낌에 분노가 치밀어오기 시작했다.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나는 언니에게 말했다.

언니! 너무 속상해하지 말고, 그저 쿨 하게 과거 따윈 다 내던져버리세요.

동생 말대로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9]

언니 혼자서만 이렇게 살아간다는 생각부터 버리세요.

나와 똑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또 어디 있으려고!

어느 가정이든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언니보다 더 힘든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많이 있어요. 아마 지금쯤 저희들도 엄마 못지않게 괴로워하면서 눈물로 반성하고 있을 겁니다.

남에게 당하는 생체기는 안보고, 안 듣고 하다보면 시간이 해결해주지만, 부모자식은 천륜이기에 더욱 아파하고 힘든 것이 사실이다. 부정모혈이라 했던가! 아버지의 정과 어머니의 피, 자식은 정신과 몸을 부모에게서 물려받았음을 알아야한다. 그러나 자식들 또한 나름대로 어떤 고통 속에서 괴로워하며, 이 순간에도 부모에게 상처의 말을 했던 일들을 후회하며 힘들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가난과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집에서 탈출했지만, 세상은 그리 만만치가 않았다. 아무것에도 속박되지 않고, 자유자재로 자신에 대한 개체의 삶을 살아가려했다. 하지만 발 딛는 곳마다 본의 아니게 난관에 부닥치게 될 때면, 먼저 부모를 원망하게 된다. 허물없는 엄마에게 퍼붓는 현상이 일어났다. 세대차이로 살아가는 삶이 다르다보니, 부모자식이지만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조금만 서로 이해하며 넓은 아량으로 부모는 자식을 감싸주고, 자식은 부모를 객관적인시선으로 바라볼 때에, 분명 깊이페인 골은 평탄하게 다듬어지리라 믿는다. 결자해지란 말이 있듯이 본의 아니게 처음부터 시작한 아저씨가 먼저 사랑스런 자녀들에게 손을 내밀어, 그 매듭을 풀어야하지 않을까? 라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남의 가정문제에 제삼자인 내가 섣불리 나설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요즘 하기 쉬운 말로 위로보다 현명한 방법으로 한 가정을 화해시키자는 생각을 하였다. 어느 날 갑자기 나에게도 똑같은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그저 구경만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아저씨와는 그저 인사정도밖에 구체적인말씀을 나눈 적이 없었다. 해서 만나 뵙고 내 신상에 대해서 말씀드리다가 자연스럽게 아저씨를 설득하려했다. 우리는 약속했던 장소인 한국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고 아저씨가 먼저 말을 했다.

우리가 진작 대접을 했어야했는데, 이거 미안해서 어쩌누!

별말씀을요. 제가 진즉부터 대접을 해드렸어야 했는데,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주머니는 언제까지 이곳에 계십니까?

글쎄요! 아직은 언제라고 말씀을 드리지 못할 것 같네요.

시카고에서 오셨다고 하셨지요? 그곳은 살기가 좀 어때요?

제 생각은 시카고가 여기보다 나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여기에 오래 머무르고 계십니까?

여기서부터 내가 왜 이곳에 와 있어야하는지 자세한 설명을 드리기 시작한다. 자세한 설명을 다 들은 아저씨가 묻는다.

딸이 희귀병에 걸렸다니요? 그럼 병명도 모르신단 말인가요?

, 그렇습니다.

그런 사정이 있었군요. 미안합니다.

무슨 말씀이세요. ! 아저씨께서도 심장이 좋지 안다고 들었습니다만…….

나도 죽을 고비를 넘겼지요. 그래서 항상 조심하며 새벽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은 다 건강하지요?

그럼! 우리 아이들 다 건강해.

 

[10]

아저씨와 언니는 정말 축복받으신 분들이세요.

내가 살아왔던 이야기를 간추려 말 하였다. 나는 젊었을 때 모진 고생 속에서도 오직자식들이 건강하기만을 바랬지만, 딸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하였다. 나는 제일 효성스런 자녀들이란 건강하게 잘 살아주는 것만이 축복이라 강조했다. 내게 주어진 힘든 삶의 현실을 비유하여 말씀을 드렸다. 말씀 도중 아저씨의 눈가에 촉촉이 젖어있는 모습을 발견하여 나는 감사했다. 그저 이웃이 전하는 말을 경청해주시는 아저씨께 고마워 가슴이 뿌듯한 느낌을 받았다. 앞으로 언니가정에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들려드렸던 말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감사할 따름이다.

구부러진 것을 바로 잡으려는 마음으로 지나치게 밀어붙였던 아저씨! 또 곧 나무가 물의 근원이듯이, 자식은 자기의 근본이 부모임을 알아야한다. 이 세상 모두가 살림이 넉넉하고, 부족함 없이 풍족한 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살아가는 동안 앞에 닥친 현실이 항상 명쾌하지만은 않은 것이 또한 인생살이가 아니던가, 부유함과 부족함, 강한사람이나 나약한사람, 모두 평탄하고 행복함을 추구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우리네 인생살이다.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태평양이 한눈에 보이는 공원에 들어가 차를 세웠다. 넓은 바다를 향해 각자 마음에 품어왔던 답답한 심정을 털어내기 시작한다. 아저씨도 몇 걸음 앞으로 다가서며, 푸른바다를 보면서 그동안 쌓였던 모든 괴로움을 다 털어내시는 듯했다. 출렁이는 바다물결에 억눌렸던 내 가슴을 활짝 펴고 애원했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고난과 역경을 잘 이겨낼 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달라 외쳐댔다.

해가 석양으로 장식하는 순간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우리의 모습도 저 석양처럼 걸터앉은 신세라! 시간은 결코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때로는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이 잔인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누구에게나 시간은 공평하다. 모든 사람의 마음이나 생각은 어쩔 수 없이 자기중심적으로 이기적인행동에 본의 아닌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아감을 깨달으면서…….(*)

 

 

박봉금(소설가)

*1949년 전북 김제 출생.

*2001년 자서전 [파랑새] 출간.

*2005년 한국일보 여성생활수기 입상.

*2009[해외문학] 신인상 소설부문 당선 등단.

*시카고문인회 회원. 해외문인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