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어 魯魚

 

 

박 초 란 (중국)

 

 

(노어: ()자와 어()자가 비슷하여 틀리기 쉬운 데서 글자를 잘못 씀을 이르는 말)

 

우린 아주 열심히 공부한다.

우리의 마음을

지식들로

믿음들로

자료들로

또 세상의 이야기들로 채우려고.

 

그렇게 우린 인간의 생각들이 되어 버리고

그 대신 우리 자신을 잃어버린다.

어떻게

그리고 그 모든 것의 목적을 생각하는 분주함 속에서.

 

우리는 우리 존재를

온갖 경험들로 위장한다.

평화는

고요함 속에 머무는 것.

그 평화의 자리에서

보다 깊이 아는 것이 무한한 조화와

열린 사랑으로 가는 길이다.

패트 패트라이티스

 

그는 자신을 잘 알고 있다고 여겼다. 그의 신체와 습관들과 자신의 머릿속의 이런저런 생각까지도.

그는 좋은 머리를 갖고 있었다. 그 머릿속의 뇌실은 늘 충분한 지식들이 풍성한 가을 곳간의 곡식처럼 채워져 있었고, 그것들은 그가 원하기만 한다면 언제든지 꺼내어 써먹을 수 있게끔 이 세상은 그런 것들을 숭상하고 우러러주고 있었다. 그는 이렇듯 머릿속에 든 것을 숭상하는 시대에 태어난 걸 참으로 다행스레 생각했다. 구슬땀을 흘리는 노동만을 숭상하는 세월에 태어났다면 그 좋은 머리도 제대로 한번 발휘해보지도 못한 채 무력한 늙은 나귀같이 눈을 감싸 맨 채 연자방아나 돌리고 있을 것이다.라고 그는 생각했다.

11월이었고 막 12월이 가까워오고 있었다. 그녀의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의 차와 함께였다. 매번 그는 살고 있는 근처에서 버스를 기다려 타고 중도에 또 다시 버스를 바꿔 타고 5호선을 갈아타고 또 13호선을 갈아타고 한 블랙 더 가면 되는 코스로 그와 그녀의 집 사이를 오고가곤 했었다. 그녀는 늘 13호선의 지하철역 앞에 나와서 그를 기다리곤 했다. 마른 몸매의 그녀가 조금은 창백한 얼굴을 한 채 운동복 상의나 혹은 니트로 된 회색의 낀 달린 긴 옷을 걸친 채 그를 향해 희미하게 웃곤 했다. 그가 차를 산 뒤로부터 그는 그런 그를 기다려주는 그녀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그는 더 이상 그녀에게 지금 가니까 어디까지 나오라는 전화를 하지 않았다. 가끔 그녀와 들렀던 가게들과 책방을 지나오면서 그녀를 불러낼 걸 후회를 했던 적도 있었지만, 그는 곧장 그 사실을 잊어버리곤 했다. 그런 것은 중요하다고 별로 생각질 않았고 그런 것은 곧장 그의 대뇌의 어느 구석에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처박혀지곤 했다. 물론 그가 원하기만 한다면 언제든지 그렇게 할 수도 있는 쉬운 것들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음악을 틀었다. 그가 좋아하는 쒸워이(許魏)의 칼칼한 목소리가 그의 몸속에서 화학반응을 일으키고 있었다. 기분이 좋아졌고 그는 꽃가게 앞에서 차를 세웠다. 그녀는 꽃을 좋아했다. 화려한 꽃에서부터 담백한 풀꽃에 이르기까지. 그녀는 나름대로 그 꽃들이 좋다고 했고 그는 매번마다 다른 꽃들을 사들고 그녀의 집을 방문하곤 했다. 오늘은 이걸로 할까? 그가 자기로 된 기다란 화분에 담긴 란의 아련히 뻗은 이파리들을 보면서 혼자소리를 한다. 옆의 꽃집주인이 그것이 문주란이라고 한다. 수선화과의 상록다년초로 7월에서 9월까지 흰 꽃들이 연달아 핀다고 했다. 그는 그 화분을 꽃집주인이 포장하기를 기다렸다가 돈을 지불하고 꽃집을 나왔다.

 

그는 이 도시를 좋아했다. 이 도시의 열정을 좋아했고 이 도시의 화려함을 좋아했고 이 도시의 모든 발전 가능성을 좋아했고 이 도시의 각종 유행의 열풍을 좋아했고 이 도시의 편리함을 좋아했다. 이 도시에서 그는 물속의 고기처럼 자유로웠다. 남들이 아무리 공기가 안 좋소, 교통체증이 멀미가 나오, 뭐라고 아우성을 치건말건 그는 그런 건 해결이 너무 간단하다고 생각했다. 충족한 산소공급을 위해서는 방안에 식물들을 들여놓고 특히는 선인장이 산소를 많이 분출한다고 하니 선인장을 많이 들여놓고 그것도 힘들면 산소방출기계를 하나 들여놓으면 되는 것이고 건조함에 대처할 수 있는 수증기를 뿜는 기계들이 가전용품 매장에 잔뜩 쌓여있는데도 건조하다고 아우성치는 사람들이 한심해보이고 교통이야 남들 다 돌아다니는 때를 비켜서 다니면 될 것이고, 그의 앞에서는 모든 불편 함들이 비켜설 거라는 걸 그는 믿어 의심 칠 않았다.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그녀는 그가 사다놓은 기계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의 예상을 넘어났지만 그녀라면 그러는 것이 더 정상적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녀는 핸드폰도 별로 쓰지 않는 성미였다. 컴퓨터 전기소리만으로도 머리가 아파. 그녀가 그랬다. 그녀는 낮이면 작업을 하곤 했다. 글 쓰는 사람들은 밤이면 글 쓰는 거 아니냐고? 그가 물었다. 그녀가 웃으면서 밤이면 자야지. 새들도 밤이면 자는 줄 알어. 했다. 그녀는 번역 일을 하고 있었다. 영어로 된 책이나 프랑스어로 된 책들을 중국어로 번역하여 출판하는 일이었다. 아주 가끔 그녀는 자신의 글을 쓰곤 했다. 그녀는 자신이 쓰고 싶은 글들 내용을 그에게 얘기해주군 했다. 그것들은 그가 보기엔 내용이라 보기보다는 그녀의 느낌들의 집합체였다. 그 느낌들이 너무 많아서 그녀는 그 속에서 허우적거릴 뿐 그것들을 어떤 타스로 묶어야할지 곤혹스러워했다.

 

그가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옆에 조그마한 단추가 보였지만 그는 노크를 한다. 그가 똑똑똑 세 번을 두드려서야 왔어? 하면서 그녀가 컴퓨터 앞에서 일어나 끌신을 끌고 거실로 나와 문을 딴다. 그리고는 그의 손에 들린 화분을 받아 안으며 싱싱하네, 뭔 꽃이야? 난초 같기도 한데? 궁금해 하며 베란다로 갖고 들어가 커다란 고무나무 밑에 내려놓는다. 문주란이야! 7월에서 9월까지 하얀 꽃들이 필거야. 지금은 이렇게 잎들뿐이지만. 그의 목소리에 득의양양함이 묻어나 있었지만 그는 그런 자신을 그녀가 보기 좋아 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고마워. 그녀가 지나가는 바람결같이 고맙다는 말을 던진다. 그에게 아닌 공기 속에 던져 넣듯.

그녀의 집안에서는 언제나 은은한 송진 냄새가 났다. 소나무의 냄새라고 했다. 집안의 가구들은 모두 소나무의 원목으로 짠 것들이었다. 그 모양은 그녀가 생각해낸 것들로서 그가 보건데 그것은 세 살 먹은 아이라도 그려낼 수 있는 간단한 모양들이었다. 너무 쓰기도 좋고 굳이 옛 식 가구 모양을 내지 않아도 되니까 자연스럽지 않느냐고 했다. 그녀는 옛 식의 가구들을 좋아했지만 그 속에 갇혀서 옛사람 흉내나 내고 있을까봐 겁나다고 했다. 그리고 그 값도 어마어마했다. 진짜가 아닌 가짜라도. 그리고 그녀는 아주 적은 돈을 들여서 소나무 원목으로 짠 가구들을 들여놓았다. 커다란 책장과 침대와 책상과 밥상과 찻상들을.

밥 아직 안 먹었지? 그녀가 물었다.

. 그가 대답했다.

그녀는 부엌으로 들어가 전기밥통의 버튼을 눌러놓는다. 밥통 안에는 그녀가 씻어 넣은 울긋불긋한 곡물들이 들어있을 터였다. 그녀가 국과 반찬을 준비하는 새에 그는 책장안의 책들을 본다. 대장경이며 불교사며 도교사며 대부분 종교관련 책들이었고 가끔 문학적인 서적들과 칠현금과 차 관련서적이 보였다. 책장 한구석엔 그녀가 번역한 책들이 늘어져 있었고 종교학자인 그녀의 남편이 편찬한 책들도 보였다. 그녀의 남편은 그가 그녀의 집에 방문했을 때 간혹 집에 있을 때도 있었다. 처음 보았을 때 그는 그녀의 남편이 손수 차린 점심밥을 대접받았었다. 좋은 사람이구나, 하는 느낌이 먼저였고 자신이랑 다른 머리에 다른 사유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잇달았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다른 건지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머리로도 감을 잡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실감했다. 그리고 그는 그녀의 집 방문을 자주하는 사람 중의 하나가 되었다.

맛있어?

담백한 게 좋아. 인제 나두 채식만 해야겠군. 건강에도 좋구!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철저히 채식주의 자였다. 그는 자신이 소고기며 생선이며 양 꼬치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자신은 아무 대답을 해줄 수 없지만 자신의 선생님은 대답을 해줄 수 있을 거라면서 거의 강압적으로 그를 모임으로 끌고 간 친구의 누님한테 그가 그랬었다. 그것들이 먹고 싶다하면 온몸이 부글부글 끓어. 그것을 빨리 달라고그러니 내가 먹지 않고는 견딜 수가 있어야지몸이 요구하는 한 그는 몸속에 얼마라도 육식을 집어넣을 각오가 되어있었다. 그의 몸이 수요를 하니까.

모임에서 처음 만난 그녀에게 그 말 덕분에 누님한테 끌려왔다고 했을 때 그녀가 웃었다.

그랬어? 이렇게 끌려온 사람두 있네. 헌데 참 핑계도 가지가지다. 몸이 원하는 건지 습관이 원하는 건지 누가 알아? 세치 혀만 맛을 알뿐이지 목구멍 아래부터는 아무 맛두 모른다구.

그녀가 그날 강의를 한 강사의 부인이라는 건 끝난 뒤에야 친구누님한테서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 누님이 그와 함께 그녀의 집을 방문했었다. 처음 그가 그녀의 남편에게서 식사 대접을 받던 때도 친구 누님이 있었다.

그 누님이란 여자 분은 자줄 만나? 아주 천천히 음식물을 씹던 그녀가 그에게 물었다.

지난주엔가 전화통화가 있었어. 뭐랄까? 아주 엉망인 모양이야. 요즘. 그 남편이 왔대, 시부모가 데리고 온 모양이야. 아주 똥오줌도 못 가르는 모양이야. 아참, 실례! 그 수술을 한 사람치고 그렇게라도 산 사람은 아주 드물다구해. 헌데, 그 시어머니란 사람이 좀 고약한 모양이야. 그런 아들이 며느리를 그리워한다면서 그들 내외더러 합방하라구 한대. 그래서 그 누님이 기절을 한 모양이야. 보는 것만으로도 끔찍하다고 늘 외우군 하던 사람인데

그래서 요샌 통 모임에도 안 오구, 전혀 소식이 없었구나, 그녀가 고개를 끄덕거린다.

넌 어떻게 보내고 있었어? 보자, 지난번에 왔다 간 지가 한 달이 되지?

그러네. 바뻐. 돈 좀 벌기가 쉽지가 않네. 머릿속의 걸 팔아먹는 일두 쉽지는 않어.

말은 그렇게 하고 있지만 실은 그에게 있어 머릿속의 걸 써먹는 일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들은 그가 매일 짜내어 이빨을 닦는 치약보다도 더 쉽게 쓸 수 있는 것이었다. 치약은 짜내야 하지만 그의 머릿속의 건 짜낼 필요도 없었다.

뭔 책을 보고 있어? 요즘에는? 조용히 국물을 떠먹던 그녀가 한창 폭신폭신한 열 콩들을 씹기에 열중인 그에게 물어왔다. ? 별로. 설레설레 머리를 젓다가 그는 지난 한 달을 어떻게 보내왔던가가 정말로 궁금해진다. 뭘 하구 보냈지? 그는 정색해져 자신에게 묻는다. 그의 머릿속이 재빨리 한 달 전으로 회전해간다. 아무런 거침이 없이. 그리고 한 달간의 스케줄이 머릿속에 전구 알 같이 환하게 켜진다.

출근하고 일을 하고 회의를 하고 또 일을 하고 퇴근하고 출근하고 일을 하고 회의를 하고 또 일을 하고…… 휴일에는 늦잠을 자고 늦잠에서 깨여나서는 커피 한잔에 빵 한 조각 먹고 늦은 오후에는 누군가를 만나 밥을 먹고 이런저런 얘기들을 늘여놓고…… 문득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하는 기계가 어떻게 보냈겠어? 그의 뇌 속의 냉소적인 물감을 품고 있던 오징어가 푹 하고 두려움을 내쏘았다. 차가운 자조적인 냉소와 함께.

그녀가 그런 그를 담담히 올려다본다.

힘들어? 그럼 하지마.

역시 담담한 그녀의 목소리가 그의 쓸 것이 많은 머리의 뒤통수를 후려친다. 천둥번개에 치인 사람같이 어리둥절해졌다가 그것도 잠깐, 다시 그의 머리가 고속으로 가동한다.

그럼 어떻게 먹구 사는데? 할부로 산 차는 언제 빚 다 물고? 먹여줄 거야? 공짜로.

그럼, 헌데 고기는 없어!

그는 채소뿐인 반찬을 열 콩이 가득 섞인 밥과 꾹꾹 목구멍에 밀어 넣는다. 그리고 이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아내는 그가 꽃을 사들고 그녀의 집을 방문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가끔 친구의 누님과 아내가 통화하는 것을 우연하게 맞 띠울 수 있었다. 아내는 결혼해서 한 번도 나한텐 꽃 한번 안 사주더니, 아쉬운 소리를 해왔지만 굳이 싫어하는 표정도 아니었다. 아내는 그가 그녀의 집을 방문하면서부터 금연을 하게 된 데에 정말로 기뻐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내는 그녀를 역시 그녀의 남편만큼이나 고마운 선생님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친구누님의 입김이 크게 작용을 했을 터였다. 아내는 학교 일 때문에 늘 바빴다. 아내는 도대체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에 통 관심이 없다. 아내는 그가 달마다 들여놓는 꽤 묵직한 지폐와 그가 집에 돌아와 밥을 먹을 건지 밖에서 먹을 건지에만 관심이 있다. 그럼에도 연속 이틀을 저녁 먹으러 집에 들어오면 아내는 굳은 표정을 하고 주방으로 들어가며 그에게 쏘아붙인다. 남자가 뭐야? 맨날 집에만 파묻혀서어떤 의미에서 그는 주변 친구들이 부러워할 정도로의 자유인이기도 했다. 아내는 흡연 때문에 상하고 있는 그의 폐를 위해서라기보다 2차 흡연의 대상인 자신의 폐를 위해서 그의 금연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고 하는 게 더 적절한 편이다. 금연의 위해성을 말할라치면 그는 그 누구보다 잘 안다. 그의 뇌의 창고에는 그런 과학적 수치들이 올챙이같이 모록이 모여 바글대고 있다. 그럼에도 담배를 피우는 건 연기라도 뿜어대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는 일상이란 무료함 때문이었다. 무료함, 주변의 모든 것들과 세상의 이런저런 것들을 뇌의 창고 속에 모두 저장해버린 뒤부터 그 무료함이란 것이 물엿처럼 질기게 달라붙었다. 무료함의 다른 이름을 중독이라고 해도 된다면, 그는 이미 깊이 중독되어 있는 셈이다. 인간은 무엇에나 중독될 수가 있다. 담배나 술이나 도박이나 섹스나 마약이나 쇼핑이나 아니면 일이나 종교나 유희다만 그는 담배를 피우는 것보다 담배를 끊어야한다는데 더 강박감을 갖고 고통스러워하는 그런 인간들 중의 하나가 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담배연기를 뿜으며 앉아 흡연의 핑계 아닌 핑계를 늘여놓고 있는 그를 바라보며 담담히 웃고 있던 그녀가 말했다.

그게 너랑 뭔 상관인데? 사람들 모두가 담배에 노출되어있지만 누구나 담배를 피우는 건 아니잖아.

그러고 보니? 그는 연기가 몰몰 솟아오르는 권련을 멍청히 바라보며 갑자기 하하하 오래 만에 웃고 싶어지고 있었다.

그런걸 보면 참 넌 용감해! 그녀가 웃었다.

? 그는 웃고 싶어지던 웃음이 나오려다말고 목구멍에서 덜컥 걸렸다가 여러 갈래의 바람으로 변해 이빨사이로 씩 나오려는 것을 겨우 참고 있었다.

그렇잖아? 그런 위해성을 누구보다 잘 알구 있으면서, 중독되었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흡연을 한다! 난 누구보다 용감한 사람이다, 그렇게 광고라도 하고 다니시지. 단번에 일곱을 죽였다! 고 기를 만들어 흔들며 다닌 재봉사처럼 말이야. 그래도 그 재봉사는 파리라도 일곱 마리나 죽이지 않았겠어?

희무끄름한 재가 그의 손끝에서 원목을 깐 그녀의 거실바닥에 떨어졌고 그는 서둘러 담배를 눌러 꺼야 했다. 그녀의 집에는 재떨이가 없었으므로 그는 매번 담배 재를 그녀가 내밀어주는 조그마한 일식 접시에 털어놓곤 했다.

그리고 담배생각이 날 때마다 이상하게도 그녀의 말이 떠올려지곤 했다. 난 누구보다 용감한 사람이다, 그렇게 광고라도 하고 다니시지. 주술과도 같이 그녀의 그 한마디는 그의 머릿속에 넘쳐나고 있는 흡연의 위해성에 관한 모든 수치들보다도 더 힘 있게 그의 담배 인을 억누르곤 했다. 어쩌면 억누르는 것도 아니었다. 힘들지도 않았다. 자연스럽게 담배생각이 저절로 사그라지곤 했다.

 

뭘 해? 뭔 생각을 골똘히 하는 거야?

그녀가 그의 앞에 찻잔을 내려놓으며 물어온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책을 탁자에 내려놓고 서둘러 찻잔을 받는다.

아무것도아무것도 아니야.

피곤해 보인다. 회사는 어때? 잘돼?

, 그런대로.

그는 그 무렵 두 명의 투자자와 공동으로 회사를 경영하고 있었다. 회사는 경기가 좋았고 일 년 만에 커다란 발전전망을 보이고 있었다. 그는 대학원을 나와서 3년 만에 그만큼 한 나이의 남자들이 갖추어야 할 것은 모조리 갖춘 셈이다. 하나가 부족하다면 아이다. 아내는 아직까지도 아이를 가질 생각을 하질 않는다. 그는 아이가 있으면 일상이란 이 무료함에서 벗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아이의 만만한 머릿속에 그의 머릿속의 것을 복제를 해주는 데만도 꽤 오랜 세월이 먹을 거니까. 컴퓨터 같은 기기는 확인 단추를 하나만 누르면 몇 분 아니면 몇 십 분 만에 기기안의 모든 기억들을 주머니 채로 복제해낼 수가 있는데 인간의 대뇌는 반드시 하나하나 차곡차곡 오랜 세월 기억들을 쌓아가야 한다. 그럼에도 인간은 조금씩, 조금씩 컴퓨터가 승급()하듯 승급을 하고 있다고 한다. 칼 구스타프 융 심리학에 의하면 인간의 정신은 진화에 의해 미리 형성되어 있으며, 인간의 과거자기의 어렸을 때의 과거뿐만 아니라 전 인류의 과거, 나아가서는 생물이 진화되어 온 먼 옛날의 과거와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나 물어볼게 있어. 두 사람 아일 가질 생각은 없어?

그녀가 다기의 동그란 덮개를 덮고 나서 얼굴을 든다. 그녀의 두 눈은 늘 흔들림이 없다.

, 생각 없어.

?

자신마저도 건사하기 힘든 터잖아. 다른 사람까지 책임질 수는 없을 것 같애. 갓 결혼해서는 그런 생각두 했지만두 지금은 아니야.

애가 있으면 좀 무료한 일상이 재밌지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애가 네 놀이감이야? 잘 생각해보구 가져. 애가 네가 몰고 다니는 차랑은 다른 거니까. 차야 네가 싫증나면 언제든지 팔아버릴 수 있지만 애는 버릴 수가 없잖아.

갑자기 심각해진다. 그는 갑자기 머리가 막힌 기분이 든다. 머리의 어떤 논리로던지 이 문제를 풀어낼 수가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문득 든다.

생명을 잉태한다는 건 위대한 일이라고 생각해. 그가 묵묵히 차를 마시다말고 침묵을 깬다.

쪼르르-

물줄기가 다판에 놓은 앙증맞은 두 마리의 도기 돼지몸뚱이에 떨어진다. 그녀가 두 번째의 다기를 덥히고 있었다.

따훙포, 어때?

따훙포, 좋지!

조용히 차술로 찻잎을 떠 다기에 넣고 끓는 물로 첫 벌을 우려낸 물로 잔을 가셔내고 나서 다시 찻잎을 우려 잔에 따르고 나서 그녀가 역시 흐트럼이 없는 표정으로 말을 꺼낸다.

생명을 잉태한다는 건 위대한 일이긴 하지. 생명연장이란 각도에서 보면. 허나, 인간은 후대 배육을 위한 도구이기 전에 하나의 완전한 소우주이지.

소우주?

그래, 소우주. 책임을 진다는 건 잉태하고 낳고 키우고 또 하나의 소우주가 되어 곁을 떠나고좋은 부분뿐 아니라 안 좋은 부분, 그런 것마저 부담할 수가 있어야한다는 거지. 잉태하여 낳은 아이가 어덴가 좀은 부족하다거나 혹은 부족함이 없으나 잘 키워 놓은 뒤에 저밖에 모른다거나. 그리고 그 끝없는 어버이의 사랑 같은 거, 그럴 수 있겠어?

화엄경에『일모공중함시방(一毛空中含十方)』이라는 말이 있어. 터럭 가운데에 우주가 있다는 소리지. 선이란 혼 에 보일 시 示이니 하나로 보인다는 뜻이겠지? 내 몸이 곧 우주요, 우주가 한 몸이라나를 찾아!

 

갑자기 그는 어느 깊은 산중에 그녀와 단둘이 앉아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느낌, 그랬다. 그에게 있어 느낌 역시 오랜만이었다. 아이였을 때를 제외하면. 많은 세월 그는 사색으로 모든 것을 부딪치고 모든 것을 바라보곤 했다. 그가 바라보는 달은 아이 때 바라보던 느낌이랑 많이 달랐다. 아이 때의 느낌속의 달은 커다란 그가 먹어도, 먹어도 남을 것 같은 노오란 기름떡이었다. 배가 늘 고팠음으로. 그리고 좀 더 커서 학교를 다니게 되면서는 계수나무아래 토끼가 방아 찧고 있는 이태백의 밝은 달이였다가 그리고 더 커서는 그냥 위성일 뿐이었다. 384400킬로미터 거리에서 지구를 에워싸고 서에서 동으로 공전하는 생명이 없는 위성.

그녀가 물었다. 그럼, 당신이 바라보는 달은 뭐야?

그가 대답했다. 위성이라니까.

주절주절 그가 많은 수치들을 늘여놓았고 그녀가 그러는 그를 바라보며 생긋 웃었다.

네가 백과서적이나 티비에서 본 달 말구, 네가 본 달은 뭐냐구?

그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내가 본 달이라니?

그녀는 더는 아무 말이 없었다. 차를 따르는 소리만이 쪼르르 울려 퍼졌다. 그의 마음속에. 그리고 끝없는 향, , 은은한 연꽃의 향. 청정함이 그의 마음 안에 한 송이 두 송이 탐스러운 연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그녀의 집을 나와 차안에서 본 오후의 세상은 갑자기 많이 달라져 있었다. 갑자기 사람마다 바라보는 세상이 다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우리의 교육은 그리고 이 세상은 유행이란 그럴듯한 이름으로 누구나가 꼭 같은 복제된 안광을 하길 바라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에어컨을 틀지 않은 차안이 따뜻해지고 있었다.

집으로 들어갈려다 말고 친구의 누님한테 전화를 한다.

뭘 하세요?

, 저기, 집에 있어. 좀 있다 저녁준비를 해야지.

보모가 있지 않어요?

, 그래도 시부모님이 있는데 좀 삐쳐줘야 할 것 같아서. ?

아니에요. 그냥, 어떻게 보내시나 해서요?

아무리 관세음보살을 외워도 안 되겠다. 어제 시부모님을 앉혀놓고 그 사람을 데리고 돌아가라고 했다. 생활비를 더 드릴 거라구, 정 힘들면 보살펴줄 사람 하나 딸려 보내겠다고. 나두, 어쩔 수가 없잖아. 그 사람 병 치료비에 생활비에 아이의 모든 것에 내가 나가서 돈을 벌지 않으면 어떡하냐? 내가 매일 그 사람을 붙잡고 앉아있을 수는 없지 않냐?

나랑 나와서 차나 한잔 할까요? 그러고 싶은 생각을 그냥 머릿속에 매달아 억지로 잠을 재운 뒤 그는 그럼, 언제 시간 나시면 봐요, 하고 전화를 끊는다. 누군가에게 갑자기 달라진 자신의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 사람을 보게 된 건 그녀의 남편 덕뿐이었다. 그는 특수공능이나 신기한 체험이나 뭐, 그런 것들은 별로 믿지 않았었다. 내 눈으로 직접 봐야 믿지, 그가 그랬고 그녀가 그랬다. 못 믿을 게 네 눈 인데. 하고.

자금성의 마지막 태감이 살았던 집을 개조하여 만든 업소였고 너무 크지는 않지만 아담한 정원이 있었다. 그곳으로 그녀와 그녀의 남편을 마중해서 함께 들어설 때까지도 그는 그럴 수가 있냐고? 중얼대고 있었다.

대사가 기운을 모으더니 숟가락을 탈기 시작했다. 숟가락이 엿가락처럼 배배 탈리기 시작했다. 이럴 수가? 머리가 텅텅 빈 듯 그의 두 눈엔 그 숟가락만 들어올 뿐이었고 벌려진 입에선 외마디소리도 나가지 않았다. 이어 대사가 주인의 손목시계를 보자고 했다. 손목시계는 스위스의 고급시계였고 적어도 오만원이상은 될 것 같았고 대사가 잡고 있던 시계를 주인에게 돌려줬다. , 주인이 외마디 소리를 질렀고 내 팔만 원. 하고 한숨을 톺았다. 한 바퀴 돌려온 시계를 들여다본 그 역시 자신의 두 눈이 의심스러워지고 있었다. 시계바늘이 네 개가 있었다. 시침, 분침, 초침 세 개 뿐일 시계의 바늘이 하나 더 늘어 네 개가 되어 있었다.

이런. 경악하는 그를 들여다보던 그녀의 남편이 머리를 돌려 그 주인에게 말했다. 대사님에게 부탁하면 본래대로 돌릴 수도 있겠지만, 내 보건대는 이대로 갖고 있으면 무값지보가 아니겠소.

대사님, 그가 불렀다.

아니, 대사님이라 부르지 마시고 선생이라고 불러주시요. 당신은 충분히 그러셔도 됩니다.

, , 떵 갑자기 머릿속에 종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대사의 한마디가 그의 전생의 뭔가를 두들기는 기분이 들었다.

, 선생님. 기공입니까? 이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가 물었고 대사가 껄껄 웃었다.

당신한텐 이런 것이 조충소기일 뿐일 건데, 아직도 모르겠습니까?

?

그의 두 눈이 둥그레지고 있다. 둥그레진 그의 두 눈으로 커다란 우주가 휙 하고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뻘겋게 볶아진 당콩이 먼저 들어왔다. 대사가 당콩 한 알을 주어 생수를 담은 유리컵에 담았다. 이어서 여러 가지 고급의 요리들이 들어왔다. 차 한 잔을 거의 마실 무렵 대사가 유리컵을 여러 사람들 앞으로 돌렸다.

!! 이럴 수가? 파랗게 당콩 잎이 돋아나 있었다. 가느다란 하얀 뿌리가 물속에서 한들한들 춤을 추었다.

갖다가 화분에 심으시면 당콩을 먹을 수 있을 겁니다. 허허허

대사가 유리컵을 그의 앞으로 내밀었다.

쑤욱! 그가 유리컵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새로운 세계, 그가 알고 있던 세계가 아니었다.

 

추운 겨울이었고 흰 눈이 펑펑 하늘땅을 메우고 있었다. 그는 길다란 회색의 옷을 입고 있었다. 머리에도 역시 회색의 털모자를 쓰고 있었다. 찬찬히 보니 희고 수려한 얼굴이었고 여자였다. 여자의 몸인데 그것이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네를 들어가는 입구였고 아이들이 따라오며 여자를 불렀다. 스님- 그제야 그는 비구니였다는 걸 알았다. 아이들의 언 손을 잡고 비구니가 쑥대를 지붕에 얹은 집으로 들어갔다. 방안에는 자그마한 불당이 있었다. 비구니는 먼저 두 손을 깨끗이 씻고 향을 올렸다. 아이들이 차례로 들어와 절을 하고 물러갔다. 또 겨울이었다. 눈석임물이 질척거리고 있었다. 갑자기 하늘땅이 어두워지고 전쟁이 일어났다는 걸 비구니는 알았다. 어른들은 아직 산에서 돌아오지 않았고 불화살은 동네의 집들을 태우고 있었다. 비구니는 재빨리 아이들을 불렀다. 소달구지에 아이들을 안아 올렸고 경황스런 가운데 달구지에서 어린 아이 하나가 떨어졌다. 아이는 면바로 돌멩이에 머리를 박았고 벌건 피가 아이를 안은 비구니의 가사자락을 물들이고 있었다. 아이는 비구니의 품에서 숨이 졌다. 아직도 겨울이었다. 푸근해지는 기운에 간혹 파란 싹이 보이곤 했다. 비구니가 정처 없이 걷고 있었다. 높다란 산이 보이고 비구니가 산을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산중턱에 동굴이 하나 있었다. 그 동굴 속으로 걸어들어 가는 비구니의 얼굴엔 아무 표정이 없었다. 그리고 서서히 동굴 속에서 연기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비구니는 표정 하나 없이 불속에 앉아있었다.

 

네 전생이야. 그녀가 말했다.

꿈인데? 그가 우습깡스럽게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지금 그러고 있는 건 꿈이 아닌 것 같지?

누구라도 많은 전생이 있지. 네 말처럼 꿈과 같이. 꿈속에선 별 모양을 다 할 수가 있지 않어? 마찬가지야. 네 전생도 그것뿐 아니라 별 모습을 다 했을 거니까. 너무 집착하지 마. 생각지도 말고. 아무런 답이 없을 거니까.

아침에 꿈 얘기를 했을 때 아내는 실실 웃었다. 당신, 머리가 어떻게 되는 게 아니야? 아내가 그의 머리를 어루만졌고 그는 갑자기 꿈속에서처럼 자신이 여자였다면 아내는 어쩔까 하는 터무니없는 생각이 들었다. 불콰해진 얼굴로 그는 아내를 품에 꼭 껴안았다. 어떻든 지금 순간만은 자신의 아내였고 자신 역시 아내의 남편이지 않은가.

그러고 나니 머리가 조용해졌다. 고요함이 거짓말같이 머릿속에 찾아들었다. 곳간의 벼섬 같은 지식을 주렁주렁 쑤셔 넣고 있던 머리가 텅 빈 듯 고요해졌다. 꽉 찬 머리를 갖고 있는 인간도 텅 빈 머리를 갖고 있는 인간도 모두가 를 위해서 버둥거리고 있지 않은가? 고요해진 머릿속에도 나른해진 몸속에도 어디에도 를 찾을 수가 없었다.

찾아간 그에게 그녀가 릴케의 한 구절을 찾아주었다.

그것은-

 

『환상』이라고 하는 경험, 이른바『영적세계』라는 것, 죽음 등과 같이 우리와 아주 가까운 것들이, 예사로 얼버무리는 사이에 우리 삶에서 모두 사라져 버렸다. 그러는 사이 그런 것들을 느끼는데 필요한 감각들은 모두 퇴화되고 만 것이다.

그리고 그는『금강경』을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착착 모든 것을 잘도 쌓아놓던 머리가 처음으로 기능을 상실하고 있었다.『금강경』은 전혀 그의 머리를 걸쳐가지 않은 듯한 달 동안 읽은 뒤에도 처음 읽는 듯 새로웠다.

처음으로 그는 출가를 한다는 일이 자신과 십 만 팔 천리 떨어진 일이 아님을 알았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떨림이 그의 텅 빈 듯한 머릿속에 마음속에 공명을 일으키고 있었다.

출가를 어떻게 생각해?

처음에 전화로 물었을 때 그녀가 대답했다.

한번 와. 이건 진지하게 앉아서 얘기할 물음인 것 같은데우리 집 분이 있을 때 왔으면 해. 나보다도 정확하게 대답을 해줄 것 같은데

한 아름의 백합을 안고 그녀의 집 문을 두드렸고 그녀가 나와서 그를 집안으로 안내했다.

백합이네. , 다음 생에 예쁜 미모를 갖구 태어나겠어.

그녀가 불당으로 백합을 안고 들어간 뒤 그녀의 남편이 그를 찻상을 놓은 상 앞으로 자리를 권했다.

철관음을 마실까요?

그녀의 남편이 물었다.

, 좋지요!

쪼르르- 찻잔에 노오란 찻물이 떨어졌다.

차를 따르는 새에 그녀가 돌아와 그녀 남편 곁의 자그마한 소나무원목으로 짠 쪽걸상에 앉았다.

철관음의 향이 확 온몸에 퍼지고 온 집안에 넘친다. 그가 찻잔을 놓으면서 그의 남편에게 묻는다. 그녀에게 물었다가 아무런 대답도 듣지 못하고 휴식일이 되기를 내내 기다리면서 마음속으로 몇 천 번 몇 만 번이고 자신에게 물었던 그 물음을.

출가를 한다는 건 어떤 일입니까?

그렇게 마음을 먹는다는 자체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출가를 하는 것도 전생에 쌓은 도가 있기 때문이지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출가에도 여러 가지로 나뉠 수가 있습니다. 몸만 출가하여 옷만 바꾸어 입고 비구의 행세를 하는 이도 있고 마음만 출가하여 속세에 머물면서 거사로 살아가는 이도 있고 몸과 마음이 다 출가하여 아무런 거침이 없이 살아온 이도 있습니다. 당신은 어떤 출가를 말하는 겁니까?

그의 마음이 들끓기 시작했다. 도대체 자신은 어떤 출가를 원하는 걸가?

출가를 한다는 게 꼭 비구의 옷을 입고 절에서 살면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아니야. 절에도 절의 법도가 있지. 아무런 구속을 받기 싫다고 도피의 장소로 생각해서도 마찬가지야.

그녀가 말을 하면서 자신의 남편을 돌아본다.

이 사람 역시 그런 경력이 있어서 하는 말이랍니다. 이 사람도 출가를 결심하고 절에 머물렀던 적이 있지요. 그때 나와는 딱 한 번의 안면이 있었답니다. 출가하기 전에 저랑 대학교동창생이던 친구가 있었지요. 그 친구한테서 이 사람이 출가를 하려고 강서의 어느 절에 머물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답니다. 그 자리로 나는 이 사람을 찾아 떠났지요. 그때 내가 찾아가지만 않았어도 이 사람은 이미 비구니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에요. 절에 가고 나서야 나는 내가 뭔가를 잘못 알고 있다는 걸 알았지요. 출가를 한다는 게 세상에 대한 도피는 절대 아니다는 생각을 그때 이미 하고 있었고 당신이 옴으로써 쉽게 그 다음을 결정하게 되었을 뿐입니다. 너도 그래, 네 몸과 마음으로 출가를 하면 되는 거야. 그렇다면 절에서도 집에서도 어디에서도 다 가능한 게 아니겠어? 이름난 유마힐거사도 있지 않어.『유마경』을 봐봐.『육조단경』도 보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출가를 한다는 건 좋은 일입니다. 허나 돌아보면 당신이 내려놓을 것이 뭐가 있습니까?

그가 갑자기 풀럭풀럭 웃고 싶어져 있었다. 그랬다. 도대체 뭐가 내려놓고 안 내려놓고 가 있단 말인가?

 

소적한 산의 아랫자리에 버섯모양같이 피어난 움집이 있었다. 움집 뒤로 키 높은 호두나무와 밤나무와 감나무들이 비어버린 가지를 소락소락 흔들며 산속 깊숙이 바람의 깃자락에 묻어온 산새소리에 화답하고 있었다. 산자락엔 듬성듬성 섬운 같은 눈들이 푸실푸실 널려져있고 둥근 빵모양같이 빚어 올린 움집 아래로 실개천이 섬섬, 세월 속으로 흐르고 있었다. 금강을 닮은 산 모양이 그의 손에 들린 신문의 사진속의 산이랑 꼭 같았다. 그 신문에 실린 사진을 볼 때 그는 번쩍 정신이 드는 기분이었다. 그 산은 꿈속에 본 산이랑 똑같았다.

가야한다! 마음이 부르짖고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신문을 접어 호주머니에 넣고 회사 직원에게 한동안 자리를 비울 거라고 투자자의 한사람인 친구에게 전해달라고 한 뒤 그는 차를 끌고 도시를 나오고 있었다.

도시를 나오는 내내 그의 두 눈은 허공에 있었다.

커다란 도시 전체가 보이고 그 도시의 혈맥과도 같은 길을 내달리는 자신의 차가 보이고 차안에 앉은 자신의 몸도 보였다. 도시는 그 혈관으로 모든 오고가는 것들을 흡수하고 있었다. 그리고 도시를 벗어나 산길을 달리면서부터 그의 두 눈은 우주높이로 올라가 있었다. 태양계가 보이고 태양계속의 해와 달과 지구와 금성과 화성과 그 외의 수많은 별들이 보였다. 아무리 내달려도 지구를 벗어나지 못하는 차안에서 그는 몸만을 남겨둔 채 은하계를 넘나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 산이 멀리 바라보이는 동네어구에서 내렸다. 거기서부터 산발을 타고 걸어 들어가면서 그는 뭔가가 그곳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버섯모양 같은 움집이 보였다. 커다란 금강을 배경으로 버섯모양같이 피어난 움집, 그가 무릎을 꿇었다. 산바람이 그의 어깨너머로 멀리로 잉 소리를 내며 달아났다. 어둠이 단록으로 몰려왔다. 모든 시간이 단록 아래로 밀려가고 있었다. 밤이 되었다. 빛 한 점 없는 밤이었다. 그는 그 어둠속에서도 어둡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시커먼 움집 안엔 숨소리 하나 없었다. 마음에 별 하나가 솟고 있었다. 서서히

그리고 움집 안에서 웅글진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들어오게.

그 목소리가 그의 몸 전체에 울려 퍼지고 산골짜기에 울려 퍼지고 세상 밖으로 퍼져나갔다.

여서만도 자넬 삼년을 기다렸네. 그래도 용케 찾아왔군 그래.

그의 머릿속이 그의 몸속이 우주같이 고요해지고 있었다. 불속에 앉아있던 몸이 서서히 그의 몸속에서 별과같이 깨어나고 있었다. 조금 휘청거리며 그가 몸을 일으켰다. 몸이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버섯 같은 모양의 움집 속으로 하나의 우주가 걸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 바람이 움집 위를 스쳤고 그는 빛 속으로 몸을 던지고 있었다.(*)

 

 

박초란[朴草蘭]

*1975년 중국 룡정시 개산툰진 출생. *연변예술학원 음악학부 졸업.

*1996년 처녀작 <소녀의 기도>로 문단 데뷔.

*주요작품으로 단편소설 <언덕우의 바다>, 장편소설 <반야> .

*현재 베이징 사범대학 도서관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