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기를 흔들며

 

 

박요한

 

 

 

 

1

 

오전 840분쯤이었다. 자유의 여신상을 보겠다는 한국에서 관광오신 손님들을 내려놓고, 막 돌아설 때였다. 상상도 못할 엄청난 소리가 지축을 울렸다. 우지끈 꽝아니, 그 정도의 소리가 아니었다. 땅이 꺼지거나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였다.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 비행기가 꽂힌 것은 바로 그 시각이었다. 소위 뉴욕의 명물이라는 쌍둥이 빌딩에 화염이 충천한 것은 바로 그 시각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자본주의의 상징이라는 찬란한 뉴욕의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지는 소리였다.

사건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쌍둥이 빌딩 남쪽 건물에 비행기가 꽂혔을 때만 해도 나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어떤 어리석은 비행사 녀석이 조종을 잘못하여 날아가라는 하늘은 날지 않고, 대신 이 건물을 들이받은 것이라고. 처음엔 모두들 그렇게들 생각했을 것이다. 심지어 사건 직후 부시 대통령도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느냐는 미국 초등학교 어린이의 질문에 나도 처음에는 조종사의 실수인 줄 알았다고 토로할 정도였지 않은가.

만약에 이 사건이 테러가 아니고, 정말 우발적인 조종사의 엉뚱한 실수였다면 얼마나 다행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나 역사에는 만약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고 했으니, 그런 소리는 하지 않겠다.

십팔 분 후에 여객기 한 대가 다시 날아왔다. 이 여객기가 날아오는 장면은 그 후 TV에 수천, 수만 번도 더 나타난 장면이었다. 비행기는 얌전하게 날아오고 있었다. 무서운 참극의 주인공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비행기는 평온하게 날아들고 있었다. 마치 황새가 자기의 둥지로 날아들듯이 화사한 몸매를 자랑하면서 가볍게 비상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드디어 무섭고 잔인하게 북쪽 건물로 침공해 들어갔다.

검붉은 화염에 휩싸였고 폭발음과 함께 튕겨져 나오는 여객기 잔해의 파편들 그처럼 조용하고 품위 있게 날아들던 비행기치고는 처참한 종말이었다. 비행기는 너무나 무서운 괴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무엇이 괴력이냐 하면, 쌍둥이 건물 이쪽을 치고 들어갔는데 저쪽 편으로 비행기의 잔해가 뛰쳐나온 것이다. 얌전하게 다가오던 비행기에서 저처럼 놀랍고 참혹한 모습이 연출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하였겠는가. 그것이 괴력이 아니고 무엇이었겠는가.

나는 그 후로 그런 생각을 해본다. 쌍둥이 건물은 아름답다. 유리와 수정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세계적인 명물이며 관광의 명소다. 만약에 유리와 수정이 아니었더라면, 비행기가 건물 이편에서 저편으로 쏟아져 나올 수 있겠는가 말이다. 범인들이 만약에 돌로 건축된 엠파이어 빌딩을 공격하였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빌딩이 무너졌을까. 아닐 것이다. 건물만 들이받고 비행기는 그냥 추락했을 것이다. 아름다움에는 가시가 있는 것, 장미에는 가시가 있다는 것이 새삼스러울 뿐이다.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청천하늘에 날벼락이란 말은 이런 일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 엄청난 사건을 보면서 현장의 뉴욕시민들은 하나같이 어리벙벙해 있었다. 모두들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나 역시 그랬다. 상상도 못할 일이 아니었던가. 눈부신 쌍둥이빌딩에 비행기가 꽂히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하였겠는가.

나는 차를 몰고 현장을 빠져나왔다. 웨스턴 애브뉴를 지나 허드슨 파크 하이웨이로 달렸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이 참혹한 현장에서 공연히 어리벙벙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34번가 코리안 타운 쪽으로 달렸다. 강서면옥 앞 큰길가에 차를 세워놓고, 차안에 있는 TV를 켰다.

오전 930분이었다. 대통령이 화면에 나와 있었다. 부시 대통령은 플로리다에서 휴가 중이었다. 그런데 대통령이 화면에 나온 것이다. 그는 일련의 이 사건들이 테러 행위라고 규정지었다. 그의 얼굴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건이 발생한 지 30분 만에 그것도 무서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판국에 대통령이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이 사건이 테러라고 재빨리 규정지었다. 그 신속함과 순발력, 나는 미국의 저력을 보는 것 같았다. 미국의 모든 TV가 쌍둥이 빌딩의 참사를 현장 중계하고 있었다. 방송국들마다 허둥대고 있었다. 왜 이런 일이 생겼는가. 과연 테러냐, 테러라면 배후가 누구냐. 오전 940, 미 역사상 최초로 미국 내 모든 공항의 운항이 전면 중지되었다. 미국으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오전 943분 국방부 청사 건물 펜타곤에 아메리칸항공 소속 보잉 757기가 추락했다. 오전 957, 부시 대통령이 플로리다를 출발하였다. 이때부터 TV에서는 미국 상공에 납치된 비행기가 네 대나 떠 있다고 보도하기 시작했다. 오전 1010, 유나이티드항공 여객기가 펜실베니아주 피츠버그 남쪽 생크스빌에 추락하였다.

오전 1015분이었다.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지고 있었다. 나는 그 때 CNN을 틀어놓고 있었다. 화면에는 검붉은 연기가 꾸역꾸역 나오고 있었다. 쌍둥이 빌딩은 마치 성난 용의 입처럼 검붉은 연기를 토해내며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모든 방송의 화면이 모두 그러하였다. 마침 그날 아침, 뉴욕 하늘은 맑고 싱그러웠던 탓에 쌍둥이들이 용트림하는 모습이 너무도 선명하게 화면에 나타났다. 그것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아보였다.

얼마 후였다. 엄청난 굉음과 함께 먼지가 일어났다. 처음에는 저것이 구름인가 싶었다. 저것이 무엇입니까. 글쎄 말입니다. 갑자기 구름으로 건물이 가린 것 아닙니까. 방송국 앵커들도 놀래서 자기들끼리 떠들고 있었다. 갑자기 생긴 일이었기 때문에 누구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때까지만 해도 쌍둥이 건물이 주저앉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다. 뿌연 연기가 솟아오르면서 남쪽 건물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이어서 오전 1028, 월드 트레이드센터 북쪽 타워가 껍질이 벗겨지듯 위로부터 붕괴되었다. 건물이 무너지는 순간 거대한 폭풍이 일었다. 시멘트와 유리조각들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사람들은 소나기처럼 내려오는 물체들에 맞아 유혈이 낭자했으며 수 없이 죽어갔다. 건물 주변은 잔해에서 쏟아져 나오는 먼지로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마치 일식이 온 듯했다. 사람들은 먼지를 뒤집어쓰고 옷가지로 코를 막은 채 긴급히 대피하고 있었다. 아비규환과 청천벽력이 어떤 것인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매캐한 냄새가 34가까지 진동을 했다. 냄새는 역겨워서 참을 수 없을 정도였다. 타이어 타는 냄새인 듯했다. 나는 몇 번이고 차에서 내려 타이어를 살펴보았다. 타이어는 이상이 없었다. 폭풍 후의 먼지가 이곳까지 밀려온 것이었다. 눈은 침침해졌고 냄새 때문에 골이 지끈지끈 아파왔다. 화재가 나면 불에 타 죽는 사람보다 유독 가스에 질식해 죽는 사람이 많다더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사건 발생 후, 교포 신문들이 일제히 호외를 발행했다. 신문의 제목들이 너무나 끔찍하였다. ‘, 충격의 날 2001911’, ‘미 심장부가 폐허로’, ‘무너진 미국의 자존심’, ‘사망 2만 명 추정’, ‘생사 갈림길 인간애 만발그리고 사진에는 무너진 쌍둥이 빌딩의 잔해와 먼지를 뒤집어써서 마치 밀랍 인형의 모습을 하고 탈출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대명천지, 세계의 문명국인 미국, 그 미국의 자랑인 가장 큰 도시 뉴욕에서 이런 일이 생긴 것이다.

얼마 후 참사 사망자가 5천 명으로 정정 발표되었지만 처음 보도대로 2만여 명이 넘는다고 나는 지금도 생각한다. 빌딩 내의 입주자들보다 빌딩 관광객들과 인근의 구경꾼들까지 합치면 그 정도는 된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생존자와 사망자의 숱한 화제들, 그중에서도 기억나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이야기는 엄마, 비행기가 날아와의 스물여덟 살의 저스틴 이 양의 스토리다. 그 나이에 그녀는 미국에서 변호사까지 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얼마나 총명하며 실력 있는 인물이었던가. 미용실을 운영하는 57세의 어머니 스텔라 씨에게는 금지옥엽이 아니었겠는가. 그날따라 어머니는 꿈자리가 사나왔다고 한다. 딸에게 전화했었다고 한다. 출근은 잘 했느냐, 꿈자리가 좋지 않구나. 딸은 말했다. 엄마 괜찮아요. 딸은 그날따라 명랑했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엄마에게 정다웠다. 그러나 이어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비행기가 와”, 이 소리뿐이었다. 그리고 이 소리를 마지막으로 쿵쿵쿵 하는 굉음과 함께 딸의 전화는 끊겼다. 그리고 모녀는 지금까지 만나지 못하고 있다. 참으로 기가 막힌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두 번째 이야기는 내 딸 오는 소린가의 딸 사망확인서를 받은 육대진 씨 부부 이야기다.

언제, 딸아이가 엄마하면서 집안으로 들어올지 몰라요. 그래서 대문을 잠그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육대진 씨는 지금도 딸이 집으로 들어오는 것 같아서 자다가도 깜짝 놀라 일어나곤 한다고 했다. 무남독녀, 25세의 크리스티나 양월스트릿 진출의 정상에 오른 젊은이, 그녀는 누구나 입사하고 싶어 하는 캔터 피츠 제럴드사에 신입사원으로 합격한 딸이었다.

그 딸이 쌍둥이빌딩 참사에서 죽었다. 뉴욕 시로부터 딸의 사망확인서를 받고도 아버지 육대진 씨는 믿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밤새 뜬눈으로 뒤척이다가 밤을 꼬박 새운다고 했다. 혹시 조그만 소리라도 들리면 갑자기 내 딸 크리스티나가 왔다, 하면서 아빠는 뛰어 내려간다고 한다. 슬픈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이런 비극의 얘기가 신문 온 지면을 덮고 있었다.

나는 무엇을 메모하는 습성이 있었다. 아니 누구라도 이 참사를 후일 글로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신문에 보도된 사건일지와 내용들을 수첩에 적어 넣었다.

오전 1045, 워싱턴 내 모든 연방 청사가 소개 완료되었다. 124LA 국제공항에 소개령이 선포되었다. 1215, 샌프란시스코 공항이 폐쇄되었고, 멕시코와 캐나다 국경에 비상경계령이 발동되었다. 오후 14, 루지애나 박스데일 공군 기지에 도착한 부시 대통령은 비상경계령을 전군에 발동하였다. 그리고 대통령은 테러공격 배후를 밝혀 응징하겠다고 다시 한 번 천명했다. 오후 127, 워싱턴에 비상사태가 선포되었다. 오후 220, 미국 내 민간항공기의 이착륙이 전면 중지되었다. 미국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오후 355, 부시 대통령은 네브래스카 전략 공군 기지에서 비상안보회의를 소집하였다. 오후 830, 부시 대통령은 테러범은 물론 이들을 비호하는 국가에도 보복하겠다고 담화문을 발표했다.

 

2.

 

나는 차를 몰아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 영업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러잖아도 영업이 부진하던 차에 오늘의 참사까지 생겼으니 앞으로 살아갈 일이 막막했다. 집이라고 해봤자 코딱지 만한 스튜디오 방이다. 한국식으로 하면 원룸이다. 게다가 커튼으로 막아 한쪽은 딸 슬기 방으로 꾸며놓았다. 비좁기가 한량없다. 침대에 누웠다. 꿈을 꾸는 것 같았다.

TV를 켰다. 무너진 쌍둥이 빌딩의 잔해가 삐죽삐죽 보였다. 소름끼치도록 무서웠다. 나는 문득 슬기가 보고 싶었다. 그 애야말로 나의 무남독녀다. 아이는 집 근처 고등학교 학생이다. 쌍둥이 빌딩과 우리가 사는 데는 남쪽과 북쪽으로 거리가 멀다. 맨해튼 섬 이 끝에서 저 끝이다. 아이는 안전할 것이다. 아이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넣어보았다. 전화는 불통이었다. 계속해서 몇 번 더 전화를 넣어보았으나 계속 불통이었다. 아이는 안전할 것이다. 나는 회사에 전화를 했다. 회사에서는 당분간 영업이 어려울 거라고 했다. 맨해튼은 이 시각부터 모든 차량의 운행이 전면 통제한다고 발표했다. 이 섬을 나갈 수도 들어올 수도 없다는 것이다. 굶어죽게 생겼다고 했더니, 회사의 미스터 김이 말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우리들이야 공항 손님이 태반인데 공항까지 전면 봉쇄된다니 어찌합니까. 더구나 맨해튼은 진짜 섬이 되어버렸네요. 여기 플러싱이나 뉴저지 등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당분간 기다려보세요.”

오늘 아침에 모신 손님들은 서울에서 오신 부부들이었다. 그들은 아침 일찍 자유의 여신상을 보러갔었다. 그 손님들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얼핏 잠이 들었다. 너무 피곤해서였다. 어느덧 하루가 기울고 있었다. 딸애는 어떻게 되었는가. 방문이 열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딸아이가 들어오고 있었다.

아빠, 자고 있는 거야?”

딸아이의 목소리에 가시가 섞여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는 항상 그런 식이었다. 다른 집 딸아이들은 애교도 있고 다정하기도 하다는데 이 아이는 항상 따지는 듯 그런 말투였다.

, 지금 들어 오냐, 너 괜찮았냐?”

아이는 내 말에 잠잖고 있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아빠는 나의 아버지가 맞는 거야?”

나는 아이의 그 말에 처음엔 영문을 몰랐고, 다음엔 그런 식의 말투에 은근히 부아가 치밀고 있었다.

너 그게 무슨 말버릇이냐. 내가 네 아버지가 맞느냐? 너 내게 그렇게 물었느냐?”

그래요.”

딸아이는 여전히 노기 띤 모습을 조금도 풀고 있지 않았다.

무엇 때문에 그러는데?”

자연히 나도 화가 난 음성이었다. 하나밖에 없는 딸이다. 그런데 가끔가다가 이런 식으로 나온다.

아빠는 내가 지금 어디서 오는 길인지 알아요?”

나는 딸아이의 뜬금없는 소리에 짜증이 났다. 나는 대답했다. 너 학교에서 오는 길 아니냐.

그러니까 아빠는 문제예요. 매주 화요일 오전에는 월드트레이드센터 34층에 있는 미국 출판사에 나가서 아르바이트한다는 것, 아빠는 알고 계셔요?”

그러고 보니 아차 싶었다. 언젠가 딸아이가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이제부터는 아르바이트 자리가 생겼노라고, 그 유명한 쌍둥이 빌딩이라고, 매주 화요일 오전에 가서 몇 시간씩 일하게 되었다고. 그런데 나는 그것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아니, 생각조차 않고 있었다. 왜냐하면 내 머리에는 딸아이가 아르바이트한다는 것과 더구나 쌍둥이 빌딩이라는 것 자체가 입력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 그랬구나, 미안하다. 슬기야! 네가 거기서 일하는 줄을 깜빡 잊고 있었다. 정말 미안하다.”

나는 아이에게 사과를 했다. 정말 이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아이에게 정중히 사과했다. 아무리 아빠라도 사과할 것은 사과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서였다.

그러면, 너 지금 거기서 오는 길이냐? 쌍둥이 빌딩에서 오는 길이냐?”

아이는 머리를 끄덕였다. 딸아이가 전철에서 내려 쌍둥이 빌딩에 들어섰을 때는 이미 비행기가 꽂힌 후였다. 그것도 모르고, 아이는 빌딩으로 들어간 것이다.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자, 아이는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생겼느냐고 물었다고 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무 대답도 없이 모두들 허둥대기만 하더라고 했다. 아이는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고 했는데 만약에 엘리베이터를 타기만 했어도 아이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되었을 것이다. 아이는 월드트레이드센터 일층 로비에서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밀렸다고 했다. 바로 그때 같은 회사 나이 많은 직원을 만났다.,

오우, 세라.”

세라는 딸아이 슬기의 영어 이름이다. 같은 회사의 직원 나이 든 영감님이 뛰어나오다가 딸아이를 만난 것이다.

세라, 빨리 나가자.”

무슨 일인데요?”

그건 나도 모른다. 빨리 나가자.”

아이가 머뭇거리고 있자 영감님은 가슴에 안고 있던 서류더미와 책들을 바닥에 내던졌다.

세라

영감님이 무조건 아이를 끌고 나왔다고 했다. 밖에 나오니 경찰들이 뛰라고 소리쳤다. 그래서 무조건 뛰었다고 했다. 유리의 파편들이 쏟아지고, 재가 쏟아지고 그 속에서 둘은 열심히 뛰었다고 했다. 한참 뛰다보니 영감님은 온데간데없어졌고 그 순간 무엇이 무너지는 소리가 나더라고 했다. 미국 자존심의 상징인 쌍둥이 빌딩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지옥이었다. 그런 지옥이 없었다. 여기를 어떻든 벗어나야 할 것 같아 아이는 길가의 영업용 택시의 문을 두드렸으나, 그들은 모두 도망치기에 바빠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고 했다. 그때 웬 캐딜락이 달려왔다. 어떤 신사가 변호사라고 자기를 소개하면서 차를 타라고 했다. 그의 사무실까지 데리고 가서 음료수까지 주면서 진정을 시켜주었다고 했다.

그러면, 네가 지금 그곳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서 왔다는 말이냐.”

나는 너무 놀랍고 너무 감격하여 딸아이를 끌어안았다. 이 무슨 일인가. 이 아이가 죽을 뻔했다는 말인가. 이 아이가 무서운 참사, 그 현장에서 살아나왔다는 말인가. 오 마이 갓,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는 죽을 고비에서 살아왔는데, 아빠는 겨우 잠이나 자다니정말 너무해요.”

딸아이는 공연히 서러운 모양이었다. 자기를 찾아서 난리법석을 떨어야 할 아빠가 집에 와서 보니 태평하게 잠이나 자고 있다. 아이의 경멸하는 표정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내 아버지가 맞느냐고 물었던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던 것이다.

그 말에 조금 기분이 언짢았으나 나는 참았다. 왜냐하면, 아이의 말은 틀린 말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아이가 그 참상에서 사경을 헤맬 때 나는 태평스럽게 잠만 자고 있었으니, 딸아이로서는 화가 날만도 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다음 하는 딸아이의 말에 나는 그만 분노를 터트렸다. 아이는 나를 쳐다보면서 이렇게 말한 것이다.

그러니까 아빠는 퇴출 인생이란 말이야. 직장에서도 퇴출당하고, 엄마에게서도 퇴출당하고, 이젠 딸인 나한테까지 퇴출당할 인물이란 말예요.”

딸은 그렇게 말했다. 아빠는 퇴출 인생이라는 것이다. 사회에서도, 가정에서도, 심지어 자식에게서도 퇴출당해 마땅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나는 순간 어지러웠다. 현기증이 났다. 누가 저 아이를 나의 딸이라고 하겠는가.

나는 그만 기가 막혀서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너무 분하고 원통했다. 그것도 딸아이에게서 그런 말을 듣다니, 너무 서러웠다.

세상에, 네가 그런 말을 하다니.”

나는 딸아이를 노려보았다. 이제 너는 내 딸도 아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은가요? 내 말이 틀렸는가요? 아빠는 퇴출 인생이잖아요?. 모든 면에서 퇴출당하셨잖아요?”

아이는 빤히 보면서 분명히 내게 그런 소리를 했다. 이럴 때에는 모국어라는 것이 참으로 두려운 것이었다. 미국에 온 지 얼마 안 되는 딸아이는 미국말은 밀쳐두고 모국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한국말로 얘기를 하고 있었다. 만약에 저 아이가 영어로 이런 얘기를 했다면, 미국말로 저 얘기를 했다면 이 엄청난 충격과 참담함은 이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영어로 이런 얘기를 들었다면 그런 대로 참았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한국말을 유창하게 사용하는 아이가 너무 미웠다. 영어가 능숙하지 못해서 한국말로 이런 얘기를 하는 딸아이가 미웠다. 딸아이 또래의 이곳 아이들은 대부분 모국어를 모른다. 그 아이들은 영어밖에 모른다. 영어를 쓰고, 영어로 생각하고, 영어로 말하고, 영어로 행동한다. 그런 아이들은 자기 아빠 앞에서 저런 식으로 한국말로 심한 말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저렇게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에 저런 얘기를 한다고 해도 영어로 한다면 얼마든지 참아 넘길 수 있었을 것이다.

엄마가 죽어서 좋겠군요.”

아이가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엄마가 죽다니?”

나는 조금 당황하였다. 아이와 나 사이에 엄마 얘기는 금물이었다. 그것은 일종의 금기고 관습이기도 했다. 그런데 아이가 금기를 깨고 제 엄마 얘기를 갑자기 끄집어낸 것이다.

아내는 불륜 중이었다. 그렇다. 불륜 중이었다. 천박하게 표현해도 그렇고 점잖게 표현해도 그렇다. 불륜은 불륜이었다. 그것도 새파랗게 젊은 연하의 남자와 불륜 중이었다. 자기들 말로는 사랑이니 순수니 어쩌니 하지만 불륜은 불륜이고 간통은 간통이다.

용서하지 마세요. 저 누구를 좋아하고 있어요. 다른 남자를 사랑하고 있다는 얘기예요. 저를 용서하지 마세요.”

아내가 미국식으로 얘기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노라고 했다. 이제 우리의 결혼생활은 끝났노라고 했다. 그리고 이제 돌아가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 되었노라고 했다. 그리고 절대 자기를 용서하지 말라고 했다. 아내가 그런 말을 할 때, 나는 분노하기보다는 차라리 우스웠다. 자기가 무슨 미국의 영화배우도 아닌데 그런 식으로 노는 것이 가관이었다. 마치 미국사람이 다된 것처럼 갑자기 누구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아내의 제법 진지한 표정이 그랬고, 그리고 용서해달라고 해도 될까 말까한 주제에 용서하지 말라고 하니 누구 흉내를 내는 것 같아서 폭소가 터져 나온 것이다.

웃기는군. 누굴 사랑한다고? 까불지 말라고.”

나는 까불지 말라고 했다. 네까짓 것이 사랑을 알기나 아느냐고 했다.

당신도 알 거예요. 클레오파트라의 미스터 유, 당당히 말씀드리겠어요. 이제 우리는 떨어져서는 못 살 정도가 되었어요. 미안해요. 당신에게 이렇게 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는데

미스터 유는 나도 잘 아는 사이다. 이민 초기 스트레스 푼답시고 우리 내외가 자주 나가던 클레오파트라라는 술집의 영업 상무다. 키가 후리후리하게 크고 준수하게 생겼다. 친화력이 있어 누구하고나 친했다. 마치 요새 화제가 되고 있는 한국의 인기 TV 여자 탤런트의 애인 녀석처럼 생긴 친구였다. 마약인지 최음제인지 같이 나눌 정도로 여자 후리는 데는 천재적인 그런 녀석이었다. 머리에 든 것 없는 여자들이 빠질 만한 그런 형의 남자였다. 여자를 자유자재로 갖고 노는 그런 녀석이었다. 지금 아내는 그 녀석에게 푹 빠져 있다는 것이다. 나는 차라리 허탈했다. 그리고 생각해보았다. 녀석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

, 이제 당당하게 살기로 했어요. 그리고 이제부터는 다른 사람이 아닌 나를 위해 살기로 했어요. 나를 존중하고 나를 귀히 여기며 살 거예요. 지금 내 인생의 스테이트멘트에는 내 이름밖에, 사랑밖에 남지 않았다고요. 그래서 이제 나는 나를 찾기로 했어요. 나의 진정한 모습을 찾기로 했어요. 내 진정한 정체성을 찾기로 했다니까요. 껍데기는 저리 가라잖아요. 그동안 모든 것이 껍데기였어요. 당신도, 아이도 모두. 이제는 내 식대로 살 거예요, 용서하지 마세요.”

아내는 그 주제에 다시 한 번 용서하지 말라고 큰소리를 쳤다. 제법 문자까지 쓰고 있었다. 시답잖은 대중소설, 여성잡지 등을 읽던 그녀가 분명 어디선가 차용한 듯 그런 대사였다. 정말 웃겨주는 일이었다. 용서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란 말인가. 이곳에는 간통죄도 없다. 두 년 놈을 잡아넣어줄 그런 나라가 아니다. 보란 듯이 잡아다가 콩밥을 먹여주는 한국 같은 그런 강력한 나라가 아니다. 남이야 사랑을 하든 말든, 불륜을 하든 말든 상관도 안 하는 주변머리 없는 나라가 이 나라다. 그러니까 이런 테러나 당하는 나라가 아닌가 말이다.

그런 나라에 이민 온 내가 잘못이라면 잘못이다. 간통죄가 펄펄 살아 있는 조국이 그리웠다. 간통죄가 시퍼렇게 그 청정함을 자랑하는 유일무이한 대한민국이 그리웠다. 한국서 같으면 저 빌어먹을 것들을 유치장에 집어넣고, 구치소에 집어넣고, 교도소에 집어 쳐놓고 얼얼 얼려서 죽이고, 펄펄 태워서 죽일 텐데. 고국 같으면 112 전화 한번 돌리면 끝날 일인데, 나는 이 웬수를 못 갚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만세, 우리나라 좋은 나라 만세인데 말이다.

그즈음 우리 부부는 싸우는 게 일과였다. 툭하면 말다툼이었고, 툭하면 혈투였다. 피차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당신 같은 인간, 이제는 믿지 않아요.”

퇴직금 사기당하고, 미국에 이민 와서 단칸방에서 복닦이면서 살았다. 돈 때문에 우리는 싸우기 시작했다. 서로 무지하게 싸웠다. 그럴 때 아내는 파르르 떨면서 이런 말을 하곤 했다.

인생에 대하여 사납든지 아니면 아주 착하든지 하란 말예요. 그런데 당신은 얼치기예요. 사납지도, 착하지도 못한 얼치기

선배를 욕하지 마라!”

괜찮은 회사에서 괜찮은 직책에 있던 나를 선배 P가 꿈을 갖고 함께 일하자고 했다. 무역상사를 차리자고 했다. 아내의 만류를 뿌리치고 잘 나가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선배와 같이 가기로 했다. 문제가 된 것은 우리가 세운 회사가 불황인 것도 아니었고 망한 것도 아니었다. 어려운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런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진짜로 큰 문제는 내가 퇴출케 된 것이다.

잠깐이야, 아주 잠깐이라고.”

선배는 퇴직금을 주면서 그런 말을 했다. 회사가 쓰러져가니 어쩔 수 없지 않느냐, 어디 해외나 다녀와라. 바람이나 쐬다오란 말이야. 잠깐 쉬고 있다 보면 당장 불러들일 테니까, 이 선배를 믿으라니까.

그래서 나는 일단 퇴직한 것이다. 잠시 쉬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회사는 그런 대로 돌아갔고, 나의 자리에는 다른 사람이 들어와 있었다. 문제라면 그것이 문제였다.

잠깐만 기다려다오. 못난 선배.”

미국에 와서 안부 편지를 보냈더니, 선배는 기다려달라며 그런 답장을 보내왔었다. 잠깐만 기다려다오. 그런 말을 했었다.

그것뿐이면 괜찮겠어요. 어휴, 그 산만 생각하면 복장이 터진다고.”

받은 퇴직금 가지고 포항 근처의 산을 샀다. 부동산업을 하는 동창 K를 만난 것이 더 큰 화근이었다. 그때만 해도 땅을 사면 큰 발전이 있을 것이라고 하던 시절이었다. 동창 K는 이 다음에 부자가 되면 다 내 덕인 줄 알라고 흰소리를 했다. 그의 고향에 있는 야산이라고 했다. 주황산 국립공원 가는 네거리 근교의 산이라고 했다. 사기를 당해도 정말 더럽게 당한 것이다.

동창을 믿고 돈을 맡겼다. 후에 사놓았다는 산을 찾아가보니 80% 경사진 악산에다가 첩첩산중이었다. 지금도 초가집이 있는 그런 두메산골이었다. 게다가 그 산은 산림보전지역이라고 했다. 나중에 알아보니 산림보전지역은 정말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땅이라는 것이다. 산림보전지역은 정부 허락 없이는 풀 한 포기, 나무토막 하나 맘대로 할 수 없는 땅이라고 했다. 심지도 못하고 건드리지도 못한다는 곳이라고 했다. 그러니 말만 내 소유의 산이지, 정부 땅인 국유지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게다가 만평이 넘는다고 했는데, 막상 가서보니 삼천 평도 될까 말까였다. 동창 말만 믿고 퇴직금 몽땅 주었는데 그 꼴이 된 것이다. 후에 동창 K와 그 일행, 일당은 다른 사기사건으로 구속이 되었는데 그 사건을 나는 TV로 보았다. 그때 얼마나 망연자실하였었던지. 이것이 조국 탈출의 변이 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조국이 이젠 조국이 아니지요.”

아내는 늘 그런 얘기를 했다. 조국에서처럼 그렇게 살지는 않겠다고 했다. 짓눌려 살지도, 남의 눈치 보며 살지도 않겠다고 했다. 나의 기량, 나의 감정을 소중히 여기며 살겠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아내는 그녀의 소원대로 살고 있는 것이다. 자기감정을 소중히 여기며 젊은 애송이 녀석과 실컷 기량을 발휘하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

아내여, 제발 빨리 죽어라. 네가 살아 있다는 자체가 불쾌하나니, 너의 시간들이 이젠 치욕이고 모욕일 수밖에 없으리라. 아내여, 죽어라. 그것도 빨리 죽어라.”

그즈음 내 일기장에 써놓은 낙서다. 나는 그녀가 빨리 죽기를 바랐다. 이 세상에는 사고도 많고, 병도 많다. 안타까운 인물들이 사고로 죽고 병으로 죽는다. 그 가운데 아내 한 사람 끼인다고 해서 나쁠 것이 없다. 아니, 그녀가 세상천지에 시퍼렇게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저렇게 불륜과 간통으로 사느니, 빨리 죽어 없어져주는 것이 오히려 낫다고 나는 생각했다. 게다가 용서하지 말라면서 큰소리치는 여자, 그런 여자가 일찍 죽는다고 해서 이 세상이 손해 볼 일은 아무것도 없지 않겠는가. 나는 지금도 그녀가 빨리 죽어야 마땅하다고 열렬히 주장해 마지않는다. 그런데, 딸아이가 지금 그런 아내가 죽었다고 말을 하고 있지를 않는가.

아빠, 엄마가 죽었다니까요.”

아이는 다시 그런 말을 한다.

엄마가 죽다니, 너 무슨 말이냐?”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젊은 남자와 바람이 나서 기고만장하던 여자가, 용서하지 말라며 승승장구하던 여자가 갑자기 죽다니 이 무슨 말인가.

아빠는 몰랐을 거예요. 쌍둥이 빌딩 50층에 있던 네일 살롱에서 엄마가 일했던 것을. 벌써 한 달이 넘었어요. 오늘 아침에 엄마를 봤어요, 엘리베이터를 분명 타고 있었어요. 엄마는 죽었어요. 불쌍한 엄마

딸아이의 말이 틀림이 없다면, 아내는 분명 죽었을 것이다. 틀림없는 사실일 것이다. 건물이 붕괴되리라고는 그 당시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었다. 누구도 쌍둥이 건물이 무너지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건물 근처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이 떼죽음을 당했던 것이다. 건물의 화재를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이 압살당하여 모두 죽은 것이다. 건물이 붕괴되리라고 누구도 생각지 않았기에 소방관들이 건물로 들어섰다가 250여 명이나 죽었고, 건물 주위에서 경계하던 경찰관들 100여 명이 죽었다. 사건이 나자 용감무쌍한 소방관들이 쌍둥이 빌딩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죽었다. 근처에서 교통정리를 하던 경찰관들도 그들 역시 모두 죽었다. 빌딩이 무너지는 바람에 모두 죽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비상계단으로 내려오던 입주자들이 여유롭게 농담하며 내려올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던가. 설마 건물이 무너져 내릴지 그들 중 누구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런 판에 아내가 설마하며 엘리베이터를 탔다면, 그녀는 틀림없이 죽었을 것이다. 건물이 주저앉으면서 압사당하거나 지옥 불에 타 죽었을 것이다. 아내는 그렇게 죽었을 것이다. 지옥 유황불에 타죽었었을 것이다.

복음이란 다른 것이 아니다. 이런 것을 두고 복음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런 것이 좋은 뉴스이며 복음인 것이다. 아내가 죽었다는 말을 듣자, 나는 그만 십 년 동안의 체증이 내려가는 듯했다. 그리고 조금은 허탈했다. 이렇게 될 걸 가지고, 이렇게 될 걸 가지고 그처럼 분노하며 조바심을 치다니. 허 참, 이렇게 될 것을 가지고 공연히 울분에 떨고 분노하다니. 나는 나도 모르게 휘파람이 나왔고 콧노래가 나왔다.

아빠는 엄마가 죽었다는 데도 조금도 슬프지 않으세요?”

딸아이가 특유의 짜증난 음성으로 대들었다. 슬프다니, 무엇이 슬프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아요? 나도 그동안 엄마를 불결하다고 생각했어요. 엄마가 싫었어요. 정말 싫었어요. 그래서 아빠와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사람이 막상 죽었다는데, 아빠는 어쩜 그럴 수가 있어요. 그래도 어쨌든 아빠의 와이프였잖아요. 슬프지 않느냐고요.”

딸아이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 말투는 꼭 제 엄마를 닮았다. 이론적으로는 내가 이길 수 없다.

그렇다고 확실히 죽었다는 무슨 증명이 있는 것도 아니잖니?”

나도 아이에게 대들었다. 확실하지도 않은 것을 죽었다느니, 슬프다느니 할 필요가 어디 있느냐. 내가 큰소리를 치자 아이는 주춤했다.

그렇다면 아빠, 우리 한번 광장에 나가보지 않을래요?”

딸아이는 폐허가 된 쌍둥이 빌딩 근처 시청 광장으로 나가자고 했다. 엄마를 찾으러 가자고 했다. 다음날 나는 딸아이와 시청광장으로 나갔다. 벌써 수많은 사람들이 광장에 나와 있었다. 나는 공연히 웃음이 나왔다. 내가 왜 아내를 찾는다는 말인가. 얼마나 우습고도 곤혹스러운 일인가. 잘 되어진 일을 무엇 때문에 다시 따져보자는 것인가. 그러나 나는 딸아이를 데리고 광장에 나갔다. 그것은 죽은 아내를 확인하는 작업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딸아이의 비위를 공연히 거스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광장에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남편, 부인, 자녀, 연인의 사진을 목에 건 사람도 있었고, 전봇대와 건물 곳곳에 실종자를 찾는 포스터가 빽빽이 붙어 있었다. 그것은 마치 언젠가 한국에서 이산가족 찾기 운동을 벌이던 여의도 광장과 다를 바 없었다.

아빠, 이걸 목에 거세요.”

딸아이가 언제 준비해왔는지 제 엄마 사진을 사진틀에 넣어가지고 온 것이다. 젊고 싱싱했다. 환하게 웃고 있었다. 서늘한 이마에 눈부신 모습을 하고 있었다. 옥수숫대, 흔들리듯, 까르르 웃으며, 다가오는 너, 가을의 풀꽃, 조국강산 가득히, 내게 오너라. 우습지도 않은 낙서를 써서 그녀에게 보내던 유치한 시절의 그런 사진이었다.

딸아이는 어떻게 해서 저런 사진을 찾아가지고 나온 것일까. 실제로 아내가 살아나온다고 해도 자신조차 저 사진을 알아보지는 못할 것이다. 도넛처럼 질리게 사랑을 펼쳐온 그런 시절에나 필요한 사진이었다.

 

3.

 

오우, , 너 뭐하는 짓이냐.”

누가 내 어깨를 쳤다. 이웃 방에 있는 데이비드였다. 그는 백인이었고, 옐로 캡 운전사였다. 그리고 그는 나의 원수였다. 원수라고 하는 말이 좀 지나친 감이 없지는 않지만, 녀석은 정말 재수 없는 인간이었다. 저도 택시 운전사인 주제에, 그리고 저도 혼자 사는 녀석인 주제에 거만하기 짝이 없는, 정말 밥맛없는 그런 녀석이었다. 백인 우월주의에 미쳐 사는 그런 녀석이었다. 스튜디오 방 한 칸에 의지하여 사는 주제에 백인이라고 으스대는 그런 녀석이었다. 더구나 아일랜드 계통이라고 되지도 않는 교만을 떠는 그런 녀석이었다. 정말 십년 전에 먹은 것들이 생목이 되어 토해낼 지경이었다.

그는 툭하면 코리언을 들먹였고, 경멸했고, 우습게 여겼다. 제 나라에서 못 살고 여기는 뭐 하러 왔느냐, 너 네 민족들은 만나면 왜 한 결 같이 냄새가 나느냐, 눈은 찢어지고 웬 말들이 그렇게 많으냐? 키는 작달막해 가지고 그 모양에 웬 자존심이냐.놈과 만나게 된 것은 교통사고 때문이었다. 센트럴 파크 쪽으로 돌아가는 74가에서였다. 누가 내 차를 쿵하고 들이받았다. 놀래서 뛰어나가 보니 녀석이었다.

팟킹 유.”

녀석이 욕부터 하고 나왔다. 적반하장이었다. 동양인인 줄 알고 깔보고 나온 것이다. 잘못한 주제에 녀석이 시비를 먼저 걸었다. 달려온 경찰에게 뭐라고 했는지 경찰도 그놈 편을 들고 있었다. 정말 못 보아줄 일이었다. 가만히 있는 녀석을 내가 후진해서 받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조서를 꾸미는 것이다. 백인경찰 녀석은 그 따위 티켓을 내게 발부한 것이다. 그때만 해도 택시 영업한 지가 얼마 안 되었고, 영어도 별로 못하는 때였다. 덤터기로 바가지를 흠뻑 뒤집어쓰고 말았다. 녀석만 보면 그때 그 생각이 난다. 지금도 그 사건 생각만하면 이만저만 분통이 터지는 것이 아니었다.

경찰이 떠난 후에도 녀석은 내게 계속 시비를 걸어왔었다. 웨 얼 아 유 후 럼? 녀석이 내게 물었다. 나는 정직하게 코리아라고 했다. 한국에서 왔다고 했다. 고 홈 유어 캔 추 리, 녀석이 삿대질을 했다. 나보고 코리아로 돌아가라는 말이었다. 정말이지 더러운 놈을 만난 것이다. 나도 놈에게 소리 질렀다. 고 오 홈, 유어 칸 추 리, 나는 크게 외쳤다. 녀석은 디스 이 스 마이 칸 추 리 라고 했다. 이 미국이 놈의 나라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디스 이스 낫 유어 칸 추 리 라고 했다. 녀석이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그럼 여기가 누구 땅이냐는 것이다. 디스 이스 인디언 칸 추 리, 나는 또박또박 말했다. 녀석이 씩씩대고 있었다. 녀석이 당황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무식한 녀석이었다. 그만한 말에 대꾸도 못하고 있는 녀석이었다. 내 말을 당해내지 못하다니, 별 것도 아닌 놈이 까불었던 것이다.

어느 날, 옆방에 어떤 녀석이 이사를 왔다. 바로 놈이었다. 녀석은 제 이름이 데이비드라고 했다. 그리고 나를 킴이라고 불렀다. 재수 없는 녀석이었다. 그런 녀석이 이 광장에 나타난 것이다.

네 와이프가 죽었냐? 가출했다면서.”

녀석이 나와 딸아이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아내의 사진을 보며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아이가 영어로 뭐라고 하자, 녀석은 깜짝 놀라는 표정으로 그러냐면서 딸에게 애도를 표시한다고 했다. 네 엄마가 죽었다니, 참으로 슬프다. 가관이 아닐 수 없었다.

, 네 와이프 미인이다. 그런데 너는 어찌해서 와이프 하나 제대로 챙겨주질 못했냐? 하여간 안 되었다.”

병 주고 약 주고였다. 녀석이 싱글싱글 웃어댔는데 비웃는 것이 확실했다. 면상을 한 대 후려치고 싶었다. 녀석은 여기까지 손님 모셔다놓고 우연히 이 광장을 한 바퀴 돌아보는 중이라고 했다. 나는 녀석에게 너를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으니 썩 꺼지라고 했다.

녀석이 근래에 내게 도전을 해왔다. 내게 싸움을 걸어온 것이다. 그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첫째 이유는 내 차에 왜 성조기를 달지 않았느냐는 것이었다. 9.11 참사 이후 미국은, 더구나 뉴욕은 성조기의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건물마다 빌딩마다 대형 성조기가 걸렸다. 달리는 자동차들마다 모두 성조기가 나부낀다. 성조기 모자에, 성조기 티셔츠에, 심지어 모델들은 성조기 브래지어에 성조기 팬티까지 걸치고 나온다. 코리언들도 마찬가지였다. 비분강개한 마음으로 성조기를 다는 사람들도 있었고, 주류 사회에 편입하는 마음으로 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성조기를 꽂지 않았다가 불이익을 당할까봐 다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불량배들은 성조기 부착하지 않은 차만 훔쳐가거나 두드려 팬다는 소문까지 있는 터였다. 길에 나가면 온통 성조기뿐이다. 마치 성조기의 사열을 받는 것처럼 차량마다, 건물마다, 사람들마다 성조기의 홍수를 이루고 있었다. 이런 면에서 우리 민족은 이들을 못 따라간다. 국경일이 되어도 태극기 게양하는 사람이 얼마 안 된다고 신문마다 방송마다 떠들곤 했었다.

너는 이 나라에 살면서 그럴 수 있느냐. 무엇 때문에 성조기를 달지 않느냐.”

어제였다. 이른 아침에 아파트 앞에서 차를 닦고 있는데, 녀석이 내게 시비를 걸어왔다. 성조기 때문이었다. 성조기를 달든 말든 네가 무슨 상관이냐고 나는 대꾸했다.

너는 빈 라덴, 그 녀석이 밉지도 않은가?”

데이비드 녀석은 빈 라덴을 들먹였다. 빈 라덴은 악인이라고 했다. 그런 놈은 잡아서 처형해야 한다고 놈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빈 라덴 같은 놈은 잡아서 재판정에 세워야 한다고 침을 튀기며 말했다. 아니, 그럴 필요도 없다고 했다. 인류의 공적이니 사살해야 마땅하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그때 쿡- 하고 웃었다. 빈 라덴이 어찌하여 인류의 공적이냐, 빈 라덴이 무얼 잘못했다는 말이냐, 그리고 미국이 어찌 인류란 말이냐. 그것은 너희들 미국 놈들의 교만이 아니냐. 그러나 나는 차마 그런 말을 입 밖으로는 낼 수는 없었다. 그저 내 생각이 그렇다는 것이었다. 그즈음 나는 빈 라덴이 괜찮은 놈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무고한 인명을 살상하기는 했지만, 그중에는 정말 가야할 연놈들도 있지 않은가 말이다. 바로 다른 사람도 아닌 내 아내 최해진 같은 계집은 단매에 때려죽여도 시원치 않을 판에 빈 라덴이 그처럼 잽싸게 흉포하게 처리해주시다니 그 얼마나 가상한 친구인가 말이다. 손도 대지 않고 코를 풀게 해준 위인이시다. 인류의 공적이라니, 말도 되지 않는 소리였다. TV를 통해서 빈 라덴을 볼진대 전혀 그가 악인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악당이기는커녕 수도사의 모습이요, 성자의 모습이 아니던가. 조용한 행동, 온화한 미소, 세계적 재벌이라면서도 탈레반 병사들과 동고동락하는 겸손함그를 혁명가로 부를 수는 있어도, 어찌하여 공적이고 악당이란 말인가.

데이비드 녀석이 두 번째 시비를 건 것은 뉴욕 한인 사회를 강타한 소위 보신탕 사건 때문이었다. 개고기 사건 때문이었다. 나는 밤에 영업할 때가 많기 때문에 문제의 TV프로그램은 보지 못했다. 그런데 녀석이 그것을 본 모양이다

오우, 코리언들, 야만인 야만인이라니까요. 글쎄 개를 잡아먹는 종족이라니까요.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들어보라고요. 개를 두드려 패더라고요.

전깃줄로 개의 목에 매달아 걸고는 들입다 때리는 거야, 때려야 고기 맛이 난대나. 얻어맞는 개의 비명소리, 여러분들 보았지요? 그것뿐인가. 불에 그슬려 가지고 참혹하게 잡아 죽이는 걸요.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눈빛의 개를 보았지요?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개를 보았지요? 그런 개를 참혹하게 죽이다니참혹하게. 오우 코리언들, 정말 끔찍한 것들이지 않습니까.”

54가 멕시칸 햄버거 가게 앞은 택시기사들이 단골로 모이는 곳이다. 한국식으로 하면 기사식당인 것이다. 그곳에서 데이비드 녀석은 어젯밤에 본 TV의 코리언들 얘기를 하고 있었다. 개 잡아먹는 장면을 시청했다면서 개 잡아먹는 코리언을 흉내 내고 있었다. TV의 한 장면 모습을 흉내 내고 있었다.

, 너도 개를 먹는가.”

녀석이 나를 가리켰다. 녀석은 마치 법정에서 검사가 피고를 향해 손가락질하듯이 나를 지목하고 있었다. 백인, 흑인, 멕시칸, 인도계 기사들이 모두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녀석의 그런 물음에 순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야말로 개 잡아먹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놈은 계속 나를 윽박질렀다. 개를 먹었느냐, 안 먹었느냐. 나는 화가 났다. 이놈아, 내가 언제 개를 잡아먹었느냐,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개를 먹는 그런 사람이 아니란 말이다. 나는 큰소리로 떠들었다. 그런데 그들은 비실비실 웃고 있었다. 왜 웃는지 몰랐다. 참으로 분했다. 공연히 화가 났다. 이 새끼들이 나를 조롱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니 더욱 화가 났다. 그리고 그 다음 정말 개를 잡아먹었다는 한인들이 원망스러웠다. 무엇 때문에 여기까지 와서 개를 잡아먹어가지고 국제적으로 이 망신을 당하게 한단 말인가. 여기까지 와서 할 짓이 없어서 개를 잡아먹는다는 말이냐. 데이비드 녀석이 계속 걸고 넘어졌다. 개를 잡아먹는 코리언들은 추방해야 마땅하다, 놈은 소리소리 지르고 있었다. 참으로 더러운 자식이었다. 정말 철천지원수였다. 녀석은 많은 기사들 가운데서 코리언인 나를 개 잡아먹는 인간으로 만들어 왕따로 몰아가려는 심보가 분명했다. 그리고 나와 코리언들을 도매금으로 망신시키려고 작정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좋은 찬스를 잡은 것이다. 나와 동족인 코리언들을 이 기회에 물 먹이려고 모략을 꾸미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개 잡아먹었다는 동족의 한인들이 다시 한 번 공연히 미웠다. 무엇 때문에 더구나 뉴욕까지 와서 무슨 억하심정으로 개를 잡아먹느냔 말이다. 이럴 수가 있는가. 나는 그 문제로 정말 화가 났다. 회사로, 신문사로 항의전화를 했다. 정말 코리언들이 개를 잡아먹었느냐. 이럴 수가 있느냐. 나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나의 회사 사람들은 오히려 나를 야단치고 있었다. 미국 TV에 나온 프로그램을 자세히 보았느냐, 그것은 주류사회가 소수민족 코리언을 우습게 본 것이다, 그리고 코리언들이 개를 잡아먹었다니 천부당만부당한 얘기다. 11번 방송은 오보를 한 것이다. 일부러 꾸며서 만든 얘기다. 그럴 듯하게 계획, 연출한 것이다. 해도 너무한 것이다. 오히려 이번 기회에 우리들은 코리언의 본때를 보여주어야 한다. 이대로 당해서는 안 된다. 신문사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잘못 알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알고 보니 개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코요테라는 것이었다. 늑대인지 들개인지 그런 것을 한인들이 잡아먹었다는 것이다.

다음날, 나는 기회가 왔구나 싶어 그 자리에서 항변을 했다. 개가 아니다. 나는 큰소리를 쳤다. 개가 아니다, 다시 한 번 소리를 질렀다. 코요테다, 똑바로 알아라. 개가 아니라 늑대다. 나는 울분으로 가득 차 그렇게 떠들었다. 코리언들이 개를 잡아먹을 리가 있느냐, 코리언들은 절대 개를 잡아먹는 일이 없다. 워너 브러더스 11번 방송은 너무나 큰 잘못을 저질렀다. 이것은 엄청난 조작극이다, 절대 가만히 있지 않겠다, 한인사회가 지금 흥분하고 있다. 뉴욕 한인회, 뉴욕교회협의회, 유학생 연합회가 지금 들고 일어섰다. 11번 방송은 사과하라. 그렇지 않으면 시청 거부하겠다. 나는 너무 화가 나서 너무 큰 소리로 외쳤다.

그리고도 화가 가라앉지 않아 다시 한 번 더 나는 개가 아니라고 큰소리쳤다. 들개라고 소리쳤다. 그리고 그것은 코요테다. 다시 소리 질렀다. 우리는 개를 먹지 않았다. 들개, 늑대를 잡아먹은 것이다. 그것을 가지고 방송국이 모략중상을 하고 있다, 나는 민족의 한을 가슴에 안은 채 애국애족의 심정으로 분노의 목소리로 크게 외쳤다. 다른 것이 애국이 아니다. 이런 조그만 일부터 해결하는 것이 애국의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코리언들은 개를 먹지 않는다, 코리언들이 먹은 것은 코요테다, 늑대를 먹은 것이다, 알겠느냐. 나의 이 엄숙하고 비장한 항변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전혀 반응이 없었다. 그저 실실 웃기만 했다.

오히려 데이비드 녀석이 뭐라고 하자, 그들은 폭소를 터트렸다. 데이비드 녀석이 이런 말을 했던 것이다. 오우, 코리언들이 잡아먹은 것은 개가 아니라 들개래요, 늑대래요. 그들은 웃고 야단들이었다.

그리고, 코리언들이 11번 방송을 시청거부하기로 했대요. 큰일 났네요. 그 방송국, 코리언들이 시청하지 않으면 11번 방송국은 이제 망하게 됐네요.”

그들은 발을 동동 구르면서 웃어댔다. 서로 때려가면서 웃고 야단이었다.

내 생각에는 방송국을 상대로 싸움을 거는 것보다는 그냥 참고 점잖게 있는 것이 나을 것 같은데

인도계 택시 운전사 쟌슨이 그런 말을 했다. 그 중에서 그래도 친하게 지내는 사이였다. 나와는 그래도 무언가 통하는 친구였다. 아닌 게 아니라, 한인회가 중심이 되어 미국 방송을 향해 덤벼들었지만 헛수고였다. 중과부적이었다. 11번은 똑같은 내용을 2, 3차 방영하여 아예 개 잡아먹는 코리언들이라고 여전히 코리언들을 물 먹이고 있었다.

아빠, 막상 엄마가 죽었다고 생각하니, 불쌍하지 않아요?”

딸아이가 내게 물었다. 우리는 아내의 사진을 목에 걸고 시청 광장을 몇 바퀴 걸었다. 실종자 가족을 찾는 수백 명의 인파 속에서 우리는 그렇게 서성대고 있을 뿐이었다.

아내가 가출한 뒤, 딸아이는 엄마를 불결한 사람이라고 했다. 다시는 보지 않겠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모녀사이에는 몇 차례 내왕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막상 죽었다고 생각하니 불쌍한 엄마, 보고 싶은 엄마라고 하면서 딸은 눈물을 글썽이고 있는 것이다.

불쌍하지, 암 불쌍하고말고.”

딸아이 앞에서 나는 그렇게 말했다. 아이 앞에서만은 이렇게 얘기해야 한다고 나는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러면서, 나는 아내와 아직 이혼이 끝나지 않았음을 은근히 고마워하고 있었다. 이제 얼마 안 가서 실종자들의 보상 문제가 터져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조금만 가면 이 문제는 공식적으로 거론될 것이 분명하지 않겠는가. 나는 아내의 사진을 목에 걸고 서성이면서 보상금은 얼마나 될 것인가, 하고 혼자 계산해보았다. 지난번 대한항공 참사 때 희생자 가족들에게 얼마를 주었던가, 되짚어 생각해본다. 더구나 여기는 미국이 아니던가. 그리고 이런 무서운 참사가 세상에 또 어디 있더란 말인가. 슬그머니 웃음이 나올라했다. 평소 사이가 좋던 부부 사이라도 마누라가 죽으면 남편은 화장실에 가서 실실 웃는다는데 이것은 아예 간통에, 불륜에, 가출까지 한 여자가 아니던가. 용서하지 말라는 아내의 말은 명언이었다. 그러잖아도 나는 용서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무엇보다 영업용 택시의 핸들을 놓을 수만 있다면, 그것만 된다면 쌍둥이가 아니라 세쌍둥이, 네쌍둥이라도 무너져 내려야 한다고 나는 정말 굳게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슬기야. 너는 엄마가 정말 불쌍한 것이냐?”

나는 딸아이의 속을 알 수가 없었다. 엄마가 불결하다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는 보고 싶다면서 이곳 광장에 와서 실종자 가족 틈에 끼어 서성이게 만들고 있다니. 나는 딸아이의 심정이 이해되지 않았다.

아빠, 어떤 시인의 시에 그런 말이 있다고 해요. 이별에도 절차가 있는 것이라고요. 엄마는 죽었어요. 그러나 그냥 헤어질 수는 없잖아요. 여기서 서성이는 것이 딸로서 또 남편으로서 도리가 아니겠어요. 이러는 것이 이별의 절차가 아니겠어요. 최소한의 예의가 아니냐고요.”

딸아이가 그런 말을 했다. 이 아이가 내 딸이 맞는가 싶었다. 언제나 내 눈에는 어리기만 한 딸이었다. 그런데 아이가 이 정도의 성숙한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는 이별의 절차라는 얘기를 했다. 모국어로 그런 얘기를 내게 말하는 딸이었다. 나는 아이에게 부끄러웠다. 아이의 말이 옳은 것 아닌가. 아무리 이렇게 끝나는 부부사이라도 이별의 절차는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별의 절차보다는 이별의 보상만을 생각했던 것이다. 이곳에 온 나는 줄곧 그런 생각만 했었다.

아내는 죽었다. 이제 나는 실종자의 남편이다. 나는 잽싸게 시청에 들어가서 실종자 가족 등록을 하고 나왔었다. 앞으로 보상이니 뭐니 할 때 우선순위에 들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딸아이는 그런 것은 아예 생각에도 없었고, 그런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다만 이렇게 서성거리는 것이 떠나가는 엄마를 위한 이별의 절차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해진

나는 아내의 이름을 불렀다. 오랜만에 부르는 아내의 이름이었다.

이름을 부르고 나니 막상 그녀가 그리웠다. 3년간 연애하고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우리가 시시덕거리고 살을 맞대며 부딪쳐온 날들, 여보, 진정 우리는 이렇게 헤어져야 하는가. 너는 나이고, 나는 너이다. 헤어진다고 해도 우리는 헤어질 수가 없다. 왜냐하면, 네가 내 안에 있고, 내가 네 안에 있기 때문이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마지막 장면의 대사를 흉내 내어 이런 글을 그녀에게 보내고 우리는 결혼했었다. 수줍은 새댁이 된 아내였다. 그러나 밤이 되면 네가 어찌 그런 불덩이였는지, 부드러운 카네이션을 깔자. 너의 온몸 위로 별들의 이름을 부르며 나는 네게 무너지리라. 나는 아내의 풍성한 육신을 생각했다. 격렬한 정사 때면 으레 남던 그녀의 흐느낌을 생각해보았다. 보고 싶었다. 그녀를 다시 안을 수만 있다면, 그녀를 다시 내 팔에 뉘일 수만 있다면.

 

4.

 

데이비드 녀석이 교통사고를 당했다. 맨해튼 80번가 대로상에서 UPS 대형 차량과 충돌을 한 것이다. 중상을 당했다는 것이다. 처음 그 소식을 인도계 기사 쟌슨에게 들었을 때, 나는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평소부터 나를 깔보고 코리언을 업신여기더니, 그놈이 그 죄 값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나를 미워하는 것들은 모두 죽을 것이다.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데이비드 이놈아, 봐라. 내 원수가 되었기에 너도 이제 죽을 것이다. 내 아내, 최해진 꼴을 보지 않았느냐. 나를 버리고 가다가 십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나지 않았느냐. 이제 네놈도 그렇게 가게 될 것이다.

데이비드가 입원한 병원에 문병을 간 것은 전적으로 쟌슨의 요청 때문이었다. 친구가 중상을 입었는데 그냥 있을 수 있느냐, 가보자. 쟌슨이 말했다.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나는 마지못해 쟌슨을 따라갔다. 병원에 도착해보니 데이비드 녀석은 붕대로 온몸을 칭칭 동여매었고 눈과 입만 내놓고 있었다. 엄청난 중상이었다. 나는 녀석이 천벌을 받는 것이라고 다시 한 번 생각했다. 녀석의 그런 모습을 보니 조금은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웬일인지 녀석이 오늘따라 나를 반가와 하고 있는 것이었다. , 반갑다, 반가와, . 녀석은 그런 말을 하고 있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너는 내 친구다. 진정 내 친구다. 녀석이 우습지도 않은 모습을 하고서 내게 그런 식으로 말을 거는 것이었다. 나는 조금은 어리둥절했다. 세상에 별 놈이 다 있네. 내가 반갑다니, 웃기는 짬뽕 같은 녀석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우리가 병실을 나오려 할 때, 녀석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 내가 이제야 고백하는데 너와 너희들 코리언들이 부러웠었다. 한국인들이 무척 부러웠다. 나는 의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녀석이 또 무슨 흉계를 꾸미는가 싶었다.

, 너도 개고기가 먹고 싶으냐.”

내가 조크를 던지자, 녀석은 그 소리는 들은 체도 않았다. 그리고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었다.

이제서 하는 얘기지만 너 네 민족, 코리언들이 부러웠던 것이다. 왜 그런 줄 아느냐. 그것은 너희 코리언들은 무엇보다 단결력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부러웠었다.”

녀석의 그 말에 나는 그만 소리를 내서 한참을 웃어댔다. 우리 민족이 단결력이 있다니, 얘가 정말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옛날부터 우리는 띠앗머리 없는 민족이라고 했다. 모래알 민족이라고 했다. 이놈아, 너 그것을 아느냐. 우리는 일찍이 사색당파가 있었고, 양반 상놈이 있었다. 근래에는 지역대결로 남북이니, 영호남이니 하고 있지를 않는가. 분열과 중상모략의 천재들이 바로 코리언들이다. 그런 민족이라고 자타가 공인하고 있는 터이다. 이놈아, 그런데 네놈이 우리보고 단결된 민족이라니, 소가 웃겠다. 소가 웃겠다. 이놈아, 네가 정말 웃기는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을 모르느냐? 이놈이 정말 웃기는 놈이 아닌가 말이다. 중상을 입어서 그런지 놈이 헛소리를 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놈은 여전히 코리언들이 부럽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