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해외문학상 시부문 수상작품(미국)


벌초 3

 

김 희 주

 

 

낫 하나 들고

유택 사이사이를

비집고 들어간다

 

고요와 함께 사는 집

둥그런 머리 위로

삐죽삐죽 자라나는

죽어도 가는 세월

그 세월을 베러간다

 

엊그제

베어버린 아픔

어느 새

이만큼 자라버렸네

 

시퍼렇게

벼린 낫으로

밑동까지 싹둑 베어버릴 것을

 

 

 

그 봄, 아프다

 

 

여기저기 뭉친 아픔

꽃으로 피워 올리는 소리

저마다 가지각색의 생을

색깔로 풀어낸다

 

살아온 나의 색깔도

저렇게 오만가지 색상일까

언젠가 보송보송 까까머리 위로

떨어지던 봄비

눈물방울 범벅 되어

떠나던 까아만 너의 뒷모습

 

수십 번의 봄이 오고 간 후에야

빗물처럼 냇물처럼 소리 내어

울지 못한 그 봄이 보인다

 

마디마디에서

똘똘 뭉쳐 불거져 나온

뻘줌한 너의 사리

그냥 서럽고 그리운 것들

아픔도 성숙하면 꽃으로 피는구나

찬란하다, 너무 찬란하다

 

 

 

 

사랑하고 싶을 때

 

 

벌처럼 윙윙거리며

정신없이 사랑하는 것도 한 때

그 정열 세월이 다 앗아 가면

남는 건 회색 재뿐

사랑하고 싶을 때

뜨겁게 타버리자

사랑은 샘물처럼 늘 한 곳에

고여 있는 게 아니지 않는가

 

흔적이 남아도

아프지 않게 맴도는

그런 사랑을 하자

 

봄이 되면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나듯

처음도 끝도 보이지 않는 사랑처럼

산뜻한 그런 사랑을 하자

 

우리의 한 생

한 바퀴 돌면

다시 제 자리에 갈 수 없는 것

사랑하고 싶을 때

원 없이 후회 없이 사랑하자

계산기 두드리는 그런 사랑 말고

 

 

 

삼월의 쿠데타

 

 

푸른 바다 밀어올리고 성큼성큼 걸어 나와 밥상 위에 앉아 있는 검은 다시마, 미끄덩미끄덩 안절부절 식은 땀 줄줄 흘릴 때 우린 뭔가 눈치 챘어야 하는 건데. 바다 아래 폭도들의 무서운 쿠데타 음모가 악마의 소용돌이, 사탄의 울부짖음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넓고 큰 눈, 당나귀 귀, 라크샤사의 아가리를 가진 바다, 들을 것 못 들을 것 천 년 동안 오래도 쌓아 오면서 철썩철썩 바위에 수없이 몸을 던져도 보았지만 바다 바깥세상을 향해 길길이 날뛰며 미치지 않을 수 없었어. 쌓인 분노가 악마로 변해 검은 폭도의 앞잡이가 되어 버렸지. 지상의 모든 것을 하나도 남김없이 몽땅 쓸어버리고 싶었어. 토끼에게 속은 용왕님 이번엔 바다 밑 반란에 손을 들어 주었어. 육지에 걸어 두었던 그 괘씸한 토끼의 간도 다시 찾을 수 있으니까. 눈물 없이 차마 볼 수 없는 어린 영혼들 겁에 질린 모습으로 엄마, 아빠 찾다 행여나 아름다운 인어공주, 씩씩한 백조왕자님 손잡아 주려나 고사리 손 휘저어 보았지만 피도 눈물도 없는 듯 붉은 햇덩이는 태연히 솟아오르고 기가 막힌 하나님은 꽁꽁 언 눈물, 차디 찬 하얀 눈가루를 펄펄 내려 주셨어. 하얀 마스크를 쓴 3월의 사람들 요오드, 세슘의 공격에 다시마를 찾아 나서고 아름다운 수평선을 향해 창을 내고 살던 사람들 마른 울음조차 막혀 버렸어. 3월의 쿠데타.

 

 

* 2011311일 일본 후쿠시마 원전의 쓰나미 참사

* 라크샤사(raksasa 나찰): 성질은 사납고 몸빛은 검고 빨간 눈을 가진 사람 고기도 먹는다는 인도 신화에 나오는 악귀


수상자 프로파일

 

김희주 (kim, Hee Jooh)

창조문학신인상 시부문 당선 등단

미주문인협회 회원

재미시인협회 회원, 해외문인협회 부회장 겸 이사

사민방동인

시집 ; 살아가는 일도 사랑하는 일만큼이나

물소리 바람소리 (공저)

E-mail ; kimheejooh@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