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해외문학상 시부문 대상 수상작 <새들은 뻬루에서 울지 않았다 >배정웅

 

날짜 : 08-01-08 01:31     조회 : 746   

시(미국)

새들은 뻬루에서 울지 않았다

새들은 뻬루에서 울지 않았다.
살육의 도시 리마에서 울지 않았다.
우리처럼 보따리 싸들고
우리처럼 남부 여대로
안데스의 강추위를 건너고
따그나의 국경을 건너고
차라리 적막한 땅,
아리까에서 울음 울었다.
이끼끼 어분 공장위에서 울음 울었다.
한 해 내내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은 불모의 땅,
떠나온 뻬루와 머 다를 바 있으랴.
눈물 흘려보았자 사막의 땅 어디에 흔적이나 남으랴마는,
새들은 화약냄새 그득한
뻬루에서 울지 않았다, 안으로 삼켰던 울음
차라리 적막한 땅 바다위를 맴돌며
남몰래 남몰래 울음 울었다.
망명객처럼 가스떼자뇨로 울음 울었다.


* 배정웅 : 부산 출생. 시집 「사이공 서북방 15일」(김춘수 서문)로 본격문학 활동. 현대문학 추천완료. 시집 「길어 올린 바람」, 「바람아 바람아」, 「새들은 뻬루에서 울지 않았다.」,「반도네온이 한참 울었다」 등이 있음.「성남시문화상」,「해외문학상」대상.「해외한국문학상」등 수상. 국제펜클럽 미국본부 회원. 한국문협 회원. 현재 「미주시인」 발행인 겸 편집인



[소설부문]

빨간 크레용 태양

-정세봉


 “생엽(담배) 따러 가거라. 오늘… 왕개더기다!”
  그날 아침에 떨어져 내렸던 아버지의 명령은 무척 퉁명스러운 것으로 되어 있었다. 내 심사를 저울질하는 듯한 흘겨보는 그 눈길마저 꼭 마치 무서운 적의를 품고 있는 것만 같았다.
  정치 대장이었던 아버지는 대체로 장가를 들지 않은 총각들은 일률로 생산대의 일에 배돌이 하는 애군으로 여기고 있었다. 아버지에게 있어서 어느 한 총각이 결혼을 하는 것은 인륜대사로서의 경사라는 의미보다는 자유분방하던 망아지가 첫 굴레를 쓰는 것으로‘가정’이라는 멍에를 단단히 메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는 성싶었다.
  그러했던 만큼 학교 문을 나온 지 이태밖에 안 되는 나에 대해서도 예외일 수가 없었다. 오히려 다른 애들보다 더 가혹하게 굴고 일도 더 시키었다. 그 이면에 제 자식을 옳게 길들이려는 뜨거운 부성애가 숨어 있었던 것이었겠지만, 당시 나는 도무지 그렇게 여겨지질 않았다. 그저 그 눈길이 무서워서 고분고분 순종을 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날만은 알 수 없는 불만과 거부감이 가슴 속에 끓어올랐다.
  (―내가 뭐 계집앤가?…)
  대개 여자들만이 하게 되어 있는 담배 따기에 나를 보내는 데 대한 원망이었지만 실은 그게 아니었다.
  (하필 아버지가 정치 대장일까?)
  이런 못마땅함이었다.
  하길 그럴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 있었다. 그날 우리 몇몇 ‘애군’들은 낭만적이고 즐거운 행동 계획, 말하자면 그날 하루의 일과가 따로 약속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전날 을철이, 정호, 광석 이네들이 어디에선가 남포약이며 뇌관이며 도화선 따위를 얻어 와 가지고 금비에다 볏겨를 섞어서 큰 가마에다 닦아 내어 위력이 센 폭발물을 만들었다. 그걸로 해란강에 나가 물고기를 잡는다고 했다. 저수지 공사장에 가서 남포꾼으로 있었다는 을철이가 폭발약 한방에 물고기 한 바께쯔는 떼놓은 당상이라고 불어 대었다.
  내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였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밤마다 논도랑에 나가 고기 발을 놓고서 찍찍이 따위 잔고기들을 조금씩 잡고 있었던 나였던 만큼 그것은 황홀한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나두 가자!”
  금시 마음이 달아 가지고 바위를 썼을 때 나보다 서너 살씩 더 먹은 그들 셋은 무척 외로운 듯이 경계하는 눈길로 나를 저울질해 보았다.
  “그럼……. 심부름 잘해야 해, 알았어?”
  을철이가 마침내 짐짓 눈을 부릅떠 보였다.
  나는 그들한테서 코흘리개 취급을 당하는 것이 언짢았지만‘심부름꾼’이라는 조건부를 쾌히 응낙하였던 것이다.
  나는 아버지가 마을 뒤로 사라지기를 기다리며 얼어붙은 듯 뜰에 서서 망설이고 있었다. 고기잡이하러 줄행랑을 놓으려니까 일에서 뺑소니 친 죄를 짓고 아버지를 다시 대할 그 순간이 겁났다. 그렇지만 또 담배 따러 가자니 도무지 마음이 그쪽으로 움직여지질 않았다.
  곧바로 그럴 즈음에 담배 따러 가는 처녀들이 재잘대며 지나가고 있었다. 그 속에는 집체호의 희애도 끼여 있었다. 희애는 영화 구경이나 가듯이 화장을 진하게 하였는데 조각달처럼 휘우듬히 그린 까만 눈썹 아래 동그란 두 눈이 유난히도 맑아 보였다.
  희애는 다른 처녀들 몰래 나에게 정겨운 추파를 보내 주고 있었다. 그 눈길은 분명히 이렇게 속삭이고 있었다.
“담배 따러 가겠지? 나도 이렇게 가요, 석호와 함께 일하면 난 즐거워, 가자요, 빨리!”
  나는 문득‘부끄러운 일’이 떠올랐다. 언젠가 꿈자리 속에서 희애의 탐스러운 알몸뚱이를 뜨겁게 껴안고 정사를 치러보았던 그 일이었다.
  나는 가슴이 세차게 뛰놀고 있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희애의 그 정찬 시선에는 열아홉 살 애송이 총각의 마음을 단 즙에 젖게 하는 강렬한 유혹력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에 기이하게도 줄행랑을 놓으리라는 심술궂은 결단이 내 마음 속에 굳어지고 있었다. 희애의 신비한 유혹이 나를 반대 방향으로 밀어 던지는 강한 척력으로 되었던 것인데 거기에 또한 참으로 미묘한 까닭이 있었다.
  우락부락한 마을의 총각들은 웬일인지 희애를‘바람쟁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특히 을철이가 더 그러는 것 같았다. 나는 몇 번 그가 희애를‘바람쟁이 같은 게!’하고 흘겨보는 것을 보았다. 그 눈빛에는  분명히 경멸과 적의 같은 것이 번뜩이고 있었다.
  (왜 저럴까? 희애같이 고운 여잘 저렇게 욕할 수 있을까? 미워할 수 있을까?…. 화장하고 눈썹 그리니 더 고운데. 나는 참말 고운데!……. 화장한다고 다 바람쟁이일까? 참말 밉게 보이는 걸까?)
  나는 좀처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을철이가 진짜 사내대장부인지 몰라, 사내대장부는 응당히 저래야 하는 건지 몰라! 남자라면 나같이 여잘 고와하면 안 되는 것이 아닐까?)
  그럴 적마다 꿈 속에서 저지른‘부끄러운 일’이 떠오르곤 했다. 나는 스스로 얼굴을 붉히면서 을철이 한테 거의 선망과 존경 같은 것을 느끼면서 그렇게 될 수 없는, 도저히 그럴 수가 없을 것만 같은 자신을 고민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에 희애의 유혹 따위를 무시할 수 있는, 말하자면 을철이의 그것과도 같은 사내대장부의 자신감과 오기가 치솟아 올랐던 것이었다.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고기잡이를 가고 싶은, 일체를 압도하는 그 욕망에서 유발된 것이었지만은.
  (희애는 서운해 하겠지!…. 그리고 날 원망할지도 몰라.)
  이런 생각을 굴리면서 논두렁을 타고 슬금슬금 용두산 쪽으로 줄행랑을 놓은 나는 분명히 신바람이 나 있었다.
  비들방천을 꿰지르고 구룡천 외나무다리를 건너서 용두산 밑에 다다랐을 때 을철이네들은 거기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산을 넘어 굴레 벗은 말들 마냥 해란강으로 줄달음쳤다.
  그날 우리는 고기를 잡지 못하였다. 수심이 깊고 어마어마하게 소용돌이치는 물굽이를 찾아‘폭발물’을 두 번 던져 넣었으나 허탕을 쳤고 마지막 하나는 불발탄이었다.
  희떱게 호언장담을 하던 을철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눈을 꺼벅거리고 있는 꼴은 웃음을 참을 수 없게 했다. 웃지 않으려니까 더구나 견딜 수 없이 터져 나왔다.
  “에이 ―투신자살이다!”
  자기도 맹랑했던지 을철이는 자살하는 시늉으로 물에 풍덩 뛰어드는 것이어서 우리 셋은 땔땔 굴러가며 허리 부러지게 웃었다.
  그러다가 청개구리처럼 물에 첨벙첨벙 뛰어들어서 물장구를 치며 자맥질하며 기껏 놀았다. 배가 출출해지자 산에 올라와 멧돼지들처럼 옥수수 밭에 들어서 잘 여문 이삭들을 따서 구워 먹고는 따가운 초가을 햇볕 아래에 누워서 한잠씩 늘어지게 잤다.
  깨었을 때는 해가 서천에 퍽 기울어져 있었다. 우리는 무척 만족스런 기분으로 즐겁게 귀로에 올랐다.
  고개를 넘어 산을 내려와 가지고 구룡천 외나무다리를 건너서부터 익살스런 광석이가 앞장에 서서 손으로 박자를 쳐가며 노래를 선창했다. 우리도 따라 불렀다.
 
  대해 항행은 키잡이의 힘
  만물 생장은 태양의 힘
  이슬 맞아 오곡 푸르고
  모택동 사상은 불멸의 태양
  …….
  이어서 또 이런 노래를 불렀다.

  경애하는 모주석
  우리 맘속의 붉은 태양
  만수무강 만수무강 축원합니다!

 우리는 이 두수의 노래를 다시 다시 반복을 해 가며 목청껏 제창을 했다. 즐거운 기분대로 노래의 내용과 정감에는 상관없이 땅을 구르며 거의 장난으로 불렀던 것이다.
  “가만…! 가만있어 좀…….”
  정호가 갑자기 손 저어 제지시켜서야 우리는 노래 부르기를 그쳤다.
  “들어봐, 저게 무슨 음악이야?”
  정호가 하는 대로 우리는 걸음을 뚝 멈추고 서서 귀를 기울였다.
  비감스럽고 장중한 악곡이 끊어졌다 이어졌다 드넓은 공간을 무겁게 휘저으며 쭉―깔려 흐르고 있었다.
  “추도곡 아니야, 저게?”
  광석이가 약간 경악하며 자기의 판단을 확증하려는 듯이 다시 귀를 기울였다.
  “누가 죽었겠다. 중앙위원쯤…….”
  을철이는 대수롭지 않게 오히려 흥미로운 듯이 말했다.
  누군가 큰 인물이 별세한 것만 같은 예감은 나한테도 들었다. 대대 사무실 앞에 높이 걸어 놓은 확성기 나발에서 비장한 추도곡이 저렇듯 줄기차게 흘러나온 전례가 없었던 까닭이었다.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이 걸음을 빨리 했다. 남북으로 쭉 뻗은 신작로를 가로 건널 때 정호가 또 새로운 발견을 했다.
  “반기가 걸렸구나! 저걸 봐, 사무실 앞에…….”
  대대 사무실 창문 앞에 붉은 깃발이 흡사 묵념을 하듯이 숙연히 숙여져서 걸려 있었다. 나는 난생 처음 반기라는 것을 보았다.
  비장한 추도곡 멜로디가 갑자기 뚝―멎었다. 이어서 중앙 인민 방송국의 남성 아나운서의 사뭇 침중한 육성이 우리 모두를 숨죽이게 했다. 그 시각에야 우리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그 무서운 뉴스를 접하게 되었던 것이다.
  ―위대한 마르크스―레닌 주의자이시며 위대한 프롤레타리아 혁명가이시며 위대한 도사이시며 중국 인민의 위대한 수령이신 모택동 동지……. 서거!
  우리는 고개를 젖히고 높이 걸려 있는 확성기 나발을 일제히 쳐다보며 인형들처럼 멍하니 굳어져 버렸다. 가슴 속에 억장이 떨어지면서 얼굴이 무섭게 질리어 왔다.
  (모주석이 어찌?.……. 모주석도 서거할 수 있단 말인가!)
  전혀 상상도 해보지 못한, 우주 속의‘십장생(十長生)’과 더불어 길이길이 만수무강하리라고 추호도 의심치 않았던 통념과 확신이 우리의 머릿 속에서 드디어 돌사태처럼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었다. 그것이 신화였음을, 신화였기에 깨어지는 것임을, 우리들의 두뇌가 번개처럼 터득하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급기야 황황히 마을길에 접어들었다. 누구도 말이 없었다. 가슴을 두근거리며 거세어지는 호흡을 의식하며 묵묵히 걸음을 재우치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의 충격적인 얼굴들과 온 마을을 휩싸고 있을 분위기가 궁금해지기도 했다. 지금 이 시각, 온 나라 민중이 숨 쉬고 있을 그 사변적인 분위기 속에 나는 한시 급히 몸과 마음을 투척시키고 싶었다. 거기에서 소외되고 싶지 않았다.
  과연 마을 북쪽에 주르르 지어져 있는 건조실 앞 넓은 공지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이 금방 보였다. 그때 불쑥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려지면서 오늘 담배 따기 일에서 뺑소니 친 죄책감이 가슴을 괴롭혔다. 그렇지만 죄를 지었기에 더구나 저 장소에 가야하며 비통과 숭엄한 분위기 속에서 소외되어서는 안 된다고 절실히 느껴지고 있었다.
 나는 을출이네들과 함께 불명예의 지각생처럼 마음을 조이며 슬그머니 한쪽 귀퉁이에 가 앉았다.
  얼핏 일별해 보니 온 마을의 남녀노소가 다 모인 것 같았다. 회의에 오라면 두세 번씩 찾아다니며 일러도 오지 않던 사원들까지도 이 충격적인 시간에는 저절로 가장 값진 자각성을 보인 것이었다. 이 나라 백성으로서 지켜야 할 본분의 최저의 한도를 그들은 분명히 깨닫고 있었고 자기도 백성으로서의 본분은 지키는 사람이라는 그런 눈물겨운 자아(自我)를 남들 한테라기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확인시키고 싶어서 땀내 나는 사대육신을 이끌고 이 애도의 현장에 나온 것이었다.
  건조실벽 앞에 연단처럼 놓여 있는 낡은 테이블 위에서 라디오 방송이 계속되고 있었다.
  …… 다시금 추도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심히 비장하고 애조를 담은 멜로디는 사람들의 가슴속을 훑으며 휘저어 뒤흔들어 놓으며 고요한 공간을 누비고 있었다.
  흐느낌 소리와 울음소리가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오고 있었다. 아주머니들과 처녀들이 치우쳐 흐느끼고 울었다. 몇몇 처녀들은 손등을 눈언저리에 붙이고서 사내애들한테 얻어맞은 계집애들처럼 소리 내어 엉엉 울고 있었다. 거기에 희애도 있었는데 그녀는 흐느끼지도 소리 내어 울지도 않았으나 이미 몹시 울었던 모양으로 눈두덩이 붉어져 있었다. 어망 결에 나와 눈길이 마주치자 희애는 고개를 푹 숙이었다.
  남자들도 눈굽이 축축이 젖어 있는 사람이 많았다. 그리고 한숨을 짓거나 고개를 푹 숙이거나 했다. 털부숭이 곰새끼처럼 생긴 난쟁이 바보 차승렬은 슬픈 기색을 짓는 그 얼굴이 꼭 마치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처음으로 아버지가 노련한 배우 같다는 생각을 했다. 볕에 그을고 바람에 거칠어진 그 엄한 얼굴에 그렇듯 자연스럽고도 실감적인 슬픔이 어둡게 실려 있었던 것이다.
  나는 무릎을 꿇어 안고 앉아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나도 어쩔 수 없이 비감에 잠겨있었지만 웬일인지 눈물이 나오질 않고 있었다. 여자들처럼 흐느끼고 소리내어 울지는 못하더라도 눈물을 그들먹이 솟아나야 할 것이고 적어도 눈굽은 축축이 젖어야 할 것이었다. 그런데 도무지 그렇게 되질 않고 있었다. 모주석에 대한 감정, 말하자면 ‘심후한 프롤레타리아 감정’이 박약하거나 전혀 없기 때문에 눈물이 솟아나지 않는 것만 같아서 무척 죄스러웠고 눈물 없는 얼굴을 남들 앞에 보이기 난감했다.
  그렇지만 나는 기실 이름할 수 없는 불안에 시달리고 있었다.(이젠 어떻게 되는 건가? 중국은 어떻게 될까?……. 모주석이 계셨기에 이제껏 행복하게 살 수 있었는데……. 혹 자본주의가 복벽되지나 않을까?)
 …… 아득한 창공에서 작열하던 태양이 갑자기 새까만 숯덩어리로 꺼지고 있었다. 그리고  별찌처럼 무섭게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내 마음 속 우주에, 그 하늘에 떠 있던 빨간 ‘크레용 태양’이었다.
  소학교 1학년, 여덟 살 나던 해의 어느 추운 겨울날, 나는 담임 여선생의 등에 업혀서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독감기에 걸려 시래기처럼 푹 나부라져 가지고 선생님 등에 뺨을 꼭 붙인 채 눈을 감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몸이 아픈 것과는 상관없이 무척 신기하고 아름다운 감동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날 도화 시간에 우리는 태양을 그렸다. 선생님이 그린 것처럼 동그라미를 정성껏 그리고 그 동그라미에다 빨간 크레용을 칠해 넣었다. 더더욱 빨갛게 되라고 자꾸자꾸 칠을 했다.
  “태양은 모주석, 우리 맘 속에 떠 있는 영원히 지지 낳는 태양!” 선생님의 말씀이었다.
  나는 선생님 등에 업혀서 내 마음 속 우주에 떠 있는 태양을 분명히 보고 있었다. 내가 그린 동그랗고 빨간 ‘크레용 태양’이 찬란한 빛발을 뿌리고 있었고 그 아래에서 산과 강과 수풀과 오곡이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으며 내 생명이 꿈의 신비와 생활의 환희로 가득차 있었다.
  그런데 그 아름다운 동화가 깨어진 것이다.
  어느덧 해가 용두령 너머로 지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언제까지고 그렇게 앉아 있을 것만 같았다.
  마침내 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서서 헛기침을 몇 번 했다. 그것은 아버지의 오래 전부터 굳어진 버릇이었는데 주의를 환기시키는 방법이었다. 아버지는 사뭇 침통한 표정을 짓고서 전에 없었던 연설조로 나왔는데 말은 조리가 없었다. 먼저 한 말을 되풀이하고 빙빙 둘러서 서에 있다 동에 갔다 했는데 일부러 중심을 종잡을 수 없게 만들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걸 탓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이 소박하고 식자 없는 농촌 간부의 격에 맞는 것이라 여겨 성심껏 경청했다.
아버지의‘연설’은 대체로 모주석의 태산 같은 은덕과 자신의 비통한 심정과 모주석의 유지를 이어받아‘계속 혁명’을 하는 데 대한 내용이었고 마지막으로 ‘비통을 힘으로 바꾸어’ 저녁 후에 담배 작업을 완성하자고 했다.
  그제야 사람들은 헤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담배줄 새끼 뭉치를 깔고 앉아 담배를 새로 말아 붙여 물었고 생산 대장과 뭔가 심각한 토론을 하고 있었다. 인차 저녁 식사하러 들어올 기미가 아닌 것 같았다.
  아버지와 정면으로 만나게 될 그 순간이 몹시 두려웠던 나는 은근히 기뻤다. 아버지가 식사하러 늦게 들어오거나 들어오지 말았으면 했다. 아버지가 없는 사이에 제꺽 저녁을 먹고 담배를 베어서 건조실에 다는 야간작업에서 열성을 보이리라고 했다. 그러면 아버지도 오늘 담배 일에서 뺑소니 친 죄를 양해하고 묵과할 것이라 싶었다.
  내가 집에 돌아왔을 때 어머니는 저녁을 다 지어 놓고 있었다.
 “밥 주우―”
  나는 성급히 밥상에 마주앉아 재촉했다.
  “아버진 안 들어오니? 좀 기다렸다 같이 먹으렴.”
  “배고픈데……. 먼저 먹게.”
  배고픈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조금만 지체해도 아버지가 들어올 것만 같아 속집이 달았다.
  “애두, 아버지한테 꾸중 듣지 않나 봐라, 그래 점심도 굶고 어디가 있었니?”
  어머니가 눈을 한껏 흘기며 나무랐다. 그렇지만 그것은 애정이 넘치는 아버지 앞에서 나를 감싸주고 두둔하는 아픈 모성애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
  이윽고 새하얗고 기름기 도는 쌀밥이 상 위에 올려졌다. 저녁에 쌀밥을 먹는 일은 퍽 드물었다. 해마다 이맘때면 식량이 떨어져서 국가 창고에서‘반소량’을 내어다 먹는 형편이었다. 그것도 입쌀이 아니고 강냉이 낟알이어서 아침과 점심 두끼는 그래도 입쌀이 약간 섞인 강냉이 밥이었지만 저녁 한끼는 줄기차게 풋강냉이를 삶아 먹었던 것인데 감격스럽게도 쌀밥이다.
  나는 반찬과 국을 다 갖추어 놓길 기다릴 사이도 없이 넋 없이 퍼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밥을 몇 숟가락 떠먹지 않았는데 아버지가 인차 따라 들어왔던 것이다.
  집에 들어서는 아버지를 어망 간에 쳐다본 나는 무서운 순간을 금시 예감하며 시선을 떨어뜨렸다. 아버지의 흘겨보는, 적의를 품은 듯한 눈길에는 질책의 빛이 가득했다. 버릇 가르치려고 간단히 윽벼르고 들어온 기세였다.
  “아아 새끼, 심통 편하다!”
  하지만 나는 죽어 줍시사 하고 묵묵히 수저만 놀리었다.
  “아직도 밥 퍼먹구 있어?”
  뒤미처 떨어진 벽력 같은 소리였다. 순간 나는 격렬하게 끓어오르는 피를 화끈 얼굴에 느끼며 번쩍 고개를 쳐들어 아버지를 직시했다. 시선과 시선이 무섭게 대결하는 순간 나는 아버지한테 양해의 뜻이 전혀 없음을 확인하였고 그와 동시에 강렬한 반발심이 속에서 솟구쳐 올랐다. 나는 수저를 집어던지듯 덜렁 놓고 일어섰고 방문을 걷어차고 뛰쳐나왔던 것이다.
  어머니가 뒤쫓아 나와서 한사코 따라 붙으며 뭔가 설득시키려 애쓰고 있었다.
  “얘, 석호야, 그런 게 아니구……. 내 말 좀 들어라, 아버지가 오늘 그런 일 있었단다. 충연이 그 애가 담배단 묶는 일을 시켰더니 짐작 없이 크게 묶어 놔서 툭툭 터지지 않았겠니, 아버지가 꾸중 좀 하니 걔가 뭐라고 하겠니, 글쎄 제 아들은 일 안 시키고 어쩌고……. 그러니 네 아버진들 듣기 좋겠느냐? 그러지 말구 들어가 반성해라. 아버지 앞에……. 밥두 먹구.”
  물론 도리가 있는 말이었다. 그렇지만 나의 귀에 그런 말이 들어 올리가 없었다. 그것은 아버지의 성격 논리에는 합리한 것일 수는 있겠지만 나한테는 도저히 먹혀들 수 없는 것이었다.
  오늘 같은 범상치 않은 날에 모주석께서 서거하신 지금 이 시각에 내 마음도 그지없이 슬프고 아픈데……. 불안스럽고 답답한데……. 그로 인해서 또한 일에서 뺑소니 친 못된 소행이 더욱 뉘우쳐지고 괴로운데……. 그래서 밤작업에 열성을 보이려고 마음먹었던 것인데……. 아버지가 양해해 주고 묵과해 주면 내 스스로가 더욱 감동을 받고 힘이 될 텐데……. 더욱 아버질 존경할 텐데!.……. 그런데 아버지는 나를 아주 철없는 아이로 보고 있지. 지각머리 없는 사람 구실 못할 놈으로 여기는 거야, 그래서 짐승처럼 길들이려고 하는 거야!
  나는 마음속으로 아버지에 대한 반기를 쳐들고 야심적인 대항을 선언하며 어머니를 뿌리치고 마을 뒤로 들어갔다. 질정 없는 걸음을 걸으며 을철이를 찾아갈까? 어느 동무네 집에 갈까? 했으나 다 내키지 않았다.
  담배 일에 열성을 다하려던 생각은 언녕 포기돼 있었다. 그런 오기 없는 일을 하고 싶지가 않았다. 어딘가 조용한 곳에 가서 홀로 있고 싶었다.
  미구하여 나는 마을을 벗어져서 대돌 뚝 위를 걷고 있었다. 머리를 수그리고 기분 없이 할일 없는 사람처럼 걷는 듯 마는 듯한 행보였다. 풀대를 입에 넣고 질경질경 짓이기도 하고 손에 잡히는 대로 쑥잎을 주르르 훑어서는 화가 난 듯이 홱 쥐어뿌리기도 했으며 버들 회초리로 잡초들을 후려치기도 했다.
  그렇게 한참을 내려가서 마침내 초막에 이르렀다. 밤마다 고기 발을 놓으러 왔던 곳이었고 고기 발을 지키느라 내가 손수 세워 놓은 고깔모자 모양의 초막이었다. 마을로부터 초막까지는 2리정도의 거리였고 이삭이 패어서 여물기 시작한 논벌이 그사이에 버젓이 펼쳐져 있었다.
  어느덧 박모(薄暮)의 으스름이 마을과 논벌에 깃들기 시작했다. 나는 초막앞 대돌 뚝 위에 주질러 앉아서 어둠이 깃을 펴는 마을과 논벌과 우중충한 산과 먼 하늘을 울적히 바라보고 있다가 초막 안에 들어가 벌렁 드러누웠다.
  밑자리에 지면과 뜨게 널판자를 괴어 깔고 그 위에다 비닐 박막과 깨끗한 가마니를 두잎 폈으나 허리에 냉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점점 허리가 시려 왔지만 그렇건 말건 눈을 꾹 감고 꼼짝하지 않았다.
  오늘 밤은 여기에서 이렇게 지새우리라 했다. 솜옷 생각이 났으나 홑옷 맵시로 뛰쳐나온 것이 후회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 맵시로는 차디찬 새벽 기온에 견디기 어려우리라 생각되면서도 그것이 두렵지는 않았다. 그런 고초쯤은 달갑게 겪으리라 했다. 오히려 그 어떤 혹경에 전신을 던져 넣고서 한껏 시달림을 당하고 아픔을 겪고 불 맞은 짐승처럼 신음하고 싶은 무모한 충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면 아버지는 가슴 아파하겠지. 적어도 마음이 편안치는 못하겠지……. 짐승도 제새끼는 고와 한다는데…….)
  이런 고육지책으로 아버지를 굴복시키고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완명(頑冥)한 관념과 습벽을 고쳐 주리라 했다.
  그러자 까닭 모르게 있으리라는 데 생각이 미치자 서러움이 금시 격렬한 오열로 터져 올랐다. 나는 엎드려서 한참이나 그렇게 설움을 쏟아 내다가 울음에 지쳐 버린 아이처럼 잠 속에 빠져들고 있었다.
  한 덩이의 뿌리 깊은 구심점(求心点)― 마음속에 웅크리고 있는 악성 종양과도 같은 정체 모를 응어리, 좀처럼 풀길 없는 불안과 괴로움의 응어리를 품은 채 나는 깊은 수면의 바다 속에 끝없이 침몰돼 가고 있었다.
  뜻밖의 충격적인 사변― 모주석 서거―로 인발된, 이제 세상은 어떻게 되어지는 걸까? 이런 의혹과 우리들이 여태껏 영위해 온 즐거운 삶과 질서가 송두리째 뒤흔들릴 것만 같은 불안과 자기 개인보다는 나라와 민족이 일조에 기둥을 잃은 것만 같은 그런 한없는 허전한 괴로움이었다.
  ……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밤이 얼마나 깊었는지? ― 나는 누군가의 무척 끈질긴 애무를 꿈속에서처럼 느끼었다. 보드랍고 따스한 손길이 나의 뺨과 목을 애모쁘게 어루만지고 있었다. 나는 분명히 취할 듯이 그윽한 분 냄새를 맡고 있었고 여자의 신비한 체취를 의식하고 있었다.
  “깨어나요, 석호……. 이렇게 열이 심한테……. 어서요!”
  희애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따스한 손으로 내 가슴을 애무하는 듯  흔드는 듯 하며 속삭였다.
  “으―으―응!―” 가냘픈 앎음소리가 급기야 내 목구멍에서 토해져 나왔다.
  이어서 머리가 빠개지는 듯한 두통과 허리에 찬 냉수를 끼얹는 듯한 심한 오한이 느껴져 왔다. 내 몸뚱아리는 연신 단숨을 급촉하게 뿜어내며 병든 짐승처럼 신음하고 있었다. 신열에 들뜬 육체에서라기보다는 마음 속에 뭉쳐져 있는 좀처럼 떼쳐 버릴 수 없는 응어리, 그 괴로움의 응어리가 주고 있는 가슴 속 상처에서 내질러지는 신음이었다.
  “몹시 아파요? 석호……. 자꾸만 앓음 소릴 했어요. 약 먹고 땀 내얄 텐데……. 이제 돌아가요 응?……. 괴롭다고 몸 상하면 되나요? 나도 괴로운데……. 웬일인지 몰라. 괴로워! 혹…….”
  희애의 묵중한 윗몸이 나의 가슴 위에 실려 오고 있었고 그녀의 달콤한 뺨이 비비는 듯 마는 듯 내 얼굴에 밀착되어 왔다. 그녀의 눈물이 내 뺨에 감촉 되고 있었다.
  나는 신열에 들떠서, 괴로움에 허우적거리며 꿈 속에서처럼 희애의 몸뚱이를 껴안았다. 어딘가 뜨끈뜨끈한 열도 속에 투척이 되어 뼛속까지 스며든 내 몸의 한기를 녹여 내고 싶은, 그리고 가슴 속에 뭉쳐져 있는 괴로움의 응어리를 격렬한 몸부림으로 풀어 버리고 싶은 절박한 욕망에 휘말려서 내 몸뚱이는 무섭게 전율하고 있었다.
  어느 사이 두 입술이 뜨겁게 포개어졌다. 마치 두개의 탐욕스런 흡반처럼 들어붙어서 연신 신음 소리를 내지르며 오래도록 짓이기고 있었다. 그리고 아름답고 탐스러운 화롯불처럼 뜨끈뜨끈한 희애의 육체 속으로, 그 신비의 늪 속으로 아무런 수치심도 일말의 죄의식도 없이 헤덤비며 조금은 난폭하게 그러나 자연스럽게 나의 온몸이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격렬한 몸부림으로 육신과 영혼을 불사른 끝에, 스러져가는 감동의 여파와 함께 온몸의 기력이 쭉―빠져나가던 그 순간에 나는 또다시 빨간 ‘크레용 태양’을 떠올렸던 것이다.(*)


  정세봉 : 1943년 12월 17일 중국 하르빈시에서 출생. 단편소설「하고 싶은 말」, 중편「볼세위크의 이미지」 등 소설 수십 편 발표. 천지문학상, 중국 소수민족 문학상, 배달 문학상, 도라지 문학상 등 18차 수상. 현재「천지」월간사 소설편집. 연변작가협회 이사. 중국 소수민족 작가협회 회원. 저서로 단편소설집 「하고 싶은 말」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