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해외문학상 대상 수상작 시-김영교(미국)/ 소설-공영희(러시아)

 

[시부문 대상 수상작] 날짜 : 08-01-08 03:54     조회 : 780    



<소리의 옷>

                                        김 영 교


처음엔 생소한,
입을수록 정이 가는 옷 한 벌 있네

입고 나면 어디론가 외출하고 싶은
살갗처럼 편안하고
입어도 입어도 닳지 않아 수선비도 들지 않는 옷
세월이 가도 유행에 처지지 않네

어른도 아이도
입으면 모두의 것이 되는 향기
밤이나 낮이나
사계절 어느 절기에도 적합한
포근한 촉감으로 들어와
내 폐부에서 출발하여
초록 들판을 달려 산정을 오르는 상큼함,
그런 옷 한 벌 있네

내가 입으면 환해지는 너
네가 걷는 세상 밝기만 하네

오늘따라 삐걱거리는 수레
“감사합니다”
소리의 옷을 입히네


* 김영교 : 경남 통영 출생. <자유문학> 신인상 당선 등단.  <해외문학상> 시부문 대상수상. 가산문학상 수상. 제15회「이화문학상」(2006) 수상, 시집 <우슬초 찬가> 한영시집 <신호등>, 시집  <물 한 방울의 기도>. <너 그리고 나, 우리>(2006). 수필집 <소리 지르는 돌>. <길 위에서>(2006). 한국문협, 한국현대시협, 해외문협 회원. 시와 사람들 동인. 현재 미주문협 부회장.

 

 


[소설부문 대상 수상작]

단편소설


<그 날>

                                            이 정 희


누구나 다 한 가지의 소중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때로는 그 추억이 느닷없이 떠올라 괴롭히기도 하고 포근히 마음을 감싸주기도 한다. 나의 추억은 괴로운 것인지 포근한 것인지 아니면 인생의 한 토막이 되어 청춘의 낭만으로만이 기억에 살아있는지‥‥
출장 갔다 돌아왔더니 신문사 주필이 새 기자를 배정 받아 왔다고 하면서 애티도 가시지 않은 아가씨를 소개하였다. 해마다 배정되어왔다가는 일 년을 못 넘기고 떠나가는 또 한 명의 아가씨. 그녀가 내미는 손을 잡는데 문득 아찔한 느낌이 왔다. 아가씨가 풍기는 향기. 바다냄새였다. 멀리 흘러간 젊음의 바다냄새가 가슴에 와 닿으며 추억의 실마리를 뽑아 올렸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바닷가에 어린 그림자를 보았다.
늘 이렇게 느닷없이 찾아오는 바다의 냄새. 나이가 들면서 거의  잊혀진 그 영상이 다시 보이리라고는….
아가씨의 또릿한 눈은 웃음기 가득하여 초점을 잃은 내 눈을 보았다. 그리고 손을 빼지 않았다
“몇 살이죠?”
“23살입니다.”
“추억을 만들 나이군!”
젊음의 나이로만 기억 속에 남은 그 향기를 50여 년이 지난 오늘 이 기자 아가씨가 나에게 안겨줄 줄이야. 시도 때도 없이 속이 상할 때건 기쁠 때건 찾아오던 기억은 이제 까마득하여 진지도 너무 오래. 영영 사라진 줄 알았는데 기자 아가씨의 손을 잡으며 느낀 그 향기는 다시 추억의 장막을 열어주는구나.
‥‥한창 덤비던 18세. 경험도 지식도 없는 주제에 글을 써보고 싶은 마음 하나만 가지고 신문사에 취직했다. 기자가 아닌 잔심부름이나 들어주는 연수생이었지. 그래도 제 또래 친구들 앞에서는 신문 기자라고 뽐내면서 수첩과 연필을 단벌 양복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누가 무엇이라 하건 제 딴에는 의미가 있어 보이는 말마디, 단어들을 듣는 대로 적어 넣었다. 친구들이 이야기하던 웃음거리 같은 이야기도 수태 적어놓았다. 뒷날 정식 기자가 되어 한두 번 그 수첩 속에서 명언이 되다 싶이한 말들을 뽑아내기도 했지만‥‥
한 번은 나이가 듬직한 기자가 먼 어촌으로 출장을 가게 되자 경험이 될 수도 있으니 날더러 따라나서라고 했다.
초가을인데도 날씨는 무척 더운 편이었다. 나는 기자를 따라 일찍 길을 떠났다. 정거장에서 기차를 타고 열 시간이나 갔다. 어찌나 느리고 자주 정거했던지 승객들이 이 기차는 장대만 봐도 절을 하고 간다면서 투덜거렸다. 기차에서 내려 다시 알 수레를 타고 얼마간 들어갔더니 바닷가에 통나무집들이 나지막이 몇 채 서 있었다. 말로는 거창하게 어촌이라고 했지만 촌이라고 부르기에는 어색할 정도로 자그마한 인가였다. 날은 이미 저물었다. 등잔불이 빤한 곳을 무작정 찾아갔다. 다른 집들은 괴괴한 정적만 지키고 인적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고목의 껍데기를 연상시키는 얼굴과 손을 한 어부는 자기처럼 쪼글쪼글한 마누라와 별다른 기색 없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생선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그래도 온돌방바닥에 앉아서 받은 밥상에 오른 생선국은 맛있게 먹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몇 집이 있었는데 봄에 다 떠나가고 우리 집 식구가 이 마을의 전체 주민이래요. 우린 이 고장을 뜨고 싶어도 오라는 데도 없는데 어딜 가겠습니까. 우리 식구가 잡은 생선을 팔면 그럭저럭 살아가기는 괜찮은데요. 어엿한 어장이 있을 때 쓰던 가와싸끼(쪽배)가 있어서 우리 가족이 살아가기는 어렵지 않지만 그걸 국가에 바치라고 하는데 그럴 수는 없습니다.”
주인 영감의 느릿느릿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이 먼 어촌으로 온 늙은 기자의 목적을 어렴풋이 이해했다.
“여기서 한 20분 걸으면 또 몇 집이 사는데 그들하고 같이 생선을 잡아다 배 값은 꼬박꼬박 내는데 그런 다잖소―” 마누라가 참견하면서 기대가 가득한 시선을 보냈다. 나는 어쩐지 쑥스러워졌다 .가난에 쫓기고 노동에 쪼들린 이 사람들에게 도와줄 방법도 모르고 또 그럴만한 힘도 나에게는 없었다. 기자란답시고 따라오기는 했지만 늙은 기자를 믿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내일 다른 어부들과 의논하여 도울 길을 찾아 드리려고 이 먼 길을 왔다면서 늙은 기자는 잠자리부터 청했다.
딸이 쓰는 방이라면서 딴 칸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거기는 생선 비린내가 덜하였다.
먼 길에 지친 데다 허기진 배를 불리고 나자 늙은 기자는 금시 곯아떨어졌다. 나는 코고는 소리에 좀처럼 잠들 수가 없었다. 집을 떠나기가 처음 이래서인지 잠자리가 불편한데다가 초가을답지 않게 무더워 뒤척이기만 했다
파도소리가 스르륵 솨 귀를 간질이는데 또 코고는 소리가 창문이 들썩토록 났다. 나는 살그머니 일어나 방안을 빠져 나왔다. 무너져 가는 달이긴 해도 밤은 꽤 밝은 편이었다. 여름이 마지막 기승을 부려보는지 훈훈하니 9월이란 웬 말이냐 싶었다. 금년 여름은 신문사에서 심부름에 바빠서 수영하려도 한 번 밖에 못 갔었는데 달밤에 헤엄이나 쳐 볼까하고 물가에 나섰다. 달은 밝은데 물결은 꿈틀거리는 거대한 용을 연상시키면서 꺼멓게 움직이고 있었다. 바다가 숨을 쉰다. 저 숨결이 언제 어떻게 거칠어질지 누구도 모른다. 그러니 인간은 거대한 자연의 장난감에 불과하다.
한창 유행이던 하얀 운동화를 벗어 들었다. 그렇지 알아도 어제 길에 먼지가 뽀얗게 앉았는데 모래에까지 빠지고 나면 볼장은 다 보는 것이었다. 하나뿐인 양말도 벗었다.
<여기서 무얼 취재하겠다고! 영감테기 같으니라고. 일부러 날 여기까지 끌구오구선 뭐, 날더러 한 번 재간껏 써 보라구?! 도대체 어떻게 국가재산을 개인재산이 되게 한담? 아무리 어부가 여럿이래도 그렇지 ‥‥>
나는 무릎을 세우고 그 위에 손을 얹어놓고 앉아 바다를 내다보며 화풀이를 하고 있었다. 바다바람은 밤이 깊었는데도 여전히 훈훈하였다. 어디선가 구름이 몰려오는 징조였다.
<저게 뭘까?> 바닷물 속에 무엇인지 허연 것이 들쑹날쑹하며 어른거렸다. 환영 같았다. <배일까?> 하지만 배라고 치기에는 너무 협소하였다. 밤에 나타나는 신기루. 그렇지만 신기루는 기다림에 지친 사람의 몫이지 나같이 뻔뻔한 사람은 그런 것도 못 보지 않을까 한다.
숨을 죽이고 그곳을 주시했다. 파도 꼭대기에서 허옇게 언뜻 하더니 사라졌다. 아니 다시 나타났다. 분명히 흰색이 많아 보였다. 차차로 형체가 드러나면서 첨벙대는 물소리까지 제법이었다. 허연 형체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무거운 짐이라도 끌어오는지 힘겨워 했다. 나는 그만 아연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여자의 알몸이었다. 무릎까지 오르는 물 속에서 여인은 무엇을 열심히 끌어냈다. 구름 속에 가렸던 무너져 가는 달은 다시 얼굴을 내밀었다. 여인의 하얀 등, 엉덩이, 허벅지가 들어 났다. 그녀는 해변으로 등을 돌리고 두 손을 모아 앞에서 무엇인가 끌어당기며 뒷걸음질하고 있었다. 긴 머리 태가 등에 찰싹 붙었는데 등은 잔뜩 긴장되어 있었다. 몇 걸음 밖에서 그녀는 계속 움직이고 나는 앉은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얼어붙은 듯 일어서지 못했다. 머리 태에서 흐르는 물줄기가 등골을 타고 내려서는 가는 허리를 지나 동그란 언덕 같은 엉덩께로 흘렀다. 탄력 있는 두 다리는 천천히 움직였다.

<인어. 그렇지 인어다.> 나무를 깎아놓은 듯한 저 몸매는 인어만이 소유할 수 있다고 나는 가정해 버렸다. 그녀의 뒤에, 나무 가까이에 숨을 죽인 남자가 지켜보는 것도 느끼지 못하고 나체는 점점 더 가까워지더니 바로 코앞에 나타났다. 이제는 피하려도 피할 수가 없었다. 나는 일어나 그녀가 당기는 것을 쥐었다. 고기잡이 그물이었다. 자연이 낳아준 그녀와 이미 신세계의 문명이란 것을 옷으로 만들어 자연스러움을 가린 나. 말없이 그물을 당겼다. 그녀의 놀란 듯한 눈길이 내 얼굴에 잠시 멎었다가는 다시 그물로 옮겨졌다.
그녀는 익숙한 솜씨로 그물을 끌어 모래 위에 놓았다. 달빛에 물고기가 번뜩거렸다. <이 많은 고기를 밤중에 혼자 끌어올리다니, 그것도 처녀의 몸으로…> 수수께끼 같은 바다와 그녀, 그녀는 그물을 헤치고 바구니에 생선을 옮겨 담았다. 나도 일손을 도왔다 매끈매끈한 물고기는 쥘 때마다 미끄러져서 나는 두 손으로 움켜잡아야만 했지만 그녀는 한 손으로 살짝 들어 옮겼다. <맞어, 확실히 인어야!> 갸름한 얼굴에 은은히 흐르는 달빛을 훔쳐보며 나는 다시금 가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인간 문명의 문자를 아는 사람 치고 이토록 태연한 나체는 있을 수 없었다. 생생한 오이냄새가 났다. 은어는 물에서 건져 넣으면 늘 싱그러운 오이냄새를 한껏 풍겨준다. 그녀도 은어 마냥 오이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이것이 바다의 향기인 것이다.
우리는 묵묵히 일손을 다그쳤다. 바구니가 가득 찼다. 광주리를 맞들고 어부의 통나무집 근처로 가져가서는 큰 나무대야에 쏟아 넣었다.
다시 돌아와 남은 생선을 옮겨 담고 집 근처로 들어다 놨다.
달은 구름 속을 숨바꼭질하는데 우리는 하던 일을 끝맺었다. 그제야 그녀가 어부의 딸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우리가 그녀의 방을 차지한 것이다. 늙은 기자는 지금도 콧소리로 방안을 채우며 꿈길을 가겠지. 인어도 선녀도 아니요, 자연의 숨 쉬는 딸이었다. 세습을 멀리하고 자연을 벗하여 살아온 순진한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천진난만한 태도 바다와 인어 모래와 이지러진 달 그녀의 알몸은 조화를 이루면서 한 폭의 그림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허울 좋은 물체, 자연에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물체가 되어 그림 밖으로 밀려났다. 그래서 그녀는 나를 인식하지 않았고 나는 형체만 드러난 공허였다.
그녀는 빨래 줄에 널린 옷을 벗겨들고 다시 바다로 향했다. 움직이는 나체는 나를 자석처럼 끌어당겼다. 그녀는 모래 위에 옷을 놓고 물결을 헤가르며 깊숙이 들어가더니 살에 달라붙은 물고기 비늘을 씻어내렸다. <짠 바닷물에 몸을 씻다니…>하고 거의 본능적으로 중얼거리면서 오이냄새, 아니 향기 풍기는 손을 바닷물에 담갔다.
“돌아서세요.”
처음 듣는 그녀의 목소리는 숨바꼭질하는 달빛 마냥 은은히 들려왔다. 그날 밤 그녀가 한 첫 말마디가 이렇게 명령조였으나 음성은 나지막하고 바다처럼 잔잔했다. 그녀가 자기의 나체를 부끄러워하는 그 음성이 나를 다시 놀라게 했다 <아, 역시 인어는 아니었구나!> 이제 이 땅에 살아가는 수천수만의 다른 아가씨들과 같은 부끄러움을 아는 여자였다.
“조금 있으면 날이 샙니다. 들어가 쉬세요.”
“바다의 새벽을 보고 싶습니다. 나의 샛별이 되어 주세요.”
“하늘을 보세요!” 그녀는 동남쪽을 가리켰다. 달은 어느새 구름 뒤에 사라지고 별빛도 희미하여 오는데 밝아 와야 할 동쪽은 오히려 이곳보다 더 캄캄하였다. 폭우가 밀려오는 징조였다. 하지만 내 마음은 자연에 아랑곳없이 좋기만 하였다. 달빛 밝은 밤을 주는가 하면 검은 구름으로 대낮을 가려 주기도 하는 대자연이 오히려 얼기설기 쌓여있던 잡념들을 깨끗이 가셔주었다. 몸과 마음은 날아갈 듯 가볍고 개운했다. 아무리 구름이 많고 검다하여도 온 세상은 뒤덮지 못하는 법, 새벽은 때맞춰 찾아들었고 새날은 밝아왔다.
우리는 나란히 모래 위에 내려앉았다. 두 무릎을 꺾고 그 위에 손을 얹은 채 멀리 바다를 내다보면서‥‥
“이름이 무어죠?” 내가 물었다.
“향순이!‥‥”
그 향기와 같은 향자의 항순이었다.
“그대는 아름다워요!” 이것은 내가 한 말이 아니었다. 마음의 외침이었다.
“그대는 대담한 청년이예요!” 그녀의 묵묵한 대답을 나는 듣는 듯 했다. 그녀가 그 말을 하지 않고 마음속으로만 외쳤을 수 있어도 나는 확실히 들었다.
“그대를 사랑해요!” 다시 내 마음이 고백했다
“그대는 믿음직해요. 그대의 눈길은 나를 포근히 감싸주어요.” 그녀가 속삭였는지 아니면 내 마음이 이런 대답을 기다렸는지, 분명히 나는 이 말을 들었다.
날이 밝아 나는 늙은 기자와 취재를 떠나고 해질녘에야 다시 늙은 어부의 집을 잠깐 들려 작별인사를 했다. 기자는 그냥 지나가자고 했지만 그녀에게 하지 못한 말, 마음속으로만 외쳐댄 그 말들을 못하고, 나는 떠날 수 없었다. 그러나 사랑을 고백할 시간도 장소도 아니었고 늙은 부부가 기자와 몇 마디 말을 주고받는 사이
“돌아오겠어요. 기다려 주세요. 제 이름은 김병운이에요. 잊지 마세요” 했을 뿐이다.
그러나 돌아올 길은 이미 차단되어 있었다. 1937년의 가을이었기 때문이다. 연해주 조선인들은 소련의 산지사방으로 흩어져갔다. 흩어진 사람들은 가족을 잃고 보금자리를 빼앗기고, 생존수단을 잃어버리고 사랑을 빼앗겼다. 죽지 않기 위하여 사는 인간이 되고 자연의 조화 속에 날이 밝았다. 밤이 어두워지면서 삶도 어두웠다 밝았다. 역사의 흐름 속으로 밀리며 밀리며 50여 년 세월이 지났다. 나는 뒤를 돌아보며 이주의 아픈 상처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앞만 향하여 살아왔다. 바쁘고 숨차고 그래도 희망이 있던 50년 세월이 왜 이다지도 허무한 것일까? 우리가 바란 것이 무엇이고 무엇 때문에 뛰어왔던가. 그토록 쫓아가던 지평선은 가까이 다가 갈수록 멀어만 지고 그 뒤에는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이정희 1946년 9월 5일 러시아의 사할린에서 출생. 현재 카자흐스탄의 알마타 거주. 카자흐스탄 국립사대 러시아문학과 졸업. “레닌기치 신문사” 기자로 입사하여 문예부장, 편집위원을 역임. 알마타 예슬대학 강사역임. 카자흐 국립조선 연극극장 문예부장 역임 1992년 서울 단국대학 대학원 석사학위 받음. 중․단편소설 등 14편 발표. 희곡 “계월향” 발표.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작가들의 소설번역. 카자흐스탄 대통령 저서 번역. 현재 해외문학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