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해외문학상> 대상 수상작 시 -배미순(미국)/ 소설 -이종학(캐나다)

 

 

□ 제8회 <해외문학상> 대상 시부문 수상작품 날짜 : 08-03-11 04:03     조회 : 1156  

<슬픔이 강물처럼>

                                            배 미 순
         
때때로 슬픔이 강물처럼
내 앞길 가로막을 때가 있습니다.
강물은 흘러가는 것이라지만
내 슬픔은 흐르지 않는 강이 되고
강물은 마르기 마련이라지만
내 슬픔은 마르지 않는 강이 되어
오래 오래 누워 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슬픔이 제 풀에 떠날 때까지
조용 조용 기다리렵니다.
길고 긴 기차도 언젠가 끝이 나고
터널이나 혹한도 언젠가 끝이 나고
무성한 여름풀같던 우리들의 젊음도
언젠가는 눈발 그치듯 그칠 것이기에
슬픔이 강물처럼
내 앞길 가로막더라도
흐르지 않는 강, 마르지 않는 강처럼
내 앞길 가로막아 버티고 있더라도
제 풀에 겨워 아주  떠날 때까지
가슴 열어 품어주며 기다리렵니다.


배미순: 1947년 1월5일 경북 대구 출생
․1969년 연세대 국문학과 졸업
․1968년 연세춘추 문학상 수상
․1970년 여원사 여류신인상 수상
․1970년 중앙일보(한국)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 등단
․1993-94년 미국 National Library of Poetry Editor‘s Choice Award
․시카고 제1회 묵미(동양화) 예술상 수상, 광복50주년기념 국립중앙극장 국립합창단 공연,
  이영조 작곡 칸타타 「용비어천가」 작시
․시집: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풀씨와 공기돌」, 「보이지 않는 것도 하늘이다」
․수필집: 공저 「금밖의 세상 만들기」 등이 있음
․미주한국문협 회원. 재미시협 회원. 해외문협 회원. 「해외문학」 편집주간
․한국일보시카고 편집부국장, 샴버그 통합학굑교장 역임
․현재 「중앙일보」(시카고) 문화전문 기자 겸 중앙문화센터 원장.
․ 「해외문학」 편집주간.

□ 제8회 <해외문학상> 대상 소설부문 수상작품

<고향을 잃은 사람들>


                                              이 종 학


  민귀숙여사 일행 이십 명은 오전 9시에 캘거리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곧바로 캐나다 동부에 가서 나이아가라 폭포 등 명소를 관광하고 나서 이제 거대한 자연의 품으로 불리는 캐나디언 로키를 보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다. 이 관광단은 모두가 육십 대 중반의 노년기에 들어선 부유한 가정의 마나님들이다.
  공항에는 관광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들의 관광 안내를 맞고 있는 밴쿠버 한인 여행사의 전용 버스다. 몸체에 빨간 글씨로 ‘아리랑 관광’이라고 써 있는 버스를 보자 그녀들은 온몸의 긴장이 풀리는 듯이 말수가 갑자기 많아졌다.
  버스 ‘아리랑’은 카우보이와 들소의 이미지로 알려진 캐나다 서부 도시 캘거리 시내를 한 바퀴 돌고 나서 로키 산맥을 향해 서쪽으로 방향을 돌리고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평원 한복판에 일직선으로 나 있는 하이웨이에 들어섰다. 캐나디언 로키의 남쪽 관문이며 관광의 중심지로 알려진 밴프까지는 백이십팔 킬로미터, 6월의 하늘은 맑고 노면 상태는 쾌적했다. 오래지 않아 차창 밖으로 멀리 만년설을 뒤집어쓰고 있는 로키 산맥의 위용이 보이고 광대한 평원이 점점 좁아지면서 푸른 침엽
수림이 좌우에 병풍을 두르듯 늘어섰다. 본격적으로 캐나디언 로키의 관문 밴프에 접근하기 시작한 것이다.

  버스 아리랑은 11시에 목적지인 밴프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 바위라는 이름 그대로 해발 삼천 미터가 넘는 거대한 바위산들이 눈과 얼음 모자를 쓴 백두(白頭)의 모습으로 북쪽으로 희뿌옇게
끝도 없이 이어졌다. 등정 불가능한 산들이 수두룩하다. 그리고 밴프는 이들 산들로 둘러싸인 표고 천삼백팔십 미터에 자리잡고 있는 관광의 요지로 이름 값을 하는 작은 산협 도시이다. 미리 예약한 중세기 풍의 고딕식 고급 호텔 스프링스에 여장을 푼 민여사 일행은 시내 한복판에 있는 일식 레스토랑에서 늦은 아침 식사를 하고 주변에 널려 있는 명소의 관광에 나섰다.
  우선 조물주도 절경이라고 감탄했다는 설퍼 산을 곤돌라를 타고 이천이백오십 미터 정상에 오르면서 몸 가까이에서 장엄한 로키 산맥의 위용을 접했다. 기라성 같은 거대한 준봉과 준봉의 연속, 계곡과 강과 산정 호수의 파노라마가 태고쩍 그대로 숨이 막힐 듯이 시야 가득히 들어온다. 민여사 일행은 이 신비의 극치에 감탄사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서로 손과 손을 땀이 배이도록 맞잡고 있을 따름이었다.

  다음에는 미네완카 호수를 찾았다. 인디언 말로 ‘영혼의 호수’라는 뜻이다. 숲과 호수의 기막힌
조화, 그 속에서 에메랄드빛과 짙은 초록으로 비쳐진 호수면의 색감은 완전히 환상적이다. 이 호수에서 크루즈 관광선을 탔다. 침엽수림과 고생대, 중생대, 제3기 지층의 단층애(斷層崖)를 일목 요연하게 드러낸 절벽의 연속, 모두가 타임머신을 타고 태고의 시간 속에 들어가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그리고 대자연을 창조한 조물주  의 위대한 손길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질 따름이다.
  이밖에도 버밀리언 호수, 노케이 산 그리고 몇몇 인디언 방물관 등을 찾아 거의 일곱 시간 가까운 관광을 감탄과 경탄 속에서 마치고 민여사 일행은 일단 호텔로 돌아왔다가 간단한 저녁 식사를 하고 밴푸 시내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어퍼 온천장에 들어갔다. 계속 비경 속을 다니느라 피곤한 몸을 다스리는 데는 온천욕이 제격이라는 안내원의 말을 따르기로 한 것이다. 유황 함유량이 많아
인체에 좋다는 어퍼 온천장은 노천으로 되어 있어서 사방으로 드높은 산봉과 산림을 바라볼 수 있었다. 마치 한데서 목욕을 즐기는 듯한 묘한 느낌을 갖게 했다. 온천장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대부분이 관광객인 듯 여러 피부색의 인종들이 뒤섞여 있었다. 겨울에는 눈발 속에서 온천욕을 즐기는 정취 또한 일품이라고 한다.

  민여사는 일행과 함께 온천수에 몸을 푹 담그고 사방으로 가까이 바라보이는 드높은 산봉들에
정신을 빼앗기고 있다가 문득 온천장 한편에 시선을 옮겼다. 막 온탕으로 들어오려고 하는 백발이 성성한 남자가 어딘지 낯이 익었다. 그 남자는 막 토하기 시작한 석양의 붉은 노을에 노출된 모습이었지만 분명 그녀의 마음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민여사는 부인하듯 고개를 서너 번 흔들고 나서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설마 그 사람이?… 그러나 그녀의 시선은 다시 돌아오려고 조바심을 치고야 말았다. 온천에서 피어오르는 아련한 수증기 속에서 이내 그 사람을 다시 찾았다. 그 남자 역시 일행인 듯한 다른 두 사람과 함께 천천히 온탕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그러다가 조금씩 이쪽
으로 가까이 다가오면서 걸터앉을 곳을 찾는 것 같았다. 십 미터 거리로 좁혀졌다. 민여사는 목에 감고 있던 빨간 손수건을 풀어서 안경알을 닦았다. 앞이 한결 선명하게 보였다. 수면 위로 가슴 위만 보이는 그 사람의 모습은 처음보다도 더 명확하게 낯이 익었다. 민여사는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얼굴이 확확 달아올라서 온천에 더는 몸을 담그고 있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추석인! 바로 그 사람이 틀림없다. 젊었을 때의 모습은 거의 소멸되었지만 외모에서 풍기는 인상은 전연 퇴색되지 않았다. 민여사의 의식은 갑자기 사십육 년 전으로 곤두박질쳤다. 그녀에게 상실과 분노의 추억을 안겨 주고 떠난 첫사랑이 하필이면 여기에 나타나다니! 이대로 지나쳐 버릴 것인가? 그럴 수는 없다. 언제든 만나고 싶었던 사람이다. 사십육 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에게 물어 보고, 따져 보고 싶은 일념에는 변함이 없다. 무엇은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드니 외국 땅 온천장에서 수영복 차림으로 추석인과 기막힌 해후를 하게 될 줄이야. 운명의 끈이 끈덕지게도 남아 있다는 생각에 그녀는 머리를 흔들었다.

  민여사는 주위를 돌아볼 것도 없이 주춤주춤 물 속에서 앞으로 발을 옮겼다. 옷을 입고 온천장 출입구에서 기다렸다 만나는 게 옳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도 했지만 그것은 잠시였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틈에서 놓치면 안 된다는 조바심이 방아쇠를 맞은 총알처럼 튀어나갔다.
  민여사는, 추석인으로 보이는 남자에게로 슬며시 다가갔다. 오른쪽 귀뿌리에 눈에 익은 검은 사마귀가 선명했다. 긴가민가하던 망설임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 남자는 일행하고 이야기를 하느라 이쪽에는 전연 무관심이었다.
  “실례합니다.”
  민여사의 말에 그 남자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이쪽을 알아보지 못하는 기색이다.
  “혹시 한국 분이신가요?”
  “그렇습니다만…”
  “추석인 씨, 나를 알아보시겠어요?”
  그 남자가 눈을 끄먹거리며 기억해 내려 하고 있을 때 저쪽에서 일행중 누군가가 민여사! 하고 크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어딜가나 요즘 한국 여인들은 거침없이 목청을 돋우는 게 특징이다.
  “…민여사?”
  그 남자가 중얼거리는 것과 동시에 조금씩 눈이 커져 갔다.
  “그럼, 민-귀-숙?…”
  “맞아요. 귀숙이에요. 민귀숙.”
  “아니, 이럴 수가!”
  “정말 오랜만이네요. 영 못 만날 줄 알았는데.”
  “그런데 여기는 어떻게?”
  “캐나다 관광을 왔다가 여기에 들렸어요. 추석인 씨야말로 어쩐 일이에요?”
  “나도 친구들하고 놀러 왔소. 밴쿠버에 이민 와 살고 있으니까 여기엔 가끔 오는 편이지.”
  “이민 와 살고 있다구요?”
  “벌써 사십 년이 넘었는걸.”
  “그랬군요.”
  민여사의 가슴에서 시멘트 바닥에 생철 조각 긁는 소리가 났다.
  서로 세월이 엄청 묻어 있는 모습 속에서 옛날을 찾으려고 두 사람은 상대의 얼굴에서 좀처럼 시선을 옮기지 못하고 있었다.
  추석인이 두 손으로 얼굴에 묻은 물기를 닦아내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어떻게 지내고 있어요? 우리가 사십 몇 년만에 만나는 셈인가?…”
  “오십사 년도니까 꼭 사십육 년이 됐어요. 나는 잘 살고 있지요. 아들 딸 남매에 손자손녀가 넷이랍니다. 그런데 추석인 씨가 외국에 나와 살고 있다니 정말 뜻밖이네요.”
  추석인은 선뜻 말을 받지 못했다. 민귀숙이 서로 헤어졌던 햇수를 지체 없이 연도까지 정확하게 집어내는 바람에 기가 꺾이고 말았던 것이다. 더구나 말을 하고 나서 그녀의 처연한 시선이 석양에 붉게 물들고 있는 만년설을 머리에 얹은 산봉들에게 멀리 가 있는 것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온천수에 머리를 집어넣고 말았다.

  민여사와 추석인은 각기 일행들이 있는 처지인지라 벤쿠버에서 다시 만나기로 다짐하듯 약속했다. 민여사는 온천욕 후에 밴프 시내 어딘가에서 따로 만나자고 했으나 추석인이 일행과 함께 밴쿠버에 돌아가야 한다고 해서 일단 헤어지기로 했다. 민여사 일행은 이튿날 재스퍼에 가서 하루를 묵으며 하늘이 내려줬다는 로키의 장관을 더 만끽하고, 밴쿠버로 가서 다시 이틀간의 관광과 골프를 즐기고 귀국하기로 일정이 잡혀 있었다.
  민여사는 호텔로 돌아와서 일행들과 한바탕 맥주 파티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온천장에서 실로 사십육 년만에 기적처럼 만난 추석인의 모습이 자꾸만 신경을 자극하며 수면을 방해하는 것이었다. 첫사랑의 남자,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가정적으로 결혼 조건이 맞지 않아 더는 교제를 계속할 수 없으니 헤어지자는 매정하고 무책임한 말을 내던지고 홀연히 떠나가 버린 남자가 아니던가. 그가 짓밟고 지나간 그녀의 상실시대는 너무나 괴롭고 원망으로 채워져 견디기 힘들었었다. 이런 감정의 소용돌이는 사십육 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녀의 가슴속에서 꺼지지 않은 화염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다.   

  민여사 일행은 이튿날 8시에 스프링스 호텔을 떠났다. 해는 벌써 높은 적설(積雪)의 산봉 위에 떠오르고 있었다. 이곳의 6월은 새벽 5시에 해가 뜨고 밤 10시라야 해가 지는 전형적인 북극 초입의 소위 극기후(極氣候)를 나타낸다. 캐나디언 로키의 북쪽 관문인 재스퍼를 향해 관광버스 아리랑은 골든 루트 또는 원더 트레일이라고 불리는 세계적으로 아름다운 하이웨이를 달렸다. 목적지인 재스퍼를 가는 도중에 이름난 관광지 몇 곳을 찾기로 했다. 차는 마치 장엄한 대자연의 신비한 세계로 들어가는 길목같이 웅대한 바위로 이뤄진 산봉우리들과 침엽수대를 누비며 시원하게 달렸다.
  런들 산과 존슨 캐니언을 거쳐서 세 시간 뒤에 로키 절정이라고 하는 신비의 루이스 호수에 당도했다. 산중턱에 있는 삼백여 평방마일의 이 빙하호(氷河湖)는 과연 세계 십대 절경중의 하나로 손꼽힐 만했다. 호수 뒤에는 완전히 빙하로 덮여 있는 삼천사백 육십사 미터의 빅토리아 산이 높이
솟아 있는데 그 모습이 수심 칠십 미터의 영험스럽기까지한 맑은 호수 면에 투영되어 또 하나의
거대한 빙산을 보여주고 있다. 옷깃을 여미게 하는 신비의 수경(水景)이다. 그리고 그 호숫가에는 갖가지 아름다운 야생화들이 호수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요염한 자태로 살랑거린다. 그야말로 비경중의 비경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최고의 절경에 묻혀 연신 감탄하면서도 민여사는 어제 온천장에서 만난 추석인을 떼어버리지 못하고 마음 한구석에 묵직한 혹처럼 지니고 다녔다.

  1953년 봄 영화 쿼바디스가 단성사에서 개봉됐을 때였다. 6․25전쟁 중이었음에도 성서를 배경으로 한 일종의 애정 영화는 아직도 전쟁의 상흔이 곳곳에 남아 있던 장안의 화제가 되어 있었다. 민귀숙은 추석인을 따라 극장에 나란히 앉았었다. 쿼바디스가 문둥병에 걸린 어머니와 누이동생을 내밀히 만나는 장면이 화면에 비쳤을 때, 귀숙의 한 손이 더듬거리는 추석인의 손에 잡혔다. 순간 온몸이 완전히 전류에 휘감기고 말았다. 애잔한 화면과 추석인의 화끈한 손이 동시에 그녀의 심장을 요동치게 했다. 영화를 보고 온 날밤 귀숙은 추석인에게 몸을 허락했다. 천신만고 끝에 사랑을 이룩한 영화의 사랑이야기에 감동된 탓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그녀는 추석인을 마음 깊이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대학 1학년 때였다.
  관광버스 아리랑은 루이즈 호수를 떠나 백이십팔 킬로미터를 달려서 북반구 최대의 대빙원의 파노라마가 펼쳐지는 컬럼비아 아이스필드 파크웨이에 당도했다. 민여사 일행은 막바로 빙원을 달리는 특수하게 제작된 눈차(Snocoach) 관광 투어에 나섰다. 여기에서 직면한 거대한 빙괴(氷塊)는 하얀 게 아니라 가을 하늘색에 가까웠다. 얼음이 쪼개진 사이로 흐르는 물색도 역시 하늘색으로 섬뜩하게 청명하다. 그녀들은 난생 처음 빙원 위를 걸으면서 얼음물도 마시고 얼음도 깨물며 어린애들처럼 좋아했다. 전인 미답의 북극에 서있는 듯한 황홀한 흥분에 취했다.

  그러나 이런 즐거움 속에서 민여사는 엉뚱하게 추석인의 모습을 다시 떠올렸다. 눈과 얼음의 이미지는 가끔 그녀의 과거를 뒤적이게 하는 버릇이 있는 터였다. 
  그 해 2월은 유난히 춥고 눈도 많이 내렸다. 밤 9시경이었다. 민귀숙은 한성여고 근처에 있는 집으로 가려고 삼선교를 막 지나 성북동 쪽의 골목을 한참 걸어 올라가다가 빙판에 미끄러져 넘어지는 바람에 오른쪽 발목을 접질려 쓰러졌다. 어머니 심부름으로 명륜동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그 때만 해도 가로등이 없는 껌껌하고 사람들의 왕래가 적은 음습한 좁은 길이었다. 귀숙은 가까스로 몸을 일으켰지만 오른쪽 발목이 아프고 시근거려서 한 발짝도 내딛질 못하고 도로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신음과 눈물이 저절로 나왔다. 칼바람은 매섭게 불었다. 바로 이 때 누군가 이쪽으로 걸어오는 인기척이 들렸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건장한 젊은이였다. 그는 귀숙이 곤경에 처해 있는 것을 보고 선뜻 나서서 그녀를 부축해 일으켰다. 그리고 걷지 못하자 거침없이 그녀에게 등을 들이댔다. 움직이려면 이런 방법밖에 없었다. 그리고 통행금지 시간이 10시로 되어 있다. 전시라서 통행 금지는 엄중했다. 머뭇거리고 어쩌고 할 상황이 아니었다. 귀숙은 부끄러움과 염치를 무릅쓰고 낯선 남자의 등에 업히지 않을 수 없었다. 집으로 가는 길은 갈수록 점점 비탈졌다. 체격이 좋은 젊은이지만 오래 가지 않아 숨이 가빠 헉헉거렸다. 열아홉의 성숙한 귀숙이 또한 작은 몸매가 아니었다. 여러 번 쉬면서 가까스로 귀숙의 집에 당도했을 때 혹한이 위용을 떨치는 밤임에도 젊은이의 등이 땀에 촉촉이 젖어 있었다. 통행금지 시간 10분 전, 젊은이는 귀숙의 어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집밖으로 뛰어 나갔다.
  귀숙은 십여 일을 꼬박 누워 있다가 겨우 기동을 했다. 그 동안 졸업을 얼마 남기지 않은 고등학교도 쉬어야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절박한 상황에서 자기를 집에까지 업어다 준 학생을 만나 고마움을 표하는 일이 급했다. 통행금지 시간이 임박해서 집밖으로 나간 그가 무사히 집에 돌아갔는지도 몹시 궁금했다. 다행히 그 학생을 만날 희망은 있었다. 그의 웃옷에서 대학 배지를 눈여겨봐 놓았기 때문이다.


  2월말 무렵이다. 귀숙은 학생이 다니는 대학 교문 앞에서 아침부터 기다렸다. 등교하는 수많은 학생들 속에서 그를 찾아야했다.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이틀이고 사흘이고 만날 때까지 단념하지 않을 각오로 처음부터 임했다. 요행히 정오 무렵에 귀숙은 그 학생을 찾았다. 어둔 밤에 본 얼굴이지만 금새 알아볼 수 있었다. 그녀는 뛸 듯이 기뻤다. 옆구리에 노트 서너 권을 끼고 교문에 들어가려는 그를 발견하고 귀숙은 달려가 무조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저, 저를 기억하시겠어요?”
  “?……”
  처음에 그 학생은 귀숙을 알아보지 못했다
  “얼마 전에 저를 업고…”
  얼굴이 홍당무가 된 귀숙은 말을 다 맺지 못했다.
  “아아, 이제 알겠어요.”
  그 학생 역시 안색이 붉어지면서 입가에 계면쩍은 웃음기를 주었다. 그가 바로 추석인이다. 이렇게 빙판에서 만난 게 인연이 되어 귀숙과 추석인은 사랑의 감정을 불태우기에 이르렀다.     
  갑자기 빙원 아득한 저쪽에서 싸늘한 바람이 불어오면서 희끗 희끗 눈발이 날렸다. 몸에 한기가 찾아들었다. 이곳 아이스 필드는 한여름에도 가끔 눈이 내리면서 기온이 급강하하는 때가 있다. 민여사는 몸이 오싹하면서 옛날을 헤매고 있는 상념에서 겨우 헤어났다. 
  아이스 필드에서 내려온 민여사 일행은 오두막식 건물인 살레에서 패스트푸드로 점심을 하고 다시 자스퍼를 향해 떠났다. 여기서 목적지까지는 백사 킬로미터나 된다. 관광버스 아리랑은 좌우로 거대한 산봉우리들과 장려한 녹색 수림들을 다시 거느리고 산악 관광 도로를 쾌적하게 달렸다. 표고 이천사백이 넘는 캐나디언 로키를 대표하는 고산들로 둘러싸인 인구 사천의 도시 재스퍼에는 오후 4시경에 도착했다. 영어로 옥(玉)이라는 뜻인 자스퍼는 로키의 보석으로 알려져 있다.


  민여사 일행은 예약된 특급호텔 재스퍼 파크로지에 여장을 풀고 커피와 음료수로 목을 축이고 나서 각기 냅색을 메고 다시 관광 코스를 따라 나섰다. 노년기의 여인들이지만 평소에 등산으로 단련된 몸들이라 조금도 피로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먼저 트램웨이로 휘슬러 산 정상 전망대에 올라가서 수많은 영봉과 호수의 또 다른 캐나디언 로키를 한눈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나서 울창한 나무숲을 헤치고 들어가 신비한 스프릿트 아이랜드로 유명한 말린 캐니언과 호수를 비롯해서 로키의 비밀 포인트라고 하는 에디슨카벨 산을 구경했다. 어딜 가나 웅장하면서도 신비하고 오묘한 자연 그대로의 자태에 할 말을 잃고 연신 탄성을 지를 뿐이었다. 모두가 신의 무궁 무진한 조화로 이루어졌음을 더욱 확신케 했다.
  밤 8시경에 재스펴 시내로 돌아온 민여사 일행은 한식집 김치하우스에서 맛있는 저녁식사를 하고 나서 관광 도시답지 않게 조용한 거리를 산책하다가 호텔로 돌아왔다. 한 패는 화투에 빠지고 또 몇몇은 호텔 부대시설로 되어 있는 미니골프 클럽에서 골프를 즐겼다. 야간에도 골프를 칠 수 있다.
  민여사도 골프를 치다가 슬며시 스탠드 바가 갖춰진 라운지로 올라가 브랜디 한 글라스를 시켜놓고 노천 라운지에 마련한 탁자에 앉았다. 그녀는 애플 브랜디를 즐겨 마시는 편이다. 밤하늘의 별빛이 유난히 크고 밝았다. 그리고 주위에 솟아 있는 산봉들은 어둠에 동화되고 그들이 얹고 있는 만년설이 마치 허공에 떠 있는 듯한 형상으로 보였다. 사위는 너무나 고즈넉했다. 거대한 산들이 모든 소음을 걷어 품고 있기 때문일까.
  무남독녀인 민귀숙은 어머니와 단 둘이서 6․25전란 때 월남했다. 평양 근교의 대농가였는데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아버지는 8.15해방 이듬해 친일 반동으로 몰려 처단되었고 가산은 거의 몰수당했다. 이 어이없는 폭거의 주동자는 바로 아버지가 가장 아끼던 제자였다. 귀숙과 그녀의 어머니는 근근히 목숨이나 유지하면서 살고 있다가 국군이 북진하자 제일 먼저 남하했다. 마침 서울에는 사촌오빠가 살고 있었다. 그는 일찍 부모를 여의고 숙부인 귀숙의 아버지 슬하에서 성장했다. 서울에 가서 공부한 것도 숙부의 뒷바라지 덕이었다. 전문학교를 나와서 서울 검찰청의 유능한 서기관으로 근무하고 있으면서 법관이 되는 꿈을 버리지 않는 면학파였다. 귀숙보다 열 살이나 위였지만 어릴 적부터 이들 사촌 남매는 무척 의가 좋았다. 그래서 월남하자 귀숙과 어머니는 즐곧 사촌오빠 집에서 살았다. 귀숙은 오빠의 주선으로 여고에 전입했고 대학에도 들어갔다. 이북에서의 학년을 그대로 인정받았던 것이다.

  귀숙은 월남 피난민이었지만 사촌오빠의 덕으로 생활의 어려움을 몰랐다. 그리고 혼신을 다하여 사랑하는 추석인이 있어 마냥 행복했다. 추석인은 부산 태생이다. 아버지가 어선을 여러 척 갖고 있는 선주인 데다가 전쟁의 피해를 받지 않은 터라 가정이 유복했다. 추석인은 자기 주관이 뚜렷한 의지적인 청년이었다. 당시 자유당 정권의 일인 독재 체제에 항거하는 민주화 투쟁 대열에 서서 민주 정치를 열렬하게 부르짖었다. 그 남자다운 당당한 패기에 귀숙은 완전히 매료되었다. 귀숙은 모든 걸 잃어도 그만 있으면 천하의 행복을 얻는 것이라 여길 정도로 그에게 사랑을 쏟았다. 그리고 몸을 허락하며 장래를 굳게 약속했다.
  그러나 사랑은 아름답고 위대하면서도 항상 아픔과 변절을 잉태하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 추석인의 대학 졸업식이 있던 날이었다. 부산에서 상경한 추석인의 어머니는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 나온 귀숙을 따로 만나 아들과의 교제를 절대 허락할 수 없다고 했다. 이북에서 피난 와 근거를 알 수 없는 집안과는 인연을 맺을 수 없다는 단호한 선언이었다.   
  그리고 이미 아들에게 정해진 혼처가 있다고 했다. 청천 벽력과 같은 말이었다. 공산당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향을 떠난 것이 어찌 허물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시대를 잘못 만나 불행에 처한 월남 피난민들에게 위로는 못해줄망정 차별하고 천대하는 인심에 몹시 격분하고 슬펐다. 그래도 그녀는 서로 몸과 마음으로 사랑을 엮어 온 추석인을 철석같이 믿었다. 평생을 같이 하기로 한 맹세가 서로의 가슴에 깊이 각인 되어 있지 않은가.

  이런 반석과 같은 추석인에 대한 애정의 신뢰도 무참하게 무너졌다. 추석인 역시 결혼 여건이 서로 맞지 않는다는 매정한 말을 남기고 냉정하게 떠나갔다. 그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해 버렸다. 귀숙은 실의에 빠졌다. 아버지에게 배은망덕한 자는 바로 가장 아끼고 신뢰했던 제자였으며, 그녀를 배신한 자는 그녀가 일편 단심 사랑했던 연인이 아닌가! 배은과 배신이 흑암처럼 녹아 내리는 가운(家運)이 원망스러웠다. 절망과 분노가 그녀의 온몸을 짓밟고 마구 짓이겼다. 
  불행은 열을 지어 찾아온다더니 설상가상으로 기둥처럼 의지했던 사촌오빠가 교통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귀숙은 당장 생활에 위협을 받아야 했다. 그녀는 학교를 쉬고 생활 전선에 나섰다. 어머니는 바느질품을 팔고 그녀는 여기저기 일자리를 찾아 다녔다. 심신이 고단하고 앞날이 흐려 보일 때마다 그녀는 추석인의 배신에 몸을 떨었다. 어디 누가 더 잘 사는가 보자! 피멍이 들도록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민여사 여기 있었구먼. 혼자서 뭘 하고 있는 게야?”
  민여사는 놀라서 상념을 털어 버렸다. 제일 가깝게 지내는 박여사가 앞에 서있었다. 국회의원의 사모님인 박여사도 함경도에서 월남한 피난민 출신이다. 그래서 더 친숙하게 지내는 지도 모른다.
  “박여사도 술 한 잔 할래?”
  “좋지. 민여사가 풍기는 분위기를 보니 아무래도 오늘밤은 브랜디 한 병은 마셔야할 것 같은걸.”
  박여사가 브랜디 한 병과 안주 한 접시를 시키고 마주 앉았다.
  “민여사, 왜 갑자기 이상해졌어?”
  “내가?”
  “밴프 온천장에서 누군가 남자를 만나고부터는 사람이 영 달라졌어. 뭘 골돌히 생각하느라 한눈 파는 시간이 많아지고 말야.”

  “내가 그렇게 보였어?”
  “그렇게 보였어가 뭐야. 민여사답지 않게 속으로 꿍꿍거리지 말고 나한텐 이실직고하지 그래.”
  민여사는 글라스를 입에다 깊이 기울이면서 생각했다. 월남 출신들끼리니까 속시원히 털어놓고 말까?…
  박여사는, 민여사의 고백을 재촉하듯 그녀가 막 비워놓은 글라스에 다시 술을 따랐다.
  민여사는 글라스를 만지작거리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실은 말야. 어제 그 온천장에서 사십육 년만에 첫사랑의 남자를 만났어.”
  “뭐야? 그게 정말이야?”
  박여사는 펄쩍 뛸 듯이 놀란다.
  "사십여 년 전에 밴쿠버에 이민 와 살고 있대.“
  “그런데 민여사, 첫사랑이 있었다는 러브스토리는 나한테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었잖아. 정말 섭섭한데.”
  민여사는 빙긋이 웃으며 글라스를 입에 가져갔다.
  그랬다. 민여사는 추석인과의 과거를 누구에게도 털어놓은 적이 없다. 너무나 비애와 분노에 절은 시절을 반추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 시절의 심적인 방황은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 자칫 상처가 다시 화농될 두려움까지도 배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추석인을 만난 지금 박여사에게까지 지난날을 더는 숨기고 싶지 않았다. 민여사는 얼음판에서 추석인을 만난 운명적이랄 수 있는 인연으로 두 사람은 곧 사랑에 흡뻑 빠졌던 일과, 소위 삼팔따라지라는 이유로 추석인의 부모가 반대를 했고 급기야 추석인까지 철석 같은 장래의 약속을 헌 신짝처럼 버린 참담했던 사실을 모두 털어놨다.
  “사상전쟁으로 고향을 잃은 같은 민족을 멸시하던 사람이 어찌 나라를 떠나 타국에서 이민살이를 하고 있을까. 안 그래. 민여사?”
  박여사의 어투에는 비아냥기가 가득했다.
  “나도, 그 사람이 이민 와 있다는 말에 아주 놀라고 실망했어.”
  “피난이나 이민이나 고향을 떠났다는 데는 다를 게 없지. 하지만 월남은 어디까지나 타의에 의해 고향을 잃은 거지만 이민은 온전히 자의에 따라 고향을 떠난 거잖아.”
  “그래 맞아. 피난과 이민은 근본적으로 다르지.”
  “민여사의 첫사랑을 비난해서 안 됐지만 속이 맹물로 가득 찬 위인 아냐? 그리고 말야. 기왕에 말이 나왔으니 한 마디 더 해야겠어. 일인독재 타도를 부르짖으며 나라를 걱정했다면서 왜 그렇게 소중한 나라를 젊어서 떠났을까? 누구 말마따나 자식들 교육 때문이라고 핑계를 댈까? 허울 좋은 개살구 같은 인간이나 할 짓이지. 민여사, 내 말 틀렸어? ”
  박여사의 입에서 추석인을 매도하는 소리가 거침없이 이어져 나왔다. 그녀도 삼팔따라지 출신이기에 더불어 자존심이 상해 더욱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리라.

  민여사는, 추석인이 훌쩍 떠나버렸어도 그의 거취가 신문 같은 데를 통해 알려지리라고 은근히 살펴봤었다. 나라의 민주화를 걱정하고 부패한 위정자들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열렬히 토로했던 그의 기개로 보아 애국적인 활동을 계속하리라 여겨 왔었다. 그런데 일찌감치 타국살이를 하면서 머리가 허옇게 퇴색되어 나타나다니, 정말 그 덧없는 모습이 너무나 처량했다. 아직도 사기지 못하고 남아 있는 미움과 분노의 한편으로 연민의 정도 고개를 내미는 것을 어쩌지 못했다.
  민여사는 이런 모든 의문을 추석인에게서 직접 듣고 싶었다. 그리고 삼팔따라지라는 이유로 한마디 항변도 못하고 배신당해야 했던 이 민귀숙이,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꼭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밴쿠버에 가는 길로 추석인과 만나기로 온천장에서 약속을 했던 것이다. 민여사 일행이 숙박하기로 예약한 호텔로 추석인이 찾아오기로 했다.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오리라는 추상같은 기대로 어금니를 물고 얼마나 정신없이 뛰던 세월이었던가.
  이튿날 민여사 일행은 아침 일찍 관광버스 아리랑을 타고 재스퍼를  떠나 마지막 행선지인 밴쿠버를 향했다. 칠백구십사 킬로미터, 장장 10시간 이상의 버스여행 길이다. 관광버스 아리랑은 제스퍼 시내를 벗어나자 경치 좋은 롭슨 파크를 거쳐 캠룹스에 이르자 뜻밖에 준사막지대(準沙漠地帶)가 나타났다. 사막성 식물 등 사막 특유의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사막 길을 달린 지 두 시간 후 버스는 사막 풍경을 털고 유명한 휘레이저 계곡에 들어섰다. 강물이 용트림하며 굽이쳐 흐르는 계곡은 장관이었다. 여기서 잠시 버스를 세우고 계곡과 헬스 게이트(지옥문)를 구경했다. 이곳을 지나면 이내 밴쿠버로 통하는 시원한 하이웨이에 들어선다.
  관광버스 아리랑이 밴쿠버에 도착한 것은 오후 6시, 해는 아직도 서산에서 많이 떨어져 있었다. 10시가 넘어야 해가 진다. 세계 4대 미항(美港)중의 하나인 밴쿠버 지역은 겨울철에는 비가 많지만 여름에는 건조한 편이고 매우 쾌적하다.

  민여사 일행은 호텔에 여장을 풀자 곧 시내 관광에 나섰다. 오는 길에 신비의 경지에 이르는 경치가 계속되고 또한 많은 볼거리들이 있어서 그런지 모두에게 피로한 기색은 없었다. 2박3일의 일정으로 산과 숲과 들판과 바다가 어우러져 묘한 조화를 이룬 즐비한 명소를 찾아 밴쿠버를 관광하자면 바삐 서둘어야 했다. 거기다 골프까지 즐기기로 했으니 시간이 빠듯하다.
  먼저 세계적인 스탠리 파크를 찾았다. 태평양을 끼고 있는 이 공원은 태고와 현대가 공존하고 서부 해양성 기후로 인한 울창한 자연림과 항구가 조화를 이루고 있어 무척 감동적이었다. 이어서 롭슨 거리를 거쳐 북미에서 두 번째로 크다는 차이나타운에서 늦은 만찬으로 북경요리를 먹고 10시경에 호텔로 돌아왔다.
  호텔 라비에서는 추석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민여사는 호텔 방에 들어가 산뜻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그녀는 좀 떨어져 서 있는 박여사에게 고개를 살며시 끄덕이고 나서 추석인을 따라 밖으로 나왔다. 야무지게 따지겠다는 언외의 암시가 담긴 고갯짓이었다. 추석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두 사람은 시내를 벗어나 요트 하버 가까이에 있는 카페에 들어갔다. 시내와 바다의 야경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무드 만점인 곳이다. 대화를 나누기에 적당해 보였다.
  민여사의 의견에 따라 두 사람은 애플 브랜디 위스키 한 병을 시켜놓고 마주 앉았다. 곡목을 알 수 없는 샹송이 은은하면서도 선정적으로 흘러나왔다. 서울 무교동에 있었던 판잣집 이층 다방 한구석에서 추석인과 은밀히 손을 잡고 54년도 당시 한창 유행했던 이브 몽땅의 ‘고엽’ 등의 샹송을 듣던 옛날이 되살아났다. 민여사는 회상을 털어 버리듯이 고개를 서너 번 흔들면서 큰 결단이라도 하듯 먼저 입을 열었다.

  “캐나다에서 이민생활을 하시다니 정말 뜻밖이네요. 그래 그 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민여사는 브랜디를 스트레이트로 마셨다. 그리고 강한 시선으로 추석인의 얼굴을 덮었다.
  추석인은 말없이 화이트와인 글라스만 만지작거렸다. 나를 배신하고 얼마나 잘 살고 있느냐고 단도직입적으로 추궁하듯 묻는 민귀숙의 질문에 당황하는 빛을 감추지 못했다.
  “나라를 염려하는 일념이 대단했었는데 어떻게 나라를 떠날 생각을 했는지 그게 정말 궁금하네요.”
  민여사의 계속되는 말에는 이제 비아냥의 가시까지 내뿜고 있었다.
  “다 지나간 옛일이 아니겠소. 그때 상황으로 봐서 우리가 맺어지기에는 여건이 워낙 너무 나빴었소. 그래서 집안의 반대가 완강했었지. 더구나 내가 장손이다 보니 우리의 관계가 더욱 더 용납되지 않았던 거요.”
  추석인은 독백하듯 말했다. 끝까지 사랑하겠노라 철석같이 약조했던 여자에게 등을 돌렸던 떳떳치 못한 과거가 아직도 등덜미를 잡는 일말의 양심은 있었음인가.
  민여사는 곤욕으로 뒤덮인 추석인의 얼굴에서 시선을 비키고 말았다. 그의 주름진 얼굴을 더는 바라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칠십이 다 된 퇴물을 붙잡고 앉아서 너절한 변명 따위를 들어서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세월은 가도, 강물은 흘러서 다시 오지 않아도, 첫사랑의 아픔은 가슴 마디마디 도져온다고 노래한 시인이 있다. 
  민여사는 허리를 펴면서 술병을 들어 추석인의 글라스와 자신의 빈  글라스에 술을 가득 따랐다. 그리고 자기 글라스를 들었다.
  “자, 우리 건배나 하자구요. 건배!”
  “그럽시다. 건배!”
  추석인도 민여사의 안색을 힐끔 살피며 글라스를 들었다.
  민여사는 글라스를 비웠다. 그리고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면서 자신의 지나온 날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이것 역시 추석인을 만났을 때 들려주리라고 작심했던 레퍼토리의 하나이다.
  “추석인 씨가 떠나간 후 나에게 닥친 상실시대는 정말 견디기 힘들었죠. 하지만 좋게 생각하면 그것이 전화위복의 요인이 되었다고나 할까요.”
  민귀숙은, 추석인으로 인해 받은 상처를 견디지 못하고 죽을 결심까지도 했었다. 심한 모멸과 배신감에서 오는 역동적인 감정으로 타락하려고도 했다. 그러나 그도 저도 용납되지 않았다. 죽음과 좌절까지도 그녀를 외면했다. 노모와 그밖에 사촌오빠의 남은 유족들을 위해서 당장 돈을 벌어야 했다. 사촌올케의 친정도 이북이라 모두가 사고 무친이었다. 이대로 방황을 계속하다가는 떼로 굶어죽을 절박한 지경에 처했다.

  귀숙은 마음을 다잡았다. 추석인 너, 누가 더 잘 사는지 두고 보자! 그녀는 추석인의 얼굴을 지워버리기 위해 몸을 혹사하듯 오기로 쉬지 않고 일을 했다. 어머니와 올케, 그리고 자신까지도 손끝이 야무진 점을 이용해서 각종 의류 제품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주로 미국 둥지에서 전시 구호물자로 보내 온 헌 옷가지와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오는 각종 군복 등속을 사들여 한국 사람들에게 맞도록 수선하고 재생해서 시장에 내다 팔았다. 당시 옷감이 없어 새옷을 만들 형편이 아니었다. 또 시민들에게는 새옷을 사 입을 경제적인 여유도 없었다. 시장마다 헌옷 거래가 성했다. 일감을 구하는 일은 귀숙이 전담했다. 구호기관이나 수혜 대상자들을 찾아다니며 지급되고 배급되는 헌옷가지를 돈으로 헐값에 사거나 혹은 곡식과 바꾸었다. 미군부대가 있는 여러 기지촌도 누비고 다녔다.
  이 착상은 주효했다. 힘이 들었지만 돈벌이가 쏠쏠했다. 장사가 잘되고 일이 많아지자 귀숙은 재봉틀을 구하고 손재주 있는 여인들을 고용했다. 밥만 먹여줘도 감지덕지하던 곤궁한 시절이다. 그래서 조금씩 기업화의 틀을 잡아갔다. 이 무렵 귀숙은 결혼을 했다. 같은 평안도 출신이었다. 추석인으로 인해 생긴 남자 증오 편집증은 그녀를 평생 독신으로 몰아갈 듯했으나 사업을 키우기 위해서는 능력 있는 남자의 손이 절실했다.

  과연 남편은 사업 수완이 대단했다. 남편은 헌옷의 수리 재생뿐만 아니라 우선 재래식 직조기를 만들어 새 옷감을 짰고 그것으로 옷을 지어 팔기 시작했다. 제품공장은 착실히 성장했다. 남편에 대한 귀숙의 정감도 자리를 잡아갔다. 아이도 남매를 낳았고 가정적인 행복의 의미도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지금 아들은 변호사 개업을 했고 딸은 출가해서 대학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의류 제품공장은 종업원이 삼백 명이나 되는 건실한 중소기업으로 성장했다. 남편과는 오년 전에 병으로 사별했지만, 귀숙은, 사위의 도움을 받아 공장을 오히려 확장했다. 지금은 당당한 여성사업가로 알려지고 있다.
  추석인과 헤어져 호텔에 돌아온 민여사는, 궁금해서 기다리고 있는 박여사에게는 피곤하다는 핑계를 대고 샤워를 한 뒤 침대에 들었지만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집안의 장손임에도 추석인은 처가 쪽의 연줄로 일찍 캐나다에 이민 왔다. 수년 동안 이질적인 문화와 언어 등으로 마음의 갈등을 극복하기에 무척 힘이 들었노라고 했다. 슬하의 두 아들은 제각기 외지에서 직장에 잘 나가고 있다지만 몇 년 전에 상처한 추석인은 독신 아파트에서 고독하게 지내는 것 같았다. 그의 아파트에 같이 가서 직접 살고 있는 꼴을 확인하고도 싶었지만 고만두었다. 보지 않아도 독신 아파트에서 사는 형편이 오죽하랴. 나라와 민족이 걱정되어 거리로 뛰쳐나와 위정자들을 질타하던 추석인이 왜 남의 땅에 살기로 작정했는지에 관해서는 더 캐묻지 않았다. 역시 궁색한 변명을 들어 무엇하겠는가.

  이튿날부터 민여사 일행은 밴쿠버에 흩어져 있는 관광지를 두루 돌아다녔다. 빅토리아의 버차트 가든을 비롯해서 유명한 명소를 두루 구경하고 한국에 돌아가기 전날은 하루종일 골프를 즐겼다. 밴쿠버는 골퍼들의 낙원이라고 일컬어질 만큼 훌륭한 골프클럽이 많다. 부유한 가정의 여인들은 마음껏 호화스럽게 캐나다를 즐겼다. 돈을 미친 듯이 뿌린다는 한국 여인들답게 쇼핑도 했다.
  민여사는 귀국하기 전에 추석인과 다시 만났다. 그리고 그를 한국에 초청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오늘의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다. 추석인이 사양했지만 강권하다시피 초청에 응하도록 했다. 그녀의 의중을 읽고 있는 추석인은 결국 한국에 가기로 결심했다. 그녀를 참담하게 했던 과거의 과오를 조금이나마 보상하려는 심리가 크게 작용했다.

  가을빛이 막 나뭇잎에 찾아오기 시작할 무렵 추석인은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십여 년만의 귀국이다. 아버지의 부음을 듣고 온 이래 처음이다. 그 동안에도 한국은 많이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는 민여사가 보내준 차를 타고 서울 시내로 들어가 역시 미리 마련된 호텔에 들었다.
  이날부터 추석인은 민여사의 환대를 받았다. 삼백 평이 넘는 그녀의 호화 주택에 두 번이나 초대되어 과분하리만큼 차려진 성찬을 대접받았고, 삼백 명의 종업원이 움직이는 그녀의 혼백이 배어 있는 의류제품 공장도 보았다. 그녀 말마따나 삼팔따라지의 놀라운 자수 성가는 자랑할 만했다.
  추석인은, 민여사가 하자는 대로 따랐다. 자신의 성공과 부를 과시하려는 그녀의 간절한 의도를 충분히 알고 있었기에 그 또한 과장하리만큼 놀라고 위축된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역시 배신의 참회를 아직도 자신 스스로가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고향에 가서 선형과 친척들을 찾아보고, 옛친구들을 만나는 데도 운전기사가 딸린 고급 승용차를 민여사가 내주어서 추석인은 아주 편리하게 사용했다. 뿐만 아니라 만나는 사람들마다 대하는 태도가 달랐다. 빌려 타고 다니는 고급 승용차 하나가 갑자기 신분 상승의 절대적인 요인이 되고 있는 데 그는 새삼스럽게 놀랐다. 과연 부자는 귀신도 부린다더니 돈의 위력은 인간을 여러 번 변신케 함을 새삼 깨닫고 한편 씁쓸해짐을 어쩌지 못했다.
  일 주일이 지났다. 캐나다로 돌아가기 전날 밤 민여사는 추석인의 몇몇 친구를 고급요정으로 초대해서 호화판 술자리를 벌여 주었다. 추석인과 열애중이었을 때 알고 지내던 친구들도 있었다. 사랑했던 남자에게 삼팔따라지라는 이유만으로 버림받았던 여인이 지금 자신을 버렸던 남자 앞에서 어떤 모습으로 행세하고 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싶은 민귀숙의 의도적인 술자리였다.
  추석인은 노골적으로 귀숙의 배려에 감읍함을 드러내면서 친구들과 술을 마셨다. 친구들에게 자신이 초라하게 비쳐져도 개의치 않았다. 칠십이 다 된 나이다. 언제 다시 고국을 방문할 지 모르는 처지이다. 이렇게라도 해서 귀숙에게 아직도 남은 상처가, 아니 그녀의 자존심이 조금이라도 회복된다면 천만 다행한 일이다. 이 일은 바로 추석인 자신도 가슴 한구석에 남아 있는 과거의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적당하게 취기가 오른 추석인은 밤늦게 호텔로 돌아왔다. 술자리를 마련해 주고 먼저 돌아간 민귀숙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술자리가 재미있었나요?”
  민여사는 아주 밝은 얼굴로 물었다. 의도한 일이 이루어졌을 때의 포만감이 얼굴에 가득했다.

  “고맙소. 대접을 너무 과분하게 받았소. 친구들도 아주 고마워합디다.”
  “그거 다행이군요. 그런데 벌써 캐나다로 돌아가셔야 할 날이 되었네요.”
  “그 동안 폐가 너무 많았소. 염치없는 노릇이오.”
  “천만예요. 이렇게나마 만나서 대접할 수 있는 여유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그리고 이것 받으세요.“
  민여사는 미리 준비해온 듯 봉투를 핸드백에서 꺼내 추석인 앞으로 내밀었다.
  “…이게 뭐요?”
  “변변치 않은 내 성의이니 거절치 마세요. 봉투에 미화 오만 불을 넣었어요. 혼자 사시는 형편이 어려우신 것 같아 조금은 도움이 될까 해서요.”
  추석인은 현기증이 이는 듯해서 눈을 스르르 감았다. 그러면서도 민여사의 다음 말을 놓치지 않았다.
  “원하신다면 한국에 돌아와 살도록 내 주선할 용의가 있어요. 살만한 아파트를 마련하고, 물론 생활비는 걱정하실 필요가 없구요.”
  추석인은 여전히 묵묵부답인 체 이번에는 눈길을 창 밖 어둠 속에 던졌다.
  “어때요. 그럴 의향이 없으신가요?”

  민여사는 고개를 약간 갸웃하면서 추석인의 옆얼굴을 빤히 건너다봤다. 추석인이 비굴한 웃음을 담으며 감지덕지하는 반응이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추석인은 한참만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귀숙씨가 이렇게 성공한 모습을 보니까 정말 더할 나위 없이 기뻐요. 그리고 변변치 못한 나를 환대해 주고 또 내 앞날까지 걱정해 주니 정말 고맙소. 많이 남지 않은 인생이지만 그 호의는 영원히 잊지 않으리다.”
  “내가 공치사를 듣자고 이러는 건 아니에요. 진심에서 하는 말입니다.”
  “왜 그걸 모르겠소. 하지만 현재의 처지에 나는 만족하고 있소. 캐나다 정부가 주는 노년 연금으로 생활에 어려움은 없어요. 그리고 용도 폐기된 몸이 조국에 돌아온들 뭘 하겠소.”
  민여사는 미간을 찌푸렸다. 결혼 조건에 가정의 경제적 조건을 제일로 꼽았던 사람이고 보면 보상 없이 무조건 경제적인 도움을 주겠다는 데 주저할 까닭이 없지 않은가. 갑작스런 호의에 당황했겠지. 하긴 아무리 철면피한 인간이라도 선뜻 받아들이기는 힘들 겠지. 좀 시간이 지나면 머리를 조아리며 손을 벌릴 것이다. 돈에 굴복하지 않는 위인이 어디 흔한가. 그녀는 더는 권하지 않았다. 추석인의 표정에서, 그녀의 위상을 높이 인정하고 또한 분명히 과거를 뉘우치는 듯한 심정을 읽은 것에 일단은 만족하며 시간의 여유를 갖고 그가 돈 앞에 머리를 숙일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추석인을 한국에 불러들인 의도는 어느 정도 이루어진 셈이다. 추석인의 배신으로 인해 가져야 했던 상실시대의 망가진 자존심과 아직도 남아 있는 분노가 이제 조금은 보상받았고 소멸된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가슴에 박힌 옹이를 이런 방법으로 빼내려고 얼마나 별러 온 세월이던가.
  추석인이 캐나다로 떠난 일 주일 후였다. 민여사는 뜻밖에 추석인의 가장 가까웠던 친구한테서 골프를 같이 치고 싶다는 제의를 받았다. 추석인과의 교제가 한창일 때 자주 만나 친밀했던 사이며 모 부처의 차관까지 지냈던 사람이다. 그녀는 쾌히 그의 제의를 받아들었다. 추석인의 현재의 심중을 간접적으로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여겼다.

  민여사는, 박여사를 불러냈다. 자신의 첫사랑의 상처가 어떻게 봉합되어가고 었는가를 추석인의 친구를 통해 직접 들려주고 싶었다. 회원권을 갖고 있는 서울 근교 골프클럽에서 추석인의 친구와 만났다. 이날 민여사는 공이 잘 맞았다. 본시 핸디 15는 되는 실력이지만 18홀을 도는 동안 다섯 개의 보디를 잡는 평소 이상의 실력을 뽐냈다. 역시 골프는 심리적인 영향에 크게 좌우되는 운동이다. 추석인의 가장 가까웠던 친구의 요청으로 골프를 치고 있다는 사실이 그녀의 스윙을 정확하게 했던 것이다.
  골프를 끝내고 나서 역시 추석인의 친구가 저녁 식사를 같이 하자고 제의했다. 세 사람은 골프클럽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유명한 불갈비 가든으로 갔다. 갈증을 느낀 터라 모두 시원한 맥주를 마셨다. 불갈비도 입에 맞았다.
  민여사는 자주 추석인의 친구에게 눈길을 주었다. 그가 본론을 꺼낼 때가 되었다 싶은 데도 뜸을 들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추석인이 지난날의 잘못을 반성하고 돌아갔다는 말을 전하는 한편 추석인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주길 바란다는 부탁을 하고자 골프 회동을 원했을 게 분명하다.
  맥주 잔이 여러 번 돌고 불갈비도 어지간히 뜯고서야 추석인의 친구는 비로소 입을 열었다.
  “추석인, 이 친구의 말 못할 과거 사정을 이젠 털어놓을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추석인이 원하는 바는 아니에요. 하지만 이번에 추석인이 왔을 때, 이 친구에 대한 민여사의 심정이 아직도 편치 않음을 알고서야 이대로 더는 입을 다물고 있을 수가 없더군요.”
  옳거니, 그러면 그렇지. 이제야 추석인에 대해 동곳을 빼려는구나, 하면서 민여사의 청각이 추석인의 친구에게 쏠렸다.

  추석인의 친구는 잔에 남아 있는 맥주를 마저 마시고 나서 말을 계속했다.
  “물론 민여사의 감정이 평온할 리가 있겠습니까. 너무나 당연합니다. 하지만 불가항력적으로 캐나다로 쫓겨가야 했던 추석인의 비애와 좌절을 이제는 이해하셔야 합니다.”
  민여사는 훔짓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박여사도 놀라는 그녀를 마주 보고 나서 추석인의 친구에게 의아한 눈길을 보냈다.
  민여사가 더듬듯이 물었다. 
  “쪼 쫓겨 갔다니요?....”
  “당시 독제 타도를 열렬하게 부르짖던 추석인은 정보기관의 주목을 받았었죠. 그래서 검찰에서 구속하기 직전에 있었어요. 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어업사업에도 특별 세무감사 등 갑작스런 압력을 받게 되었죠. 추석인은 종가 집안의 장손 아닙니까. 종친들이 모두 나서서 추석인의 안전을 도모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그러다가 마침 캐나다와 인연이 있는 가정의 규수를 소개받아 갑자기 결혼했고, 그 길로 캐나다 이민을 은밀히  결심한 겁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죠. 신변의 위협과 가정의 파탄에 초연할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민여사는 한숨을 길게 내뿜으며 맥주 잔을 단숨에 비웠다.
  “야망이 많았고 능력도 갖춘 친구였는데 시대가 따라 주지 않았어요. 그 친구 당시 군용기 편으로 여의도 공항을 떠날 때 눈물을 많이 흘리더군요. 세상을 잘못 만나 아까운 사람이 이국 땅에서 썩고 말았어요. 그 후로 한국에 돌아올 기회도 있었고 또 귀국하라고 권하기도 했지만 고개를 흔들더군요. 이미 모든 걸 포기한 상태였어요.”
  추석인의 친구도 자신의 맥주 잔에 맥주를 가득히 자작하고는 단숨에 마셨다. 빈 불갈비 석쇄 밑에서 숯불이 마냥 벌겋게 열을 토하고 있었다.
  그날 오후 늦게 집에 돌아오는 차안에서 민여사는 이마에 배어 오는 땀을 연신 닦아 냈다. 그러면서 그녀는 또 한 사람 고향을 잃어야만 했던 시대의 희생자를 다시 만나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있었다.(*)


이종학: 1937년 충남 공주 태생.
․1963년 <新世界>에 鮮于 輝 선생 추천으로 소설 <눈 먼 말>로 신인상 수상
․저서로는 단편소설집 <눈 먼 말>, <검은 며느리>, <눈 속으로 간 여자>
․중편소설집 <손바닥 속 인연>
․장평소설 <代孫, 개작 '딸들의 신화'>, <국밥 속의 민들레>, <욕망의 지평1-2>
․한국문인협회원, 한국소설가협회원, 캐나다 한인문인협회원, 한카문학동호회원,
에드몬톤 얼을꽃문학동아리 고문, 月刊 「純粹文學」 편집위원
․해외문학 고문
현재 캐나다 에드몬톤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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