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 <해외문학상> 대상 수상작 시 -손지언(미국)/ 소설 -박옥남(중국)

 

 

제10회 <해외문학상> 대상 시부문 수상작 날짜 : 08-03-11 04:33     조회 : 1304  

<물방울이 되고 싶다>

                                        손 지 언


물방울
너를 바라보면
어룽대는 번뇌의 그림자
모서리를 궁굴리며
떨어지고
한없이 작아지는
나를 본다

태고적부터
겸허띠로 허리 두르고
아래로 아래로
굽히는 해맑은 모습
빛나는 별빛이다

우듬지 한 끝에 맺힌 너
태양처럼 우러러 방울진 내 눈망울
말갛게 헹구는
세월 속 먹구름

없어진 듯

살아 숨쉬고
사라진 듯
되살아 반짝이는
물방울꽃의 구원久遠의 숨결이다

물방울이 되고 싶다


 손지언: 1931년 평안북도 영변에서 출생
.서울대 사대와 미국 Nova대학 수학
.「조선문학」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夏蘭이 필 무렵」(2002년),
          「물방울이 되고 싶다」(2003년),
          「노을의 속삭임에 빠져버린 여자」(2006년) 등.
.1964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
.1998년 평통주최 통일수기 최우수상 수상
.2001년 광주여자대학교에서 시조로 “여성문학상” 수상
.2006년 월간 「조선문학 작품상」 수상
.한국문인협회 회원, 미주한국시문학회 회원, 해외문인협회 회원
.현재 미국 워싱턴DC 거주.


제10회 <해외문학상> 대상 소설부문 수상작

<목욕탕에 온 여자들>


                                          박 옥 남

두 주일에 한 번씩 씻겨드리던 일을, 언제부터인가 석 주일에 한번씩, 어느 땐 한 달에 한 번씩 목욕을 하게 되는 데도 엄마는 그 찝찝함과 가려움을 호소할 줄도 모르고 있다. 아니, 모르는 게 아니라 엄마의 그 인내성이 엄마의 입을 봉해버린 아교가 되었는지도 모른다고 나는 가끔 생각을 한다.
엄마보다 퍽 잘생긴 아버지가 밖에서 바람을 피워 동네에 소문이 파다했어도 아버지와 야료 한번 부리지 않은 엄마였다. 석주일 동안 씻지 않은 먼지 때나 한 달 동안 눌러 붙은 땀내에 못 견뎌 “나 목욕 좀 시켜도고!”하고 호소할 리는 없는 우리 엄마다.
이른 아침에 꼭 닫혀있던 엄마방의 문을 뚝 떼고 보니 밤새 갇혀 있다가 출구를 찾아 쏟아져 나오는 늙은이 특유의 악취가 내 코를 쑥 쑤시고 들어와 머릿속이 어질어질했다. 들숨을 정지하고 재빨리 엄마의 이부자리를 걷는 도중 오늘은 하늘이 무너지는 한이 있어도 엄마의 목욕만은 꼭 시켜야겠다는 결심이 말코지처럼 가슴 복판에 턱 들어와 박혔다.
맛없게 받아넘기는 밥을 억지로 몇 술 떠먹이고 나무토막처럼 경직된 엄마의 오른팔 오른다리를 추슬러 겉옷을 입히고 자꾸 무너져 내리려는 오른쪽 옆구리를 부추겨 아파트계단을 내려 밖으로 나왔을 땐 오전 아홉시의 태양볕이 머리 위에서 화사하게 쏟아지고 있었다.
대통로 하나만 넘어서면 닿을 수 있게 가까이에 있는 목욕탕이건만 외다리 외팔이나 다름없는 엄마의 몸을 이끌고 차량들이 씽-쌩- 오가는 대통로를 넘는 일이란 참말이지 홍군(紅軍)이 대 도하를 넘는 것만큼이나 힘에 부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 대통로를 넘는 일이 번거로워 내가 엄마의 목욕을 차일피일 미루어 왔는지도 모르겠다. 근년에 들어 각종 차량이 기하급수로 불어나서 대통로 한번 건너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건만 육교나 별도의 건널목 장치도 없고 차량을 안내하는 교통경찰도 없다. 손님을 다투어 주우려고 택시들이 술 취한 놈처럼 대통로 복판에서 거리낌 없이 비틀거려도, 또 저그만치 학교가 두소나 집거되어 있는 큰 동네여서 아이들이 길을 건너다 다치는 일이 빈발해도 사람들은 별 불평 없이 저마다 아무데서나 용감하게 도로를 횡단하고 있다. 그래서 매번 이 대통로를 건널 일이 있을 때마다 질서의식이 밑바닥인 이 나라 국민성과 그리고 그에 못지않게 물렁한 이 나라 법치에 불 받고 벌렁벌렁 끓어오르는 밥가마처럼 한참씩 분노에 끓어 보군하는 게 바로 나다.
그러나 말거나 대통로 양 옆으로 즐비하게 늘어선 상가의 이마빡엔 알록달록한 가게의 옥호들이 밥 타러 나와 선 유치원 애들처럼 촘촘히도 붙어있다. 마트, 은행, 진료소, 약방, 안마소, 목욕탕, 당구장, 커피숍, 게임방, 문구점, 식당, 세탁소, 꽃집, 심지어 구두닦이 방까지 상가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거리의 행인을 노리고 있다. 목욕탕만 해도 대중목욕탕 하나와 원룸씩 고급목욕탕 하나, 그 외에도 공가 돈을 축내는 치들이 선호하는 수영장이 딸린 사우나 집까지 합치면 이백 미터 거리 안에 세 곳이나 있으니 이 동네 상가 가격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 솟는 게 그리 이상할 것도 없다싶다.
날개를 활짝 편 봉황의 형태를 은은하게 비껴 넣은 대중목욕탕의 우윳빛 유리문을 밀려고 손을 뻗었는데 안으로부터 핑크색 까운을 입은 30대 초반의 호스티스가 나오며 손님이 들도록 날렵하게 대신 문을 열어주었다. 이 집의 도어는 여느 집과 달리 밖에서 미는 게 아니라 당겨 열게 되어있다는 걸 처음 이집에 오던 날 손잡이 부근에 써 붙인 메시지를 읽고 익혀둔 지 오래건만 그 글을 무시한 채 번마다 밀려고 손을 뻗는 내 고집도 보통고집이 아니다. 나처럼 습관이 된 동작을 일삼는 손님을 고려했는지 아니면 이 동네 인구의 절반이상을 웃도는 조선 사람을 배려했는지 어느새 “퉈이”
대신에 “밀어 주세요”로, “라” 대신에 “당겨주세요”란 한글로, 그것도 대단히 큰 사이즈의 메세지로 바꾸어 쓴 주인의 재치가 살랑살랑 돈을 무척 벌게도 생겼다고 나는 속으로 은근히 감탄을 터뜨렸다.
현관에서 신을 벗고 끌신을 갈아 신는 동안 핑크색 까운 호스티스가 철저히 복무를 해주었다. 끌신을 내어주고 벗은 신발을 받아 신발장에 얹고 호패 같은 탈의실 열쇄 두 개와 흰 타월 두개를 건넸다.
“춰조우마? (때를 밀어 드릴까요?)” 전에 없던 복무사항이었다.
호스티스는 그런 것도 있느냐하는 내 눈길을 받자 탕 안엔 때밀이 꾼이 대기하고 있으며 복무비는 5원이며 값은 지금 함께 계산한다 는 걸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주었다.
김이 서려 시루속 같은 탕 안에서 경직된 엄마의 몸까지 두 사람의 몸뚱이를 샅샅이 밀어 씻고 나면, 나는 곧잘 현기증을 느끼곤 했다. 어느 땐 간 지친 데다 위경련까지 와서 잠깐 혼미했었던 적도 있었는데 엄마가 굳어진 혀 아랫소리로 옆 사람들에게 구원을 청해 한바탕 소동이 인 일도 있었다.
나는 큰맘 먹고 목욕값 10원에다 1인분 때밀이 돈까지 5원을 더 얹어주고 탈의실로 들어갔다. 목욕 한 번 하는데 통닭 한 마리 값이 휘딱 날아가 버렸지만 여느 곳에 비기면 그래도 여기가 제일 싼 곳이기에 좀 아까워도 별수는 없다. 목욕비가 비싸다고 목욕을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동료들은 샤워기를 한대 갖추라고 조언을 해준 지가 오래건만 세탁기 하나와 변기 한틀, 작은 세면조를 들여놓고 나니 돌아설 자리도 없을 만큼 작은 화장실을 갖고 사는 우리 집 형편이니 샤워기란 애인같이, 갖추고는 싶어도 아주 들여 앉히기엔 호사품일 수밖에 없는 게 시원도 하고 섭섭도 하다.
탈의실은 조용했다. 쿠션 위에 깔아놓은 시트도 백설같이 흰 게 마음에 들었다. 한쪽 팔다리가 삶아놓은 통닭의 날개처럼 가드라 붙어버린 엄마의 몸에서 옷을 벗겨내는 일은 그 몸에 옷을 입히는 일 못지않게 힘에 부치고 짜증나고 그래서 더욱 번거롭다. 마지막 속옷까지 다 걷어내자 엄마는 아직은 쓸 수 있는 왼다리를 오른쪽 다리 곁으로 옮겨 두 다리 사이를 좁혔다. 기억과 사유의 시스템 어느 곳엔가 고장이 생겨 언어 표달수준이 3살배기 어린아이만큼도 안 되게 엉망이 되어버린 엄마였지만 이렇게 알몸이 될 때마다 상투적 행동을 취하고 하는 걸보면 여자 특유의 본능적 부끄러움이란 것이 아직도 엄마의 가슴 어느 한곳에 깊숙이도 뿌리를 내리고 파묻혀 있는가보다.
여름엔 남들의 눈을 피해 심야를 기다려 마을 밖 개울가에 나가 달빛을 빌어 몸을 씻었고 겨울엔 자기 집 부엌 쪽에 숨어 오지독에 더운 물을 퍼붓고 들어가 목욕이랍시고 해버리던 그 세월, 같은 여자애들끼리라 해도 남에게 자기의 벗은 알몸을 보여 주려하지 않았었고 그래서 자기 몸 말고는 남의 알몸을 구경한 적이 없었던 나다. 그 만큼 처음 공중목욕탕에 들어올 때도 벗는 일에 부자연스러웠고 벗고도 몸 둘 바를 몰라 쩔쩔맸던 일이 나에겐 별로 오래된 일이 아니다. 그렇게 현대화 물결에 편승하는 데도 남보다 한 박자씩 늦은 늦둥이였던 나인데 하물며 야학을 다니며 3강5륜부터 전수받았던 엄마이고 보면 그러는 편이 더 어울리는 엄마다운 제스처가 아닐까? 활량이었던 아버지 때문에 끓인 속이 숯덩이처럼 꺼멓게 타들어가도 몸가짐 한번 흐트러진 적 없는 엄마였고 얼굴엔 마냥 자상한 웃음이 떠 있었어도 반대로 말문만은 무척 무거웠던 엄마다. 좀처럼 열리지 않는 입이었기에 재가 되도록 타는 가슴 속의 연기는 분출구를 찾지 못해서 속에서 더 요동을 쳤을 것이고, 그래서 아픔은 곱절로 불어났을 텐데도 말이다. 아버지에게 여자가 그렇게 많았던 까닭이 엄마의 그 무서우리만큼 지나친 인내와 수용의 자세가 자초한 것이 아니라고 나는 지금도 부인하지 않는다.
때로는 흐르는 석간수 같기도 하고 때로는 예리한 벌의 주둥이 같기도 해야 하며 때로는 포효하는 암범 같은 데도 있어야 남편이라는 들 말을 제대로 몰고 갈 수 있었을 텐데도 말이다. 3종4덕은 잘 알아도 거점을 모르시고 사신 게 엄마 일생의 최대 비극이 아닐까?
그렇게 부끄러움에 몸을 송사리는 엄마를 이끌고 욕실 문을 밀고 들어갔는데 휴일이 아니어서인지 탕 안엔 세살쯤 되는 여자애까지 합쳐 목욕하는 손님이 셋밖에 없었다. 등받이가 없는 비닐 쿠션 위에 갓잡아 엎지른 돼지모양으로 네 활개를 펴고 시름없이 누어있는 여자, 그 여자의 사타구니 쪽을 열심히 밀어 씻고 있던 때밀이 여인이 흰 이를 활짝 드러내고 반겨주었다.
“콰이 라이, 따제.(어서 와요, 언니.)”
중국 사람들에겐, 안면 없는 사람의 일엔 하늘이 두 쪽 나도 눈곱만한 관심도 보내지 않는 차가운 면과 안면이 조금이라도 있거나 이해관계에 조금이라도 저촉되는 사람을 만나면 가볍게 언니 동생하고 불러주며 후덥게 대해 주는 뜨거운 면이 공존하고 있다. 돈을 뿌려주려고 온 고객을 대하는 주인으로서의 아량 있는 예절이 아니라 낯모르는 과객에게서 돈이라도 빌 때처럼 아양에 가까운 호들갑스러운 얼굴 같아서 어쩐지 기분이 묘했다. 요즘 들어 이런 이해관계의 속셈이 무척이나 빨라진 것이 전과 달라진 중국 사람들의 모습이다. 그에 반해 우리는 아직도 신 씻는데 쓰는 수세미처럼 까슬까슬하고 뻣뻣한 데가 많아 남보다 흠이 하나 더 많다.
어린 계집아이는 바닥에 앉아 비누 곽으로 물장난이 한창이고 그 맞은 편에서 두 손으로 샴푸거품 때문에 구름덩이같이 부푼 머리카락을 반죽하듯 주물럭거리던 젊은 여자 손님이 증기막 안으로 들어가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갓 쪄낸 찐빵같이 부풀어 오른 엉덩이가 뒤에서 유난히도 오기를 뿜고 있는 게 같은 여자인 내 눈에도 어지럽다. 탕 속에 엄마를 들여앉히고 감응에 의해 흐르게 된 샤워기 앞에 다가서서 흘러내리는 물로 몸 구석구석을 적시며 나는 물 먹은 건빵처럼 옆으로 퍼지기 시작하는 내 몸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처녀 땐 퍽 날씬하다는 소리를 듣고 산 몸인데 세월 앞에선 장사가 없다고 했던가?
때밀이 여인이 네 활개를 뻗고 누워있는 손님에게 몸 뒤집기를 권장했다. 여인은 그동안에도 한잠을 잔 모양 선하품을 하며 비둔한 몸체를 굴러 비닐쿠션 위에 엎드렸다. 누웠을 때보다 어딘가 더 둔탁해보였다. 때밀이 여인이 때를 밀어 올릴 때마다 필요이상으로 붙은 고깃덩어리가 덜된 돼지 껍질 묵처럼 쿠션 위에서 좌우로 출렁거렸다. 여인이 바닥에서 물장난에 성수나 있는 계집아이를 불렀다.
“야단아, 엄마 물병 갔다주라.” 계집아이는 두말없이 쪼르르 달려가 선반 위에 올려놓은 광천수병을 집어 엎드린 여인의 손에 쥐어주었다.
“에그, 이쁜 것. 엄마에겐 우리 딸 야단이 밖에 없다니까. 느거 아버지가 야단이 절반만 해주어도 이 엄만 소원이 없겠구만은.”
그러면서 병마개를 따고 소 뜨물 켜듯 꿀떡꾹떡 병 안에 남았던 물을 다 마셔버렸다. 
“체중이 늘 땐 물 한 모금도 살이 된다 했어요. 고만 마셔요.” 때밀이 여인이 근심스레 충고를 던졌다.
“괜찮아요, 난 먹어서 찐 살이 아니라 스트레스를 받아 찐 살이예요. 몸을 불리지 않으려고 애도 배를 가르고 낳았는데 그게 다 허사가 되었지 뭐예요? 이젠 될 대로 되어라 그러는 중이 예요.”
“애기아버지한테서는 아직도 소식이 없으세요?”
두 사람은 서먹한 사이가 아닌 듯 했다. 엎드린 여인은 묵묵부답이다.
“자꾸 독촉해요, 남자들은 돈 많으면 잘못되기 십상이니까.”
때밀이 여인이 이번엔 엎드린 여자의 등에 비누거품을 바르고 종주먹으로 다듬이질하듯 두드려 댔다. 근육의 탕개를 풀어주는 나름대로의 안마방법인가 보다.
“그러다 아줌마를 버리겠다면 어떡하지? 애는 어쩌구? 멀거니 앉아 기다리는 건 수가 아니에요, 그리고 살 좀 빼세요. 요즘 남자들 예전 같지 않아서 덩치 큰 여자 좋아 안 해요, 나처럼 이런 힘 빼는 일을 할거면 몰라도.”
엎드렸던 여인이 기분이 나쁜 듯이 벌떡 일어나 샤워기 밑으로 들어가 버렸다. 다리 저는 사람더러 절름발이라고 하면 덜 좋아하는 법이다. 덩치가 커서 감응도 큰지 별스레 그 샤워기에선 물이 폭포처럼 소리를 내지르며 많이도 흘러내렸다.
탕 속에 잠가두었던 엄마의 몸을 때밀이 쿠션 위까지 견인하는 일은 사고 난 차를 후미진 골짜기에서 끌어올리는 일 못지않게 힘에 부쳤다. 다행하게도 날렵한 때밀이 여인이 방법 있게 손을 도와서
한결 쉬웠다. 8년간의 지병은 엄마 몸에서 근육과 지방을 척결이라도 해버린 듯 쿠션 위에 누운 엄마의 알몸은 뼈에 가죽 밖에 남지 않아 내가 보기에도 처량했다. 반나마 털어먹은 팥자루처럼 처져있던 젖가슴은 바듯이 누워버린 자세 때문에 써레질이 금방 끝난 논바닥처럼 무연했고 그 가운데
썩은 밤알같이 댕그라니 남은 두 유두가 그 가슴을 더 바보로 되어 보이게 했다. 이 젖가슴으로 여섯 자식을 품어 키웠다고 하면 믿을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믿지 아니할 수 없다. 우리 여섯 자매는 바로 엄마의 이 가슴에 매달려 엄마의 사랑을 먹고 이렇게 어른으로 자라났으니까 말이다. 하다면 요즘처럼 많이도 아니고 달랑 하나만 낳고 체형 때문에 모유도 아니 먹이는 요즘 여자들의 젖가슴은 파파 할머니가 되어도 산봉우리처럼 봉긋 솟아 있어야 할 텐데…. 때밀이 여인의 날렵한 손놀림에 의해 엄마의 몸에서 밀려 떨어지는 것은 때가 아니라 죽은 표피덩어리가 더 많았다. 동구 밖에 있는 자세 우물물을 초롱으로 길어다 먹으면서 안으로 굽기 시작했다는 엄마의 오른 다리는 왼다리와 평행을 이루지 못하고 악목가지처럼 우스꽝스레 휘여 있어 더욱 볼썽사나웠다. 어렸을 땐
종아리가 너무 굵어 남들 보기 부끄러워 정강이 위로 올라오는 치마는 끝내 입지 않았다던 엄마의 두 다리였다. 그런데 그 굵었다던 다리는 어디로 갔을까? 거미는 새끼를 낳으면 새끼들의 먹이로 자기 몸을 바친다고 했던가, 그러니까 새끼들은 바로 자기를 세상에 낳아준 어미의 뼈와 살과 피와 골수를 파먹으며 유년기를 완성한다는 것이다. 남 보이기 흉할 정도로 굵었다던 엄마의 다리가 이제 그 뼈말고 가죽밖에 남지 않은 것을 어찌 무심한 세월이나 무정한 병마 탓이라고만 하랴. 우리는 새끼 거미처럼 엄마의 몸을 젖으로 짜먹고 사랑으로 녹여 먹은 것이다. 한 달 사이에도 눈에 뜨이게 수척해진 엄마의 신상을 내려다보며 때밀이 여인을 도와 엄마의 몸 구석구석을 밀어 씻으면서도 석주일간이나 밀렸던 때를 시원히 씻어낸다는 가뿐함 대신에 자책감 같은 것이 새롭게 가슴 한쪽을 할퀴고 지나갔다.
일 년 사철 땀을 동이로 흘리면서 들일에 몸을 혹사시키면서도 그 땀과 피로를 쑤욱 씻어낼 만큼 제대로 된 목욕 한번 못하고 늙어버린 인생, 일을 하다가 더우면 쉼참을 타 한둘씩 짝을 지어 인적 드문 퇴수물 숲속에서 서로 등짝을 밀어주며 그나마 받을 수 있는 물의 세례에 만족하며 살아온 세대들이었다.
엄마는 일 년 365일을 인민 공사 합작 노동에만 출근으로 나가면서도 일 년에 돼지 두 마리 쯤은 제도같이 사육을 해서 가사에 보탬을 많이 했다. 그래서 쉼참마다 남들은 논두렁에 누워 허리 쉼이라도 했었지만 엄마는 돼지에게 쉼참 죽을 떠먹이려고 먼 일터에서 달음박질을 해서라도 집까지 왔다가군 했다. 그야말로 엄마의 쉼참은 쉼참이 아니라 달리기 경주 시간이었고 숨 가쁜 노동의 연장이었다.
큰길 하나를 사이 두고 우리 마을과 나란히 살던 한족동네가 있었는데 그 마을에서 두부를 앗아 파는 두부쟁이 쑨마즈(얼굴이 얽은 사람의 별칭) 영감은 춘하추동 그렇게 달음박질해 다니는 우리 엄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조선동네 여인들은 일도 잘하고 정갈 하기도하고 여자답기도 해서 보배”라며 “군대 간 아들이 제대해오면 조선동네 처녀를 며느리로 삼아야겠다.”고 노래처럼 흥얼거렸다. 그러나 괜히 말만 듣기 좋아 그렇지 정말로 조선동네 처녀를 며느리로 맞아들이진 못했다. 당치도 않을 소리였기 때문이었다. 중국 땅에 살면서도 한족 사람과의 통혼만은 패가망신으로 간주하던 조선동네의 철칙 같은 예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조선동네의 예법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한족 사람들이었기에 조선 사람과의 혼인을, 억대 복권에 당첨되기를 바라면 바랐지 감히 생각도 못하는 줄로 알고 살았고 그래서 쑨마즈 영감의 콧노래 같은 소리를 그저 미친놈 씨나락 까먹는 소리만큼이나 우습게 듣고 넘길 줄도 아는 체념 같은 지혜도 갖추고 살았던 사람들이었다.
두 여자가 목욕을 끝내고 탕 안을 빠져나갔다. 가랭이 자른 반바지에 브래지어만 걸친 때밀이 여인의 몸은 땀과 물로 온통 젖어있었다.
“하루에 몇이나 씻어요?”
“고정된 게 없어요, 오늘 같은 날엔 열대여섯이 고작이구요, 휴일 같은 날은 또 힘이 모자라서 못다 밀어주는 형편이지요, 조선 사람들은 깨끗한 걸. 좋아해서 목욕을 자주하다보니까 크게 힘들지 않아 좋은데 우리 한족사람들은 그와 좀 다르잖아요. 한족사람 하나 미는 힘이면 조선사람 둘을 밀 수 있어요, 그래서 난 같은 값이면 조선 사람들이 목욕하러 오기를 기다려요.”
“보수는 어떻게 계산하는 건가요?”
“사람당 4원을 받게 되여 있어요, 언니도 아까 들어올 때 5원을 물었었지요? 거기서 1원은 주인이 먹는 거구요.”
“착취하는구먼요?”
“착취라고 까진 생각지 않아요. 저희들에게 일자리를 창출해 주었잖아요. 약재공장에서 일자리가 잘려 나왔을 때 우린 하늘땅이 핑그르르 도는 것 같았어요, 당신네 조선족처럼 한국 나가 돈이나 벌 수 있어요, 밑천이 있어 장사나 할 수 있어요? 이제 어떻게 사나하고 생각하니 나뭇가지에 목이라도 매고 싶더라구요, 근데 인젠 아니에요, 차가 산 앞에 이르면 필시 길이 있다고 하는 말 하나도 틀린 데 없어요.”
“그럼 수입은 꽤 짭짤하겠어요?”
“그리 못해먹을 노릇은 아니에요. 때시걱이 드레가 없는 나쁜 점 빼고는.”
“그럼 식구들 때시걱을 어찌하나요?”
“처음엔 애 아버지가 다 알아서 했었어요. 그런데 남탕에서도 때밀이를 요구해서 애 아버지도 이 일을 같이해요. 아이는 담임 선생님 댁으로 하숙을 들였구요, 하숙비가 만만찮지만 둘이서 버니까 그쯤의 투자는 그리 문제가 되지 않아요.”
남탕 쪽에서 때밀이가 끝나고 근육을 풀어주느라고 벗은 잔등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남탕 쪽도 수입이 비슷하겠지요?”
“그럼요. 남정네들이라 돈 아까운 줄을 모르고 팍팍 뿌려서 오히려 이쪽보다 수입이 더 좋아요.”
때밀이 여인은 신들린 무당처럼 묻지도 않는 말을 주절주절 주어 섬겼다.
“금방 나간 애기엄마 직업이 무엇인 줄 아세요? 마작이에요. 그놈의 마작을 얼마나 잘 치는지 프로급이예요. 출국한 남편이 돈을 부쳐오지 않아도 그 여자 굶어 죽진 않아요. 날마다 마작 놀아주고 밥 사주는 남정네들이 쎄구버렸어요. 우리옆집에 세 들어 살아서 내가 좀 아는데 그거 노는데 정신 팔려서 딸아이가 뜨물통에 거꾸로 박히는 것도 몰랐던 여자예요. 그래서 그 귀여운 계집아일 하마터면 죽일 뻔 했다니까요.”
“숙분이, 손이 쉬면 얼른 나와 우유나 한잔 마시고 해요!” 남탕 쪽에서 웅글진 소리가 들려나왔다.
“알았어요. 이제 나갈게요.”
때밀이 여인은 남편이 부른다며 밖으로 나갔다. 여인이 나간 후 엄마는 탈진상태에 든 사람처럼 꼼짝없이 누워 있었다.
“엄마, 요즘 세월 많이 좋아졌지? 가만히 누워 있어도 때를 다 씻어주는 사람이 있구. 그치?”
엄마는 입귀만 약간 일그렸다. 웃는다는 게 그게 전부의 표정인 줄 나는 안다.
“그래두 엄마, 난 오지독 안에 들어가 하던 그때 그 목욕이 더 좋았던 것 같수.”
섣달 그믐날 저녁이 되면 이튿날 차례상 준비를 끝낸 엄마는 돼지죽 가마를 비우고 맑은 물을 넘치게 퍼붓고 씽씽 끓여서는 우리자매들의 목욕을 잊지 않고 챙기셨다. 들어서면 내 한 키가 더되는 오지독에 목욕물을 퍼 넣고 제일 어린 나부터 차례대로 몸을 씻겨주었다. 맨 마감에 맏언니까지 다 씻고 나면 자정이 훨씬 넘는 때도 있었다. 그래도 엄마는 지켜 서서 일일이 아이마다 등을 밀어주었고 목욕이 끝난 후엔 부엌아궁이 불볕에 머리를 말리어 앞가르마를 곱게 내어 외태를 땋는 것까지 도와주었다. 다른 날은 몰라도 초하룻날만큼은 꼭 그런 머리를 빗도록 독촉을 했는데 처녀애들은 외태를 땋아야 정숙해 보이고 여자다운 데가 있다는 것이 엄마의 고루한 고집이었었다.
그 무렵 한족마을의 쑨마즈 영감의 아들이 군복무가 끝나 마을로 돌아왔다. 별을 뗀 군모와 영장을 떼버린 군복을 입고 있었으나 위용을 상징하는 쑥색복색에 의해 의표가 늠름해 보였고 얽음뱅이 쑨 영감의 아들이라고 하기에 아까울 만큼 준수해 보였다. 쑨 영감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그 날 앗은 두부를 손때가 묻어 시커멓게 그을은 박바가지에 담아들고 두 마을을 돌며 집집마다 한 모씩 공짜로 돌렸다. 그러나 그가 아무리 그렇게 너스레를 떨어도 조선동네 사람들은 왼눈으로도 반기지 않았다.
얼마 후 쑨 영감의 아들과 조선동네의 처녀 하나가 마을 앞 소나무 숲 속에서 남몰래 데이트를 하다가 목욕하러 개울가에 나갔던 동네 아낙네들의 눈에 발각이 되어 마을은 또 한 번 소란스러워졌다. 딸년이 집안 망신을 시켰다며 초상난 집처럼 울며불며 야단을 치던 처녀 집에서 어느 날 딸을 데리고 어디론가 감쪽같이 이사를 가 버렸다. 시집 안 간 딸자식에게 그런 불미스런 일이 생긴 것은 재무지에 두부를 떨군 것처럼 불어 먹지도 닦아 먹지도 못하기에 소문 모르는 먼 곳으로 가서 조용히 사는 게 최상이라고 마을사람들은 뒤에서 쑥덕거렸다.
그 후부터 우리들에 대한 엄마의 단속이 심해졌다. 밤늦게 마실돌이 하는 걸 반대했고 개울가로 목욕하러 가는 일도 엄마의 배동이 없이는 불가능한 사실로 받아들이게 했다.
문이 열리며 새 목욕 손님이 들어왔다. 표징이 되는 옷가지들을 다 벗어버린 상태여서 탕 속으로 들어서는 사람들은 얼핏 보기에 별로 구별이 되지 않는다. 그저 실하고 약하고의 차이점만 있을 뿐 몸은 거기가 거기서 거기였다.
“때 밀어 주는 사람 어디 갔나보죠?” 갓 들어 온 손님이 먼저 그렇게 말을 걸어와서 “방금 간식 먹으러 나갔어요, 곧 올 거예요.”
그렇게 대답하며 정면으로 여인을 쳐다보니 다름 아닌 둘째 언니네 맞은 켠에 사는 여인이었다. 언니네 집으로 드나들면서 계단에서 몇 번 얼굴을 마주친 일이 있을 뿐이어서 서로가 누구인 줄은 알고 있어도 인사수작은 종래로 없었던, 우린 그저 그런 사이였다.
둘째 언니의 말에 의하면 이 여인은 3년 간 외국나들이를 다녀  왔는데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 이 동네 상가 건물만 해도 두 채나 사두었고 연해도시에다도 살림집 한 채를 사놓았으며 친정집 남동생에게는 자가용차까지 한 대 뽑아준 여인이란다. 아무리 주먹구구를 해보아도 3년 사이에 복권에 당첨 되었거나 그렇지 않으면 도둑질을 했거나 그 두 가지 중의 하나를 하지 않은 이상은 불가능한 일인데 그 불가능을 가능한 일로 되게 한 그 여인에겐 도대체 어떤 경로가 있었던 것일까? 그것이 오랫동안 체증처럼 둘째 언니의 연구과제로 남아 있었댔는데 요즘 누군가의 입에서 나온 소문인지 여인은 외국에 나가 있는 동안 어린애 없는 부잣집 마나님 대신 아기를 낳아주고 그 보상으로 거액을 받아 챙긴 것이라고 한다나? 그러나 소문은 어디까지나 소문일 따름이어서 그 진가는 누구도 모르지만 둘째 언니의 세심한 관찰에 의하면 여인은 가끔 출입문을 열어둔 채 집안에서 서성거리는 때가 많은데 그때마다 입고 있는 잠옷이 모두 고급 외제 쪽이라고 했다. 그것도 벌벌이 수십 벌인데 여인은 집안에만 들어오면 그 잠옷들을 걸치고 채경 앞을 배회한다고 했다.
여자답지만 눈에 거슬리게 요염하지는 않은 얼굴과 비대하지도 않고 마르지도 않은, 풍만하다고 하면 딱 어울릴 만큼 보는 이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저런 몸매를 가졌고 보면 씨받이로 선택될 자연조건을 충분히 구비한 여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웃집에서 그렇게 뜬금없이 벼락부자가 되어버리자 슬그머니 안이 단건 그 옆집에 사는 둘째 언니였다. 과일을 사도 우리들처럼 근으로 사오는 게 아니라 박스채로 사들이고 먹고 버린 쓰레기마저 자기 집 것과 다른 차원의 쓰레기를 버리는 이웃집의 모든 것이 부럽다 못해 심술까지 들 정도란다. 그러면서 종종 엄마에게 농반 진 반의 투정을 하기도하는 둘째 언니이다.
“내리내리 딸만 낳는 집안의 딸들은 선녀의 정기를 받아 대개 모두 예쁘다고들 하더구만 우린 왜 잘생긴 아버지는 닮지 못하고 울퉁불퉁 이렇게 지지리 못 생겼소? 혹시 아버지 몰래 다른 영감하고 눈이 맞아 우릴 낳은 건 아니지? 허긴 뭐 여섯 개나 줄줄이 남의 씨를 도둑질하도록 우리아버지가 가만있었을 린 없는 거고. 혹시 우리아버지 아이 못 만드는 바보는 아니었지?”
말은 못해도 듣는 데는 별 지장이 없는 엄마가 시설시설 주워대는 둘째 언니의 말에 어이가 없는 지 일그린 입귀로 허구픈 웃음을 흘렸다. 노동이 없는 부에 대한 둘째 언니의 흠모는 엄마가 살아온 인생에 대한 모욕이나 다름없었으나 엄마는 혀가 굳어지는 병을 만나 그런 딸년을 호되게 꾸짖을 수도 없는 몸이 되었다. 아니, 말을 할 수 있었다고 해도 엄만 아마 그저 저렇게 웃어 버렸을는지도 모른다. 엄마는 워낙 그렇게 말을 무척 아끼는 타입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부에는 모두다 그에 대등한 대가가 따랐다고 주장하는 둘째 언니이니까 말이다. 그것이 바로 엄마 세대와 요즘 세대 사이의 차이점이 아닐까? 
지금 여인이 쓰는 샴푸도 고급 외제였고 타월도 목욕탕에서 내어주는 공용이 아닌 몸소 지니고 온 것이었는데 그것 역시 외제품인 걸 나는 보아냈다. 좌우지간 이 여인은 숨은 이야기가 많은 여인 같았다.
탈의실을 나왔을 때 핑크색 까운을 입은 호스티스가 알록달록한 머리 끈으로 금방 드라이어를 끝낸 여학생의 머리를 묶어주고 있었다. 우리 엄마처럼 외태를 땋아주는 것도 아니고 몇 오리씩 감아쥐고 새끼를 꼬듯 비틀어 꼰 다음 다시 가랑머리로 쪽을 져 갈라 묶고 있었다. 내 눈엔 무대 위의 꼭두각시 머리같이 보였다.
우리가 옷을 다 입자 머리도 다 묶어졌다. 여학생은 1원짜리 두 장을 테이블 위에 던져놓고 탈의실을 나갔다.
“여기서는 머리도 빗겨주는가요?”
“아니요, 옆집 미장원에 사람이 차서 기다리기가 싫다고 이렇게 여기서 묶는 애들이 많아요. 대신 돈을 받죠.”
“한번에 2원씩이나?”
“요즘 애들 돈 2원을 돈같이 보는 줄 아세요? 금방 나간 그 학생은 머리를 한 번도 제절로 묶지 않아요. 번번이 미장원에 들어가 묶지 않으면 이렇게 여기서 묶고 가죠. 아버지가 외국에서 하루에 300원 벌이를 하기에 그 2원이 뭐 대수냐, 그러면서 그냥 묶어 달래요. 나야 좋죠, 돈을 버니까.”
이 동네 상가 값이 왜 그리 비싼 지 알 것 같기도 했다. 저마다 하나같이 돈 버는 재미에 지쳐 무척이나 즐거워하고 있었다.
자꾸 무너져 내리는 엄마의 몸을 부축해 우윳빛 유리문을 밀고 밖으로 나왔을 때 뜨거운 정오의 태양이 정수리 위에서 자글자글 끓어 번지고 있었다.(*)


박옥남: 1962년 중국 흑룡강성 탕원현에서 출생
·흑룡강성 오상조선족사범학원 졸업. 일어전과학력
·현재 흑룡강성 상지시 조선족 중학교 일어교원
·단편소설「오가툰 일화」「올케」「둥지」등 다수.
·2007년 제1회「김학철 문학상」대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