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회 <해외문학상> 대상 수상작 시 -윤휘윤(미국)/ 소설 -안설희(미국)

 

 

<제11회 해외문학상> 대상 시부문 수상작 날짜 : 08-11-09 00:33     조회 : 1260  

<콤파스> 외 2편
                                         
윤 휘 윤(미국)


가랑이를 벌리고
집게다리하고
디딜 지점을 찾는 순간

지축을 꿰뚫은 듯
중심은 잡았지만
自轉의 의지를 잡지 못한

통 넓은 치마로 가릴 수밖에 없어
약해지는 마음에

눈 뜨는
만남의 약속은
여울이 되어
원을 그린다
끝도 없이 원을 그린다


<찻잔>


차창 문을 열면
아직도 순결 그대로의
찻잔들이 고요하고
고요하다

창밖이 소란할수록
펄펄 뛰는
주전자 뚜껑은
謀叛의 쫓김처럼
헐떡이지만
찻잔 안엔 어느새
끓는 물이 가득하다

그리하여
찻잔의 內壁에
숟가락 부딪치는 우주의 소리
연갈색 수증기가
개벽의
아침처럼 떠오른다



<맷돌>
 

매미 울음이 정자나무 가지를 쥐고
여름의 키를 재는
봄날

三代장손을 거느린 툇마루에
산들바람이 지나가자
하늘과 땅이 우르르 우르르
세월을 갈면

괴로움도 기쁨도 다 생활로 여기고
자연에 감추어둔
우리들 神의 목소리 듣는다

흰 머리칼 쓸어 넘기면서
할머니가 벌판을 이고 돌아올 때
대문 여는 소리였다가
구름 되어 도시로 간 손자의 구두소리였다가
달에 치성을 드리는
며느리의 치마 끄는 소리

한 바퀴
두 바퀴
한 家門의 족보를 재끼고
옛 것이 간 자리에


새 것이 오는
조선의 함성


<약력>
윤휘윤
․경상북도 예천에서 출생
․[심상](한국) 신인상 시 당선 등단
․시집으로 「이민시대」
․[가산문학상] 시부문 수상
․해외문인협회 부회장 역임
․해외문인협회 회원
․미주 한국문인협회 이사 부이사장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근교 거주



<제11회 해외문학상> 대상 소설부문 수상작
단편소설


<아버지의 눈>

안 설 희(미국)


수화기를 막 제자리에 올려놓고 나니 어쩐지 지난밤 꿈자리가 뒤숭숭하더라, 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밤새도록 별의별 흉한 꿈에 시달렸으면서도 정작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거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다만 어떤 연유에서였던지 나 혼자 숲 속을 헤매다가 발 디딜 틈이 없이 사방에 우글거리던 뱀을 보고 혼겁이 나서 허둥댔던 것 외에는.
누가 나더러 이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동물을 대라면, 그건 두말할 나위도 없이 뱀이었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뱀이라면 질색을 했다. 귀동냥으로 알게 된 구약성경에 나오는 선악과나무 위의 사악한 뱀에 대한 선입견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는 언제부터인가 액체가 흐르듯이 땅을 배로 기어 다니는 그 냉혈 동물에게 까닭 모를 혐오감과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나 보았다. 여하튼 온종일 까맣게 잊고 있었던 간밤의 꿈 한 장면이 머릿속에 불쑥 떠오른 것은 방금 걸려 왔던 괴이쩍은 전화가 남긴 불쾌감 때문이리라. 상대방은 가래가 가르랑거리는 쉰 음성으로 영씩 킴(이곳 사람들은 한국인이 아닌 이상 열이면 열, 김영식을 그렇게 발음을 한다)과 통화를 하고 싶다고 했었다. 때마침 나는 만난 지도 오래되었으니 오늘 저녁에는 영화라도 보러 가자고 조르던 니콜을 만나기 위해 외출을 서두르고 있던 중이었다. 나는 수화기를 가로 누인 뺨과 어깨사이에 끼운 채로 양손을 동원해 나이키 로고가 발목에 찍힌 새 양말을 한 짝씩 발에 꿰기 시작했다. 내가 괸데 누구냐, 고 시큰둥하게 묻자 마른 기침소리에 이어서 ‘장기 적출 희생자 유가족회’의 미세스 앤더슨인데 만나서 긴히 할 얘기가 있다, 는 대답이 들려왔다. 또 무슨 시시콜콜한 단체에 기부금을 내달라고 수작을 거는 전화라고 단정을 내린 나는 퉁명스럽게 잘라서 말했다. 난 그런 단체에 관심도 없거니와 급히 나가 볼 일이 있어서 전화를 끊어야겠다, 고. 그러자 기상천외의 반문이 전화 저편에서 튕겨 나왔다. 돌아가신 당신 아버지의 눈을 감쪽같이 도난을 당하고도 관심이 없느냐, 그런 사실을 알고나 있었느냐, 는 거였다. 나는 생판 낯도 모르는 사람한테 느닷없이 따귀라도 한 대 얻어맞은 양 어안이 벙벙해졌다. 아버지의 눈을 도둑맞다니? 아버지를 장사지내고 난 지 겨우 닷새째 되는 날에 이 무슨 해괴망측한 소리인가 말이다!
아버지는 애주가답게 술과 더불어 갑자기 세상을 뜨셨다. 소나기가 억세게 퍼붓던 그날 밤, 아버지는 이런 저런 연줄로 미국의 한 지역으로 흘러든 고향 사람들을 만나러 향우회 모임에 나갔다가 취중에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다리 난간을 들이받고 즉사를 했다.
왕년의 귀신 잡는 해병대 출신임을 자랑스럽게 떠벌리고 다니던 아버지는 잔병치레라고는 모르는 혈색 좋은 중늙은이였다. 과장된 표현인지는 모르지만,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갖은 고생 끝에 골프채를 들고 폼을 잡으며 살만하면 덜컥 걸려서 죽는다는 요즘에 와서 더욱 흔해진 것 같은 암도 아니고, 그렇게 졸지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이국의 공동묘지에다 묻고 난 가족들의 심정이 오죽하겠는가. 마침 몸살을 앓아 드러눕는 바람에 그날 밤 향우회에 가지 못한 어머니는 ‘내가 그 양반과 같이 거길 가기만 했었어도 그 지경이 되도록 술을 퍼마시게 내버려 두지는 않았을 텐데‥‥‥‥’ 하면서, 마치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이 순전히 당신의 과오인 양 가슴을 쥐어뜯으며 대성통곡을 했다. 일단 사람이 죽고 나면 누구나 고인에 대하여 크든 작든 간에 죄의식이나 그것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마련인가 보았다. 나 역시 어쩌다가 아버지를 노엽게 했던 케케묵은 일들이 뜨끔거리는 가책으로 되살아나는 바람에 몹시 후회스러웠고 슬펐다. ‘미처 효도를 해드리기도 전에‥‥‥‥’ 하는 아쉬움으로 애통해 하기는 대학교에 다니고 있는 누이동생도 마찬가지인 눈치였다.
나는 마른 하늘의 날벼락 같은 아버지의 죽음을 두고 그 따위 기막힌 소리를 구시렁거리는 상대방이 이웃에 사는 정신이상자이거나, 아니면 마약에 취해서 무례하고도 지나친 농담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해도 유분수지! 불쾌해지다 못해서 울컥 부아가 치밀었다.
“댁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 모두가 피해자인 셈이지요‥‥‥ 여하튼 미스터 킴, 어려우시겠지만 이번 토요일에 ‘장기 적출 희생자 유가족회’의 모임에 꼭 참석해 주세요. 케이스 별로 자세한 진상규명 보고와 아울러 강구책을 토론할 예정이니깐요.”
어떻게 화를 낼지 몰라 궁리를 하고 있던 나의 귓전에 가르랑 거리는 쉰 목소리가 한결 누그러진 설득조로 파고들었다. 저승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소름이 오싹 끼쳤다. 객쩍은 장난 전화일 거라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면서도, 결국 나는 메모지에다가 그녀가 불러주는 대로 날짜와 시간, 장소 따위를 적어 두었다. 그리고 끄트머리에 낙서를 하듯이 ‘아버지의 눈’이라고 휘갈겨 썼다.

영화는 시시했다.
니콜이 볼 만한 무술영화라고 호들갑을 떠는 바람에 거의 텅 비어 있다시피 한 영화관 안에 들어와 앉기는 했지만, 입장료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형편없는 영화였다. 내가 비록 신출내기이기는 하지만 얼마 전부터 임대료가 싼 상가에 태권도장을 열어 놓고 있는 태권도 사범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쿵후와 합기도, 유도, 태권도와 킥복싱을 짬뽕해 놓은 듯한 국적불명의 치고받기에다가, 우즈자동소총에 폭탄까지 한몫을 보는 난장판 폭력물은 유치하다 못해서 위화감까지 자아냈다. 어떻게 내가 몹시 좋아하는 액션 스타 척 노리스가 이 따위 엉터리 무술영화의 주인공 역을 맡았을까, 하고 실망이 될 지경이었다. FBI요원으로 분한 그는 뉴욕의 차이나 타운을 장악한 국제마약밀수단의 갱들에게 무참하게 살해당한 동료의 주검을 목격하고는, 단신으로 악당의 소굴로 뛰어 들어가서 무리하달 수밖에 없는 복수극을 술술 잘도 펼쳐 내고 있었다. 영화가 어떻게 끝이 나리라는 것은 보나마나 뻔했다. 현실과는 달리, 아직도 권선징악과 해피엔딩이 식순처럼 실현되는 데가 무술 영화 속이었으므로.
첫 장면부터 끔찍한 살상과 폭력, 자극적인 섹스 장면으로 일관되는 그 영화를 보는 동안 나는 지루하고 못마땅해졌다. 예전에도 종종 느껴 왔던, 헐리우드에서 만드는 영화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불만이 생목이 오르듯이 꾸역꾸역 치밀어 올랐다. 그것은 극소수를 제외한 미국 영화에 등장하는 동양인은 십중팔구는 악한이거나, 돈만 아는 구멍가게 주인 아니면 문 열어 주는 식모, 그렇지 않으면 입도 뻥긋 않고 뒷배경이나 채우는 엑스트라거나, 또는 백인 주인공의 손에 추풍낙엽처럼 우수수 쓰러지는 오합지졸이라는 점에 대한 반발이고 시비였다. 다양한 인종이 비빔밥처럼 섞여 살고 있는 미합중국에서 어떻게 항상 백인만이 주인공이고, 의인이고, 강한 자일 수가 있단 말인가! 나는 새삼스럽게 종합예술의 공간에까지 철저하게 스며 있는 은연중의 인종차별과 편견에 분노를 느끼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주먹을 불끈 거머쥐었다. 옆에 앉아있는 니콜에게 불편한 심기를 들키지 않으려고 열심히 화면을 보는 척하고 있는데, 사타구니에 야릇한 감촉이 일었다. 팝콘 봉지 속으로 들랑거리던 그녀의 손이 어느새 내 두 다리 사이를 더듬고 있었다. 화면에는 풍만한 유방을 드러낸 여가수의 상체와 척 노리스의 근육질의 등판이 포개지고 있었다. 나는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니콜의 손길을 넌지시 밀어냈다. 왜 그런지 노닥거릴 기분이 나지가 않아서였다. 그녀는 키득거리는 웃음을 깨물면서 이번에는 아이스크림이라도 핥듯이 혀끝으로 내 귓불을 애무해 오기 시작했다.
나는 이러지 마, 하는 뜻으로 고개를 옆으로 비꼈다. 눈치 없는 계집애, 남의 속도 모르고. 공연히 니콜에게 짜증이 났다. 저녁 식사 겸 먹은 피자랑 맥주 값도 내가 냈고, 극장표는 물론 팝콘과 소다까지 사 주었으니깐 그녀는 으레 그 대가인 양 오늘 밤에도 내게 몸을 열어 줄 것이었다. 정확히 말해서 우쭐대는 백인들이 나의 적일 것까지야 없지만, 나는 매번 금발머리에 푸른 눈을 가진 니콜의 희고 매끄러운 몸 깊숙이 뿌리를 내릴 적마다 마치 적군의 여자를 정복하는 것과 같은 야릇한 쾌감에 흠씬 젖고는 한다는 것이 씁쓰름하게 상기되었다. 내가 뒷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던 대부분의 한국인 여자애들은 새침하고 몸을 도사리는 편이었지만, 어려서 의붓아버지에게 성학대를 당한 적이 있었다는 니콜은 거개의 이곳 젊은이들이 그렇듯이 성을 혐오하기보다는 탐닉하는 편이었고 자유분방했다. 서너 달 전에 태권도를 배우겠다고 불쑥 도장을 찾아왔던 니콜은 애초부터 나를 유혹하려고 들었다. 못 이기는 척하고 그녀와 데이트를 하기 시작한지 오래지 않아 그 낌새를 눈치 챈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시시콜콜 일러바치는 바람에 집안이 발칵 뒤집힌 적이 있었다.
“이런, 경을 칠 놈. 아, 니가 미국에서 산다고 미국 사람이 다 된 줄로 아느냐? 발랑 까진 미국 계집아일 꽁무니에 달고 다니게? 보라는 선은 안 보고 자알 논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는 파란 눈의 며느린 결코 못 볼 테니 그런 줄이나 알아라. 고연 놈.”
아버지는 노기가 등등해서 침을 튀겨 가며 그렇게 호통을 쳤고, 나는 “에이, 그냥 데리고 노는 것 뿐이예요.”하고 짐짓 대수롭지 않게 대꾸를 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그냥 데리고 노는 것 이상으로 니콜에게 빠져들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이따금 그녀가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고는 했다. 니콜이 도장의 단원들에게 자기가 사범의 애인이라고 공공연히 뻐기며 다니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한편으로는 쭉 빠진 몸매의 백인 여자애를 데리고 다니는 기분이 그럴싸했다.
“내 아파트로 가요.”
영화가 끝나고 밖으로 나왔을 때 니콜이 내 팔짱을 끼며 소근 거렸다. 그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뻔했다.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왜? 영씩, 혹시‥‥ 새 애인이 생긴 건 아냐?”
의외라는 듯이 금세 샐쭉해진 니콜이 팔짱을 풀며 다그쳤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아직은 상중이라서‥‥‥‥.”
나는 얼결에 그렇게 얼버무렸다. 니콜이 여느 때보다 더욱 도발적인 옷차림을 하고 있었는데도, 어찌된 영문인지 나는 여전히 전혀 성욕을 느끼지 못했다.
“그래? 정말 한국 풍습에 그런 게 다 있어? 상중이니깐 나랑 자지 말라는?”
유리구슬처럼 파란 눈을 하르르 치켜뜨며 니콜이 물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영문도 모르고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미국으로 이민을 왔던 나는 정말 우리 나라풍습에 부모의 상중에는 금욕을 해야한다는 규정이 있는 건지, 있다면 얼마 동안 그래야 하는 건지도 모르면서, 내친김에 그렇다고 고개를 끄떡여 보였다. 자존심이 상했는지 심상치 않은 눈빛으로 나를 잠시 노려보던 니콜이 “굿바이”라고 잘라서 말했다. 찬바람을 일으키며 획 돌아선 그녀는 눈 깜박할 사이에 극장 앞길을 오가는 행인들의 물결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살얼음이라도 낀 듯이 차가운 그녀의 음성으로 미루어, 어쩌면 그 굿바이가 그냥 잘 가라는 소리가 아니라, 이걸로 우리 사이는 끝장이라는 뜻은 아닐까, 싶어서 은근히 속이 켕겼다.
기실 나는 내가 그녀를 따라가지 않은 것이 아버지의 죽음에서 받은 충격으로 인한 일시적인 성욕감퇴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서로의 허영심과 육체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만 급급해 왔던 우리들의 관계에 문득 회의를 느껴서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내내 꺼림칙하게 머릿속에 엉겨 붙어 있던 괴전화 때문이었는지, 도무지 걷잡을 수가 없었다.
망연해진 나는 오늘 밤 따라 영화 속의 한 장면같이 낯설게 여겨지는 밤거리의 한 모퉁이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오후 3시가 지났는데도 바람 한 점 없는 도심은 여전히 뜨겁고 건조했다. 짙푸르다 못해서 거무튀튀한 녹색을 띤 가로수 잎사귀들이 몇 주일째 계속되고 있는 가뭄에 새들새들 시들어 가고 있었다. 빈민가로 알려진 훼이엣 스트릿의 길 양쪽에는 허름한 차량들이 줄지어 세워져 있었다. 얼룩덜룩 페인트칠이 벗겨져 나간 자리에 뻘건 녹이 생채기 위에 앉은 딱지처럼 눌어붙어 있거나, 어디다가 어떻게 호되게 들이박았는지 볼썽사납게 짜부라지고, 박살이 나서 깨진 유리창 대신에 너절한 비닐 종이를 붙여 놓은 구식의 트럭 등, 아예 수리를 포기한 채 십여 년은 넘게 끌고 다녔음직한 중고 차량들이 이 거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형편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가난한 집 방문 앞에 아무렇게나 벗어 놓은 헌 신발짝들처럼.
한차례 구간을 돌면서 주차할 곳을 물색하던 나는 재작년 봄에 애국 운운하면서 아버지가 사 준 현대 코로나를 길모퉁이의 샌드위치 가게 앞에 세웠다. 이런 동네에서는 벌건 대낮에도 감쪽같이 차를 도둑맞을 수가 있으리라는 우려가 내 뒤통수를 당겼지만, 나는 묵묵히 앞만 보고 걸었다.
휴지조각과 빈 맥주 깡통이 널브러져 있는 건널목은 때 아닌 물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매일 연이은 더위에 지친 빈민가의 아이들이 길가의 소방용수기를 틀어 놓고 신바람이 나서 물장난을 치고 있었다. 분수처럼 세차게 솟구치고 있는 물줄기 속을 팬티바람으로 드나들며 깔깔대는 아이들은 흑인과 히스페닉계였다. 문득 ‘어린것들은 다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사람의 자식들뿐만이 아니라 강아지나 어린 고양이, 송아지, 심지어는 동물원에서 보았던 호랑이 새끼나 새 둥지에서 꺼내 왔던 부리가 노란 새 새끼, 지하실 구석에서 발견했던 새앙쥐 새끼를 보았을 때도 그런 느낌이 들었었다. 아직 종족의 타성과 적자생존의 그악스러움을 갖추지 않은 어린것들의 공통된 천진함과 귀염성이 어렸을 적의 나에게도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며 슬며시 웃음이 났다. 자랑스럽게 불알을 내놓고 헤벌쭉 웃으며 찍은 나의 누렇게 빛바랜 돌 사진이 기억되었으므로.
선뜩한 물방울이 건널목을 지나는 내 목덜미와 팔뚝에도 튀었다. 나는 눈길이 마주친 작고 깡마른 흑인 소녀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광활한 도시는 무더운 한여름에 가난한 집 아이들이 멱감으러 갈 시냇물도, 강물도 흐르지 않는 사막처럼 메마른 곳이었다.
나는 아지랑이처럼 흐물대는 열기를 휘적휘적 헤치고 걸으면서 후락한 연립주택의 번지수를 열심히 눈으로 훑었다. 마침내 구겨 쥔 메모지에 적혀 있는 주소를 찾아냈을 때는 입고 온 남방셔츠가 비지땀으로 후줄근하게 젖어 있었다. 고장난 초인종이 건성으로 붙어 있는 문짝을 주먹으로 쿵쿵 두드렸다. 안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이 무더위에 어울리지도 않는 전체 가발을 쓴 비대한 몸집의 흑인 중년 여자가 문을 열어 주었다.
“어서 오세요. 미스터 킴.”
내가 뭐라고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녀가 가르랑거리는 쉰 목소리로 반갑게 나를 맞이했다. 나는 대뜸 그녀가 내게 전화를 걸었던 미세스 앤더슨이라는 걸 알았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토요일도 일을 하기 때문에‥‥‥‥.”
변명이 아니라 주말이라서 더욱 바쁜 어머니가 경영하고 있는 세탁소의 카운터 일을 도와주다가 부랴부랴 달려온 터였다.
“늦긴요. 이제 마악 회의를 시작하려던 참인 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제가 바로 미세스 앤더슨이예요. 누추하지만 어서 들어오시죠. 어유, 웬 놈의 날씨가 이렇게 푹푹 찌는지‥‥‥ 돌아가면서 회원들 집에서 미팅을 하기로 되어 있는데, 하필 이 무더운 날 에어컨도 없는 우리 집 차례가 되는 바람에 모두들 땀께나 흘리게 됐어요.”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모르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가 앞장을 섰다. 그녀의 발밑에서 어물정거리던 바퀴벌레 몇 마리가 뿔뿔이 흩어져 달아났다. 계단 밑의 어두컴컴하고 좁은 통로를 지나자, 부윰한 빛이 새어 나오는 쪽에 제법 널찍한 거실이 있었다. 울긋불긋한 무명천으로 드리운 커튼이며, 먼지 낀 조화와 속이 텅 비었을 큼직한 석고 코끼리, 찢어진 갓이 씌워져 있는 붉은 항아리 형 램프등이 여기저기에서 끌어 모아 놓은 듯이 제각각인 가구와 함께 색다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나로서는 처음 들어가 보는 흑인의 거처였다. 나는 진득하게 조여 오는 긴장감을 늦추어 보려고 심호흡을 했다. 쿠키를 굽는 냄새가 구수하게 감도는 후덥지근한 실내의 한구석에는 낡은 선풍기가 덜덜거리는 소음과 함께 체머리를 흔들면서 돌아가고 있었다. 얼음이 든 쥬스컵이 잔뜩 놓여 있는 탁자를 빙 둘러싸고 앉아 있던 낯선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로 쏠리는 바람에 나는 일순 당황했다.
“이분이 최근에 부친의 눈을 약탈당한 미스터 영씩 킴이예요. 제가 꼭 오시라고 전활 했었죠.”
미세스 앤더슨이 어색하게 서 있는 나를 돌아다보며 그들에게 말했다. 별 희한한 소개도 다 있다, 고 생각하면서 나는 꾸벅 머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녀가 권하는 빈자리에 엉거주춤 앉자마자, 말쑥한 양복차림의 사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백인 남자가 내게로 다가와서 악수를 청했다.
“미스터 킴. 만나 봬서 반갑습니다. 먼저 댁의 아버님이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신 것과, 부당하게도 그분의 안구가 적출당한 점에 대해서 진심으로 유감을 표하는 바입니다. 저는 에드워드 쿠퍼라고, ‘장기 적출 희생자 유가족회’를 발족시킨 사람이지요. 제 직업은 변호사이고 금년 봄에 교통사고로 죽은 내 딸의 안구와 신장이 감쪽같이 없어졌다는 것을 안 이후로는 주정부의 검시관들에 의해 같은 수법으로 처리된 희생자들의 가족을 회원으로 확보하고, 법적 근거가 될 만한 자료와 증거를 포착해서 파일을 만들거나, 모임을 통해서 강구책을 모색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답니다. 다행히 회원들의 적극적인 협조로 조만간에 해결책을 찾을 수가 있을 것 같군요. 각별히 미세스 앤더슨이 새 회원 영입에 수고를 아끼지 않고 있지요.”
내게 쥬스 잔을 건네주던 그녀가 그의 치하에 황송한 듯 미소로 응했다. 맙소사! 그럴 리가‥‥‥ 나는 방안이 빙글 도는 듯한 현기증이 이는 바람에 하마터면 쥬스 잔을 떨어뜨릴 뻔했다.
이곳을 찾아올 때까지만 해도 설마 했던 일이 현실로 내 목을 바짝 조여 오는 통에 숨까지 턱 막히는 것 같았다.
나는 누군가가 쥐도 새도 모르게 아버지의 시신에서 두 눈을 뽑아갔다는 것이 사실인지도 모른다는 심증이 굳어 감에 따라 걷잡을 수 없는 충격과 분노에 부르르 치를 떨었다. 그렇다면, 병원의 영안실에서 마지막으로 뵌 아버지의 감은 눈꺼풀 안에는 거즈나 솜 따위가 채워져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머니조차 그렇게 감쪽같이 속아 넘어갔을 리가 없었다.
“‥‥‥‥아니, 도대체 뭔 짝에 쓰려고 죽은 사람의 눈을 빼갔단 말입니까? 그것도 가족들조차 모르게?”
종종 사랑하는 가족의 시신을 장기 기증을 위해 내놓았다거나, 사후에 자신의 장기를 남을 위해 기증을 하는 유서를 남겨 미담의 주인공이 되는 예는 보아 왔지만, 내가 아는 한 아버지는 절대로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귀한 몸― 아버지는 육신을 그렇게 불렀고, 끔찍이 위했었다. ―을 기증을 할 분이 아니었다. 손톱깎이로 잘라낸 손톱이나 발톱조차 알뜰히 종이에 주워 담아 꼭꼭 싸서 쓰레기통에 버리고는 했던 아버지였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몸의 일부였던 것은 버릴 때도 아무렇게나 버리는 것이 아니라고 잔소리를 한 걸 늘 안중에 두어서였다. 언젠가 신문을 보던 아버지가 장기 기증은 조상에게 죄를 짓는 것이라고까지 말한 적도 있었다. 그때 나는 아버지의 주장이 옹졸하고 우스꽝스럽다고 느꼈지만, 사람에게는 누구나 자기 의사를 지킬 권리는 있는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야, 늘 이식 수술의 수요가 달리는 각막을 무상으로 손쉽게 공급받으려는 얕은 속셈에서지요. 알고 봤더니, 죽이 맞은 검시관과 일부 외과 의사들이 횡사자의 안구뿐만이 아니라 모든 신체 장기를 그런 식으로 슬쩍 탈취해 갈 수 있도록 법에까지 대충 손을 써 놓았지 뭡니까. 살아생전에 자의로 장기를 기증할 것을 약속했던 이들의 병들고 노쇠한 장기보다는, 사고로 급사한 건강한 이들의 장기가 훨씬 쓸모가 있다는 점에서 그런 천인공노할 짓을 하는 거지요. 순순히 내주는 사람이 드무니깐, 강제로라도 뺏어가겠다, 이겁니다. 거부를 당할까 봐 아예 직계 가족에게까지도 비밀로 하고 말입니다. 그야말로 도둑질도 그런 날강도질이 없지요. 사고무친한 걸인들의 사체는 아예 의과대학의 해부용으로 걷어 들인다는군요.”
‘해부’라는 단어가 내게 아득한 멀미를 상기시켰다. 개구리를 잡아다가 해부를 했던 중학교 생물시간에 느꼈던 그런 멀미였다. 비위가 상했던 나는 그날 도시락조차 먹을 수가 없었다.
“미스터 쿠퍼. 그 말씀이 사실이라면, 당신은 도대체 어디서 그런 걸 알아냈으며 우리 집 전화번호는 어떻게 아셨어요?”
그의 음성이 확신에 차 있어서인지 내 목소리는 잦아들고 있었다.
“그건 말입니다. 아직은 지금 이 자리에서 누구라고 그 사람의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나와 절친한 친구 중에 그 계통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이 있거든요. 정직하고 의협심이 강한 친구지요. 그 친구가 하는 일이 거기에 관련된 서류를 정리해서 컴퓨터에 입력시키는 거라서 내가 설득한 끝에 사망자에 관한 일체를 인수 받을 수가 있었어요.”
나는 그제서야 그의 손에 들려 있는 두툼한 서류철을 의식했다. 바싹 마른 입술에 침을 묻히고 난 내가 미처 무어라고 더 캐묻기도 전에 손목시계를 들여다보고 난 미스터 쿠퍼가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자아. 이제 오실만한 분들은 다들 오신 것 같으니 회의를 시작하기로 하지요. 오늘 처음 참석하신 분들도 계시고 하니 돌아가면서 간단히 각자의 소개랑 케이스를 말씀하신 후에 토의를 하기로 하겠습니다.”
차분하면서도 휩싸 들이는 듯한 저력이 느껴지는 그의 음성이 믿음직스러웠다. 회원들이 차례로 돌아가면서 말문을 열었다. 간결한 자기소개와 더불어 언제, 어디서, 어떻게, 가족 중의 누가 갑자기 죽었는데, 사체 검안의가 어떤 장기를 몰래 떼 내어 갔다는 기막힌 사실들을 하소연하듯이 털어놓았다.
“‥‥‥‥글쎄, 정육점에 실려 온 소나 돼지도 아닌 인간의 육신을, 아무리 죽은 사람이지만 그렇게 맘대로 도려내 가는 법이 어디 있단 말예요?”
남편이 공사장에서 일을 하던 도중에 참변을 당했다는 백인 여자가 마침내 북받치는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서먹한 분위기가 감돌던 방안에는 어느새 비통한 공감대가 촘촘히 엮어지고 있었다. 그 자리에 모인 열한 명의 회원들 중에서 이란에서 왔다는 사업가와 주름진 얼굴에 검버섯이 핀 멕시칸 할머니, 그리고 나를 제외하고 백인과 흑인의 비율은 반반이었다. 나는 인종이나 풍습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고인의 미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미묘한 감정이 어쩌면 이다지도 같을 수가 있을까, 하고 저으기 놀랐다. 마지막으로 미세스 앤더슨의 차례가 되었다.
“내 아들은요, 뇌를 도둑맞았답니다. 갸는 멀쩡하게 길을 걸어가다가 마약 갱들이 쌈질을 하느라고 쏜 유탄에 가슴을 맞고 앰뷸런스에 실려서 병원으로 가는 도중에 숨졌지요‥‥‥‥ 아주 착한 아들이었어요. 다음 달에 첫아이를 볼 참이었지요. 그런데 청천벽력 같은 전갈을 받고 달려갔더니, 글쎄 벌써 장의사가 손을 봐 가지고 갸를 관 속에다가 눕혀 놨는데 평소에 쓰지 않던, 못 보던 모자를 떠카니 갸 머리에 씌워 놓았더라구요. 어쩐지 이상한 예감이 들어서 슬쩍 모자를 들추고 봤더니‥‥‥ 아, 글쎄 갸 머리통에 뇌수술을 받았던 것처럼 기다란 칼자국이 나 있고, 봉합한 실밥이 그냥 붙어 있지 뭡니까. 기절초풍을 해서 장의사에게 따지고 들었더니, 자기는 전혀 모르는 일이고 대학병원에서 그런 상태로 시신을 인수받았다는 거예요. 모자는, 수술자국이 흥해 보여서 씌워 놓은 거라나‥‥‥‥.”
가쁜 숨소리가 섞인 쉰 음성으로 거기까지 말을 하고 난 미세스 앤더슨이 발작적인 기침을 연신 해댔다. 그녀가 펑퍼짐한 원피스 주머니에서 천식 약으로 보이는 흡입기를 꺼내어 입에 물고 치익 칙, 뿜어대는 동안 미스터 쿠퍼가 비감한 어조로 그녀의 말을 대신 맺었다.
“제가 조사해 본 결과, 미세스 앤더슨의 짐작이 틀림이 없었습니다. 검시관이 제멋대로 이분 아들의 두개골을 가르고 뇌를 훔쳐 간 거지요. 아마 이식을 위한 것이 아닌 다른 용도에 쓰려는 의도였던 것 같습니다.”
“세상에, 어떻게 그럴 수가‥‥‥‥.”
눈물이 글썽해진 깡마르고 파리한 백인 여자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이 속이 메슥거리는 바람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조금 전에 집안으로 들어서면서 본 계단 옆의 화장실로 후다닥 뛰어 들어간 나는 변기에 고개를 들이대기가 무섭게 와락 토하기 시작했다.

나는 미세스 앤더슨의 집을 나서자 어머니와 누이동생이 일을 하고 있는 세탁소로 가지 않고 곧장 집으로 갔다. 거실로 들어서자마자 부리나케 아버지의 영전으로 다가갔다.
아, 아! ‥‥ 아니나 다를까. 모든 사실을 알고 나서 다시 보아서인지, 까마귀가 눈알을 조아 먹은 것 같이 움푹 파인 눈자위 때문에 인상조차 낯선 아버지가 사진틀 안에 있었다. 눈동자가 없는 아버지는 표정이 없는 딴사람 같아 보였다.
―아들아 원통하구나‥‥‥.
죽어서 장님이 된 아버지는 고통스러운 음성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침마다 어린 아들에게 간유를 한 숟갈씩 떠먹이면서 ‘이걸 먹으면 밤눈이 밝아진단다. 눈이 보배야’, 하던 아버지의 다정스런 모습이 기억 속에서 되살아났다.
아버지, 아버지이―.
나는 고꾸라지듯이 그 자리에 풀썩 무릎을 꿇고 주먹이 으서져라 방바닥을 내리치며 목메어 울었다. 걷잡을 수 없는 분노로 차오른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나는 그 자리에서 아버지께 굳은 맹세를 했다. 아버지.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한시바삐 아버지의 두 눈을 되찾아 함께 묻어 드리겠습니다, 라고. 아니면, 아버지의 원수를 꼭 갚겠다고.

금세 소나기라도 한바탕 쏟아지려는지 먹물을 풀어놓은 듯한 구름장 위로 천둥이 우르릉 우르릉 굴러다녔다. 대학병원 건물이 마주 보이는 길 건널목을 건너는 내 심장이 마구 뛰었다. 그가 과연 아버지의 눈을 가지고 나올까? 만약 그가 나의 간절한 호소나 울분에 찬 위협마저 무시하고 아예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도 않는다면‥‥‥?
한껏 초조해진 나는 한 손으로 양복 안주머니를 슬쩍 더듬어 보았다. 단단하고 예리한 비수가 만져졌다. 찌릿한 전율이 등골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틀이나 걸려서 아버지의 시신에서 눈을 뽑아 간 검시관의 직장과 집까지 알아낸 이상, 그는 도저히 나를 피할 수가 없으리라. 나의 정당한 요구를 그가 거부하거나 무시한다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함무라비 법전대로 나는 품고 온 비수로 그의 두 눈을 찌를 작정이었다. 통사정을 하던 나에게 마지못해 서류철을 보여주면서 이 문제에 관하여 절대로 어떠한 개인행동도 해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했던 미스터 쿠퍼에게는 대단히 미안한 일이지만,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장기 적출 희생자유가족회’의 명의로 제기했다는 소송이니, 진정서니, 따위로 시일을 질질 끌다가는 어느 천 년에 아버지의 눈을 되찾게 될는지 아무도 장담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어머니와 누이동생에게는 아버지의 눈에 관한 일체를 비밀로 해 두었다. 잘되든 못되든 간에 나 혼자서 이 일을 처리하고 책임을 질 각오였다. 설령 형무소엘 가는 한이 있더라도.
니콜에게서는 그날 밤 이후로 아무 연락이 없었다. 짐작했던 대로 그녀와의 사이에 금이 간 것이 분명하건만, 나는 그것에 대해서 어떻게 느낀다거나, 어째 볼 경황이 없었다. 아직은 ‥‥‥‥.
대학병원의 로비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정각 두 시였다. 나는 방금 들어선 출입구께에 서서 내가 일방적으로 약속 장소로 정했던 로비 안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엘리베이터에서 가까운 소파에 앉아 있던 마른 체구의 백인 중년 남자가 이쪽을 바라보며 손짓을 했다.
흰 가운을 걸친 것으로 미루어 나는 그가 해부학 조교를 겸임한 주정부의 검시관 닥터 파웰이라고 짐작을 했다. 내 심장이 뛰는 소리에 귀가 멀 지경이었다. 나는 그에게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미스터 킴이 맞지요? 파웰이오.”
그가 소파에서 일어서며 정중하게 악수를 건네 왔다. 얄팍하고 섬세한 손을 가진 그는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달리 푸근한 인상을 주었다. 그가 약속 시간을 일 분도 어기지 않고 그 자리에 나와 있었다는 점이 우선 나를 안심시켰다. 이미 몇 번의 통화로 옥신각신 서로의 주장이나 입장을 피력했었고, 마지막에는 흥분한 나머지 내가 엄포를 놓고 나서 전화를 끊었던 터라서 그런지, 그와 막상 대면을 하고 보니 쑥스러우면서도 구면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 저를 알아보셨죠?”
나는 어눌한 음성으로 물었다.
“그럴 것 같았어요.”
그가 모호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정각 두 시에 바짝 긴장된 얼굴로 출입문을 들어선 동양인은 나 밖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믿고 싶었다. 내 눈이 아버지의 눈을 닮아서인가, 하는 생각이 들자 몹시 불쾌해졌다.
“자아, 이쪽으로 앉으시죠.”
그가 내게 그의 옆자리를 권했다. 나는 독이 바짝 오른 독사와 같이 뻣뻣하게 선 채로 빠른 어조로 물었다.
“제 부친의 눈은 가지고 나오셨나요? k7094요.”
아버지 눈의 신원을 밝히기라도 하듯이, 나는 서류에 기입이 되어 있던 케이스 번호를 또박또박 발음했다.
“‥‥‥‥ 미스터 킴. 다시 한 번 말씀 드리지만, 고인이 남긴 육신에 대한 애착은 단지 살아 있는 사람들의 문제일 겁니다.”
그가 나를 빤히 쳐다보며 딴전을 피웠다
“그렇지만도 않아요. 죽은 사람에게도 존중되어야 할 인권이라는 것이 있는 겁니다. 사전에 본인이나 가족의 허락도 없이 그런 식으로 사체를 탈취하는 행위는 엄연한 인간성의 모독이며, 날강도질이지요. 한 번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을 해보시라구요.”
발끈해진 나의 언성이 높아졌다. 주위의 사람들이 이쪽을 힐끔거리며 쳐다보고 있어서인지, 그의 표정에 일순 당혹감이 스쳤다. 나는 속으로 히쭉 웃었다. 하필이면 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장소에서 담판을 내기로 작정을 한 나의 계획이 제대로 맞아 들어가고 있었다. 여차해서 사회에 충격적인 물의를 일으킬 사건이 벌어지면, 경찰과 뉴스 보도진들이 몰려올 것이고, 범행 동기 등을 캐는 동안에 저들의 만행이 저절로 백일하에 공개될 터였다. 그것 역시 계산된 순서였다.
“난 오래 전부터 장기 기증자입니다. 내 운전면허증에도 그렇게 명시가 되어 있지요. 내가 죽은 후에 벗어 놓은 껍데기와 같은 나의 육신이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유용하게 쓰여 질 수가 있다면, 보람 있고 기뻐해야 할 일이지요.”
그는 일부러 음성을 한껏 낮추어서 말했다.
“그거야 댁의 선택이고, 온전하고 추하지 않은 모습 그대로 땅에 묻히고 싶은 이들도 있는 겁니다. 아무리 고인이지만, 자기 의사에 반하여 신체 장기를 훼손당하는 것과 자발적으로 장기를 기증을 하는 데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는 거예요. 아시겠어요? 그리고, 내가 이미 누누이 말씀 드렸잖아요. 우리나라 풍습에는‥‥‥‥.”
거기까지 말을 하고 난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나 나나 마치 고장 난 전축 판처럼 이미 전화로 하고 또 했던 말을 되풀이하고 있다는데 생각이 미쳐서였다.
“자, 더 이상 가가 구구할 것 없이 우리 아버지의 눈이나 돌려주시오.”
나는 마치 빛 독촉이라도 하듯이, 당장 내놓으라는 식으로 그의 코앞에다 펼친 손바닥을 들이댔다. 그가 몹시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안절부절못했다. 나는 재빨리 그의 아래위를 훑어보았다. 어이가 없게도 그는 종이 한 장 들고 나오지 않은 거였다.
나쁜 새끼, 빈손으로 나왔구나! 나는 어금니를 질끈 깨물었다.
“우리 아버지의 눈은 어디 있소?”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한 손으로 양복 안주머니의 칼을 잔뜩 움켜쥐었다.
“저어기‥‥‥‥.”
그가 손가락으로 내 뒤쪽을 가리켰다. 그러면 그렇지,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의 조수가 포르말린 용액에 담긴 병 속에 든 아버지의 눈을 가지고 뒤늦게 달려오는가 싶어서 뒤를 돌아다보았다.
뜻밖에도 방금 열린 엘리베이터에서 젊은 부인이 어린 소녀가 탄 휠체어를 밀면서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미스터 킴, 일이 아주 난처하게 되어 버려서, 죄송하기가 짝이 없군요. 하도 강경하게 나오시길래, 정말이지 미스터 킴 부친의 안구만은 꼭 되돌려 드리려고 최선을 다했더랬어요‥‥‥. 그런데 가까스레 그걸 찾아냈을 때는, 이미 늦었더군요. 미안합니다.”
닥터 파꿸이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뭐? 뭐라구요?”
깜짝 놀라 외치는 내 앞에 수수한 옷차림의 젊은 부인이 미소를 지으며 다가와 섰다.
“미스터 킴, 닥터 파웰로부터 말씀을 들었어요. 꼬챙이를 가지고 놀다가 눈을 찔리는 바람에 실명한 제 딸 제니퍼에게 세상 빛을 다시 보게 해 주신 은인의 아들을 오늘 만나게 될 거라고요. 정말이지 뭐라고 돌아가신 미스터 킴의 아버지께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군요.”
나는 갑자기 온몸의 기운이 쭉 빠져나감을 느꼈다.
장난감 곰을 품에 안고 휠체어에 앉아서 생글생글 웃고 있는 곱슬머리 소녀의 눈이 되어 버린 아버지의 눈이 따스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약력>
안설희

․강원도 강릉 출생
․미국 메릴랜드대학 심리학과 졸업
․1990년「워싱톤문학」신인상 소설부문 수상
․1991년 뉴욕 한국일보 공모 소설부문 수상
․2000년「자유문학」신인상 소설부문 수상
․저서로 단편소설집「옥수수 밭 이야기」출간
․「한국문인협회」회원
․「해외문인협회」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