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회 <해외문학상> 대상 수상작 시부문 -김옥배(미국)

<물과 같이 되어> 
      외 2편

      김 옥 배


물처럼 살라하신다.

모든 것을 포용하며
무분별한 불꽃도 뜨거운 정열도
가만가만 잠재우며
물과 같이 유연히 비껴가며
정화시키라 하신다.

낮은 데로 더 낮은 데로 흘러가면서
모든 허물과 부끄러움을 감싸주고
아픈 상처를 씻어 주며
이웃과 사랑을 나누며 흘러가라 하신다.
이웃과 고통을 같이하며

흐르고 흘러서 정화된 강물이 되리라.
큰 바다가 되어 출렁이리라.


<풀의 의미>


풀이 아름다운 것은 바람의 향기를 뿌리는 데 있다
어린 아이들에게는 부드러운 미소로
늙은이들에게는 아득한 고향을 만들어 준다
비록 꽃들에 가려서 빛을 내지 못해도 그들을 위한
토양이 되어주고 아름드리 낙엽송에게도
기꺼이 자리를 양보한다.

나무들도 나이 들어 죽고 꽃들이 시들어도
묵묵히 자기 자리 지키며 대지에 물기를 대주고
오가는 사람들에게 기꺼이 짓밟힌다.
풀은 모진 비바람에도 묵묵히 견디며
바람 따라 눕고 바람 따라 흔들린다.


<사랑의 묘약>


사랑은 늘 퍼주어도 더 주고 싶은 마음이다.
고이기가 무섭게 더 퍼주고 싶은
미움은 빗장 걸어 잠근 대문이다.
꽁꽁 얼어붙은 얼음장처럼
사랑은 늘 무언가 그리워하며 거니는
꽃향기 가득한 봄 동산이다.
미움은 캄캄한 암흑 속에 눈 부릅뜨며
부글부글 끓는 용광로 같다.
사랑은 사람의 마음을 비단결처럼
부드럽게 해 주지만
미움은 사람의 마음을 사막처럼
메마르고 황폐케 한다.
사랑은 음악처럼 달콤하고
미움은 독약처럼 쓴 것
그러나 미움도 사랑 앞에서는
모래성처럼 무너진다.
사랑은 어떤 견고한 성도 무너뜨리는
신비한 묘약이 된다.


<약력>
김옥배 :
․1938년 출생
․1961년 이화여자대학교 국문과 졸업
․1997년 [세기문학](한국) 신인상 시 당선 등단
․1997년 [시조문학] 시조 추천완료
․미국 오하이오 문우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해외문인협회 회원
․해외문인협회 부이사장
․해외문학 편집위원
․시집 「그리움이 강물 되어」 「사랑 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현재 미국 뉴저지 주 거주
E-mail: okbae pyun okbpyun@yahoo.com

날짜 : 10-03-09 23:46     조회 : 521

제12회 <해외문학상> 대상 수상작 소설부문-손룡호(중국)


<울부짖는 성>

      손 룡 호

[1]
산호는 이상하게 하늘이 흐려오는 것이 누굴 기다리는 것처럼 느껴져 왔다. 오늘도 중학교에 갓 붙은 아들놈의 학부형회의에 참석하느라고 학교 쪽으로 저벅저벅 걸어가고 있다. 이 부연 안개 속에 흐릿하게 보여 온다. 온 하늘이 부옇다. 올해 따 산호는 습관대로 부옇게 흐려오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태양도 맥없나 11월이 다 가도 눈이 내리지 않았다. 헌데 날씨를 보니 이번만은 눈이 내릴 것 같았다.
산호가 교실에 들어서니 자리가 다 차갔다. 아들이 중학교에 들어서서 두 번째로 열리는 학부모회의였다. 보매 아버지 어머니가 출국하여 대신 온 아이들의 큰아버지며 큰어머니며 삼촌이며 고모며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있었다. 산호가 어디에 앉겠는가고 자리를 둘러보는데 산호의 중학동창인 <물알>이가 고개를 끄덕이었다. 곁에다 자리를 남겨두고 있었다. 산호는 얼른 그리로 가서 앉았다. 둘은 눈 맞춤으로도 인사가 편안히 오갔다. 물알이와 산호는 키가 머리 하나 넘어 차이가 있었다. 물알은 중학교 때에도 전 학년에서 키가 제일 큰 편이었다.
그런데 약하고 맥이 없었다. 그 키가 욕심나서 학교 배구대에서도 불러다 여러 번 훈련을 시켜보았지만 근본 다리근육이 발달되지 않아 헛물만 켜고 말았다. 정말로 키가 아까웠다. 키 값을 못하였다. 그래서 물알이란 별명을 가졌다. 알이 있어도 물로 차있으니 쓸모없다는 데서였다. 허나 심성은 대단히 착하고 성격은 어리 무던하였다. 별로 말이 없었다. 애들한테 놀림을 받는 애들은 대개 그랬다. 주눅이 들어 학교를 다녔다. 물알의 유일한 친구가 산호였다. 산호 역시 물알을 좋아했고 별명은 <개미>였다. 키는 작으나 오관이 똑바르게 박히고 아주 영특하였기 때문이다. 개미는 작아서 맨 앞에 앉았고 물알은 제일 커서 맨 뒤에 앉았다. 허나 둘은 곧잘 친했다. 휴학종이 울리면 밖에 나가서 자연히 둘이 만나 얘기를 했고 하학할 때도 그냥 함께 집으로 갔다. 그런데 둘 다 장가가서 인젠 아이들의 아버지로 된 것이었다. 같은 학부모로서 한자리에 앉았다. 
반주임 선생님은 자리가 거의 차가자 회의를 시작하였다. 먼저 아이들의 연말시험 성적을 발표하였다. 물알의 아들 민호가 일등이었다. 개미의 아들 영호는 46번째였다. 중간 부류서도 아래쪽에 속했다. 개미는 물알을 흘기었다.
“물알아, 너 아인 <물알>이 아니구나?”
그러니 물알은 대답은 않고 히죽이 웃으면서 바른 손으로 개미의 머리를 꾹 눌러놓았다.
“지금 우리 반 학생 수는 56명입니다. 헌데 부모 중 한쪽이 출국한 학생이 46명입니다. 82.3%를 차지합니다. 이혼한 가정은 16집입니다. 28.5%를 차지합니다. 아이들의 정서파동이 심합니다. 학습에 집중 못합니다. 제때에 틀어쥐지 않아 학습 성적이 떨어지고 따라가지 못하면 아이는 영 공부에 자신 없게 됩니다. 그러면 공부 못하는 애들끼리 모여 먹고 놀고 싸우고 뺏고 집에 들지 않고 PC방에서 밤을 새게 되면 문제아이로 전락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 학부모들과 아이들의 친척 되는 분들은 속히 제때에 학교와 협력하여 아이들을 바로 잡아야 하겠습니다.”
반주임 선생님은 여기서 말을 잠깐 끊고 다시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시선이 물알이 한테 와 멎었다. 물알은 그걸 눈치 채지 못하고 곤한지 고개를 숙이고 있다. 입귀로는 침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개미는 측은한 눈길로 지켜보았다. 키가 큰 사람들이 건강한 사람이 적다고 하던데 바로 물알이 그랬다. 쩍 하면 약방에 가서 고혈질이요 심장병약이요 하면서 사오곤 했었다.
“아이들은 제때로 되는 관심이 필요합니다. 우리 반 민호가 일등의 자리를 확보할 수 있는 것도 민호의 아버지의 참다운 관심 때문입니다. 민호의 어머니가 한국간지도 육년에 납니다. 소학교 일 학년 때 간 셈이지요. 그동안 민호 아버지의 구석 없는 사랑 속에서 민호는 바르게 자라왔습니다. 마음이 바르고 성실하고 잡생각이 없습니다. 과당에 열중을 잘합니다.”
반주임은 민호 아버지를 칭찬하고 있었다. 개미는 물알을 올려다보았다. 물알은 그냥 고개를 끄덕이며 졸고 있었다. 피곤한 모양이었다. 개미는 졸고 있는 물알을 다치지 않았다. 물알이 부러웠다. 아내가 없는 동안 열심히 아이에게 최선을 다해서 아이의 근심과 걱정거리를 최대한 해소시켰으니 말이다. 개미는 이 점에 대해서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물알은 반주임의 칭찬소리도 듣는 것 같지 않았다. 개미는 아무래도 다쳐놓아야겠다고 생각되었다. 손으로 긴 허리 가운데를 꼬집어놓았다. 허리가 띠끔해나서야 물알은 눈을 떴다.
“야, 물알아, 넌 왜 그리 맥을 못 추니? 선생님이 네가 아들을 잘 관리하고 있다고 칭찬을 하고 다른 학부모들은 네가 부러워서 돌아다보는데 그게 무슨 물알 꼴이니?”
“그랬니? 글쎄 회의만 하면 자부럼이 온다야.”
물알은 기다란 손바닥으로 입귀에 흘러내린 침을 닦았다. 반주임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자 여성학부모 주임이 나섰다. 학부모주임은 반주임이 한 말씀을 다시 반복하여 강조하고는 학부모 위원회분들과 성적 일등인 민호 아버지 물알을 남으라고 하였다. 허나 물알은 개미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개미는 자기 뒤에서 따라오는 껑충한 물알을 발견하고 멈춰 섰다.
“야, 물알아, 너 남으라고 하지 않았니?”
“시끄럽다. 난 학부모위원회 사람들과 앉기 싫다. 그 사람들은 다 한자리하는 간부들이 아니야.”
“그러니 더 가까이 해야지?”
“필요 없다. 제 자식을 공부시키는 건데… 야, 어데 가서 맥주나 한잔 하자.”
물알과 개미는 만나면 식당으로 가지 않고 작은 쑈풀에 가서 맥주를 마시군 했었다. 물알도 고집은 물알이 아니었다. 누가 뭐라 해도 소용없었다. 개미는 물알이 장하게 보이였다. 자기는 아내가 한국 간지 이제 일 년인데 아이 성적이 말이 아니다. 물알은 아내가 한국에 간 지 육년에 난다. 정말 조련찮다. 
“물알아, 너 각시 전화오니?”
“온다. 일요일 저녁이면 온다.”
“돈은 부쳐오니?”
“물알”은 인츰 대답하지 않고 머뭇거렸다. 그러다가 신심 없이 말이 나왔다.
“부쳐온다.”
“그래…”
둘은 나란히 걸으면서 제 궁리를 하였다.
물알의 아내는 출국해서 전 삼년은 돈을 부쳐왔었다. 부쳐온 돈으로 나갈 때 진 빚을 다 갚고 집까지 사놓았다. 인젠 아이생활비와 공부에 소요되는 비용만 부쳐온다. 돈을 부치는 것은 마음을 부치는 것이다. 믿음을 보내는 것이다. 물알은 아내가 힘들게 벌어 부친 돈을 일전도 헛되이 쓰지 않았다. 그런데 돈이 전처럼 부쳐오지 않으니 물알은 저으기 섭섭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돈을 부치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는 절대 안 되는 것이었다. 개미 아내는 번 돈을 다 부쳐 보내고 있었다. 이제 꾼 돈을 다 물었다. 집을 사야 한다고 찾아보라고 한다. 돈이 되면 아이 학교와 가까운 곳의 집을 사기로 하였다. 둘은 학교대문을 빠져나왔다. 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여 세워진 쑈풀들이 불을 켜고 줄느런히 서있었다. 전에 둘이서 마시던 조선족 쑈풀도 있었다.
“개미야, 이 집에서 마시자!”
헌데 개미는 마시고 싶지 않았다. 아들 성적이 좋지 않고 물알네 아이보다 성적차이가 크니 말이다. 자기가 키는 작아도 지력상수는 물알보다 못하지 않은데 말이다.
“야, 오늘은 생각 없다. 다음에 마시자.”
“왜?…”
“왜는 왜야? 내 아들이 <물알>이니 그래지?”
개미는 성격을 쓰면서 쥉쥉 걸어갔다.
물알은 멍하니 개미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죄꼬만 것이 어둠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개미는 물알이와 갈라져서 큰길 역으로 나왔다. 가로등이 훤한 큰길에서는 하얀 눈이 하늘하늘 내리어 길가에 쌓여가고 있었다. 늦은 눈이지만 내리기 시작하였다. 올해 첫눈이었다. 아까부터 흐리더니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바람 없이 내리는 순한 눈이었다. 송이송이 하얀 눈은 가로등 불빛에 비치여 하늘하늘 춤춘다. 아내가 일 년 전에 한국 갈 때도 순한 첫 눈이 내렸었다.
그러니 벌써 한 해가 지났다. 한 해란 달리는 기차와 같았다. 한 해란 내리는 눈송이와 같았다. 순금이가 그리워났다. 착한 여자였다. 개미는 키가 작고 여위어서 시가지에서 대상을 찾지 못하고 대상감을 농촌에서 물색했었다. 자기가 키가 작고 여위었기에 반드시 키가 크고 튼튼한 여자를 만나 종자개량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과연 한 먼 친척이 깊은 산골의 숫처녀 순금이를 소개하여왔다. 순금이는 밭에서 자라는 농작물처럼 심어놓으면 자기의 왕성한 생명력으로 극구 자라려고 하는 순박한 종자였다.
시집와서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못해본 일이 없다. 임시공으로 식당이며 수놓이며 옷가게며 할 수 있는 일은 다하였다. 말없이 일 잘하는 암소였다. 깊은 산골에서 감자농사를 하면서 감자를 먹고 자라서 신체발육이 좋았다. 얼굴이 둥글고 거밋했으나 속은 감자 속처럼 하얗다. 아이를 낳고 커가는 풍만한 젖가슴, 탄성이 있는 허벅다리, 개미의 손이 어디로 가도 아랫 것이 짜릿하게 느껴오는 왕성한 성의 보루였다. 순금이는 개미의 이런 감각을 모르고 10년을 살아왔다. 자기가 어찌 남자들이 자기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남편이 자기와 밤 생활을 할 때 느끼는 그런 흥분을 각도를 바꾸어 생각을 해보았을까? 그런 생각까지 해볼 관념이 있는 여자가 아니었다. 그저 자기도 남편과 생활할 때면 별난 흥분이 엄습해오면서 다하고 보면 바라던 그 어떤 일을 완성한 것처럼 마음이 상쾌하고 전신이 홀가분해진다는 기분 좋은 감각 만이었다. 좀 섭섭한 점이라면 키 작은 남편이 자기 몸 위에서 땀을 흘리면서 수고하는 것이 보기에 미안하였다.
개미는 눈 속에서 걸었다. 가로등을 수없이 뒤로 멀리하였다. 꽤나 걸은 셈이다. 개미는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멈춰 섰다. 머리 들고 가로등을 쳐다보았다. 눈송이가 하늘하늘 그의 얼굴에 내려앉는다. 개미는 입을 벌렸다. 혀를 내밀었다. 눈송이가 혀 위에 조용히 내려 순식간에 녹아버린다. 순금이가 막 보고 싶다. 안고 싶다. 자고 싶다. 허나 곁에 없다. 돈을 벌지 않고 어떻게 집을 사고 아들을 공부시키며 남들처럼 잘 살아볼 수가 있을까? 물알이 부러웠다. 좋은 날을 위해서는 참아야 했다. 극복해야 했다. 모든 그리움과 욕정을 억눌러야 했다. 
잠시, 잠시 동안 갈라져 있는 거다.

[2]
순금이는 제일 바쁜 저녁을 만났다. 각박한 식당 안주인은 일 잘하는 순금이를 두 사람 맞잡이로 부려먹었다. 순금이가 식당에 취직했을 때 식당일꾼은 다섯이었는데 순금이가 들어온 후에는 한사람을 줄이었다. 왜서 사람을 줄이는지 순금이는 알바가 아니었다. 그저 워낙 그런가 하고 시키는 대로 열심히 일하였다. 식당안의 요리하는 일을 내놓고는 다 그의 몫이나 다를 바 없었다. 주인이 채소며 고기며를 구입해오면 순금이가 그것을 깨끗이 검질 하고 요리사의 요구대로 싹싹 썰어놓아야 했다. 손님이 들어오면 또 달려 나가 음식을 주문받아야 했고 끓인 음식을 손님 앞에 날라다주고 다 먹으면 빈 사발을 다시 날라 들여다 설거지해야 했다. 일은 힘들었다.
일할 때는 일에 정신이 팔려 남편이며 자식이며를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저 일하는 숨 쉬는 기계였다. 그래도 매일과 같이 안주인의 잔소리를 들었다. 잔소리는 하루나절 울부짖었다. 끊을 새 없었다. 잔소리는 안주인의 <노동>이었다. 본디 순박하고 남의 말에 대답질을 못해본 순금이로서는 잔소리가 정말로 싫었다. 그렇게 잔소리 못하게 열심히 일해도 잔소리는 그냥 쏟아졌다. 어떤 땐 홱 팽개치고 다른 데로 가버리고 싶어졌다. 허나 그저 그때 생각뿐이었다. 잔소리도 너무 들으니 새롭지 않고 무해졌다. 그냥 그 일에 그 잔소리이니 그저 그렇게 들어 넘기면 되었다. 그래도 식당 바깥주인이 인정이 있는 것 같았다. 나이 육십을 바라보는 바깥주인은 이제 오십대로밖에 안보이었다. 잘나고 인정이 있었다. 자기 마누라가 자기를 달구치는 것을 보면 때론 핀잔도 하였다. 
“왜 일 잘하는 애를 그리 달구쳐?…”
“그냥 달구쳐도 손이 딸리니 그랬지요.”
안주인은 남편의 말에 대꾸하고는 그런 대꾸가 성차지 않아 한마디 더 쏜다. 
“당신 식당에 작작 드나들어.”
여자라면 오금을 못 쓰는 영감쟁이의 본심을 너무도 잘 알고 있으니 말이다. 같이 살아오면서 어디 여자 하나였는가? 조금이라도 시선을 팔지 않으면 어디로 새나가서 돈을 팔지 몰랐다. 절대로 돈을 주지 말고 한가한 시간을 주지 말아야 했다. 안주인은 식당 안에서 관리를 도맡고 바깥주인은 밖에서 구입을 도맡았다. 식당일  뿐만 아니었다. 크고 작은 가정의 모든 일들은 다 남편이 나가서 처리해야 했다. 그러니 하루에도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워낙 가정일이란 밑도 끝도 없는 법이다. 안주인은 자기가 남편을 잘 다스리고 있다고 은근히 속으로 흐뭇해하였다. 식당영업이 다 끝난 깊은 밤중이면 안주인은 순금에게 안으로 문을 단단히 잠그라고 꼭꼭 부탁하였다. 자기 영감이 와서 문을 두드려도 열어주지 말라고 일러주었다.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순금이는 알아듣지 못하였다. 영감 두상이 중국 연변서 온 젖가슴이 크고 엉덩이가 둥글진 순금이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것을 낌새챘기 때문이었다. 허나 순금이는 이런 걸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자기를 두던 하는 바깥주인이 고맙기만 하였다. 이 집안에서 그래도 사람냄새가 나는 분은 바깥주인 한분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바깥주인이 어데서 술을 마시고 얼굴이 벌게서 들어섰다. 순금이는 밥상 위의 그릇을 거두느라고 바깥주인이 들어온 것도 눈치 채지 못하였다. 안주인도 주방 칸에서 잔소리하느라고 남편이 들어온 것도 모르고 있었다. 바깥주인은 순금의 뒤에서 밥상을 닦으면서 흔들리는 순금이의 젖가슴을 히죽이 지켜보고 있었다. 늙어가는 한물이 간 아내 것보다 더 생생한 젖무덤이었다. 중국서 온 사람이라 맛이 다를 것 같았다. 침이 꼴깍 돌았다. 
“당신 또 술 했어? 남은 바빠 죽겠는데 거기서 뭘 봐? 어서 차에 기름을 넣어놓아. 내일 수원 엄마 생일에 갖다와야지.”
어느새 남편이 들어온 것을 낌새채고 남편의 시선이 가는 그 더러운 욕심을 알아차리고 사정없이 닦아세웠다.
“알았어, 알았어.”
바깥주인은 찍 소리도 못하였다. 안주인이 남편을 닦아세우는 소리를 듣고서야 순금이는 바깥주인이 들어선 것을 알고 고개를 돌리었다.
“오셨어요?”
“그래. 쉬며쉬며 해!”
언제 쉬며쉬며 할 일인가? 그냥 돌고 돌아도 끝이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쉬며쉬며 하라는 바깥사장의 말이 눈물 나게 고맙다. 자기 남편은 지금 뭘 하고 있을까? 아들을 키우느라 바쁘겠지? 허나 아무리 바빠도 나처럼 바쁠까? 이렇게 힘들게 일하는 자기 모습을 남편이 알기나 할까? 돈이 뭔지? 왜 이렇게 나와서 소처럼 말처럼 일해야 하는가? 또 하지 않으면 뭘 할까? 고향서 무슨 일을 하여 집을 사고 아이를 공부시킬 돈을 벌까?… 일하다가도 너무 힘들 때면 가끔씩 올리미는 생각이었다.
“순금아, 무슨 생각해? 빨리 서둘지 않구!”
안주인은 순금이가 자기 생각에 빠질 여유도 주지 않았다. 순금이는 다시 음식그릇을 들고 주방 칸으로 들어갔다. 겨드랑이 밑과 두 다리사이에서는 흘러나온 땀들이 살에 붙어 찐찐하게 느껴졌다. 긴장하고 고단한 노동 속에 부하를 이기지 못하고 전신의 땀구멍에서 흘러나오는 알 수 없는 노동의 물이었다. 잘 살아보겠다는 마음의 진물이었다. 

[3]
개미는 엄마네 집에 거의 당도하였다. 아들이 엄마네 집에서 먹고 자고 하니 말이다. 그래도 아버지 어머니가 있어서 도움이 컸다. 형제 중에서 막내고 신체상황이 제일 말째이니 부모의 사랑과 관심을 독차지하였다. 부모는 아픈 자식을 항상 마음에 두고 먼저 생각해오는 법이다. 그래서 며느리가 한국 가자 지레 손자를 데려다가 보살펴주고 있었다.
개미도 먹고 자고를 엄마네 집에서 하다시피 하였다. 오늘은 학부모회의에 참석하여 반주임 선생님으로부터 여러 가지 말을 듣고 보니 생각되는바가 많았다. 아들에게 제때에 일깨워주어야겠기에 엄마 집으로 향한 것이다. 길가는 눈이 그냥 덮여갔다. 시야에 엄마네 아파트가 뚜렷이 보여 왔다. 아들― 영호가 보고프다. 하루 낮을 갈라져 있었는데도 말이다. 아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들은 엄마를 닮아 신체소질이 좋았다. 크고 튼튼했다. 정말로 종자를 잘 개량한 셈이었다. 개미는 걷다가 눈을 크게 떴다. 눈에 익은 사람이 길목에 나와 서 있는 것이었다. 가까이에 가니 과연 엄마였다.
“엄마 왜 나와 있어? 눈이 오는데?”
“영호가 아직 안 왔다.”
“녜?…”
개미는 놀랐다. 엄마는 돌아오지 않은 손자가 근심되어 나와 있는 것이었다. 노상 이랬다. 손주 녀석이 조금만 제시간에 나타나지 않으면 길목에 나와 손주를 기다리는 것이 습관이었다. 중풍으로 몸을 잘 운신 못하는 아버지는 손자마중을 나가보라고 노친을 달구치고는 집안에서 노친이 손자를 데리고 들어오기를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개미는 속이 후끈 달아올랐다. 이 자식이 이 어두운 밤중에 눈까지 오는데 어데 가있단 말인가? <개미>의 아들은 워낙 늦어지면 꼭꼭 아버지한테 전화를 쳐오군 하였다. 하루에도 아버지와 전화 통화를 여러 번 해야 시름 놓는 아들이었다. 
“이 자식 오늘은 왜 전화도 없지?”
개미는 핸드폰으로 아들의 호출기 번호를 눌렀다. 
영호는 허리에 찬 호출기가 연속 띠띠띠 울리자 열어보았다. 아버지가 찾고 있었다. 집으로 가야했다. 학교에서 오후 네 시 반에 하학하여 지금까지 세 시간이 되게 한반 친구 상덕이의 집에 있었다. 상덕이는 아버지가 러시아로 가고 없었다. 어머니와 함께 있는데 어머니도 무슨 일이 많았다. 오늘 저녁 학부모회의에도 상덕 엄마 여동생이 참가했었다. 상덕이는 성적이 52등이었다. 집에는 남부럽잖게 가구들이 챙겨져 있었다. 하학하여 집에 오면 늘 상덕이 혼자였다. 오늘도 상덕이가 영호 보고 자기 집으로 가자고 하였다. 자기 집에 강아지가 있다고 하면서 말이다. 빈집에 홀로 들어가는 상덕이의 외로움과 고독감은 너무도 큰가 보다. 그래서 상덕이는 자기와 함께 있어줄 강아지가 생각났던 모양이다. 집안을 어지럽힌다는 엄마의 잔소리에도 마다하고 기어코 떼를 써서 강아지를 샀던 것이다. 영호는 그렇게 귀엽다는 강아지를 보고 싶었다. 그래서 상덕이를 따라갔다. 사실 성적이 낮아서 아버지로부터 욕먹을 생각을 하니 무서운 것도 있었다. 
강아지는 귀여웠다. 털이 하얀 바탕에 드문드문 갈색털이 섞여있었다. 죄꼬만 것이 상덕이가 들어서니 발밑에 감치면서 보고 싶었다. 상덕이가 얼른 허리 굽혀 얼싸 안으니 꼬리를 살래살래 흔들면서 상덕의 턱밑을 자꾸 혀로 핥아대었다. 주인이 오니 반갑다고 외롭지 않다고 고독하지 않다고 좋아 야단이었다. 사람에게 얹혀사는 강아지는 동물이라지만 자기 표달 방식을 명확히 가지고 있었다. 하루 동안 집안에 감금 되어 있는 생활은 강아지의 건강한 성장과는 모순되는 것이다. 강아지는 하루 동안 갇혀있으면서 스트레스를 힘들게 맛본 모양이었다. 반기는 것이 강렬할수록 고독이 더 크기 때문이다. 강아지 이름은 <하리>였다.
하얗다는 하자에 상덕이가 성이 <리>가이니 <리>자를 달았다. 하리는 낯선 영호를 보고 몇 번 짖고는 주인과 함께 온 사람이니 여러 번 영호 주위를 빙빙 돌면서 냄새를 맡아가더니 이내 친숙해졌다. 영호는 개가 물까 봐 근심스러웠지만 손을 들어 강아지의 머리를 다쳐보았다. 그러자 강아지는 고개를 쳐들면서 손께로 혀를 내밀었다. 영호는 개가 무는 가고 생각하여 얼른 손을 걷어 들였다. 
“물지 않아.”
상덕이는 하리를 훌 들어 영호의 품안에 안겨주었다. 영호는 하리를 안고 머리털부터 살살 만져주었다. 하리는 혀로 영호의 손을 자꾸 핥아주려 하였다. 하리가 귀여웠다. 욕심났다. 가지고 싶었다. 자기도 하리 같은 강아지가 있었으면 했다.
“야. 상덕아 하리를 날 빌려주지 않겠니?”
“안 된다.”
“강아지 한 마리 값이 얼마니?”
“몇 백 원이다.”
영호의 손안에는 몇 백 원이 없었다. 또 아버지가 강아지를 사줄 것 같지 않았다. 공부에 영향 있다고 말이다. 또 호출기가 울린다. 아버지였다. 가자니 하리가 아쉬웠다. 빌려가지고 갔으면 좋겠는데 말이다. 상덕이는 빌려줄 것 같지 않았다. 이때 상덕이네 집 문이 삐꺽 열리었다. 상덕 엄마가 들어섰다. 어데서 술을 마셨는지 얼굴이 벌겠고 입술은 립스틱으로 빨갛게 불탔으며 머리는 색을 들여 노랬다. 꽤나 예쁜 여자였다. 겨울이 시작된 마당에도 까만 긴 양말 위에다가 치마를 입고 그 위에 밤색의 긴 코트를 걸쳐 입었다. 짙은 향수 내가 집안에 확 풍기었다. 하리는 여주인이 들어서자 제꺽 상덕의 뒤에 가 숨어서 바르르 떨었다. 짖지도 못했다. 아마 되게 야단 맞은가 보다. 
“야는 누구니?”
상덕 엄마는 낯선 영호를 보고 물었다.
“우리 반 암다.”
“아니 너 집에서는 널 찾지 않니? 이게 어느 땐데 집도 안가니?”
여인은 차가웠다. 상덕이는 자기 친구를 반가워하지 않는 어머니가 아니꼬워졌다. 허나 할 수 없었다. 강아지를 사주면 말을 잘 듣겠다고 각서를 썼으니 말이다. 영호는 눈치가 빨랐다. 그러지 않아도 할아버지 할머니가 기다리는 것 같고 아버지가 두 번이나 삐삐를 울려오니 말이었다. 영호는 일어섰다.
“가겠니?”
영호는 고개를 끄덕이었다. 그러니 상덕이도 일어섰다. 하리도 일어섰다.
“이 놈 강아지가 정말 개구나? 전화통에 씌우는 수놓이수건을 갈기갈기 찢어놓았구나! 상덕아 난 이 개 때문에 미치겠다. 얘야, 개를 선택하든지 엄마를 선택하든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라.”
여인의 곱상스런 얼굴은 삽시에 험상궂게 일그러졌다. 이때 전화벨이 울리었다. 여인은 전화기를 들었다. 술 마신 어떤 남자의 방자한 목소리였다.
“아이가 있어요. 소리를 낮추세요. 저녁을 해먹이고 나갈게요.” 서리 맞은 배추잎사귀처럼 정서가 대번에 시들어버렸다. 나가는 영호를 배웅하여 문밖까지 나갔다. 하리도 따라 나갔다. 영호는 그냥 하리한테서 눈을 떼지 못하였다. 상덕이는 영호가 간 후에 어머니한테 욕먹고 하리가 능욕을 당할 것을 생각하니 모골이 오싹해졌다. 접때에도 하리가 어머니의 양말을 물어뜯었다고 막대기로 사정없이 팼었다. 하리는 워낙 열린 들에서 열린 마당에서 자유롭게 살던 승냥이의 후손이었다.
사람에게 얹혀살면서 당하는 갇힌 생활은 그들의 야성을 심히 압제하고 있었다. 그래서 하루 낮을 집안에 있을 때면 밖에서 무슨 소리가 나도 짖어대야 했고 집안에 물수 있는 것이면 물어서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면서 용을 써야 했다. 이것이 주인을 노엽히고 매를 청하는 일임을 하리는 의식하지 못하였다. 오늘도 상덕이가 먼저 와서 어지러워진 집안을 청소하였으니 망정이지 엄마가 먼저 왔더라면 하리는 엄한 고문에 절반은 죽어야 했다. 영호는 따라 나온 하리에게 허리를 굽혔다.
“빠이 빠.”
“영호야, 정말 하리가 욕심나니?”
“응!”
“그럼 내 오늘저녁 빌려주마. 가지고 가라.”
“정말?”
상덕이는 머리를 끄덕이었다. 그러자 영호는 얼른 허리를 굽혀 하리를 품안에 안았다. 상덕이는 하리가 엄마한테 욕볼까봐 걱정이 되어 하리를 귀여워하는 영호에게 피신을 시키는 것이었다. 영호는 하리를 안고 층계를 내려갔다. 하리는 영호의 품안에서 연신 짖어댔다. 상덕이와 멀어지니 말이다. 영호는 하리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상덕이네 아파트를 나서자 얼른 식품상점에 들러서 쏘세지를 샀다.
하리는 낑낑거리면서도 밤의 야경에 두리번거리면서 영호의 품안에 더 기어들었다. 원래 개는 겁이 많은 짐승이었다. 그래서 짖어대는 것이다. 짖음 소리로 상대에게 접근하지 말라고 신호를 주는 것이다. 생소한 밤의 야경은 아무리 짖어대도 쫓을 수 없었다. 그래서 개는 자기 앞에 나타나는 구체적으로 움직이는 동물에게만 짖어대는 것이다. 하리는 영호의 품속으로 더 파고들었다. 당면에는 믿을 수 있고 자기를 해치지 않을 사람은 영호뿐이니 말이다. 영호는 그렇게 하리를 안고 할아버지네 집골목까지 왔다. 할머니가 길목에 서 있다가 영호를 발견하였다.
“영호야, 어디 갔다가 이제 오니?”
“우리 반 아네 집에 가서 놀았슴다. 할머니, 봐요. 하리를!”
할머니는 손자의 품안에 안겨있는 강아지를 발견하였다. 
“에구 어디 가서 강아지를?”
하리는 할머니를 향하여 멍멍 짖어댔다.
“짓지 마. 울 할머니야!”
영호는 하리의 머리를 톡 쳤다.
“삐삐지가 안 울리더니?”
“울렸어요.”
“그런데 왜 받지 않았니?”
“시험성적이 나빠서 아버지한테 욕먹을까봐.”
“그래도 그렇지. 아버지가 지금 널 찾느라고 헤매고 있다. 어서 들어가자. 아버지한텐 내가 전화치마.”
개미는 엄마로부터 아들이 할머니네 집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달려왔다. 엄마네 집 출입문을 여니 객실에서 할아버지며 할머니며 아들놈의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웃음소리였다. 무슨 일로 웃고들 있을까? 온 저녁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는 손자놈 때문에 걱정만 해오던 아버지 어머니가 아니었던가? 자기는 아들 영호를 한바탕 드세게 다잡아놓자고 달려왔는데 말이다. 개미는 빠금히 열려있는 객실문 사이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쏘파 위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앉아있고 영호가 마주하고 앉아서 가운데에 강아지를 놓고 먹이를 공중에 올리뿌리며 장난질하고 있었다. 강아지는 먹이를 따라 뛰놀았다. 먹이가 공중에 뿌려지면 공중으로 저만치 땅바닥에 뿌려지면 그리로 달려갔다. 이번엔 아들이 쏘파 위에 앉아있는 할아버지한테로 먹이를 뿌렸다. 강아지가 퐁당 할아버지 가슴팍으로 뛰어올랐다. 먹이가 생명이었다. 먹이가 어디에 있으면 그리로 간다. 먹어야 사니 말이다.
할아버지는 달려드는 강아지를 피하려고 뒤로 앉으려다가 뒤로 벌렁 넘어갔다. 그래도 웃었다. 아버지가 웃었다. 중풍에 걸린 아버지가 웃었다. 자식 넷을 키우느라 산전수전 다 겪은 아버지가 오랜만에 웃었다. 중풍에 걸려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증에 웃음을 싹 거둔 아버지였었다. 그저 곁에 있는 노친을 못살게 굴었다. 늘어나는 잔소리로 말이다. 그래서 할머니 얼굴에도 웃음이 사라졌었다. 근심만이 늘어났었다. 헌데 오늘 아버지 어머니 아들이 다 웃는다. 강아지를 두고 웃는다. 강아지를 안고 온 손주놈이 고와서 손주놈이 좋아하는 그 모습이 좋아서 웃는다.
개미의 입도 벙글써 벌려졌다. 얼굴에도 미소가 떠올랐다. 어릴 적에 집이 아무리 가난해도 온 집 식구가 모여앉아 웃음보를 터뜨리던 기억이 떠올랐다. 사람 집에 웃음은 쾌락이었다. 행복이었다. 정말로 오랜만에 보는 행복한 풍경이었다. 개미는 이 풍경을 망가뜨리고 싶지 않았다. 온밤 꽃펴가기를 바랬다. 자기가 들어가면 이 풍경이 망가질 수도 있었다. 아들이 자기의 눈치를 보고 정서가 저락될 것이니 말이다. 개미는 조용히 물러나왔다. 자식에 대한 감각이 민감한 엄마가 문 열고 나온다.
“왜 안 들어오고 가니?”
“엄마, 아버지가 웃고 있소. 내가 들어가면 분위기를 망칠 수 있소. 나 집에 가서 잘게.”
“밥 먹고 가라. 장국도 다 끓여놓았는데.”
“술 마시러 가오.”
“그래 그럼 적게 마셔라.”
개미는 물알이 맥주 마시자던 것을 시뿌둥해서 물리치고 나니 술 마실 일이 없었다. 그저 밥 먹고 가라는 엄마의 말에 이유를 달기 위해 한 소리였다. 
엄마는 자식한테는 항상 부탁이었다. 시집 장가들어도 자식은 그냥 자식이었다. 셈이 못 든 자식이었다. 사랑이었다. 그 어느 날 이런 부탁소리가 들려오지 않는다면 얼마나 서글프고 허전할까?

[4]
개미는 제 집으로 돌아왔다. 워낙은 아버지 어머니와 한집에서 살았지만 장가들고 보니 형제들은 다 제각기 제 집이 있었다. 개미네 집은 단층이었다. 명년에 단층집을 다 허물고 여러 층 아파트를 짓는단다. 새 아파트에 들려면 돈이 있어야 했다. 그 돈을 벌기 위해 순금이는 한국으로 갔다. 개미는 빈 집에 들어갔다. 순금이와 둘이서 자던 침대에 혼자서 팬티까지 다 벗고 누웠다. 습관이었다. 순금이 있을 때도 그랬다.
신경이 약하여 깊은 잠을 잘 수 없는지라 어머니가 지어준 약술 한잔을 쭉 마셨다. 속이 따끔해 오고 얼굴에 울기가 돌았다. 전등을 껐다. 몽롱한 꿈이 시작된다. 반주임의 말씀이 울려온다. 아버지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길목에서 손자를 기다리던 엄마의 모습이 떠오른다. 강아지의 짖음 소리가 들려온다. 아들의 깔깔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순금이의 풍만한 젖가슴이 불쑥 떠오른다. 크고 탄성이 있는 젖가슴이었다. 자기 것이었다. 영원히 자기 것이었다. 자기 소유였다. 누구도 넘보아서는 안 된다. 개미는 만졌다. 자꾸 만졌다. 아랫 것이 꿋꿋이 일어섰다. 개미는 발가벗은 순금이를 자기 품안으로 끄집었다. 이불이 개미의 품속에서 꿍져지고 개미는 순금이의 몸 위에 올라탔다. 이불 위에 올라탔다. 이상하게 순금이가 숨이 차면서 새된 비명을 지른다. 순금이가 일하고 있는 식당의 바깥주인이 순금이가 자는 방에 뛰어들었다. 순금이는 발악하다가 힘을 못 이기고 당한다. 
“아니 안 된다. 순금이는 내 것이다. 이놈아, 물러서라!”
개미는 펄떡 정신을 추었다. 다급히 전등을 켰다. 이불이 자기 사타구니에서 뭉개져 볼품없다. 꿈이었다. 허전했다. 벽시계를 쳐다보니 11시가 금방 넘었다. 개미는 맹랑해서 다시 자리에 누웠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한참 누워서 이리 궁싯 저리 궁싯거리었다. 잠이란 깬 다음에 수월히 들 수 없었다.
개미는 답답하였다. 할 짓을 못하니 답답하고 자기 것이 남한테 점령당하는 것 같아 불안하였으며 자기 것이 자본주의 한국의 돈 많은 놈에게 마음이 넘어가면서 그 놈과 한 덩어리가 되는 것 같아서 비지땀이 났다. 개미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사타구니 가운데 것도 싹 줄어들어 볼모양 없다. 기가 빠졌다. 알골이 쑤셔왔다. 개미는 다시 일어나 앉았다. 앉아서 집안을 두리번거리었다. 옛날 그대로였다. 더 어수선했다. 질서가 없었다. 먼지가 꼈다.
개미는 몸을 돌려 밖을 내다보았다. 겨울 추운 바람을 막느라고 비닐을 대놓아 밖은 어렴풋이 보였다. 달뜬 밤이었다. 개미는 옷을 주섬주섬 주어 입었다. 잠이 오지 않을 때면 밖에 나가 한참 돌다가 피곤하여 눈이 내려올 때 돌아와서 누우면 그래도 깜빡 쪽잠을 잘 수가 있었다. 이때 전화벨이 울리었다. 아내인가 들어보니 물알이었다. 물알도 잠이 오지 않아 개미에게 전화를 건 모양이었다.
“개미야, 너하고 맥주를 마시지 않으니 잠이 안 온다. 나오라.”
“아새끼, 키 큰 것만치 질기기도 하구나? 그래 어딜 오래?”
“우리 집 앞 골목 영자상점으로 오라.”
“알았다.”
이 시각 순금이는 일을 끝냈다. 하루나절 힘든 일에 질려 온몸은 노근하였다. 오늘저녁은 식당 안주인이 이튿날 엄마 생일로 남편과 같이 수원으로 내려가고 또 손님도 없다니 반시간 앞당겨 문을 닫았다. 순금이는 안으로 문을 잠그고 위생실에 들어가서 샤워를 하였다. 몸을 다 씻고 두 사람이 누울만한 자기 방에 들어와서 요를 펴고 누웠다. 두 다리가 콩콩 쏘아났다. 저려났다. 그래서 자꾸 두 다리를 서로 올려놓았다 내려놓았다 했다.
정말로 남편이 와서 이 다리를 주물러주었으면 했다. 다 생각뿐이었다. 그리움이었다. 하루나절 서있는 두 다리가 너무도 피곤했다. 쏘아 났다. 불쌍했다. 돈이 뭔지? 인생이 뭔지? 남편이 자기가 이렇게 고생하는 것을 알기나 할까? 또 그 생각이 불쑥 든다. 원망이 든다. 물론 남편도 고생한다. 아들을 데리고 말이다. 아들의 연말시험도 끝났을 텐데 시험성적은 어떤지? 집으로 전화하고 싶다. 전화할 때면 곧 식당 앞의 길역의 카드전화로 했다.
순금이는 식당전화를 사용하지 않았다. 식당주인이 얼마나 눈을 밝히고 있는지 모른다. 순금이는 절대로 누구한테 신세를 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옷을 걸쳐 입고 안으로 잠군 문을 살며시 열고 나갔다. 식당 앞 카드전화 박스로 가서 카드를 꼽았다. 전화는 걸리었다. 헌데 받지 않는다. 아들은 할머니네 집에 있는 걸로 알고 있다. 거기에 가서 곧잘 있는 남편이었다. 혼자서 불편하여 시어머니가 챙겨주는 것이다. 순금이는 할머니네 집에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는 깊은 밤중에 걸려온 전화가 필경 며느리의 전화인줄을 알아차리고 얼른 전화를 받았다. 전에도 그랬었다. 깊은 밤중에 며느리가 일을 끝내고는 시아버지 생일이나 어머니 생일 때면 전화를 걸어왔었다. 순금이는 먼저 중풍에 걸린 할아버지 신체 상황부터 할머니 신체 상황까지 까근히 물었다. 다음 자기 아들 때문에 고생한다고 문안하였다. 할머니는 좋은 소리만 해주었다. 나가서 이국 멀리 타국에서 의거할 사람 하나 없이 홀홀단신으로 고생하는 며느리에게 좋은 소식만 주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손주놈이 학습 성적이 수술한 것도 좋다고 하였다.
이번 중간고시 성적도 앞자리라고 하였다. 며느리는 기뻐하였다. 허나 나중에 제일 관건적인 물음을 물었다. 남편이 할머니네 집에 있는 가고 말이다. 할머니는 집에 갔다고 말했다. 그러니 며느리는 알았다면서 집에다 전화를 걸겠다고 하였다. 전화가 끊어져서야 할머니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아들놈이 집으로 간다고 해놓고 어디 다른 데로 가있는 것이 아닐까? 아들도 사람이었다. 남자였다. 할 짓을 못하니 답답한 모양이었다.
허나 절대로 며느리에게 미안한 일은 하지 말아야 했다. 또 그럴 아들도 아니었다. 어머니는 아들을 믿었다. 집에 있겠지? 순금이는 다시 집에 전화를 걸었다. 그냥 받지 않는다. 순금의 가슴은 콩당콩당 들뛰기 시작하였다. 이 세상 유일한 마음의 안식처가 고향 집이다. 아들과 남편이 있는 집이다. 집에다 전화를 걸어서 받지 않을 때만치 소스라치게 놀라고 마음이 텅텅 비고 허전한 때가 없다. 이 오밤중에 남편이 왜 전화를 안 받을까? 남편은 신경이 약하여 창문 틈으로 불어드는 바람소리에도 일어난다. 황차 전화벨 소리인 데야. 필경 남편은 집에 없었다.
어디로 갔을까? 어디서 누구하고 무얼 하고 있을까? 순금의 이마의 새파란 핏줄은 탱탱 살아났다. 아무래도 자초지종을 알아내야 했다. 남편이 무슨 짓을 하던 절대로 자기에게 미안한 짓거리를 할 남편은 아니라고 믿으면서도 부르짖으면서도 집에 없는 남편의 행처를 밝혀내고 싶었다. 팽팽해오는 신경은 또 순금이의 골 안을 아프게 하였다. 한번 이러고 나면 잠을 잘 수 없었다. 뜬눈으로 보내게 된다. 이런 밤이 제일 싫고 힘들었다. 육체적인 피곤에다가 정신적인 불안이 겹치면 정말로 이 밤은 스트레스가 절정에 치달아 오르는 밤이 되고 만다. 그럴 때면 미치고 싶다.
소리치고 싶다. 마구 맞서고 싶다. 누구한테 실컷 맞아대고 싶다. 순금이는 맥없이 다시 식당으로 돌아섰다. 들어와서 안으로 문을 잠그고 자리에 누웠다. 별 오만가지 잡생각으로 팽창하는 머리 안은 금방 터질 것 같았다. 이때 누군가 문을 가볍게 두드린다. 방문을 열고 내다보니 문가에 한 남자가 서있다.
“누구세요?”
“나야 나.”
식당 바깥주인이었다. 
“왜 그러세요?”
“자고 있어? 나 가시어멈 생일에 들고 갈 생선을 가지고 안 갔어? 그래서 올라왔거든. 식당 냉장고 안에 있어.”
“네 잠깐 기다려요.”
순금이는 옷을 주어입고 일어났다. 전등을 켜고 냉장고를 열고 보니 생선이 세 마리가 있었다. 
“세 마리 있어요.”
“거 두 마리만 줘.”
순금이는 두 마리를 꺼내어 비닐주머니에 넣어가지고 문께로 다가갔다. 안으로 잠군 열쇠를 열고 비닐구럭을 내보내려는 순간 바깥사장이 문을 밀면서 들어왔다. 사장은 들어서면서 불부터 껐다. 그리곤 안으로 문을 잠그었다. 
“왜 이래요?”
“놀라지 말아.”
그리곤 그때까지 순금의 손에 쥐여있는 생선구럭을 받아 곁의 음식상 위에 놓고는 순금의 손을 잡고 순금의 방으로 끌었다. 순금이는 가슴이 두근닥근 방망이질을 하였다. 여지껏 이 식당에서 그래도 사람냄새가 나는 사람이 바깥사장이라고 느껴왔지만 지금 막상 바깥주인이 자기 손을 끌고 무슨 수작을 하자는 지 소름이 끼쳐왔다. 순금이가 소릴 쳐야 하는지 궁리할 새도 없이 주인은 순금이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 순금이는 마악 숨이 막혔다.
“왜 이래요. 놓아요. 전 남편이 있는 여자예요.”
“알아 알고말구. 남자들을 믿지 마. 순금이 남편도 이 시각 다른 여자와 붙어 있을 거야? 다른 말 말고 가만있어.”
바깥주인은 순금이를 눕혀놓고 얼굴에 키스해오기 시작하였다. 순금이는 두 손과 발로 버둥질을 하였으나 남자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바깥주인은 순금이의 두 손을 누르고 얼굴로부터 가슴까지 내려왔다. 반항은 해야겠는데 이상하게도 남자의 손길이 닿는 대로 몸이 구석구석 살아나고 있었다. 자기로도 이상하였다. 더 힘을 쓰고 싶지 않았다. 남편과의 성생활이 끊긴지도 일 년이 넘었다.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는 신세였다. 바깥사장의 애무가 가슴에서 아래로 내려간다. 마악 몸이 졸리고 숨이 가빠졌다. 남편한테서 느껴오던 감정이 일어나고 또 다른 형언할 수 없는 짜릿짜릿한 기운이 전신에 갈마 쳤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바깥주인이 하는 대로 맡겨두었다. 바깥주인은 열심히 봉사하였다. 바깥주인은 일을 다 끝내고 빨깍거리는 딸라를 몇 장 순금이 머리맡에 조용히 놓고 일어났다. 
“미안해. 너무 부끄럽게 생각하지 마. 다 사람 하는 노릇이야, 나 도와줄게.”
사장이 생선을 들고 나갔다. 생선 가지러 와서 순금이를 점유하고 나갔다. 사장이 나가자 순금이는 다시 위생실로 들어가서 몸을 씻었다. 눈물이 자기도 모르게 비 오듯 흘러내렸다. 서러웠다. 혼자 있는 것이 서러웠다. 남편에게 미안하였다. 허나 남편은 이 사실을 알 리 없었다. 다시 자리에 눕자 잠이 사르르 엄습하여왔다. 이상하게 잠이 잘 들었다

[5]
물알과 개미는 영자쑈풀에서 맥주 여섯 병을 제끼었다. 둘 다 워낙 술꾼이 아니었다. 둘 다 빈집에서 잘 수 없어 뛰쳐나왔다. 물알이 곤한 눈을 끔벅거리며 혀 꼬부라진 소리로 물어왔다.
“야, 개미야 너 어데 여자 없니?”
물알이 여자를 찾는 소리는 처음이었다. 개미는 일변 놀라고 일변 우스워서 히죽거리었다.
“야, 물알아 너도 여자를 찾을 때 있니?”
“임마, 나도 남자다. 나도 줏대가 있다. 아직은 무 물알이 아니다.”
“이 새끼, 그럼 너네 앙깐한테 미안한 생각이 안드니?”
“야 임마, 넌 앙깐이 금방 갔재? 난 육년이다.”
“그럼 그만 벌면 됐잖니? 돌아오라고 해라.”
“안 온다. 온다온다 하면서 육년이다. 미치겠다.”
“네가 아이를 잘 키웠으니 너네 앙깐이 꼭 돌아와서 너한테 사랑을 푸짐히 줄거다. 여지껏 잘 참아왔잖아. 좀만 더 참아라.”
개미는 물알을 위안해 주었다.
“개코 같다. 인생이 얼만데? 돈이 뭐야? 부부라는 게 오랫동안 갈라져 있고도 부부라고 할 수 있니? 난 정말 여자생각 나 죽겠다.”
“이 바보 같은 소리? 야 누가 듣겠다야.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너처럼 순박하고 정조를 지키는 남자의 입에서 여자소리가 난다니 무섭다야. 그만 안 들은 걸루 할게!”
개미는 물알이 자기를 믿고 하는 소리인줄 알았다. 그렇게 믿으면서도 여지껏 여자소린 일언반구도 없었다. 물알의 생각이자 개미의 생각이었다. 아내가 미워서 싫어져서 하는 말이 아니었다. 억눌린 생리적인 수요의 분출이었다. 그것도 술을 얼근히 마시고서야 나오는 물알의 물알 같지 않는 뼈있는 생명의 절절한 호소였다.
“야, 물알아, 오늘은 네가 널 건사하지 못하는 것 같다. 집에 아들을 혼자 재워놓구 이게 뭐야? 오늘저녁 학부모회의에서는 널 아들을 잘 관리하는 우수학부모라고 칭찬을 하였는데…”
“아들은 울 누나네 집에 갔다. 너만 믿고 하는 소리다. 이런 소리도 못한다면 친구야? 그러니 너 개미처럼 물어뜯지 말라.”
개미도 눈이 내려왔다. 이때 집에 가서 쓰러지면 꼴깍 잠에 떨어질 것 같았다.
“야, 인젠 일어나자. 피곤하다. 내일 또 출근해야지.”
“이제 울 둘이 한 병씩만 더 마시자.”
둘은 하나를 다 마시고 나머지 하나는 마개만 열어놓고 더 마시지 못하였다. 둘은 비칠거리면서 물알의 집 문앞 층계 앞에까지 와서 갈라졌다. 개미는 택시를 탔다. 물알의 집은 육층이었다. 제일 꼭대기였다. 물알은 층계 난간을 잡고 한 층계 한 층계 겨우 올라갔다. 
“여보, 돈이 필요 없어. 당신만 필요해. 당신의 몸뚱이만 있으면 돼.”
물알은 숨이 가빠 올라가면서 혼자소리로 중얼거리었다. 호흡이 점점 가빠왔다. 가슴 가운데가 째지게 아파났다. 물알은 주먹으로 가슴을 탕탕 쳐댔다. 술을 마시고 층계를 오르니 숨이 가쁜 줄로만 생각했다. 6층까지 겨우 올랐다. 자기 집 문을 열쇠로 열고 들어섰다. 숨이 나오지 않았다.
숨이 나오기를 바래서 더 세차게 가슴을 쳐댔다. 그래도 마찬가지였다. 가슴이 터진다. 눈앞이 아찔해났다. 캄캄해났다. 왜 이런가? 부지중  장난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죽을 때가 아니다. 죽어서는 안 된다. 아들이 어리다. 아내가 돌아오지 않았다. 물알은 단말마적으로 전화기 있는 데까지 기어가서 개미네 집 전화번호를 눌렀다. 그리곤 그 자리에 큰 대자로 쓰러졌다.
단층에 살고 있는 개미는 숨차지 않게 문 열고 들어섰다. 손이 가는대로 옷을 벗어 팽개치다가 혹시나 아내한테서 전화가 오지 않았나 들여다보았다. 전에도 묘하게 자기가 집에 늦게 들어올 때면 아내가 전화를 걸어왔으니 말이다. 전화기에는 물알네 집 전화번호가 표시되어 있었다.
“이 새끼, 술 마시고 또 마시자고?… 취했구나?”
개미는 자리에 털썩 누웠다. 누웠다가 벌떡 일어나 앉았다. 아무래도 오늘저녁 물알의 거동이 심상치 않아서였다. 개미는 물알네 집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는 통하는데 받지 않는다. 취해서 너부러졌나 보다. 허나 시름이 놓이지 않았다. 개미는 나쁜 생각이 먼저 엄습해왔다. 아니다. 가보아야 한다. 물알이 이상하다.
개미는 부랴부랴 다시 옷을 주어입고 문을 나서서 물알네 집으로 택시를 달렸다. 헐레벌떡 6층에 올라서니 문이 채워져 있지 않았다. 열린 문으로 들어가서 신발도 벗지 않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아뿔싸, 물알이 긴 대자로 마구 널브러져 있었다.
“이 자식 폭 취했구나! 술 재간도 없어가지고 무슨 맥주를 자꾸 마시자고 하더니.”
개미는 신발을 벗고 올라갔다. 물알을 바로 눕혀놓고 침대 위에 눕히려다가 물알의 얼굴을 보고 흠칫 놀랐다. 맥없이 떠있는 눈은 멎어있었다. 입술은 새파랬다. 종래로 사람이 운명하는 것을 보아오지 못한 개미는 물알의 콧구멍에다가 자기 손을 가져다대었다. 숨소리가 없었다.
개미는 화들짝 놀랐다. 덴겁하였다. 물알을 내려놓고 전화로 120구급차를 불렀다. 좀 있더니 구급차가 당도하고 구급일꾼들이 뛰어들었다. 백의를 입은 의사선생이 물알의 눈이며 심장이며 목의 대동맥이며를 짚어보더니 이미 잘못 되었다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 됨다. 살려야 함다. 꼭 살려야 함다.”
물알은 개미가 미친 듯이 살려달라는 간청으로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가서 최후로 심장회복기의 치료를 받았다. 이미 멈춘 심장은 다시 뛰지 않았다. 심장마비였다. 육년간 아이를 데리고 엄마 아버지 질하면서 여러 가지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피가 걸어지고 혈관 벽이 좁아지다가 나중에는 심장으로 통하는 혈관이 막히어 피가 흐름을 멈추고 심장이 서고 말았던 것이다. 밥 먹는 일과 같은 정상적 성생활의 근절도 중요한 원인이었다. 이건 개미만이 알고 있었다. 물알의 마지막 유언 여자를 찾는 소리를 혼자 들었으니 말이다.
더구나 그의 위인을 개미는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 웬만해서는 말을 입에 올리지 않는 그였던 것이다. 그런 그가 마지막으로 여자를 찾으려고까지 했을까! 얼마나 처절했으면, 얼마나 견디기 힘들었으면 그한테 마지막으로 그런 말을 남겼을까!
이튿날 물알은 화장터에서 가기 싫은 하늘나라로 자기 몸을 다 태워 뭉게뭉게 연기를 피우면서 애처롭게 사라졌다. 개미는 엉엉 울었다. 물알의 제사상에 술을 붓고자 서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번호를 확인할 새 없이 한쪽 켠에 비켜서서 핸드폰을 귀에 갖다 댔다. 
“엊저녁엔 어데 가 있었어요?”
순금이었다.
“내 친구 물… 물알이가 죽었어. 빨리 와!” (*)


<약력>
․손룡호(孫龍虎)
․1955년 11월 18일 장춘시에서 출생
․연변대학 통신학부 조문학과 졸업
․소설집 <아름다운 이별>(연변인민줄판사) 출간
․중편소설집 <하늘과 땅 사이>(흑룡강정선민족출판사) 출간
․「해외문인협회」회원


날짜 : 10-03-09 23:59     조회 : 4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