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시단(중국)

 

서탑한미성 커피점에서 1

 

리 문 호

 

심양서탑 한미성 커피 점엔

뭐라도 주고픈 고향 아씨가 있네.

홀로 고독한 커피를 마실 때면

딸처럼 다가와 살갑게 말을 건네주네.

걸어온 인생처럼 쓰디 쓴 커피에

딸 같은 그 애는 달고 단 미소를 타 넣네.

순백하고 부드러운 고향 정까지 풀어 넣으면

추억이 아지랑이처럼 가물거려 오네.

내가 태어난 길림성집안에서 왔다는 너를 보면

시내가 청순한 풀 향이 그리워지고

산새가 우짖는 로령 기슭

한가로이 호숫가를 거니는 사슴들이 기억 속에 오네.

50년 전의 고향, 소꿉친구 여자애들

기억 속에 잊어진 이름들 너무 감감하지.

혹시 그들 중 어느 누구의 딸일 수도 있는 너는

민들레 홀씨같이 날려간 내 동심을 물어왔네.

시냇물에 비낀 별빛이 눈정기로 반짝이고

제비가 물을 찬 듯 청수한 몸매

산비탈에 무르익는 참외 향기를 풍기는 너는

그렇지, 꼭 마치 내 여자 친구 애를 본 것 같네.

은은한 첼로의 향기가 흐르는 한미성

오렌지 빛 등불이 추억을 물들이면

고향은 왜 이리도 그리운지,

나는 네 고운 웃음을 날아

나비처럼 팔랑팔랑 고향으로 가네.




유령의 고향

 

 

장백산 줄기줄기 굽이굽이 막동네.

혼강을 거슬러 외나무다리 건너

한적해진 고향을 찾아 하루 밤

달빛은 희미하다 무덤처럼 적막하다.

마을은 잠들어 시냇물소리만 들리고

가끔 왕가네 개 짓는 소리,

거위 울음소리

짐승의 눈에만 보이는

무명옷 입은 하얀 유령들이

살던 집으로 슬금슬금 찾아온다.

어느 집 질화로에 강냉이 콩알 터지는 소리

긴 담뱃대엔 애달픔 끓는 소리

몰 몰 담배연기 소곤거리는 이야기

내 잠에 꿈결처럼 들리고

어느 집엔 관솔불 아래

텅납새 머리 천자문 익히는 소리

소캐 쥐고 무명실 뽑는

앵앵 물레소리

미닫이 저쪽 안방엔 갓난 애기

젖 허비는 울음소리

손가락에 침 발라

어느 집 창호지에 구멍 내고 들여 보면

탁주 마신 유령들 술이 거나해

물 버치에 바가지 엎어 놓고 덩그렁 덩그렁

놋수저 두드리는 아리랑 고개

앉은뱅이 춤, 곱사춤, 코 하모니카

망 쫓는 홀아비 엉덩이춤도 덩실덩실

평안도, 함경도,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망국의 유령들이 예서 한 서린

탈춤 추며 노랫가락 뽑고 있다.

다락 밭, 뙤기 논, 텃밭, 일구고

병풍 같은 산에 에워 살아가는

2의 고향

이제는 텅 빈 고향, 다 떠나갔다,

상여 타고 산으로 언덕으로 가고

후손들은 보습 끌고

마천루 사이 좁은 골목 개간하러

대 도시로 외국으로 갔다.

잘 살러 간 길 서럽지는 않아도

남아 있는 정은 외롭다.

수탉의 계명소리에 어느새

화롯불 꺼지고, 관솔불 꺼지고

유령들은 다시 산속으로 가고

스산한 나의 잠자리만 남았다.

밝아 오는 창밖엔

왕가의 채찍 소리 들린다.

쨔 쨔

가을걷이 나가는 마차 바퀴소리

그리고 양갈 춤 얼른쫜 노래 소리

, 나의 고향

고향 무정이 저리다.

 

리문호 시인

1947 길림성 집안현 출생. 시집 달밤의 기타소리, 징검다리, 자야의 골목길 등 출간.

2007826, 11회 연변 지용제 정지용 문학상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