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니의 소원

                                                                                    조 현 례


  꽃니는 오늘도 엄마를 붙들고 조릅니다.
  “엄마, 동생 하나만 낳아 줘요?”
  엄마가 싱긋이 웃으며 꽃니를 쳐다봅니다.
  “우리 꽃니는 남자 동생 원하지, 그렇지?”
  “아니 여자 동생. 난 여자 동생이 좋아.”
  엄마가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글쎄….”
  심심해서 친구처럼 데리고 놀려고 하는 모양인데 왜 꼭 여자라야만 하는지 알쏭달쏭하기 때문입니다.
  “알았지 엄마. 난 여자 동생하고 놀 거야. 꼭 만들어 주는 거지? 응 엄마…”
  꽃니는 3살이 좀 지났습니다. 미국 이름은 코트니인데 할아버지가 꽃잎처럼 예쁘다고 하셔서 그때부터 꽃니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다들 아가 동생이 있는데 꽃니만 동생이 없습니다. 며칠 전만 해도 그렇습니다. 브리트니 생일날 초대를 받았을 때입니다. 브리트니의 동생 마리가 꽃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꽃니가 가는 데마다 졸졸 따라다니며 꽃니를 보고 방긋방긋 웃었습니다. 마리는 한 살 반인데 곧잘 뛰기도 합니다. 꽃니가 책을 읽어주면 귀를 쭝긋쭝긋 세우며 알아듣는 체 합니다.
  “저것 좀 보세요. 꽃니가 우리 마리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요.”
  브리트니 엄마가 꽃니 엄마에게 말하십니다.
  “그렇지 않아도 동생 하나 낳으라고 얼마나 보채는지 모르겠어요.”
  “잘 됐군요 그럼. 축하 드려요.”
  “그런데 좀 걱정이에요.”
  “뭐가요?”
  “꽃니는 여자 동생을 꼭 낳아야 한 대서요.”
  “어머나 브리트니가 무척 부러웠나보군요.”
  꽃니 엄마는 그제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는 듯 무릎을 탁 치시며 말하십니다.
“우리 브리트니는 동생은 아랑곳도 안하고 저 혼자만 노는데 어쩜……. 꽃니는 참 얌전도 하고 또 똑똑하고 언니 노릇 잘하겠어요.”
  “글쎄요. 딸만 또 낳을 수만 있다면 좋을 텐데 말이에요.”
  꽃니 엄마는 꽃니를 위해서 꼭 딸을 낳고 싶어 합니다. 꽃니 아빠와 엄마는 꽃니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꽃니가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다 사주셨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만 사주지 못하셨습니다. 꽃니가 그토록 원하는 강아지만은 사주지 못했습니다. 꽃니 엄마가 강아지를 아주아주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꽃니 엄마는 깨끗한 집안에서 꽃니가 강아지와 함께 사는 것을 싫어해서 강아지를 사줄 수가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꽃니 아빠는 장난감 강아지를 사 오셨습니다. 고개를 까딱까딱 움직이며 뺑뺑 돌아가는 아주 귀여운 강아지입니다. 꽃니는 너무 기뻐서 자나깨나 강아지를 끌어안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며칠이 못 갔습니다. 한 일주일쯤 되었을까요. 장난감 강아지는 한구석에 혼자 서있게 내버려둔 채 꽃니는 본체만체 했습니다.
  그런데 브리트니네는 예쁜 여자 동생도 있는데다 살아 있는 진짜 강아지도 있어서 꽃니는 브리트니가 얼마나 부러운지 모릅니다. 꽃니 엄마는 브리트니네 가서 마리와 강아지를 보고 기뻐하는 꽃니를 볼 때마다 꽃니에게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강아지는 안 돼, 강아지는 절대 안 사줄 거야.’ 하고 속으로 생각하며 고개를 저으십니다. 이러한 꽃니 엄마의 마음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꽃니 엄마는 또 마음속으로 속삭입니다. ‘그러니까 둘째 아기는 꼭 여자 아기였으면 좋을 텐데…….’
  이제 몇 달만 있으면 꽃니네는 새 아가가 태어납니다.
  꽃니 엄마가 이번에는 꽃니에게 말을 시킵니다.
  “꽃니야!”
  “왜 엄마.”
  “엄마가 동생 하나 낳아줄까?”
  “정말?”
  “그럼 정말이구말구.”
  “언제?”
  꽃니 엄마가 잠시 머뭇거리자 꽃니가 또 다그쳐 묻습니다.
  “언제?”
  “몇 달 있으면.”
  “몇 달이 언제 와?”
  “말 잘 들으면 금방 온단다.”
  꽃니는 그 말에 홀딱 넘어가서 그만,
  “나 엄마 말 잘 들을게.”
  꽃니 엄마는 꽃니가 너무 귀여워서 꽃니를 번쩍 들어 안으십니다.
  “근데 엄마 어떻게 하는 게 엄마 말 잘 듣는 거야?”
  꽃니는 너무 착하고 똑똑해서 아직까지 한 번도 엄마에게 말썽을 부린 적이 없습니다.
  “글쎄 꽃니한테 무얼 시켜 볼까, 어디 보자. 책도 혼자서 잘 읽고, 또 그림도 혼자서 잘 그리고…….”
  꽃니는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얼른 책상 앞에 가 앉습니다.
  “엄마 나 별 그렸다 이것 봐.”
  꽃니는 신이 나서 칭찬이 더 듣고 싶은 모양입니다.
  그러나 꽃니 엄마는 엉뚱한 말을 하십니다. 아직 뱃속에 있는 아기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꽃니는 여자 동생도 좋고 남자 동생도 좋은 거지, 그치?”
  그 말에 꽃니는 갑자기 시무룩해집니다.
  “왜 아니야?”
  “……”
  “남자 동생도 괜찮은 거지?”
  “싫어 싫어. 난 여자 동생이 좋아, 잉잉”
  착한 꽃니가 그만 울음보를 터뜨립니다.

  마침내 꽃니의 소원이 이루어졌습니다. 꽃니가 그토록 오랫동안 꿈꾸고 기다리던 여자 아기 동생이 태어났습니다. 두 달 반이 있으면 꽃니가 4살이 되는 11월 21일 뒷마당에 울긋불긋한 가을 낙엽이 수북이 쌓인 날입니다.

  꽃니는 아빠가 입혀주는 빨간 가을 코트를 입고 반짝이는 까만 구두를 신었습니다. 자동차에 올라탔습니다. 아빠가 운전하는 자동차가 부룽부룽하고 차고 문 밖으로 나오자마자 뒤뜰에 뒹굴고 있던 낙엽들이 바람에 날려서 날아왔습니다. 꽃니는 자기도 낙엽처럼 붕붕 날아갈 것처럼 기쁩니다.
차창 밖을 내다보며 꽃니가 아빠를 부릅니다.
  “왜?”
  “아가가 얼마나 커요?”
  “아주 작고 귀여운 아가란다.”
  “얼마나 작아요?” 인형만 해요? 아빠…“
  “그렇지. 꽃니의 인형만 하지”
  “그럼 내가 안아 줄 수 있겠네요? 아빠.”
  “그럼, 허지만 아가는 인형과 달라서 팔이나 다리를 다쳐서는 안 되거든…….”
  “그럼 어떡하죠?”
  꽃니가 아빠를 쳐다보며 다음 말을 기다립니다.
  “그러니까 말이다. 오늘 당장은 안아줄 수가 없단다.”
  꽃니는 금방 또 슬픈 얼굴을 합니다. 병원에 들어서자마자 아가를 안아보고 싶었는데 이럴 수가 있을까 싶어서입니다.
  “그럼 얼마나 더 자야 해요?”
  꽃니는 착한 애라서 아빠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응, 열 밤만 자면 꽃니가 안을 수 있을 거다.”
  꽃니는 어느 틈에 손가락으로 하나 둘 셋 하며 열 밤을 세고 있습니다.
  “아빠 일곱 다음엔 아홉이지? 그치?”
  “일곱 다음은 여덟이란다 이 귀여운 아가씨야.”
  “오 참 내 내가 알고 있었는데, 다시 해 보자 하나 둘 셋 넷….”
  꽃니는 두 살 반 되었을 때 알파벳을 다 읽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숫자는 아직 끙끙대며 천천히 배워가고 있습니다.
  어느덧 엄마와 아가가 있는 병원에 다 왔습니다. 아빠가 자동차에 앉아 있는 꽃니를 번쩍 들어 내려놓고 감기 들면 안 된다고 빨간 코트에 달린 모자를 씌워 주시고 다시 번쩍 들어 안으십니다. 아빠와 꽃니가 성큼성큼 걸어가서 커다란 병원 문을 엽니다. 안에서 왔다 갔다 움직이는 사람들이 다 보이는 커다란 유리문입니다. 병원 안으로 들어가니까 갑자기 훈훈합니다. 다시 뚜벅뚜벅 걸어가서 엘리베이터를 탑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6층으로 올라왔습니다. 625호실! 꽃니는 6자 2자 5자를 큰소리로 읽습니다. 꽃니가 아빠 손목을 잡고 625호 병실 앞에 다가가자 엄마는 문을 열어놓고 꽃니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엄마!”
  꽃니가 엄마를 보자 달려가서 엄마 품에 안깁니다.
  “오 우리 꽃니 왔구나 얼마나 보고 싶었다구….”
  “나두 엄마, 근데 아가는 어디 있어?”
  “응 아가는 지금 자고 있단다, 아가 방에서.”
  “내 동생이지 아가는 그치 엄마?”
  “그럼 꽃니가 원했던 여자 아가란다…”
  “나 아가 보러 갈래, 빨리.”
  꽃니는 엄마의 손을 잡아끌며 문밖으로 나가려고 합니다.
  “이제 간호원이 아가를 데리고 올 테니까 조금만 기다리자 응.”
  “응 엄마 빨리 데려오라고 전화 해 빨리.”
  꽃니가 졸라대서 엄마가 수화기를 듭니다. 잠시 후에 하얀 가운을 입은 간호원이 아가를 안고 들어옵니다, 꽃니는 아가를 보자 너무 기뻐서 어쩔 줄을 모릅니다. 가슴이 벅차서 방망이질을 하는 것만 같습니다.
  “아가야!”
  꽃니의 목소리가 개미 목소리만 해서 아가가 들었는지 모릅니다. 아가는 눈을 살짝 떴었지만 아직도 졸리운지 하품을 하며 얼굴을 찡그립니다. 꽃니는 아가가 정말 인형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간호원이 아가를 엄마에게 안겨주고 나가자마자 꽃니는 아가를 안아 보겠다고 조릅니다. 자동차 안에서 아빠와 약속한 것을 깜빡 잊었나봅니다.
  “꽃니야. 아빠와 약속했지? 열 밤 자고 난 뒤에 안을 수 있다고.”
  아빠가 다시 타이릅니다.
  “알았어 아빠. 그럼 얼굴 한번 만져 봐도 되는 거지? 아빠”
  엄마가 아가의 얼굴을 꽃니 옆으로 가까이 가서 뺨을 만져볼 수 있게 합니다. 꽃니는 아가의 불그레한 뺨에다 고사리 같은 손을 대봅니다.
  “엄마, 아가 이름은 뭐라고 불러?”
  “아가 이름은 다니엘이고 한국 이름은 달래란다. 이제부터 우리 다 아가 이름을 달래라고 부르자, 알았지. 아가가 조금 있으면 꽃니 언니! 꽃니 언니! 하고 꽃니를 부르며 따라다닐 거다, 어때 좋아?”
  꽃니는 엄마가 하는 말은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 고개를 갸우뚱 할뿐 몸과 마음은 아가에게 쏠리고 있을 뿐입니다.
  “아가야! 예쁜 아가야! 잘 자라!”(*)

* 조현례 : 1965년 「동아일보신춘문예」 동화당선으로 등단. 「월간 여성생활」과 「소년한국일보」기자 역임. 이대, 성균관대, 단국대 등 강사 역임. 저서로 이민수기 「보이지 않는 유산」· 사제간의 서간집 「너와 나와 만나는 곳」 등 출간.

 

 

날짜 : 07-08-05 05:18     조회 : 773   

 

 

 

엄마 이야기

                                                                        배 미 순(시인)


  어느 날 밤에 내가 꿈을 꾸었는데 슬픈 꿈이었어요. 내가 풍선을 불었어요. 자꾸자꾸 불어서 아주 커졌어요. 우리 엄마가 그 속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그 풍선이 펑 터졌어요. 우리 엄마는 죽었어요. 그래서 나는 막 울었어요. 한참 우는데 엄마가 깨워서 일어났어요. 나는 엄마를 보니까 너무너무 반가웠어요. 그래서 엄마를 꼭 껴안았어요….
  그날 밤, 무서운 꿈을 꾸고 난 뒤 나는 늘 그 꿈을 생각하면 무서웠습니다.
  “엄마, 죽으면 안 돼!”하고 아침에 일어나면 나는 엄마 가슴에 바짝 안기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이 부르시면 언제나 가는 거야. 엄마가 없더라도 착하게 살아야지.” 하시곤 했습니다.…
                                              ?김한별의 글 중에서?

  내가 여덟 살 때 쓴 글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벌써 엄마는 하늘나라의 별들과 -타타타타-하고 전보를 치고 계셨는지 모릅니다. 엄마가 없는 이 세상에서라도 큰 별이 되어 살아가라고 나에게 ?한별?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셨나 봅니다.
  세상에서 제일 예뻤던 엄마, 맛있는 요리도 잘 만드시고 내게는 노트며 이쁜 연필이며 장난감도 많이 사주셨던 엄마, 내가 잠이 들라치면 침대 머리에 앉으셔서 “한별아, 내 사랑하는 아이야, 넌 어쩌면 그렇게도 이쁘게 생겼니? 나는 우리 한별이처럼 착하고 이쁜 아이를 본 적이 없구나.”하시며 보드라운 목소리로 내 볼이랑 머리를 어루만져 주셨던 엄마.
  나는 정말 이런 엄마가, 내가 커서 중학생이 되고 어른이 되어서도 내 곁에 항상 계실 줄만 알았지요.
  아, 벌써 눈물이 핑 돕니다. 그러나 나는 울면 안돼요.
  “모름지기 남자는 하늘이 세 번 울어도 울면 안 되는 법이야” 다그치는 엄마의 목소리가 벌써 내 가슴을 찌르는 듯 하니까요.
  태어나서부터 줄곧 서울에서만 살았던 우리 식구가 어느 날 갑자기 은행에 다니시던 아빠의 전근발령으로 부산 ‘서면’이란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어요. 내가 다섯 살 때였던가 봐요. 생전 처음 바다를 볼 수 있었던 그곳, 언덕 위의 양옥집으로 이사를 간 뒤 며칠이 되지 않아 친구도 없고 심심해서 ‘서면’이 싫다면서 엄마를 들볶았어요. 그러자 엄마는 당장 시장에 가서 예쁘고 새빨간 세발자전거를 한 대 사오셨어요. 난 너무 기뻐서 깡충깡충 뛰며, 하루 종일 그 자전거를 타고 놀았어요.
그러나, 하루 이틀이 지나자 언덕 위로 올라오는 길목엔 아침마다 누구네 집 강아지가 그랬는지 개똥만 주르르 널려 있을 뿐, 같이 놀 친구가 없어 또 심심해지기 시작했어요. “에이 시시해, 부산 ‘서면’이 뭐 좋다고 아빠, 엄마는 이곳으로 이살 왔담”하고 나는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언덕 아래로 내려가 내 친구가 될 만한 조무래기 아이들 몇 명을 데리고 나타났습니다.
  “야~신난다. 울 엄마가 최고야” 그 애들은 현순이, 양아, 종님이, 철수…라고 제각기 자기 이름을 밝혔고, 엄마가 내어주신 알록달록한 알사탕과 과자들을 재빨리 먹어치우고는 모두 앞마당을 나갔습니다.
  화창한 봄날이어서 그런지 그날따라 내 새빨간 자전거는 더 눈부시게 빛나며 아이들의 눈길을 끌고 있었습니다. “한별아, 저 자전거나 좀 타 봐도 돼?” 가까스로 현순이가 먼저 모기만한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미처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양아, 종님이 철수도 덩달아, “한별아, 나도 나도…”하며 보챘습니다.
  “그래 타 봐.” 으쓱대는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이들은 서로 샘을 내며, 우리 집 앞마당에서 이리 돌고 저리 돌며 자전거를 타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나는 또 다시 심심해지고 입이 한 발만큼 나와 엄마를 들볶으며 집 안팎을 들락거렸습니다.
  “엄마, 쟤네들 다 집으로 보내버려. 이젠 다시 함께 안 놀 테야” 그러나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매양 그런 식이었지요. 그 아이들은 나보다는 새빨간 자전거를 한번이라도 더 타보려고 매일 아침 나타났지만 자전거만 타고나면 언제나 하나 둘씩 소리도 없이 집으로 가 버리곤 해서 내 속을 태웠지요.
  내가 앙탈을 부릴 때마다 엄마는 “아이구, 우리 한별이 참 착하지? 아무리 좋은 자전거라도 혼자만 타면 욕심꾸러기가 될 수밖에 없어. 그러면 이담에 커서 훌륭한 사람이 못돼요. 자기가 아끼는 것이라도 다른 애들과 함께 나눌 줄 아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야. 우리 한별인 그런 좋은 사람이 될 거지. 그치?”
  한 자나 나온 내 입을 엄마는 단박에 쑥 들어가게 해 난 씨익-웃고 말았지요.

  얼떨결에 먼 미국 땅까지 이사를 와 버린 지금이야, 그때의 코흘리개 친구인 현순이, 양아, 종님이, 철수가 왜 이렇게 차례차례로 생각이 나는지요. 그 아이들도 지금쯤 나의 새빨간 세발자전거를 기억할 수 있을까요? 아니, 그 새빨간 자전거 때문에 내 얼굴은 아마 까마득히 잊어버렸겠지요?
추운 겨울 어느 날, 내가 멋있는 양복을 입고 김포공항을 떠나며 난생처음으로 비행기를 탔던 그날, 엄마는 혼잣말처럼 말했어요.
  “우리는 이제 정말 큰 나라로 간단다. 말을 낳으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랬다지. 그래서 이모가 계시는 시카고로 가려는 겨야. 젊었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 엄마, 아빠가 좀 고생이 되더라도 우리 한별이만은 세계 속에 우뚝 서는 훌륭한 인물로 키우고 말 꺼야.”
  그러나 미국생활을 시작한지 한 달도 못되어 엄마, 아빠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져 갔어요. “젊었을 때의 고생은 사서도 한댔지만 우선 말이라도 통해야지. 미국은 이제 더 이상 지상의 낙원이 아니야….”하는 엄마, 아빠의 넋두리가 밤마다 방밖으로 새어나오기 시작했지요.
그런데다, 가까스로 돈을 모아 미국 유치원에 들여보낸 내가 영어로 말도 못하고 알아듣지도 못해 클래스의 다른 꼬마들로부터 “만스터”(괴물)란 별명을 듣는다는 소리를 듣고는 예쁜 엄마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맺히기도 했어요. 아빠는 또 아빠대로 직장을 찾아, 미국에서는 ?발?이라는 자동차도 없이 이곳저곳을 헤매며 돌아다니느라 추운 겨울날 “얼은 햇님”처럼 새빨개진 얼굴로 맥없이 돌아오기도 했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아빠가 취직이 되었어요.
  “여기가 미국인데도 아빠가 용케도 다시 은행에 취직이 되셨단다.”
온 식구가 기쁨에 찬 그날 밤, 우리는 전기불만 켜면 바퀴벌레가 우르르 달아나는 낡은 아파트에서 맥도날드 빵을 사와서 파티를 열었어요. 무려 6시간 동안이나 인터뷰를 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고, 나도 그런 아빠가 자랑스러워서 어깨가 들썩거려졌지요.
  드디어 추운 겨울도 두려울 게 없는 나날이 계속되었어요. 은행에서 아빠는 ?코인 텔러? 노릇까지 겸해 무거운 동전까지 들고 아래 위층을 오르내리기도 하신다지만, 창구에서 손님을 대할 때면 워낙 못 알아듣는 얘기들을 많이 하는 통에 무조건 빙그레 웃으시는 것이 버릇이 되었대요. 그러다가 결국, 은행 직원들의 회의 때 얼마나 좋은 직원인가 하는 칭찬까지 듣고 마침내 “미스터 스마일”이란 별명까지 듣게 되셨다지 뭐예요. 한참을 깔깔거리며 웃다가도, 아빠가 바람처럼 획획 지나가 버리는 영어를 잘 알아듣는 척 하느라고 “미스터 스마일”이 된 걸 생각하니 바짝 약이 올라 나는 슬그머니 책상 앞으로 다가가 “앞으로는 정말 영어공부를 열심히 해야지. 그래서 날더러 만스터(괴물)라고 놀리는 필립이나 마크 녀석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고 말 꺼야”하고 두 주먹을 불끈 쥐어보기도 했습니다.
내가 다녔던 유치원은 재미있게도 <트윙클 트윙클 리틀 스타(반짝 반짝 작은 별)> 너서리스쿨이라고 불렸어요. 그곳에서는 남자애들은 모두 정장 차림에 와이셔츠와 넥타이나 보타이를 매어야 하고 두 살짜리 여자애라도 여자는 모두 스커트를 입어야지 남자처럼 바지를 입으면 학교 안에 들어갈 수가 없었어요. 영어도 읽을 줄 몰랐지만 두꺼운 성경책을 각자 하나씩 들고 읽는 시늉이라도 내어야 했지요. 미국이 썩지 않으려면 어린이 교육부터 철저해야 된다는 교장선생님의 말씀 때문이었어요.
  첫 번째 학예회 날이었었어요. 모처럼 혀를 도르르 도르르 굴리며 연습한 노래들은 노랗고 까맣게 새하얀, 온갖 색깔들의 얼굴을 가진 학부형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져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아 바보처럼 엉엉- 소리 내어 울면서 무대를 내려오지 않았겠어요? 생각만 해도 창피하고 또 부끄러운 일이었지요.
  그날 이후로 나는 밤마다, 엄마 아빠 앞에서 높은 무대 하나를 만들어 놓고 “트윙클 트윙클 리틀 스타 하우 아이 원더 휫 츄알, 오프 오버버 더 월드 소 하이…”하고 입을 크게 벌리고 혀를 도르르 말고, 고개를 똑바로 쳐들면서 용감하게 노래를 하거나, 엉터리 영어로나마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흉내 내기도 했지요. 그럴 때마다 신기한 눈초리로 나를 지켜보며 열심히 박수를 치던 엄마를 난 잊을 수가 없어요. 창밖의 달님처럼 환했던 그 얼굴을….
  “와! 우리 한별이 최고야 최고. 벌써 영어노래를 이렇게 잘 하다니, 기특하기도 해라”하고 말이예요.
  춥고 추웠던 겨울이 지나고 드디어 따뜻한 바람이 불면서 봄이 오기 시작했어요. 미국의 봄은 튤립꽃(tulip)에서부터 오기 시작했어요. 연초록 이파리들이 얼음 섞인 땅 속을 뚫고 뾰족뾰족 나오는가 했더니, 어느새 세상은 온통 예쁜 꽃바다였어요.
  “신기하기도 해라.”
  엄마는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원 세상에… 온 천지에 빨간 꽃만 핀다면 얼마나 끔찍하겠니? 이것 봐. 우리 한별이가 심심할까봐 하나님은 이렇게 빨간 꽃도 피게 하고 하얀 꽃, 노랑꽃, 파랑꽃, 분홍꽃에 보라색 꽃까지 피게 하신 걸 꺼야…”
  엄마를 따라 나도 덩달아 춤이라도 출 듯 기뻤습니다. 그렇게 꽃을 좋아하시던 엄마가 꽃집에서 일을 해보겠다고 나선 건 얼마 후의 일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예쁜 꽃들과 함께 숨쉬고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엄마는 소녀처럼 기뻐했었지요. 그러나 그때, 한 푼이라도 돈이 더 필요해 그랬다는 걸 나는 미처 몰랐었지요. 나는 언제나 나를 제일 좋아하고, 그래서 별을 유달리 좋아했던 엄마가 나보다 꽃을 더 좋아할까봐 은근히 겁이 나기도 했지요.
  언젠간 엄마는 한국에 있는 이성선이란 시인 아저씨가 쓴 ‘별을 보며’란 시를 읽어주기도 했으니 그럴 리가 없으리라 생각했지요. 그 시를 읽으며, 엄마는 내 얼굴을 취한 듯 바라보기까지 했으니까요.

    내 너무 별을 쳐다보아
    별들은 더렵혀지지 않았을까

    내 너무 하늘을 쳐다보아
    하늘은 더렵혀지지 않았을까.

    별아 어찌하랴
    이 세상 무엇을 쳐다보리…
                                        -‘별을 보며’ 일부

  어느 날, 내가 엄마와 더 있고 싶어 아침부터 머리가 아프다고 칭얼대며 열이 많이 난다고 말했더니, 내 머리를 짚어보던 엄마가 “오늘 하루는 학교를 쉬려무나. 내가 한별이와 종일 있어 줄께”하고 말했어요. 나는 속으로 너무나 신이 났지만 힘없는 얼굴을 하고 침대로 가서 누었어요. 그랬더니 엄마는 “한별아, 미국에서는 아빠 혼자만 돈을 버시면 우리는 오래오래 바퀴벌레가 나오는 이 아파트에서 살아야 된단다. 며칠 전에는 아래층 간호원이 한별이가 콩닥콩닥 뛰어다녀서 시끄러워 잠을 못 잤다고 문밖에 쪽지를 서 놓았더구나. 안되면 경찰을 부르든지 무슨 조치를 취하겠다고 엄포까지 놓으면서 말이야. 이 천지에 우리 한별이가 마음 놓고 뛰놀 집 한 칸도 없다니…. 그래서 말인데, 엄마가 무슨 일이든지 더 해서 돈을 벌면 더 큰 집으로 이사도 갈 수 있고, 멋진 자동차도 살 수 있어. 넌 착한 아이니까 엄마가 저녁 때에 오더라도 괜찮겠지?”하고 말했어요.
  나는 드디어 그 끔찍한 ?열쇠아동?이 되는 거구나 하는 생각에 와락 겁이 났지만 고개를 끄덕거릴 수밖에 없었어요. 그 뒤 엄마가 이른 아침부터 꽃집에 나가기 시작한 처음 몇 달 동안은 이웃집 누나가 나를 돌봐주러 오기도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더 많아졌어요. 그럴 때마다 난, 엄마가 부엌에 있는 작은 칠판에 적어주고 간 한국말들을 공부해야 했어요. “미국에 산다고 한국말 할 줄 모르면 “얼”이 빠진 아이가 되는 거야. 매일 매일 칠판에 적어놓은 낱말들을 열 번씩 읽고 쓰고 해야 돼 알았지?” 엄마의 말씀이 방과 후면 늘 내 머리에서 맴을 돌았어요.
어떤 날은 <하늘에 있는 것 10가지 찾기>라는 숙제도 있었어요. 해와 달, 별과 구름, 하늘, 바람, 햇빛… 그러다가 10가지를 다 채우지 못해 끙끙거릴 적도 있었지요.
  그럴 때쯤이면 어김없이 꽃집에서 일하던 엄마로부터 때르릉 때르릉 전화가 오곤 했지요. “한별아, 지금 네가 보는 하늘엔 뭐가 보이니?”하고 말이예요. 생각에 생각을 이어가노라면 어느덧 빠알갛게 노을이 질 때도 있었지요.
  낱말공부가 심드렁해지면 엄마가 부엌창가에 내어 놓은 조그만 꽃 화분들을 쳐다보지요. 제라늄, 팬지꽃. 히아신스며 또 한국에서 보던 패랭이꽃 비슷한 꽃들을 보며 이야기를 시작했지요.
언젠가 이모가 꽃 화분 하나를 내게 선물로 사주었어요. 그 꽃 화분을 차에 싣고 오면서 평소에 내가 알고 있던 꽃에 대한 이야기를 주섬주섬 했어요. 그랬더니 이모는 깜짝 놀라며 “어머머, 우리 한별이가 어쩜 이렇게 꽃을 사랑하지?”하며 신통해 했어요. 그때 내가 무슨 얘길 했는지 들어보실래요?
―꽃은 자기가 세수하고 싶을 때는 가만히 내 머리 속으로 얘기를 해와요. 그러면 내가 곧 물을 주지요. 꽃은 내가 가끔 목이 마른 것처럼 목마를 때가 많아요. 그럴 때는 꼭 물을 줘야 돼요. 내 친구는 가끔 꽃에 물 주는 것을 잊어버려 죽이기도 한다지만, 나는 절대 잊어버리지 않아요. 꽃이 나한테 말해주니까요. 그리고 시든 꽃잎이 있으면 꼭 따줘야 해요. 그걸 안 따주면 다른 꽃잎도 시들게 만들어요. 내가 꽃에게 물을 주면 뿌리와 줄기가 튼튼해져서 오래오래 살아요. 봄, 여름, 가을, 겨울까지도 살아요. 내가 만약 꽃이 목마를 때마다 물을 잘 줘서 봄, 여름, 가을, 겨울 또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렇게 오래 살면 얼마나 좋겠어요? 사람은 70년씩이나 산대요. 책에서 배웠어요. 그런데 고양이나 다람쥐는 그렇게 못 살아요. 꽃도 그렇게 못살지만, 내가 물을 잘 주면 오래오래 살아요.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서 꽃나무가 얼마나 컸나 알아보려면 자로 재어 보면 돼요. 매일매일 조금씩 커요. 아참, 이제는 꽃 화분 박스를 치워줘야겠네. 차를 타고 오면서 너무 박스 속에만 있으면 꽃 화분이 이리저리 흔들려요. 그러면 꽃이 너무 피곤하겠지요?―

  꽃집에서 일한다고 언제나 꽃과 같이 예쁘게 웃으며 살 수 만은 없나 봐요. 남들을 기쁘게 해주려는 사람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꼭두새벽에 일어나서 일을 해야 해요. 꽃시장에서 제일 싱싱한 꽃을 사와야 하고 장미 가시에 찔리며 줄기 속에 가느다란 쇠꼬챙이를 넣어 꽃꽂이를 하느라 엄마 손은 점점 거칠어져 갔고 상처투성이가 되어 갔어요. 또 꽃들이 시들지 않게 해 주느라 아무리 추워도 실내온도를 높일 수도 없어요. 그리고 꽃을 선물하는 사람들도 뭐 그렇게 다 착한 사람들은 아니라는 거예요. 주문도 까다롭게 하지만, 손님들이 찾는 꽃들이 없을 때는 등골이 식은땀이 난다는 거예요. 산다는 게 그리 만만치는 않았던가 봐요.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먼저 차지한단다.”하고 엄마는 늘 말했지만, 세상은 일찍 일어나는 새들을 등치고 어르고 혼나게 하기도 한다는 걸 나도 어렴풋이 알기 시작했지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꽃집에도 강도가 들어오다니. 믿을 수 없어. 아, 정말 믿을 수 없는 세상이야. 한별아, 너는 믿겠니? 엄마처럼 착하고 예쁜 사람들 돈 몇 푼 빼앗아 가기 위해 죽이기까지 하다니… 한별아, 한별아, 난 이제 어떻게 살까, 으흐흐흐…”
  넋 잃은 얼굴로 방바닥을 치며 울부짖는 아빠의 울음소리가 먼 꿈속처럼 아련히 들려왔습니다.      “그럴 리가 없어. 그럴 수가 없어. 울 엄마가 나를 두고 그렇게 갈 수는 없어…” 웅성웅성 사람들이 집으로 모여들기 시작하는 사이 어디선가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부르시면 언제나 가는 거야. 엄마가 없더라도 착하게 살아야지?”
소리 나는 쪽을 따라 점점 빨려 들어가듯 나는 발걸음을 옮겨놓기 시작했습니다.
  “한별아, 지금 네가 보는 하늘에는 뭐가 보여?”
  숙제를 내어주던 엄마에게 꼭 대답해 줄 말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앞으로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 배미순 : 1947년 경북 대구 출생. 70년 ?여원 신인상? 수상. 7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한국) 시당선 등단. 시집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풀씨와 공기돌?, ?보이지 않는 하늘도 하늘이다? 등 출간. 2005년 ?해외문학상? 대상 시부문 수상. 현재 ?중앙일보?(시카고) 문화전문 기자 겸 중앙문화센터 원장, ?해외문학? 편집주간.

 

 

날짜 : 07-08-05 05:12     조회 : 692